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저는 유학 중이었습니다.
신문이라고는 별 관심도 없고, 정치에도 큰 생각 없었던, 그냥 평범한 유학생이었죠.
그러다 외국에 나와 있다 보니 한국 상황이 궁금해서 대학내에서 지원해 주던 인터넷이 무료였던지라,
그리고 모처럼 컴도 새로 장만했던지라, 이런 저런 사이트들도 다니고 했었는데,
그때 당시엔 지금처럼 한국내 인터넷이 크게 활성화 돼 있지 않았던 상태였던지라,
네이트네, 네이버네 이런 대형 포털들도 없었고요,
그래서 그나마 제일 나았던 국내 신문사들을 자주 접속했었지요.
특히나 IMF가 터져서, 유학생이었던 저로선 청천벽력같은 고환율때문에
가슴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거든요.
7-800원 이쪽저쪽이었던 환율이 어느날 갑자기 1800원까지 올랐었지요....
(그때 생각하면 제가 다녔던 미국 대학에 정말 고마운 마음이 있습니다.
학비 깍아 달라고, 아시아권 학생들 좀 봐달라고, 데모도 했었거든요-
데모하는 모습이 지역 티비 뉴스에까지 나갔습니다. 제 얼굴 대문짝만하게, 몇씬씩이나;; -_-;;
그리고 대학 측에서 외국인 학생들의 요청을 받아 들여, 학비를 반 이상 깍아 주었고-IMF 위기 넘길때까지-
학비를 학기 초가 아닌, 일년 후에 내도 된다고 허용해 주었습니다.
외국학생들 대상의 장학금도 대폭 늘려 주어 저도 혜택을 여러번 받았었답니다.
그때 미국대학의 배려가 없었다면, 전 대학 학위도 취득하지 못하고 나왔어야 했었을런지 모릅니다..)
아무튼, 유학 그만 둬야 하나 어쩌나 하는 상황..
그래서 당연히 더더욱 국내 정세에 관심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신문사 사이트들을 더더욱 신경 써서 둘러 보게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관심은 "대선" 에 집중이 되었었고요.
누구든 잘 뽑아 놔야만이 IMF에서도 극복될테니 말이죠..
그러다 자연스럽게 DJ 를 응원하고 지지하게 되었었죠.
대선 날이 다가오면서, 저는 비록 투표권은 있었으나 머나먼 곳에 있었기에 권리행사는 못했지만,
잠을 설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대선 즈음해서 불면증까지 생길 정도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죠.
DJ DOC 의 선거 노래도 흥얼거리고, 티비 토론한 내용도 잘 챙겨 봤었고요..
행여 또 낙선하실까.. 또 국민들이 엉뚱한 사람을 뽑을까.. 불안해 죽겠더라고요..
그러고 드디어 대선 당일..
DJP 연합이 효과를 발휘했던지, 충청도까지 가세해서 결국엔 김대중 대통령님의 대선 승리가 전해지더군요.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습니다.
한국민이 너무 사랑스럽고, 정말 소중한 승리를 가져다 준 한국민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그때 한국의 온갖 신문이란 신문은 다 섭렵하고 있었거든요.
(모든 신문 다 보기 시작한게 이때부터였습니다)
내내 긁어대던 조중동들..
DJ 당선되자 갑자기 급 태도 바꾸며, '인동초' 어쩌고 하면서 어찌나 띄워주고
알아서 아부하고 살살 기어대고 열심히 머리 조아리던지..
그때 어린 대학생이었지만,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쩜 그리 하루아침에 이리도 태도가 돌변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그때 당시 제가 USA Today 신문을 구독 중이었는데,
아침 신문 쫙 펴는 순간, 1면 헤드라인 으로 김대중 대통령님의 얼굴이 정말 '대문짝' 만 하게 떴더군요.
수십년만의 정권교체, 인간 승리, 한국민이 민주주의를 택했다, IMF 극복을 위한 경제대통령을 원했다..
이런 내용의 기사더군요.
미국 언론들조차 반세기만의 정권교체에 큰 의미를 두었으며, DJ를 칭송했습니다.
네.. 그 먼 나라에서 정말 감격했었답니다.
당선 되신 이후로도 한동안 잠을 못이뤘어요.
마침 겨울방학도 시작되었겠다.. 학교도 안가니 매일같이 신문 들여다 보고, 기사 하나하나 정독하고,
기쁨을 누구와든 나누고 싶었는데, 마땅치도 않았었거든요..
그때만큼 한국민으로서 희망이 느낀 적이 없었답니다.
비록 힘든 IMF 시기였지만(특히 유학생이었던지라) 그럼에도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는 지도자가 되셨었죠.
북한과의 외교(?)를 훌륭히 마치시고 돌아오시던 날.. 전 그 날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김대통령께서는 바로 청와대로 직행하지 않으시고, 서울도심 거리를 몇 곳 도셨습니다.
제가 그때 당시 강남역 부근에서 근무중이었었는데요,
오후에 김대통령 차량 행렬이 대로를 지나가는 행사가 있어, 지나가던 사람들 잔뜩 몰려나와 환영했었고요,
저를 비롯, 직장 상사들은 물론 동료들까지, 창문에 삼삼오오 모여서 환호하고 박수치고 기뻐했었답니다.
대로변 고층이었던지라 위에서 아래 행렬을 바라보기에 아주 좋았었거든요.
그때도 저는 희망을 느꼈었어요.
제가 며칠 전 올린 글에 썼듯이, 현재 남한으로선 북한과의 관계가 정말로 중요하니까요.
군사적 측면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경제적 측면, 미래지향적 차원에서도 정말 가장 중요한 사안 중 하나라고 봅니다.
(지금 북한 정권 무너지면 남북 통일이 아니라, 북한이 중국으로 흡수될 거라는 전망이 더 유력하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희망에 부풀었었습니다.
네.... 그때는 <<<희망>>> 이란 게 있었습니다.
이 나라가 나아질 거라는, 좋아질 거라는........
네.... 지금, 올해같은 상황이 올거라곤.... 정말 눈꼽만치도 예상치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희망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절망적으로만 보일 뿐입니다.
정부에게 믿음도 가질 않고, 여기저기 들리는 소식들이라곤 모조리 암울함 뿐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야, 그래요, 이제야 깨달았답니다.
지도자에게 왜 어버이 라 하는지, 아버지 라 하는지, 이제야 좀 이해가 됩니다..
정신적 지주, 정신적 지지자 가 얼마나 필요한 건지.. 왜 필요한지.. 이제야 좀 이해가 됩니다.
한 해, 고작 100일도 채 안되어, 두 분이나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제가 가장 지지를 보냈었던 두 분이 모두 가버리셨습니다.
이제 쓰레기들만 남았군요.
세상은 너무 불공평한 걸까요.
희망은 커녕 자꾸 절망적으로 보이는 이 상황이 너무도 개탄스럽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운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그때 IMF 유학시절보다 금전적으로 덜 힘듦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너무도 공허하고, 너무도 서글프군요.
아마도, 희망을 느끼지 못해서겠지요.....
노대통령 서거때 너무도 충격을 받아 지금은 차라리 덤덤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때도 없이 기운이 쭉 빠지고 눈물이 나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나이 들어 정치가 몇명 서거했다고 이렇게 슬퍼하고 눈물 흘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답니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대통령 당선 당시를 기억합니다.
펜 조회수 : 319
작성일 : 2009-08-19 02:05:32
IP : 121.139.xxx.220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님이여..
'09.8.19 9:56 AM (121.147.xxx.151)님의 글 눈물 흘리며 잘 보았습니다.. 저도 그분이 당선되셨던 날이..제 생애 가장 기쁜 날이었답니다.. 아.. 우리나라에도 희망이 있구나.. 선이 악을 이기는 날이 있구나.. 얼마나 감격했던지요.. 오늘 아침 눈 뜨면서 이제 그 분이 안 계시구나 생각하니.. 너무 두렵습니다..
2. ...
'09.8.19 11:19 AM (211.211.xxx.32)추천 있으면 누르고 싶어요.
저도 눈물 흘리면서 보았네요.
제 일기를 보는 듯 남의 글로 읽히지 않습니다.
저도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분의 빈자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며 복받쳐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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