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한 이상주의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공감글-하일지 조회수 : 371
작성일 : 2009-06-09 21:39:06
5월 말에 경향에 실렸던 글입니다.  많이 공감하고 눈물났던 글인데, 요며칠 시끄러운 자게를 보며 다시 생각나
찾아 보고 가져왔어요.


특별기고]한 이상주의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3) 하일지 소설가

지금 우리는 이 민족 반만년 역사를 두고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 서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스스로 몸을 던져 서거한 것이다. 오늘 이 끔찍한 역사적 참사를 목도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누가 그분을 그 참혹한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하는 데 대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증언할 것인가?

일찍이 데카르트는, 비록 지성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판단의 면에 있어서는 저마다 자기가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비록 지적으로는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변별력에 있어서는 각자가 모두 완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양식(良識)이라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인류역사는 양식을 가장한 범죄를 끊임없이 저질러왔다. 수많은 유대인들을 독가스실로 몰아넣으면서도 히틀러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고, 수많은 광주 양민을 학살하고 집권했던 사람도 죽는 날까지 자신은 도덕적으로 옳다고 믿을지 모른다. 수많은 전과 기록을 가진 대통령마저도 말끝마다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질 때까지 지난 수개월을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어지러울 만큼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근엄한 검찰은 정의감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빨대’짓을 했고, 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언론은 빨대 소리를 확대 재생산했고, 말 잘하는 정치인들은 고인을 향하여 악의에 찬 독설을 퍼부어댔다. 신바람이 난 보수 논객들은 온갖 말로 그를 모욕했다. 그런데 그들이 뱉어내는 그 많은 말들을 가만히 듣다보면, 그들 자신이야말로 완벽한 도덕적 변별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쟁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양식을 가장한 그들의 언어 폭력은 한 고독한 이상주의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이 민족이 나아갈 길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역주의를 타파하려 했고, 권력을 만인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려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려 했고, 남과 북으로 갈린 이 민족이 나아갈 길은 호혜(互惠)의 원칙밖에는 없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한 자세로 대미관계를 재정립하려 했다. 그의 이런 이상은 우리의 아이들을 위하여,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반드시 실현해야만 하는 가치였지만, 사사건건 기득권자들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도는 오래 전에 부동산 투기꾼들이 사놓은 황무지에다 매화를 심고 있는 것만큼이나 무모했던 것이다.

기득권자들의 눈으로 본 그의 이상주의는 확실히 위험했을지 모른다. 그가 기도하는 이상 하나하나는 곧 기득권자들의 권리를 밑바닥부터 허물고 있다는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을 테니까 말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농부로 여생을 마치려 했던 그의 그 소박한 ‘낭만적 이상주의’마저도 이 땅의 기득권자들은 허락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고독한 이상주의자의 죽음 앞에서 나는 문득 이런 시를 떠올린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랩 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소월의 ‘접동새’)

누나를 죽음으로 내몬 의붓어미마저도 자신은 손톱만큼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니, 이산 저산 옮겨가며 섧게 울고 있을 한 불쌍한 이상주의자의 울음 소리가 귓전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만 같아서 이 글을 쓰면서 나 또한 서럽게 울고 있다.

죽음으로 증명해보인 그의 결백을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IP : 122.35.xxx.198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9.6.9 9:43 PM (211.211.xxx.32)

    하일지씨의 글이군요.
    오랜만에 그의 글을 보게 되네요.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일지씨의 책은 갖고 있어도 되서 다행이에요.
    오래전 복거일의 책도 갖고 있었지만 그의 기막힌 행보로 버려버렸거든요.

  • 2. 프리댄서
    '09.6.10 2:16 AM (218.235.xxx.134)

    덕분에 저도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박노해가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하일지가 한겨레신문에 박노해를 석방하라는 글을 게재한 적이 있었죠. 그때도 조금(사실은 깜짝?) 놀랐던 것 같아요. <경마장 가는 길>을 위시한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그는 그런 문제에 발언을 하지 않을 듯이 보였고, 발언을 하더라도 박노해를 석방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안 할 것처럼 여겨졌거든요. (물론 저만의 판단이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그때도 그는 박노해를 구속한 군사정권의 부당함을 지적하더라 이 말입니다.
    솔직히 노통에 대해서도 그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몇 년 전, 베를린필이 내한공연을 왔을 때 예술의 전당에서 그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휴식시간에 밖에 바람을 쐬러 나왔더니 익숙한 얼굴 하나가 고개를 숙인 채 담배연기를 뿜고 있더군요. 프랑스에서 활동하겠다는 말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모쪼록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지길...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저로서는 이런 '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요. 다시 한 번 원글님 감사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26522 소래포구 3 땡글이맘 2006/11/30 417
326521 (대전) 삼육초교에 아이 보내시는분요... 3 궁금... 2006/11/30 515
326520 유기농 호박 고구마 7 혹시나 2006/11/30 975
326519 눈와요~ 6 눈의여왕 2006/11/30 314
326518 이사 업체 소개해주세요 2 이사 2006/11/30 208
326517 100일 된 아기데리고 백화점 가도 될까요? 9 외출 2006/11/30 959
326516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3 ... 2006/11/30 555
326515 지금 눈 오는거 보고 계세요? 25 여기는선릉 2006/11/30 988
326514 종부세 걱정하던밤 7 종부세 2006/11/30 1,187
326513 출산시 비용 문의(올해 달라진 부분 적용 받는지?) 10 euju 2006/11/30 440
326512 이거 "1가구2주택" 맞나요?? 4 궁금 2006/11/30 634
326511 아는 여동생 2 레인 2006/11/30 821
326510 6세 남아 유캔도칼에 푹 빠졌어요. 21 부담 2006/11/30 2,107
326509 뚝섬역 근처 괜챦은 어린이집 좀 알려주세요 1 성수동 2006/11/30 122
326508 결혼 준비하시는 분들께.... 9 선배맘 2006/11/30 1,202
326507 삼성이나 엘지에서 나오는 스텐 냉장고 못본거 같은데.. 2 스텐 냉장고.. 2006/11/30 844
326506 '판의미로와.. 오필리아....'이영화는 아이들과 함께는 비추천입니다. 5 쌀쌀하다.... 2006/11/30 835
326505 김치통 어떤 거 쓰세요? 3 김치통 2006/11/30 676
326504 [부동산] 종부세 시행시 대처방법과 버블논쟁이후 보유세 전망 제테크 2006/11/30 442
326503 서류가방사려는데요 가방 2006/11/30 104
326502 에버랜드 빅4 와 자유이용권이 다르게 생겼나요?? 4 왕소심 2006/11/30 334
326501 매생이 국물... 색깔에 대한 궁금증 2 ... 2006/11/30 332
326500 제가 까칠한건지 봐주셔요..ㅠㅠ(영어유치원 보내셨던 맘들..꼭 봐주셔요) 15 @@ 2006/11/30 1,977
326499 남편이 집에서 노는 날 5 현수기 2006/11/30 1,113
326498 성요셉 유치원 보내시는 분 계신가요? 4 궁금맘 2006/11/30 1,321
326497 짐보리나 갭 구매해보신 분~ 4 ^^; 2006/11/30 498
326496 외국에서 만든 코스코카드를 한국에서 사용가능하나여??? 2 캘거리맘 2006/11/30 662
326495 영화 추천 부탁드려요. 4 결혼기념일 2006/11/30 463
326494 공항 인도장이요...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긴가요? 3 냐옹 2006/11/30 380
326493 일대일 요리수강 33 2006/11/30 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