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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맞는 6.25입니다.

틈새논평 조회수 : 309
작성일 : 2009-06-26 19:54:52

영국에서는 영국이 인도에서 빼돌린 아편을 중국에 좋은거라고 속여서 팔고,
전쟁을 일으켜 빼앗은 홍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프랑스가 얼마나 알제리를 빼앗기 위해, 수십만의 사람들을 죽였는지 잘 모릅니다.
국가가 한일이고, 동족을 죽인 것은 아니니까 이런 치부를 건드리려고 하지않으려 합니다.

하지만,사람들이 못 산다고 무시하는 캄보디아에서 일어났던, 대학살.
캄보디아에 전시관도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의 적은 누구이길래, 수많은 사람들이 죽였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감춰졌어야 할까요?
그럼 찹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60&article_id...



[칼럼] 대구에서 맞는 6.25

2009.6.26.금요일



여기는 대굽니다.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 나의 본적지. 연고라고는 우리 동생의 시댁이 이곳에 있다는 정도밖에 없는 대구가 내 본적지가 된 것은 피난 나온 아버지가 호적을 처음 받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나는 두만강을 헤엄치며 자라났을 터이고 요즘은 44년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축구단의 활약에 환호하고 있을 겁니다. 형같은 전라도하고도 고흥 뻘밭 사람과 조우할 일은 커녕 국토를 가로지르는 대각선 끝과 끝에서 살아가다 죽었겠지요 아마.

며칠전 일 때문에 전쟁이 가져다 준 나의 본적지 대구에 왔습니다. 동네 편의점 세 군데를 뒤졌는데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없네요. 식당에 가도 조선일보 중앙일보는 꼭꼭 구비되어 있는데 다른 신문 찾기란 대한민국 검사들 소갈딱지 찾기보다 어렵습니다. 명색이 조중동인데 동아일보가 왜 안보일까 잠깐 갸웃했는데 동아일보가 전라도에 뿌리를 둔 신문이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추측이 들어요.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례자 아주머니의 증언으로 비추어도 그래요.    
"나는 원래 전북이거든요. 근데 충청도에서 왔다캐요. 전라도에서 왔다 카면 아이고 난리가 나요. 대구 사람들 꼭 물어 봐예. 어디서 왔냐고."

어휘는 경상도 사투리를 골라 쓰려고 노력하지만, 억양은 어쩔 수 없는 타지 사람임을 드러내는 아주머니는 그렇게 내 본적지 대구에 곁뿌리를 박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만남 이후 괜히 화딱지가 나 있었는데 마침 밥먹으러 갔을 때 현직 대통령이 TV에 나오시는 걸 보고 식당 사장님이 서울 손님더러 "그래도 잘 하고 계시지요?"라고 용감하게(?) 물으시는 겁니다. 즉각 말투를 바꿔서 걸쭉하고 확연한 경상도 사투리로 대답을 드렸지요. "서울 가서 그래 함 말해 보소. 전신만신에 후두리 맞고 밟히 죽을끼구마는."  

어쨌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밥 먹을 때마다 봅니다. 별나게 6.25 얘기가 많이 나오네요. 참전국 노병들의 이야기부터 미공개 사진들이 줄을 잇고 아직까지 살아있었다는 자체가 놀라운 백선엽씨의 근황이나 인천 송도고등학교 학생들이 2차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 윤영하 소령의 비석을 세운 이야기까지 가히 '상기하자 6.25' 구호를 빗자루같은 붓으로 휘갈기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전쟁에 대해 생각을 더듬는 차에 언젠가 대구에서 마주친 바 있던 전쟁의 공포 한 자락이 몸을 칭칭 감아오더군요.    

언젠가 얘기했던 흉가 체험 촬영 때였지요. 영남대 뒷산에 폐가가 된 안경공장에 귀신들이 단골로 출현한다고 해서 흉가체험을 즐기는 대학생들을 데리고 캄캄한 밤길을 걸어올라갔는데 이미 번듯한 병원이 섰고 흉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더군요. 이런 낭패가 있나 싶어서 하릴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검은색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피해자 위령제"라고 쓰여 있었지요.


출처 - 제노사이드 영상기록단 www.imageact.net

위령.... 하니 일단 흉가랑 맞아 떨어지잖아요. 뭔가 사연이 있을 것도 같고...... 동굴 입구는 철창으로 막혀 있었지만 사람 하나가 들어갈 틈이 있더군요. 뭐 제가 들어갔으니 둘도 들어갈 틈이라고 해도 무방하긴 합니다. 끓어오르는 호기심으로 캄캄한 동굴 속을 플래쉬 하나씩 들고 질척거리는 동굴 속을 걸어 보니 가히 무슨 지하 세계 탐험대같이 흥분이 됐지요. 장화도 준비 안되었는데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모를 진창 속을 움퍽움퍽 들어갔어요. 그런데 여학생 하나가 비명을 질렀지요. 꺄아아아아악


출처 - 제노사이드 영상기록단 www.imageact.net

얼어붙어 버린 우리 눈 앞에 나타난 건 해골들의 무더기였어요.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취재한 이후 몇 구는 수습을 해서 전시(?)도 해 놓긴 했는데 거기에 끼지 못한 백골들이 흡사 마의 산처럼 우리 앞에 버티고 섰던 겁니다. 그들은 49년 전의 오늘 터진 전쟁이 대구 코 앞에까지 밀려 왔을 때, 국군과 미군과 인민군이 운명을 걸고 벌이던 대공방전이 전개되는 와중에 이 골짜기까지 끌려 왔던 "좌익으로 판정된" 민간인들이었어요. 동네 사람들 인터뷰를 해 봤더니 그런 말을 합디다.  "우리 아버지 말씀이 트럭이 끝도 없이 올라왔다 카대요. 사람을 가득 싣고. 그런데 나갈 때는 빈 차였답니더."  

백골 중에는 채 여물지 않은 아이의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총이 아니라 뭔가 다른 둔기에 의해 부서진 백골들도 있었고요. 당시 내무부 장관 조병옥은 수도가 부산으로 이전한 뒤에도 대구에 남았다고 합니다. 대구 시민들은 조병옥 장관이 아직 대구에 있으니 피난 안가도 된다고 하면서 그의 용기를 찬양했다고 해요. 대통령부터가 수도 사수 녹음해 놓고 줄행랑을 친 자랑찬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내무 장관의 뚝심은 평가 받을만 하지만 그 뚝심찬 내무장관 휘하에서 3500명의 민간인들의 목숨이 이 동굴의 어둠에 묻히고 말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출처 - 제노사이드 영상기록단 www.imageact.net

사병 하나가 아쉬웠고 총 안들기로 유명한 정훈 장교들까지 총격전에 나서야 했을 때였으니 그 학살을 지휘한 건 타지의 군 병력이 아니라 대구의 토착 경찰과 우익들이었을 겁니다. 아마 죽고 죽이면서 누군가는 아무개 아버지 나 좀 살려 주세요 라는 부르짖음을 들었을 것이고, 자기 친구 아들을 발견하고는 "쟤는 살려 주자"고 사정하다가 명령이라는 말에 몽둥이로 그 머리를 내려쳐야 했던 경찰관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한 달 전까지 함께 술잔 나누던 사람이 방아쇠를 당기는 풍경을 이승의 마지막 모습으로 간직한 채 수십 년 동안 동굴에 처박혀야 했던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 광산에서만..... 3천5백명이 죽고 묻혔습니다.

'동방의 모스크바' 대구의 좌익들은 그렇게 철저하게 멸종되어 갔습니다. 어영부영 피난 나오느라 제대로 '처단'하지 못했던 좌익들이 인민재판이다 뭐다 설치는 꼴을 보았던 이쪽 정부와 우익들로서는 "생사를 결하는" 싸움을 앞두고 '내부의 적'을 깡그리 소탕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음직합니다. 미군정에 대항한 대구 봉기 때 좌익들에 의해 눈알이 빠지고 산 채로 화형을 당하는 상관을 똑똑히 보았던 경찰관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감행했던 우익들로서는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이를 악물고 감행할 수 밖에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공포는 광기를 부르고 광기는 학살을 낳았고 학살은 생각의 다름으로 규정된 한 집단을 멸종시켜 갔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의 세월에서도 비극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로당 군 총책 출신의 파시스트는 배교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자신의 과거를 연상시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물론 비스무리해 보이는 이들조차 극도로 경계했고, 근절의 기회를 엿보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대구의 진보적 인물들을 진멸시킨 인혁당 사건은 그 절정이었지요. 전쟁의 폭풍우를 피해 간 지역, 태어날 때부터 저 집안이 어떤 집안이고, 무슨 생각을 갖고 살고, 아랫집 막둥이가 면서기를 했는지 인민위원회 연락원 노릇을 했는지 뻔히 알고 살아가던 지역 공동체가 온존해 왔기에 그 멸종은 더욱 치밀했고 잔인했겠지요.

대구 식당에 널려 있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뻔히 이명박 씹고 있는 손님들에게 "그래도 잘하고 계시지요?"라고 넌지시 견제구를 던지는 식당 아주머니,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거 풍토와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내 본적지 대구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다가도 안스럽게 바라보이는 것은 결국 이 역시 생판 연고 없는 도시 대구를 나의 본적으로 만들었던 전쟁의 기나긴 그림자가 남긴 거뭇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바퀴벌레 하나조차 죽이기도 껄끄러워하는 나 자신, 전쟁이라는 괴물이 벌인 판위의 졸이 되고 병이 된다면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를 정당화하는 방법을 또한 익히게 되겠지요. 또는 나를 죽이는 작업에 이미 합리화를 끝낸 누군가가 내 머리를 겨냥해 몽둥이를 휘두르게 될 수도 있겠지요. 만약에 나의 편(?)이 전쟁에서 지거나 오금을 못펼 처지라면 십년이고 백년이고 동굴 속 아니면 바다 속 또는 골짜기 어드메에선가 숨도 못쉬고 썩어가야 하겠지요.    

그래서..... 핵 하나 가지면 도깨비 방망이 같이 강성대국이 되고 자기네 존엄을 해친다면 씨를 말리니 어쩌니 하고 자빠진 나라나 "선제공격을 못하게 해서 연평해전에서 깨졌다"고 한심해 뵈는 울분을 토하는 쪽 모두에게 공포와 혐오가 욕지기 같이, 가래침 같이 튀어나갑니다. 대구에서 맞는 6월 25일은 그래서 착잡합니다. 또 다른 6월 25일은 우리 생전에, 우리 아이들의 생전에 없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산하(nasanha@dreamwiz.com)



  


IP : 88.109.xxx.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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