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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각

새벽 조회수 : 395
작성일 : 2009-11-18 06:50:03
아침잠 많은 제가 요즘 불쑥 이른 새벽에 깨곤 합니다.

담가둔 빨래가 생각나 세탁기에 넣으며 보니 집 앞 교회에 새벽기도회에 사람들이 다녀가네요.

개신교회에 반감도 있지만, 이 새벽에 잠과 따뜻한 잠자리의 유혹을 물리치고 나온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고 저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도 가끔 마음이 괴로우실 때면 새벽에 교회에 가기도 하세요.

엄마의 새벽은 언제나 분주하셨지요. 제가 어릴 적 대학가에서 작은 식당을 하실 때는 아침밥을 먹으러 오는 학생들 때문에 장사 준비를 하셨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일찍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저희를 위해 새벽으로 건물청소나 배달일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좀 더 자라자 낮에는 파출부를 다니시면서 새벽엔 집안일을 하셨죠. 제가 대학을 가고 난 뒤에는 집앞에 작은 소매점을 하시느라 집안일은 또 새벽 일찍... 아버지가 퇴직하신 지금은 낮에는 요양보호사로 다니시느라 아침 일찍 집안을 돌보아 두시느라 또 바쁘세요.


엄마는 가난한 시골집에서 늦둥이 외동딸로 태어나셨어요. 형제라고는 스무살 차이나는 오빠 뿐인데 엄마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얼마 안되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딸이 귀한 집에 늦게 본 딸이라고 가족들의 사랑은 많이 받으셨다지만, 이미 나이가 많으신 아버지와 첫아이를 낳다가 아내를 잃고 혼자 사는 아버지뻘 오빠 뿐이라 집안일은 다 어머니 차지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공장에 다니면서부터 엄마는 늘 새벽에 일을 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시골에서 넷이나 되는 덩치 큰 시동생들 밥하고 도시락싸고 빨래 해 입히는 것으로도 하루가 짧았을 신혼 시집살이에는 새벽에 시어머니 몰래 물을 길어다주는 아빠가 너무 좋으셨대요. 제가 그 때 애도 없을 때 도망이라도 갔어야지 하루 세끼 밥먹기도 힘든 살림살이에 인간성도 안좋은 시동생들에 시어머니 구박도 심한데 새벽에 물 좀 길어다준다고 그게 뭐가 좋아 눌러 앉았냐고 괜한 소리를 하면 엄마는 키도 작아서 컴컴할 때는 우물물에 빠질 것 같이 무섭고 힘이 든데 왜 안좋았겠냐고 웃으세요.

엄마는 참 긍정적이세요. 덩치도 참 자그마하지만 큰딸이 제가 기억하는 엄마의 30년만도 많고 많은 사연과 어려움이 있었는데, 나에게 그런 일이 있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은 가난과 시가 식구들의 만행과 몇년간의 남편의 폭력과 여럿인 자식들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말썽들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이겨오셨어요. 어렵게 살아오셨지만 인심을 잃지 않고 두루두루 친구들도 많고 잘 지내시는 것 보면 어쩔 수 없이 짜낸 오기가 아니라 엄마의 천성인 것 같아요.


딸만 여럿인 집인데 집안일을 시집가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고 엄마가 못하게 하셔서 전 양말짝 하나 빨지 않고 고등학교까지 마친 무심한 큰딸인데, 편히 살라는 엄마의 바램이 이루어진 건지 전 집안일 착착 도와주시는 다정한 시아버지와 몇달 전부터 함께 살고 있어요. 안그래도 새벽 찬물에 손 담글 일이 없는데, 오늘 새벽엔 그깟 빨래 좀 돌린다고 찬물을 좀 만졌더니 금방 몸이 옹글아드네요. 엄마는 무수한 날들에 해오셨을 일인데... 아직 주부의 자세도 엄마의 자세도 못 갖춰가는 미련한 큰딸이 터지고 마디가 굵어진 엄마의 손을 멀리서 그리워하며 부끄러워하며 적어봅니다.


IP : 115.23.xxx.120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짠~합니다.
    '09.11.18 9:48 AM (115.140.xxx.83)

    딸아이의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지금 이시간..
    저또한 님의 친정어머님처럼 곱게 키워주신 엄마가
    더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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