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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종인을 지지한다-에세이스트 김현진
[한겨레] 2009-09-20 오후 09:42:33
언제나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은 언제든지 퉤 하고 뱉으면 되는 껌처럼 입에 올리기 만만한 대상이다. 요즘 애들은 정치의식도 전혀 없고,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인데다 한마디로 골이 비었다고 이야기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가장 손쉬운 방법이고, 유감스럽게도 언제나 효과가 있다.
나는 최근 몇 년간 열심히 투표를 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내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다. 보수정당에 투표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한 부모님의 표까지 2인분을 매수하다시피 하며 투표했지만 진보정당의 득표율은 형편없었다.
우리는 단체로 실연만 당했다. 물론 정치의식이 없다, 생각이 없다, 하는 식의 비난은 그대로 들으면서 차이기만 한 거였다. 이쪽 진영에서도 20대가 투표율이 낮고… 하는 식으로 이편저편에서 욕만 먹었다.
그건, 이를테면 계속 차이기만 하다 보니 마침내 별로 연애에 희망을 갖지 않게 된 노총각 같은 기분이었다. 어디 좋은 아가씨가 있대, 이번엔 정말 잘될 거야 꼭 만나보렴, 하는 말을 들어도 어차피 나한테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 하고 자포자기하게 되는 그런.
2008년 총선 때 우리는 아주 호되게 차였다. 내가 아는 애들은 죄다 진보정당에 투표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누가 내 표 가져갔어! 우리는 혹시 누가 투표함을 열어 우리 표를 몰래 훔쳐다가 폐기한 게 아니냐며 의심했다. 패배감이 마음을 사정없이 좀먹었다. “아파트 광고에서만 본 그놈의 대한민국 1%, 이렇게 한번 되어 보는구나…” 하던 친구는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미국 놈들은 좋겠다, 대통령이 오바마 아니면 힐러리라니… 우리는 도둑놈과 잡범 중에 골라야 하는데.”
유한킴벌리도 아니고 푸르게 푸르게 변해만 가는 조국의 각 지역을 지도로 보여주는 총선 개표 방송을 보며 파랗게 질려 맥주캔만 와락 찌그러뜨리고 있던 나는 끝내 ‘추행연희’ 최연희 의원의 4선 성공이 확정되자 소주로 주종을 바꾸고 부엌가위를 가져다 실연당한 여자답게 머리카락을 죄다 잘라 버렸다.
분명히 누군가에게 차였는데, 도대체 누가 나를 찼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이젠 누가 욕하거나 말거나 바쁘다. 피 마르게 오르는 등록금 걱정에 바쁘고 절대 안 될 것 같은 취직 걱정에 바쁘고, 그래서 ‘민주화가… 시대의 부름이…’ 뭐 기타 등등 뻔한 소리나 하는 아저씨들은 정당을 막론하고 그냥 다 그 아저씨가 그 아저씨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들 중 누가 되든 딱히 우리에게 좋은 일 같은 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이미 서글프게 체념한 지 오래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그동안 겪은 게 있어서 기대치가 너무 낮다는 데 있다. 아는가, 단 한 번도 승리해 보지 못한 그 절박함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공약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 무관심은 계속될 것이다.
나는 이번 10·28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임종인 후보 지지선언인 명부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것은 저번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때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 같은 이들에게 절규하며 끌려나가는 것 같은 장면을 조금이라도 덜 보고 싶기 때문이다.
임종인 전 의원은 국회 날치기 통과 사태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경우 특전사에서 쌓은 체력에 더욱 단련을 거듭해 최소한 혼자 10명은 막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의 주요 정책 중에 비정규직법 개정이 있다. 나에겐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우리를 매혹하기란 의외로 이렇게나 쉽다. 나는 그를 지지한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ㅁ 원문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77764.html
1. 예삐
'09.9.21 11:59 PM (110.8.xxx.100)기사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77764.html
2. 섭
'09.9.22 12:34 AM (114.203.xxx.37)제가 소시적부터 눈여겨 지켜보는 처자입니다. 고등학교 자퇴하고 한예종 최연소 입학..
글도 잘쓰고 행동하는 젊음...잘 읽었습니다.3. 저는
'09.9.22 12:46 AM (119.149.xxx.105)첨에, 신문에.. 게다가 한겨레 칼럼에 참 독특한 분위기의 여성(딱 글과 필자 사진때매)이 글을 쓴다 싶어 몇번 관심있게 봤드랬죠. 그러다 몇달? 몇년까진 아닌것 같고... 하여간 지금은 팬이 돼버렸네요.
그러다 저 분의 히스토리도 대략은 알게되고, 얼마전엔 에세이집도 싸그리 팠죠. 내용이 아주 어렵진 않아서 한달안에 나와있는 저작들^^ 다 읽어볼 정도.
하여간 내 자식이 저렇게 커주면 참 좋겠다 싶은 츠자예요. 시원시원한 말투도 좋고, 팍팍 찌르는 촌철살인도 좋고, 유머감각도 사랑스럽고..^^
저런 젊은이가 많은 나라에 살고 싶어요.4. 나무
'09.9.22 8:27 AM (114.203.xxx.54)톡톡튀는 그렇지만 약간 드세보이는 이미지의 이 사람을
좋아해요. 물론 만나본 적 없고 한겨레 사진에서만 본 이미지.
책을 많이 썼나보네요.
한번 사봐야 겠어요.
젊고 발랄하고 도발적인 칼럼을 읽으면서
제가 늙었구나를 실감하게 되요.
제 딸이 저렇게 자라주길 바랍니다. 저도5. 잉
'09.9.22 4:59 PM (211.40.xxx.58)김현진님 팬이 많네요
저도 추가
전 예전에 인터넷에 실린 글 읽고는 나이가 많은줄 알았는데
아직 처자더군요
글에 연륜이 느껴지던데----- 내가 바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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