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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없으면 노후가 찌질” ‘공포 마케팅’ 투기 부추겨(펌)

노후.... 조회수 : 731
작성일 : 2009-08-15 11:20:21

“10억 없으면 노후가 찌질” ‘공포 마케팅’ 투기 부추겨

기사입력 2009-08-14 18:07  


[한겨레21] [특집] 과장된 ‘노후 설계’ 들이대며 보험·투자 상품 파는 금융사들…

미래 불안한 직장인들 대박 유혹에 빠져

“자, 보세요. 60살쯤 남편 정년 되잖아요. 그런데 어때요. 80살까지는 살잖아요. 돈이 얼마나 들어갈까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먹는 것만 갖고 얘기해볼게요. 설렁탕 한 그릇이 5천원이죠. 남편과 함께 먹으면 1만원이에요. 하루에 세 끼면 3만원이잖아요. 설렁탕만 먹는 데도 20년 동안 얼마가 필요한지 아세요. 2억2천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설렁탕만 먹고 살 수 있나요?”

“설렁탕만 먹어도 2억원 필요”

전직 미래에셋생명 설계사의 고백이다. 그는 보험에 들기를 주저하는 사람에게 이른바 ‘5천원 설렁탕’으로 공포를 줬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되면 고객은 공포를 ‘확’ 느낀다고 한다. 늙어서 설렁탕 한 그릇 못 먹을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한다는 것이다.

보험회사들은 3개의 노후 인생을 제시한다. 상류층, 중산층, 최저 수준이다. 상류층은 기초생활비로 1년에 3천만원이 든다. 이 밖에 한 달에 두 번씩 골프를 즐기고, 부부가 같이 1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을 간다. 한 달에 네 번쯤 10만원씩 경조사비를 내고, 1년에 600만원의 차량유지비를 쓴다. 중산층은 기초생활비로 2400만원, 부부가 국내 여행으로 1년에 80만원을 쓰고 경조사비는 한 달에 네 번쯤 5만원씩 240만원을 쓴다. 최저 수준은 기초생활비로 1560만원을 쓰는데, 여행·레저, 경조사, 차량유지비는 전혀 쓰지 못한다.

30년 동안 상류층 수준의 생활을 위해 필요한 돈은 15억3천만원이다. 똑같은 기간 최저 수준에 들어가는 돈도 4억6800억원이나 된다. 설계사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밥만 먹고 사는데도 그 정도인데, 한번 아프기라도 한다면?” 고객은 보험 계약서를 쓰게 된다.

설계사의 고백은 이어진다. “아주 기계적인 계산을 보여주는 거죠. 그것만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눈을 휑하니 뜨게 돼요. 기선을 제압한 뒤에는 이제 야단을 치죠. 거의 선생님이나 목사, 부모님 수준이에요. ‘손자들 오면 용돈도 줘야 하지, 가끔 가다 놀러 가야지. 그런데 아직도 노후 준비 안 하고 있느냐.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느냐’는 식이에요.” 이런 말을 들은 상당수 사람들은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허무함과 ‘이렇게 살다간 나중에 사람답게 못 산다’는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AIG생명이 만든 홍보물을 보자. 홍보물에 나오는 숫자는 또 다른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소금땀 비지땀 흐르는 여름에도 이 숫자를 보면 소름이 확 끼친다. ‘암에 걸릴 확률 남자: 3명 중 1명, 여자: 5명 중 1명. 각종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 89.4%. 하루 평균 474건의 사고, 그중에서 21명이 사망, 606명이 부상.’

‘공포마케팅’은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 유전자 속에 대물림되는 두려움을 판매에 이용하는 기법이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준비하지 않으면 모든 위험을 본인이 책임져야 하고, 기회비용까지 잃어버린다고 강조한다.

‘무서운’ 공포만 있는 게 아니다. ‘은근한’ 공포는 사람들을 써늘하게 한다. 2006년 푸르덴셜생명의 광고. ‘남편이 죽은 뒤 보험설계사의 도움으로 생명보험금 10억원을 받았다.’ 이 광고는 시청자들로부터 ‘생명을 돈으로 연결시켰다’는 비판부터 ‘보험설계사를 남자로 설정해 부적절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이런 논란을 떠나 이 광고는 남편의 사망 뒤 남겨진 가족의 공포를 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써늘한 공포인 셈이다.

물론 금융회사들은 공포 마케팅을 세련된 형태로 보여준다. 몇 해 전 삼성생명은 유명 연예인들을 동원해 ‘보장자산’ 캠페인을 열심히 벌였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듣는 단어인 보장자산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름은 세련됐지만 보장자산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망보험금이다. 자신이 죽기 전에 가족들을 위해 마련할 사망보험금을 세련되게 갈아입힌 마케팅 용어였다.



금융회사들은 은퇴 자금으로 평균 10억 원 정도를 제시한다. 현재 30살인 봉급생활자가 60살에 은퇴한 뒤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30년 동안 벌고 20년의 은퇴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은퇴 뒤 한 달에 250만원 정도의 생활비가 들어가고, 기타 병원비 등까지 더하면 10억원은 있어야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부자아빠 신드롬’ 에 짓눌려

둘 다 중학교 교사인 박순철(52)·신은미(50)씨 부부. 24살과 17살의 아이를 두고 있다. 남편 월급이 300만원, 부인 월급이 450만원이다.

이들 역시 보험설계사를 통해 노후자금이 10억원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돈이 나이키 모양으로 불어나는 복리 수익률 그래프를 보니 투자금액을 최대한 늘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변액유니버셜 보험을 남편과 부인 명의로 각각 한달 100만원씩 가입했다. 나머지 자산도 중국펀드(차이나 디스커버리·동부차이나·피델리티 차이나)와 국내펀드(신영마라톤·삼성우량주·인디펜던스·디스커버리·유리스몰뷰티), 브릭스 펀드 등 각종 펀드에 나눠 투자했다. 현재 대부분 펀드는 원금 손실을 보고 있지만 아까워서 환매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중이다.

서민에게 노후준비는 더 큰 부담이다. 김미숙(29·가명)씨는 한 증권사 창구에서 일하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은 월 150만원, 김씨는 월 140만원을 번다. 의료실비 보험에 10만원, 유니버셜 보험에 부부 각각 10만원씩 20만원에 가입했다.

김씨는 “보험회사 설계사들이 서민들도 노후자금으로 최소 3억은 모아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삼성생명이 하는 신동엽 광고를 보면 보장자산이니 뭐니 하며 준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 자신이 너무 안이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불안감에 덜컥 가입을 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이 넉넉한 상황은 아니어서 결국엔 유지를 못하고 부부가 각각 가입한 10만원짜리 두 개는 1년 만에 해지했다.

왜 사람들은 ‘노후 10억원’이라는 공포에 내몰리게 됐을까? 외환위기 뒤 수많은 가장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실직당했다. 회사가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않으니, 은퇴하기 전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졌다. ‘사오정 오륙도’(45살이 정년이고, 56살까지 다니면 도둑이라는 뜻)가 유행했다. 그러다 2000년 2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나왔다. 당시만 해도 출판계에선 ‘부자’라는 용어는 금기어였다. 부자라는 말의 이미지가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번에 300만 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BC카드는 탤런트 김정은을 내세워 ‘부자 되세요’ 광고 캠페인을 전개해 인기어로 만들었다. ‘부자 아빠~’ ‘~부자들’ ‘~10억 만들기’ 같은 제목의 책이 쏟아져나왔다.

‘부자 아빠’ 신드롬이 생겼다. 금융회사들도 은퇴 자금으로 평균 1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직장인 사이에 ‘10억원 모으기’ 열풍이 분 것도 이런 인식을 반영한다. 10억원을 못 모으면 인생의 실패자로 찌질한 노년을 살게 된다는 섬뜩한 공포가 사람들에게 엄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유층 웰빙형 설계로 중산층 유혹

이같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경제 상황마저 달라지면서 미래에 대한 공포는 증폭된다. 2000년대 들어 금리가 뚝뚝 떨어졌다. 외환위기 전에는 예금금리가 월 10~15%였다. 은행에 1억원만 맡겨놓으면 이자가 다달이 100만원씩 나왔다. 외환위기 뒤 우리나라 경제 체질이 선진국 형으로 변하면서 금리는 불과 5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신 평균수명은 뚜벅뚜벅 늘어난다. 저금리에 실망한 돈들이 은행 창구를 빠져나갔다. 그중 일부는 저위험 고수익 투자처로 여겨지던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고, 일부는 금융회사의 고수익 투자 상품으로 옮겨갔다. 저금리 공포는 투자로, 투기로, 버블로 이어졌다.

문제는 금융회사들이 제시하는 ‘장밋빛 노후’가 주로 부유층을 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흐름을 먼저 읽고, 구매력 있는 상류층을 주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자연히 노후설계는 골프, 해외여행, 중·대형차, 크루즈 여행 등으로 상징되는 웰빙형 생활패턴을 전제로 이뤄졌다. 대신 중산층에겐 공포마케팅으로 유혹한다. 부유층처럼 노후를 보내기 위해선 더 빠른 시기인 20~30대부터 더 많은 돈을 준비해야 한다고 선전한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회사들이 노후자금 규모를 과대평가하는 반면 물가상승률은 높게 잡고 투자 기대수익률은 낮게 잡아 노후 대비의 어려움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노후자금은 ‘평균 10억’이라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라이프스타일이나 나이 등에 따라 노후자금 산정에 필요한 변수의 크기도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들은 노후에 대비하기 위해 월 100만 원 이상을 저축하라고 충고한다. A은행 PB팀장은 월 125만원을, B은행 PB팀장은 월급의 30%를, C은행 PB팀장은 월 150만원을 노후를 위해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샐러리맨이 10억원을 모으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군다나 많지 않은 소득으로 주택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자녀교육비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한 보험 설계사 역시 맞벌이 가정에게 노후 준비를 위해 월 100만원 정도는 보험과 펀드에 들라고 설계해주지만, 막상 자신은 은퇴 준비에 20만원도 채 못 쓴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투기와 탐욕으로 흐르게 된다. 30~40대 직장인의 노후 준비 수단은 대부분 재테크에 맞춰져 있다. 주식, 펀드 등에 투자해 목돈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한방의 역전을 위해 ‘도 아니면 모’식 ‘몰빵’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따르고 한계도 있다. 마이너스 통장, 변액보험, 펀드에 드는 것도 여기서 돈을 벌어 부동산을 사기 위해서다.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시장에는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는 제동장치가 내재돼 있지 않다. 미국을 보면 그렇다. 미국인의 평균 저축률은 거의 0%에 가까웠다. 중산층·서민들이 오랫동안 부동산을 담보로 빚을 얻어서 흥청망청 돈을 쓰며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켜 왔다. 그동안 부동산 거품으로 빚잔치를 했던 것이다. 결국 그 빚잔치가 미국의 경제위기를 가져왔고 전 세계의 경기침체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조기 퇴직이 영원한 은퇴는 아냐”

우리나라의 개인저축률은 20년 전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한국은행이 8월5일 내놓은 저축률 분석 결과를 보면, 2006∼2008년 개인저축률은 평균 4.8%로 20년 전인 1986∼1990년의 16.9%보다 12.1%포인트 떨어졌다. 개인저축률은 가계의 총소득에서 세금 등 비소비 지출을 뺀 총가처분소득 중에서 소비에 쓰이지 않고 저축으로 돌려진 부분의 비율을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에게 다른 아이보다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내 집을 갖겠다는 욕망 때문에 저축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노후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일단 은퇴와 퇴직을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퇴직이 곧 은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 퇴직이지 영원한 은퇴는 아니다’라는 얘기다.

60살이 되면서 일에서 딱 손 놓고 크루즈를 타고 여행이나 한다고 아름다운 노년이 되지는 않는다. 터무니없는 투자나 과도한 보험으로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자기계발을 통해 두 번째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후를 위해 한 달에 100만원씩 금융상품에 가입하는 것보다 은퇴 뒤 한 달에 100만원을 받더라도 일을 하는 게 더 가치 있고 보람 있다는 것이다. 은퇴 뒤 일할 때 행복감도 더 느낀다고 한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할 중요

노후 공포증을 줄이는 데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사람들이 노후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노후를 보장해주는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은 “노무현 정부가 만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직속에서 장관 위원회로 격하됐다. 범부처 차원에서 일개 부처로 전락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야속하다. 정부는 만날 ‘그린’(친환경)을 내세우는데 ‘그레이’(노령층)에 대해선 전혀 신경을 안 쓴다. 정부가 노령화문제에 무대책으로 대응하다 보니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도 못 만들고 있고, 결국 사람들은 노후에 대해 더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희망제작소는 2006년 ‘해피시니어’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해피시니어는 퇴직자들이 비영리단체에 재취업 형태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으로, 시민단체가 노년층의 인생 후반전을 잘 맞이하게끔 해주는 대표적 사례다. 남경아 희망제작소 해피시니어 팀장은 “보통 퇴직하고 나서 처음 한두 해는 재미있어해요. 옛 친구들도 만나고, 부부가 여행도 다니고, 등산 같은 취미생활도 즐기곤 하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자 다 시들해진다네요. 남은 인생을 일하면서 좀더 보람되게 보내고 싶어해요”라고 말했다.

희망제작소에서는 현재 9기 교육 과정이 진행 중인데, 지금까지 은행원·광고전문가·기업인·언론인·공무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퇴직자 250명이 이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이들 가운데 49%가 수료 뒤 사회적기업, 대안학교, 시민단체, 국제구호단체 등 다양한 비영리단체에서 상근활동가, 대표, 자문위원, 자원활동가 등으로 제2의 인생을 향한 첫발을 힘차게 내딛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IP : 119.149.xxx.144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근데
    '09.8.15 11:47 AM (121.166.xxx.251)

    상류층 수준의 노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에요,,
    자식 도와주는건 차치하더라도 손주 용돈 주고,,아파서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살려면 몇억 필요한건 맞잖아요,,,
    늙으면 정말 돈이 사람을 주위에 끌어모으는 원동력인데...
    실버타운도 한달에 300이상 들고 5억정도 있어야 아파트 20평대 크기 방이라도 받으니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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