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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동지"라고 불러준 DJ, 잊을 수 없다 "

.. 조회수 : 631
작성일 : 2009-08-21 16:38:04
윤 동지"라고 불러준 DJ, 잊을 수 없다  
[DJ와 나] 김대중 후보 로고송과 <오마이뉴스>에 얽힌 22년 인연

09.08.21 09:00 ㅣ최종 업데이트 09.08.21 09:00  윤여문 (sydyoon)  

김대중  


2009년 8월 18일은 기자에게 귀신들린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공(時空)을 초월한 듯한 하루였기 때문이다. 그날 오전에 고은 시인, 그리고 백낙청 교수와 국제전화로 통화한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태평양 건너 시드니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영정을 모셔놓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있다. 분명 환청일 터인데 너무나 분명하다.



18일, 고은 시인· 백낙청 교수와의 통화



  
  
▲ 1992년 2월, 시드니대학교에서 열린 '고은 문학의 밤  
ⓒ 윤여문  김대중




잘 알려진 대로 고은 시인과 백낙청 교수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운명적인 인연을 이어온 대표적인 문화계 인사들이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어려움도 함께 겪었고 6.15 남북공동선언 등의 통일문제에서도 공동보조를 맞춰왔다.



1992년에 호주를 방문한 고은 시인한테 반해서 해마다 '고은 시 낭송회'를 여는 호주 시인들이 있다. 그런데 그 모임을 주관하는 마가레트 스트리톤(호주국영 abc-TV 문화프로그램 진행자)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고은 시인에게 전하는 통화를 18일 했다.



스트리톤은 생전에 "귀신들린 것 같은 시낭송과 통일을 열망하는 그의 시편들에 크게 감명 받아서 17년째 '고은 시 낭송회' 주관한다"고 말했다. 스트리톤은 호주공영 SBS-TV '북 쇼(Book Show)'에 출연한 고은 시인을 40분 동안 직접 인터뷰했다.



고은 시인과 통화를 끝낸 다음 곧바로 백낙청 교수와 통화했다. 그가 8월 25일 호주국립대(ANU)에서 '한반도의 분단체제'에 관해서 공개강좌를 가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호주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 여러 차례 참가한 바 있는 백낙청 교수는 오랫동안 천착해온 '분단체제 극복'에 연관 지어서 자신의 통일철학을 밝힐 예정이다.



그런데 두 사람과 통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커다란 충격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DJ와의 개인적 인연들이 떠올랐다. 밤늦도록 김대중, 고은, 백낙청의 그동안 발자취를 곱씹으면서 세 분의 공동관심사인 '분단체제 극복'에 대해서 생각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최초의 로고송 추억



"윤군이라고 했나요? 지금부터는 윤 동지라고 부르겠어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대전 유성호텔에서의 기억이다. 전주 신역의 유세를 마치고 유성에서 1박한 다음 부산으로 가서 수영만 유세를 앞둔 시점이었다. 유세장에 청중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어 30만, 50만은 보통이고 100만 명도 모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기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단독으로 만났다. 밤늦은 시간이었는데, 마치 거대한 산과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지라는 호칭 하나로 바짝 긴장한 마음을 풀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말이 대화지 기자는 다소곳이 앉아 그냥 듣기만 했다. 바로 그날 낮에 전주 신역 유세장에서 방송된 김대중 후보 로고송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을 주셨던 것이다. 그 로고송은 그날 처음으로 소개됐는데 김영삼 후보의 로고송과 더불어 대한민국 정치사상 최초의 선거용 로고송이었다.



  
  
▲ 1987년 김대중 후보 로고송 카세트 안쪽 표지.  
ⓒ 윤여문  김대중



"윤 동지, 로고송들이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가사 몇 군데를 고쳤으면 좋겠어요. 특히 '자전거' 노래 중에서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김대중이 나갑니다. 비켜나세요'는 문제가 있어요. 차라리 '김대중이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로 바꿉시다."



당시 평민당 김대중 후보의 선거본부는 여의도에 있었다. 평민당 당료들은 그곳을 '옐로 캠프'로 불렀다. 그러나 본부만 그곳에 있었지 하부 조직은 흩어져 있었다. 로고송 제작도 마포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진행됐다.



그 당시 회사원이었던 기자는 퇴근 후에 '옐로 캠프'로 가서 밤늦도록 로고송 제작에 몰두했다. 임무를 부여받은 동지들과 함께 가사를 쓰고, 곡을 선택하고, 녹음하는 작업이었다. 모든 일이 극비리에 진행됐다.



그 당시 민족해방그룹(NL)과 민중민주그룹(PD)으로 갈라졌을 뿐만 아니라 DJ와 YS를 흔쾌히 지지할 수 없었던 운동권은 군정종식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비판적 지지를 뜻하는 '비지그룹'이라는 명칭으로 평민당과 통일민주당에 파견(?)됐다.



기자는 NL 쪽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김대중 후보가 의미 있는 통일정책을 많이 제시했다는 이유로 평민당을 선택했다. 그 당시 기자와 같은 고향 출신인 김종필 후보도 대선 구도의 일각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런 연유로 기자는 고향 선후배들로부터 배신자 낙인이 찍혔다.



어렵사리, 그리고 아주 급하게 로고송의 가사가 완성되고 녹음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녹음을 해주겠다는 녹음실이 없었다. 김대중 후보 로고송을 녹음한 다음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당연히 노래를 부르고 반주를 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걸 해결하는 건 기자의 몫이 아니었다. 시인이라는 이유로 '옐로 캠프' 한화갑 특보로부터 로고송 가사를 쓰는 일을 하명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옐로 캠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열성 일꾼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결국 비밀리에 방송국 합창단원과 연주단이 동원되고, 절대로 녹음회사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야간녹음을 허락한 녹음실이 나타났다. 가수 아무개씨가 운영하던 녹음실도 그 중의 하나였다.



눈물바다가 된 부산 수영만 유세



  
  
▲ 1987년 대통령 선거 전주 신역에서 유세 중인 DJ  
ⓒ 윤여문  김대중




우여곡절 끝에 녹음이 완성되고 전주 신역 유세장에서 첫 방송이 시작됐다. 그날부터 기자는 아예 휴가를 내고 유세장을 따라다니면서 노란색 방송차량 안에서 녹음을 트는 담당을 맡았다. 수십만 명의 청중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로고송을 따라 불렀다.



나중에 한광옥 비서실장한테 들은 얘기인데 김대중 후보도 그날 처음으로 로고송을 들었다고 한다. 청중의 반응이 좋아서 비교적 만족스럽게 생각했지만 가사 몇 개를 고치고 싶어서 밤늦은 시간에 기자를 부른 것이었다. 덕분에 기자는 DJ를 독대하는 영광을 누렸다.  



부산은 YS의 아성이었지만, 김대중 후보의 부산 수영만 유세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경남북 일대의 호남 사람들이 총출동한 것 같았다. DJ의 연설로 한껏 고조된 청중들이 로고송을 따라 부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특히 '밀양아리랑'을 개사한 로고송이 마치 대선에서 승리한 것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들의 감동은 더욱 컸다. 나중엔 눈물을 흘리면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도 나타나면서 수영만은 바닷물이 아닌 눈물로 출렁거렸다.



호주로의 이민,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방문



회고가 너무 길어졌다. 기자는 '옐로 캠프' 파견이 원인(遠因)으로 작용하여 호주 이민 길에 오르게 됐다.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신 DJ가 애꿎은 직장인을 호주로 추방시킨(?) 셈이 됐다.



그렇게 시작된 이민생활이 10년을 넘길 즈음이던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했다. 감격스러웠지만 그냥 뒷전에 물러나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빨갱이' 운운하던 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 곁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청와대가 호주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단체를 통해서 나에게 동포간담회에 참석해달라는 통보를 해왔다. 그러나 넌지시 사양했다. DJ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지금은 크게 후회하는 대목이다.



길고 긴 투쟁의 기간에 비해 DJ의 집권 5년은 화살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그의 임기말년은 민주화 투쟁 못지않은 고난의 기간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던 날 기자는 우연히 <조선일보>를 읽었다. 그리고 폭음을 한 다음 밤새도록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스름 동이 틀 무렵 시 한 수를 써서 서울의 동료 시인에게 보냈다. 서울에 꽃샘바람이 드세게 불었다는 2003년 2월이었다. 나는 그 날 '복사꽃에 절하다'라는 시를 담아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보냈다.




  
  
▲ 재임시절 김대중 대통령.  
  



그 당시 기자는 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조선일보>와 생각이 크게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과거에 DJ 캠프에서 한 달 남짓 봉사활동을 했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을 바라보는 감회가 특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호주에서 높이 평가받는 DJ의 업적들이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폄하되는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 대통령의 퇴임 기사들이 너무나 처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 전해오는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시비에 대해서 abc라디오 소속 호주 언론인이 기자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한국인들의 몰이해가 아쉽다. 그 상은 김대중 개인에게 주면서, 동시에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인들이 한국인 모두에게 준 상이다. 그가 수상하는 장면을 TV로 지켜보면서 호주인들은 김대중 대통령과 한국인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부러워했다. 만약에 호주인 모두에게 노벨평화상을 줄 일이 있으면 호주 총리가 대표로 받을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럭비 팀이 우승했을 때 주장이 나가서 트로피를 받듯이. 한국인들이 노벨평화상 수상에 시비를 거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그 상을 한국인들 모두에게 준 세계인들을 모독하는 행위다."



그날 따라 특히 그 호주언론인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재외한인동포들을 포함한 한국인 모두를 대표해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DJ가 왜 저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떠나가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린 언제까지 서로의 얼굴에 먹칠이나 해대면서 살아갈 것인지. 떠나가는 겨울을 꽃으로 단장하여 배웅하는 봄날의 마음이 한국인 본디의 마음일진대, 그동안 우리가 너무 급하게 달려오면서 그런 귀한 마음들을 다 버리고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DJ의 초라한 퇴임이 맺어준 인연 <오마이뉴스>



그 일을 계기로 <오마이뉴스>를 알게 됐고 급기야 기자가 됐다. 시를 받은 동료 시인이 <오마이뉴스>를 소개해준 게 인연이 된 것.



2003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하며 쓴 자작시가 <오마이뉴스> 첫 기사(잉걸)로 실리면서 기사를 통한 모국과의 소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주로 호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관련 뉴스를 썼다. 10년 남짓 호주역사를 공부한 것을 밑천 삼아서 한국과 호주의 공통분모를 찾는 작업이기도 했다.



과분하게도 2006년에는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뉴스부문을 수상했다. 고은 시인은 기회만 있으면 기자에게 '시드니 건달'이라고 어깃장을 놓는데 제대로 복수를 한 셈이었다. 물론 고은 시인은 가장 많이 가장 큰 상찬을 기자에게 전해주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지자 호주 언론은 신속하게 보도했다. 주요 신문과 방송에서 브레이크 뉴스와 특집으로 다루었다. 서거 이튿날에는 호주 국영 abc-TV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일생'을 특집으로 마련하여 세 차례나 방영했다.



덩달아 기자도 바빠졌다. 호주 언론을 꼼꼼하게 챙기고, 호주 동포사회의 추모 분위기도 열심히 취재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에 한 꼭지씩 관련기사를 올리고 있다. 결국 DJ가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들어준 셈이므로 그게 보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윤 동지, 잘 부탁합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시드니 빈소.  
ⓒ 윤여문  김대중




20일 시드니한인회관 분향소로 가서 향을 피우고 두 번 절을 올렸다. 잠시 영정 앞에 머물면서 김대중 대통령님의 사진을 보다가 문득 뚝뚝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22년 전 유성호텔에서 "윤군이라고 했나요? 지금부터는 윤 동지라고 부르겠어요"라고 말씀하셨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집필실로 돌아와서 <오마이뉴스>에 접속해보니 오연호 대표기자가 김대중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했던 내용을 쓴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그 기사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유언이 이렇게 서술돼 있었다.



"나는 몸도 이렇고…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맡아서 뒷일을 잘해주세요. 후배 여러분들 잘 부탁합니다."  



그 이야기가 내게는 "윤 동지 잘 부탁합니다"라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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