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년에 다세대주택에 셋방을 얻어 지냈어요..
주인집이 70 노부부셨고 바로 옆집에 사셨어요.
할머니 첫인상이 아이처럼 너무나 환하게 웃으시고 경계심이 없었어요.
반면에 할아버지는
하수구랑 방충망보수해 달라고 해도 시큰둥하셔서 좋은 인상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반년넘게 지내보니 할아버지가 참 괜찮은 남편이신 것 같았어요.
그 전년도까지 정원사로 일하셨는데 이제 늙어서 안 써준다고 집에 계셨어요.
집에서 마주칠 때면 두 분이 같이 시장 봐 와서 같이 배추 다듬으시고
전기세 내러 주인집에 가보면,
할아버지가 거실에 이불 펴놓고 꿰매고 계시고 어떤 땐 파 다듬고 계시고
옥상에 상추랑 채소 심어놓고 가꾸시고
장마철 오기전에 건물에 방수페인트 직접 바르시고 부지런 하시더라구요.
할머니는 경계심이 없으셔서 좋았지만,
당황스러운 게, 아가씨 하고 부르고는 불쑥 불쑥 제 집으로 들어오시고
주인집이랑 전기세고지서가 합산되서 나눠내야 하는데,
제가 요금을 조금 낸다고 불평하시는 거에요.
할머니가 글자를 몰라서 고지서를 읽지 못하시고 미터기도 못 읽으시고 우기기만 하시니
답답해서 할아버지한테 얘기했어요.
이런 무식한 마누라 같으니, 라고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담담한 목소리로 ‘그이가 잘 모르니까..’ 하시더라구요.
할머니가 할아버지 자랑하시던데, ‘우리집 양반이 을매나 착한데..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두분이 큰소리 내고 싸우는 것도 못 봤네요.
가끔 거실에 음악반주 틀어놓고, ‘나는 나는 꽃을 든 남자~’하고 노래 부르시는 건 들었어요.ㅎㅎ
참, 할아버지 머리를 안 감아서 늘 떡이 져 있었어요..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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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할아버지가 멋진 남편분이세요.
ㄹㄹ 조회수 : 1,668
작성일 : 2009-09-17 02:51:13
IP : 61.101.xxx.30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ㅎㅎ
'09.9.17 3:06 AM (220.70.xxx.185)아~~넘 보기좋네요^^ 나도 나이들어서도 글케 살고시퍼요
2. *
'09.9.17 3:30 AM (96.49.xxx.112)사람사는 냄새가 폴폴 나는 글이네요.
막 상상하면서 읽었어요^^3. 미소
'09.9.17 3:50 AM (211.187.xxx.71)그런 모습을 멋지게 바라볼 줄 알고
이렇게 따사로운 글 올리신 원글님도 멋진 분이세요.^^4. ㄹㄹ
'09.9.17 4:27 AM (61.101.xxx.30)우리 아버지도 성실한 분이셨지만 본인 밥도 누가 떠드려야 했거든요.
그래서 그 주인할아버지 집안일 하시는 거 보고 놀랬지요. 존경스럽던데요.
하지만~~전기세 계산하실 때 더하기 빼기에 30분 걸리십니다.....
그리고 두분 다 건망증 심하셔서 핸드폰 잃어버렸다 뭐, 집열쇠 잃어버렸다 자주 그러셔요.
문앞에 서서 하시는 소리 다 들려요. '가만 있어. 내가 열쇠 어따 놨지.' 하시고는
어떤 땐 저를 불러요.아가씨~아가씨~... 따님한테서 문자왔는데 와서 답장메시지 좀 보내주라고 그러시고..5. 좋네요
'09.9.17 4:29 AM (211.229.xxx.141)두 노부부가 서로 아끼며 의지하며..
6. ^^
'09.9.17 5:50 AM (121.172.xxx.144)읽으면서 마음이 훈훈해 집니다.
7. 나두그러고파
'09.9.17 9:06 AM (116.122.xxx.194)늙어 가면서 돈도 중요하지만
남편이랑 그렇게 늙어가고 싶어요
맘이 따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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