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아침 시간에 신문에서 우연히 접한 수경스님의 글입니다. 다른 분들과 같이 읽고 싶어 화계사에 들어가서 가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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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위령법회 국민께 드리는 호소문
여기, 가족과 둘러앉을 ‘밥상’을 지키려다 영원히 가족의 품을 떠난 영혼들이 있습니다.
정녕 이들이 지키려던 것은 ‘소박한 일상’이었습니다. ‘삶’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가족을 지키지 못했고, 끝내는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가족들의 가슴에 살아서는 씻을 수 없을 슬픔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불길이 이들의
목숨을 삼키기 전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슬을 맞고 자더라도 사는 날까지는 살아보자고
눈물로 애원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벌써 반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사회적 관심조차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시비곡직을 떠나서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 정치가 있는지, 종교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있다면 왜,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더욱 알 길이 없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이런 사회라면 서울시장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왜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민사회 스스로가 사람다운 세상을 만드는 길을 찾아 나서야겠지요.
눈물 나는 세상을 눈물 없이 살아야 하는 국민들께 호소합니다
우리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이 말은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다간 사람에게 쓰입니다.
위로라기보다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그득한 말입니다.
미안하다고,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며 나누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손을 내밀 때 못 본 척 돌아 선 나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많은 세상을 살다간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연대의 감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최소한의 연민도 주저하고 있습니다.
용산 참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으로 변해가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죽지 않았을 뿐 용산 희생자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많습니다.
죽도록 일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갑니다.
그래서 더욱 용산 참사라는 거울을 외면하는지도 모릅니다.
혹시 나도 저런 처지가 될까 봐 두려워서,
아직 저 정도의 형편은 아닌 것에 안도하며 모른 척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기득권층과 주류 언론이 끝없이 유포하는 성공 신화에 열광합니다.
거짓 희망으로 눈물 나는 현실을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눈물 나는 세상을 눈물 없이 살아가는 삶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는 사고가 팽배할수록 개인은 왜소해집니다.
나도 그럴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용산 참사의 경우 잘잘못의 경중이야 어찌됐건 근본적인 원인은
오로지 경제 논리에 기초한 살인적 개발입니다. 명백한 사회적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고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에게는 남의 불행일 뿐입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리도 몰인정하고 살벌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간곡히 호소합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는 측은지심 정도는 내 주십시오.
진리, 정의, 사랑, 자비 따위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하시더라도 대화조차 거부하는
서울시와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 ‘저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하고
통탄이라도 해 주십시오. 눈물 나는 세상, 눈물 좀 흘리며 살아가면 어떨는지요.
적어도 우리의 눈물이, 우리 사는 세상을 피도 눈물도 없는 곳으로 변해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의 종교인들께 호소합니다
현실의 삶에서 분쟁과 갈등의 조정과 해소를 위한 활동이 정치라면,
인간 내면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자유와 평화의 길로
이끄는 것이 종교의 역할일 것입니다.
먼저 정치에 대해 말하자면 앞서 얘기한 의미의 정치는 우리 사회에 없습니다.
당장의 현실만 보자면 한국 정치판은 사회를 통합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듯합니다.
물론 한국의 종교계도 개혁의 대상이지만,
환골탈태의 차원에서라도 용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줄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어떤 종교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떠나서는 존재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구원과 해탈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겠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반년이 지나도록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 본연의 사명에 입각해서도 그렇고,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봐도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소납 또한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라도 감수해야 할 처지임을 잘 압니다.
그래서 감히 호소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망자의 넋을 달래고 유족의 슬픔을 위무하는 것이 시대의 비극에
대처하는 종교계의 도리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법률적으로 정치적으로 시비를 가리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건 그것대로 그 세계의 원칙에 입각해서 풀어나가야 할 일이겠지요.
현실의 모순을 종교의 논리로 덮어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망자들이 영면에 들지도 못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유족들이나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사람과 세상에 대해 혐오와 절망에
이르도록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사람의 죽음 앞에서 종교적 견해의 차이가 무슨 걸림이 되겠습니까.
세상 모든 종교의 교주가 살아온다고 해도
망자에 대한 입장은 차이가 없을 것으로 압니다.
편히 잠들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부디 종교계라도 나서서 큰 뜻으로 용산 참사의 망자들에
대한 장례라도 치르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참으로 눈물 나는 세상입니다.
사람의 죽음조차도 정치적 입장과 권력자의 뜻에 따라 요동치는
현실이 슬프고 이를 뛰어넘지 못하는 종교의 한계 또한 슬픕니다.
종교라 하여 현실로부터 무조건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종교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는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 가장 종교적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 현실에 발 딛고 선 종교의 숙명적 슬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원칙은
사랑 또는 자비의 가르침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바로 지금이 그 원칙에 입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끝으로 확철하지 못한 미욱한 수행자로서의 허물이 적지 않을 것이므로,
선철의 말씀에 소납의 뜻을 비추어 봅니다.
한 납자가 혜원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도 부족함이 없다.”
2009년 8월 6일
(가)불교단체연석회의
화계사 주지 수경 합장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아침 신문에서 접한 수경스님 글입니다
오늘 조회수 : 443
작성일 : 2009-08-07 10:09:01
IP : 141.223.xxx.40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
'09.8.7 10:17 AM (211.196.xxx.139)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2. 감사
'09.8.7 10:26 AM (59.8.xxx.105)감사^^
3. 홍이
'09.8.7 10:35 AM (115.140.xxx.18)정말 정산적인 사회에선 일어날수도
일어나서도
지금도 잊혀져가서도 안돼는일이죠
그런데
어떻게 행동해야할까요?
마음이 무겁습니다4. 저도
'09.8.7 10:58 AM (116.123.xxx.109)그 글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 인터넷에 들어왔는데 한겨레 1면에 실렸으니
많이들 보셨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 말이 없어서 조금 서운한 맘이 들어 나라도 올릴까
생각했는데 역시 82군요.신문 제목만 읽는데 그건 꼼꼼히 다 읽고 마음 한구석에
돌덩이가 앉아있는 느낌이예요.그냥 그 아픔을 너무 잘 전달해 주신 바람에.5. ===
'09.8.7 2:39 PM (121.144.xxx.80)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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