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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존중받고 싶어요

엄마도사람이야 조회수 : 792
작성일 : 2009-08-01 19:38:19
우리 아이는 고등학생이지만 기숙사에서 지내고
방학에만 겨우 집에서 마음편히 지내요.
아이가 무척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잘하고 성실해서 남편하고 저는 고마워하고 있었어요.

아이를 그렇게 기르기까지 저도 일하는 엄마이지만
직장일로 힘들면서도 집안 일에 소홀하지 않게 하였고
집안 경제도 알뜰하게 꾸려서 낭비 없이 사느라고 애 많이 썼어요.
남편하고 저하고 결혼하고서 돈 한푼 없이 우리 힘으로 저축해서 살았고
남편에게는 든든한 아내로, 자식들에게 엄마로서 크게 부족함이 없다고 자신해왔어요.
시댁일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지만 참고
나름대로 엄마로서 부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저의 취향이나 의견은
가족이 뭘 결정할 때 아무 영향권도 없을 뿐 아니라 의견 자체로서 존중받지도 못하더라구요.
하다못해 영화를 뭘 볼것인가 하는 것도 내가 보고 싶다는 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아이가 방학하자마자 트랜스포머(?제목을 잘 모름) 보고 싶다고 해서 남편이랑 아이랑 둘이 봤구요,
지난번에 가족끼리 다 함께 영화보자고 해서
나는 킹콩을 들다 아니면 거북이 달린다 보고 싶다고 했는데
아이가 해리포터 보고 싶다고 해서 온 가족이 그거 봤어요.
저는 중간에 살짝 졸기까지...
아이는 며칠전에 중학교때 친구하고 만나서 국가대표를 봤대요.

오늘 아침밥 먹으면서 오늘 오후에 영화 다함께 보자고 하면서
남편이 나보고는 뭘 보고 싶냐고 해서 나는 킹콩 아니면 거북이.. 이랬죠.
우리 애는 그거 둘다 시시하대요.
엄마가 원하는 거 보느니 그냥 집에 있겠대요.

그러면서 남편이 우리 애한테 중학교 친구하고 만나서 어땠느냐고 묻는데
우리 애가 말하는 게 내가 잘 안들려서 응? 응?
누가 어느 고등학교 다닌다고 그랬지? 이렇게 자꾸 아이가 한 말을 다시 물었어요.
내가 오늘 할 일들 생각하느라고 잠시 딴 생각을 했나봐요.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는 왜 말귀도 못 알아듣느냐고,
똑같은 말을 꼭 두번씩 시킨다고 왕짜증을 내는 거예요.

기분 나빴지만 아침인데 언성 높이기 싫어서 그냥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어요.
남편은 아이한테 원래는 아빠가 말귀를 잘 못알아듣는데
엄마가 아빠하고 살다보니 닮아지는 모양이라고, 네가 이해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애는 별로 반성하는 눈치가 안 보이더군요.
이것까지도 제가 참았어요.

아이 학교에서 내라고 하는 프린트가 있는데 내용이 조금 복잡해요.
그중에 일부는 제가 약 한달전에 냈구요.
그래서 아이에게 네가 검토해보고 좀 써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낸 것이 뭐고 안 낸것이 뭐냐고 해서
엄마가 그거 뭘 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또 한번 더 내도 되는 것이니까 안심하는 의미에서 다 내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건 엄마가 할 일인데 왜 자기에게 시키냐는 거예요.
엄마일이니까 엄마가 하래요.
순간.. 제가 더 참을 수 없더라구요.

저는 그동안 시댁의 온갖 몰상식과 폭언, 욕설을 다 참아온 사람이에요.
제가 사회생활 하면서 당한 치사하고 아니꼽고 더러운 꼴도
우리 아이들 교육시키자면 남편 벌이로는 택도 안되니까
내가 벌어야 하니까 다 참고 살았어요.

그것 뿐인가요.
정신이 팽팽 돌도록 바쁘면서도 아이를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우리 가정을 위해서 내가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내가 어떤 부인이 되어야할까.. 이런 생각 뿐이었어요.
직장일하고 집안일 다 잘하는 거 너무 힘든 거지만
아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힘든 줄도 몰랐어요.
제 친정에서는 그래요. 너 사는 거 보면 정말 장하다고.
어떻게 그렇게 바삐 일하면서 애 잘 키우면서 사느냐고,
누가 나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하면 거짓말 같겠다고 그래요.

온갖 것을 다 삼키고 참아왔고,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살아온 저이지만
오늘 아침에 우리 아이가 저를 무시하는 태도는 정말 더 이상 못 참겠더라구요.
그래서 아이에게 말했어요.
그래. 너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라.
엄마는 돈 버는 기계로 밖에는 네 눈에 안 보이는 게로구나.
학교에 보내는 프린트 엄마가 다 할테니까 너는 하지 말아라.

이러고는 프린트 챙겨서 제 가방에 넣고 직장으로 와 버렸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혀요.
아이에게 이런 대접을 받자고 제가 이 평생 노력하고 살아왔나요?
내가 평생 지키고자 노력한 가족의 가치가 다 무너지는 것 같아요.
이것이 내가 가족에게 받을 마땅한 대접인가요?

내가 사회생활 하면서 아는, 내 정도의 사람들이 어떤 여건에서 사는지 나는 알아요.
저에 비하면 천국이죠.
그래도 애초에 출발점이 달랐으니까 이건 내가 이겨낼 부분이라고 생각하면서
남편 성실하고 애들 공부 잘하고... 이렇게 가족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우리 가족이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순수한 기쁨을 찾자고 했었어요.
내가 내 주변의 사람들보다 몇배 더 노력하면서도
왜 이런 기본적인 존중도 못 받고 살게 되었나요.

조금전에 남편에게도 전화했어요.
아이가 아침밥상에서 나를 그렇게 무시하면
당신이 애한테 엄마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가르쳐야지
무슨 엄마가 아빠 닮아간다고 이해하라고 하느냐고...
아빠로서 엄마 권위를 세워줘야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엄마를 모자란 사람으로 만들어서 당신은 만족하느냐고..
남편이 지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그냥 끊어버리네요.

가정을 위해 헌신한 내 인생이 이게 뭐냐고요..

IP : 218.159.xxx.16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ㅠ.ㅠ.
    '09.8.1 7:55 PM (119.196.xxx.66)

    애들이 다 그렇죠 뭐. 엄마가 편해서 그럴 겁니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요.
    세상에서 아이들이 젤 이해하기 힘든 말이 '너만 좋으면 난 좋다' 란 말과 '내가 너를 위해 어떻게 했는데..' 란 말이라네요. 뛰쳐나가고 싶게 만든 말 1위기도 하구요.
    아마 그걸 입밖으로 내면 아이들은 그럴 겁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냐고요...
    아이들이 엄마 희생을 알아주길 기대하기 보다 엄마도 똑같이 나눠먹고 짜증내면 똑같이 맞받아치고 하나를 양보하면 똑같이 하나를 양보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할 것 같아요.
    똑똑한 아이이니 금방 알 겁니다. 아이는 그렇죠. 엄마니까 자신의 허물을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죠. 서운함 푸시고 앞으로 어떻게 할 지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일 것 같아요.

  • 2. 큰언니야
    '09.8.1 8:19 PM (122.108.xxx.125)

    원글님~~~ 토닥토닥~~~~

  • 3. .
    '09.8.1 10:44 PM (119.203.xxx.189)

    저 그 심정 알아요.
    흠...우리집 둘째도 참 버릇없어요.
    우리집에서도 벌어지는 풍경인데
    남편의 역할이 중요한것 같아요.
    제 친구네는 아빠가 딸들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천하에 없는 아빠인데 아이들이 엄마에게 버릇없이 구는건
    용서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남편이 애처가이기도 하고 그집 딸들이 요즘 아이들 같지않게
    마음도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연예인 못지 않은 미모를 가진 친구인데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뭔 복이 저리 많을까 부러워요.^^

    아이가 사춘기랍시고 엄마에게 멋대로 굴때,
    때론 정말 자괴감과 모멸감에 수치심이 느껴지죠.
    나이먹을수록 아이가 클수록 세상살이 녹록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남편, 자식 위해 결혼 20년 살았으니
    이젠 내 자신을 위해 살자 하고 저 자신을 일순위에 두려고
    노력 많이 해요.
    우선 내 자신 아끼고 사랑하고 위해주자구요.
    힘내세요~~

  • 4. ㅜ_ㅜ
    '09.8.1 11:19 PM (61.78.xxx.159)

    제동생도 가끔 원글님 아이처럼 굴어요.
    정말 누나인 제가 싸대기를 백번 날리고 싶은 심정인데

    엄마도 사람이고, 하고싶은게 있다는걸 교육시키지 않으시면 안돼요!
    화이팅입니다!!

  • 5. 내 몫
    '09.8.1 11:29 PM (59.8.xxx.105)

    내가 챙긴다.

    과자나 빵 먹을 때 특히 내 것 꼭 남기라고 해요.
    먹을 것 꼭 챙겨 드세요.

    엄마 몫을 먹을 것을 남기는 것부터가 엄마를 인정하는 마음의 첫 출발이라 감히 생각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엄마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 6. 그러게요
    '09.8.2 12:26 AM (122.34.xxx.175)

    엄마도 사람인데 말이죠...아...열받아...
    저도 고딩 키우는 엄마로서 백번 천번 만번 그마음 절절히 와닿습니다.
    제가 요즘 원금님맘같아요.
    아픈몸 부서져라 이날까지 키웠더니 지 잘난줄만 알고
    엄마를 가정부 취급을 하네요.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또 허무합니다.
    남편분 정말 깨네요...--;;
    엄마를 그렇게 무시하는데 가만둡니까...뭘 이해라는건지 원...;;;
    원글님, 힘내시고...우리 앞으로는 우리인생 찾아가면서 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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