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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자몽 에피소드

엄마아빠 조회수 : 571
작성일 : 2009-07-02 14:41:33
저는 지금 임신 3개월에 접어든 결혼 1년차에요.
어제는 퇴근하고 신랑 회사 앞에 가서 저녁을 같이 먹고 신랑이 할 일이 남았다고 해서
저만 먼저 집에 돌아왔어요. 제 회사, 신랑 회사, 우리집이 모두 근거리이거든요.
가는 길에 자몽이 먹고 싶길래 마트 들러 사가지고 간다고 했더니,
힘들게 무슨 마트까지 가냐고 집에 가서 푹 쉬고 있으면 자기가 일 곧 끝내고 사간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생각보다 신랑 일이 많아서 퇴근이 꽤 늦어졌어요.

밤 11시를 15분 남겨둔 시간.
퇴근하면서 집에 전화를 해서는 11시에 문을 닫는 신랑 회사 근처 마트는 택시타고 가면 5분 거리인데,
굳이 집에 와서 다시 차를 몰고 나가 12시에 문을 닫는 다른 마트를 다녀오겠다는 거에요.
거기서 제가 자몽 안먹어도 되니까 피곤한데 그냥 오라고 했으면 되는데... 자몽은 꼭 먹고 싶고 -_-

신랑이 그 늦은 시간에 집에 들렀다 또 운전하고 나갔다 오도록 하기에는 너무 안쓰럽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 같아서, 간당간당하지만 회사 근처 마트에 택시타고 가서
오는 길에 사오라고 좀 떼를 썼어요.

아마 자기 딴에는 10분 남은 시간 동안 거길 문닫기 전에 가는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알았다고 하고는 자몽을 사왔어요.

그런데 집에 들어서는 폼이 짜증이 단단히 난 폼인거에요.
옷방에서 신랑 셔츠를 다리고 있었는데 저 있는 방에 들어와서 옷 갈아입으려고도 안하고
괜히 전기모기채를 가지고 이방저방 다니면서 모기를 잡지 않나,
분명 자몽을 사온건 맞는데 사왔다고 말한마디 안하고 봉투를 부엌에 툭 던져놓고는
먹으라 마라 말도 없었어요,

제가 옷방에서 나오자 그제서야 옷 갈아입고 샤워하러 쏙 들어가버리더니
나와서도 다시 말 한 마디 없이 책상 앞에 앉더라구요.
분명히 저한테 잔뜩 삐진 것 같은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그런다는거에요.

실은 너무 피곤해서 집에다가 가방도 놓고 옷도 갈아입고 쉬었다가 마트에 다시 가고싶었다고...
그럼 그렇게 얘길 하지 나는 자기가 아직 할 일도 남았다고 하고
그래서 괜히 시간낭비하고 더 힘들게 하는게 싫고 미안해서 오는 길에 들러 사오라고 했던거라고
그랬는데도, 여전히 볼이 퉁퉁 부어서는 대꾸도 안하는거 있죠.

저도 화가 단단히 나서는, 이왕 사온거 기분 좋게 건네주면 어디 덧나나?
자몽 사오느라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고 말하고 툭 던져놓으면
내가 속좋게 저걸 혼자 껍질 벗겨 먹어야 하나? 싶어서 침대로 돌아와 화난 채로 먼저 잠들어버렸죠.
괘씸하다 괘씸해. 하면서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인기척이 들려서 잠에서 깼더니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눈을 뜨진 않았지만, 그제서야 집에 가져온 일을 다 끝낸 신랑이 침대 옆에 서서
절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지더라구요.

여기서... 제가 자는 줄 알았던 신랑이 “자기 미안해” 라고 말하고 이마에 뽀뽀를 해줬..




더라면 참으로 훈훈한 마무리가 되겠죠?  

그러나... 억울함과 서러움에 사무친 신랑은
곤히 잠든 (사실은 잠든 척하는) 제가 너무 얄미운 나머지 “칫!” 이라고 혼자말을 한 후
너도 한 번 당해봐라 라는 심정으로 “이씽!” 하는 작은 외마디와 함께
잠든 (척하는) 제 코 앞에 베드 스탠드를 갖다대고 불을 깜빡깜빡 컸다켰다 하는 소심한 복수를 한 3초 하고는
“치치치”하고 돌아누워서 자더랍니다.

잠든 척 하던 저는 너무 웃겨서 결국 웃음을 못참고 낄낄거리다가
애기한테 아빠의 철딱서니없음에 대해 긴 이야기를 해준 후 잠들 수 있었답니다.
제가 화를 좀 푼듯 하자, 칭찬듣고 싶다는 듯이 옆에서 의기양양하게 하는 말..
"오렌지도 사왔어."


지금도 거의 울기 직전의 그 “우이씽” 소리가 생각나서 웃겨 죽겠어요.
저희 나이도 많아요. -_-
이렇게 철딱서니 없어서 엄마아빠 어떻게 되죠. ㅋㅋㅋ
IP : 211.61.xxx.50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ㅋㅋㅋ
    '09.7.2 2:44 PM (59.5.xxx.203)

    남편분 정말 귀엽네요..원글님이 웃을수 있어서 여유있어보여 좋구요..저도 웬지 상상이 되어서 웃음이 납니다.

  • 2. 귀여워요,,
    '09.7.2 4:03 PM (119.67.xxx.157)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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