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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이달안에 통과된다고 들었는데.. 어찌하면 막을 수 있나요?
마봉춘 지켜줘야된다.. 그런글들을 보면서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게시판을 아무리봐도..
미디어법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한나라당이 과반수가 넘기때문에.
사실상 막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1. 저도
'09.6.3 9:40 AM (203.247.xxx.172)궁금합니다;;;;
2. 이민준비
'09.6.3 9:43 AM (59.4.xxx.202)거국적으로 모든 국민이 다 들고일어나지 않는다면
통과가 정해진 수순이겠지요.
한국, 답 없어요.
이민 준비들 합시다...3. 그렇다고
'09.6.3 9:45 AM (220.126.xxx.186)이민가면........대한민국 뭐가 됩니까?
이민가는게 애국주의정신인가..........
상대성이라는게 있어서 남의 것이 더 좋아보이는거지
외국 이민가도 똑같아요.4. ▶◀ 웃음조각
'09.6.3 9:46 AM (125.252.xxx.126)말도 안통하는 이민가서 타국인 취급 받느니 대한민국 쥐떼들 몰아내고 청정 대한민국에서 맘편히 살고 싶습니다.
쥐덫과 쥐약들고 파란집으로 가야할까요??
국회로 가야할까요?? (이번엔 국회겠죠??)5. 이민준비
'09.6.3 9:51 AM (59.4.xxx.202)티비라는 매체는 정말 가공할 능력을 가지고 있죠.
특히 세뇌기능이 뛰어난.
신문, 인터넷은 발끝도 못따라가는.
희망을 보고싶지만...
미디어법 통과된다면 능력있으신 분들, 진심으로 이민 고려해 보라고 하겠습니다.
전 물론 능력이 안됩니다만..6. 낭만고양이
'09.6.3 9:53 AM (211.200.xxx.54)법안 발의자가 나경원 의원 맞죠?
7. 세우실
'09.6.3 9:54 AM (125.131.xxx.175)전 고쳐서 쓸랍니다. 대한민국.
8. 정말...
'09.6.3 9:57 AM (121.166.xxx.215)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쥐새끼에 당할 일만 남을텐데....
mbc꼭 지켜줘야 합니다.....
어제 9시 뉴스데스크를 보니 또... 광고가 확 줄었습니다...
그걸보니 또다시 압박이 시작되는구나 생각이 드네요...9. 음
'09.6.3 10:03 AM (121.151.xxx.149)글쎄요
그렇게 쉽게 될까요
지금 민심이 돌아서고잇는것이 눈에 보이는데
쉽게 헤치지는 못할겁니다
좀더 기다려봅시다
저는 이민가고싶어도 못하는서민이라서 고쳐서 써야합니다
이민이라도 갈수잇다느 희망이라도 잇는 분들 좋겟습니다
이민가자라고 말할것이라면 아에 말을하지마시고가시길 바랍니다
그러는사람은 방관자로 한나라당과 다를것이없으니10. 저도
'09.6.3 10:05 AM (115.139.xxx.149)남편한테 이민 가고 싶다 했더니
밖에 나가지 말고 tv켜지 말고 여기가 외국이다 생각하며 살라네요.
영삼씨가 그랬다죠.10년간nhk만 봤다고.
외국가도 별거 없습니다.
황인종에 대한 차별 심합니다.
여기서 끝장 보는 게 훨씬 나을 듯 합니다.11. 여러분
'09.6.3 10:07 AM (115.139.xxx.149)자기지역 국회의원 홈피 즐겨찾기 걸어두시고요
매일 한번씩 방문해 댓글 남기세요.12. 역사의 악순환 고리
'09.6.3 10:20 AM (58.232.xxx.194)4·19혁명 전의 몇 주 동안 주로 지방도시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불법선거 및 자유당과 경찰의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행위에 항의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벌어졌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상황의 급박성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고, 또한 해결 능력도 결여된 상태였다. 마산에서의 시위에 대해 이승만은 4월 15일, 그 사건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고무되고 조종된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이승만은 이런 사태의 비극에 책임이 있는 '무분별한 사람들'의 죄는 간과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젊은 청년들'을 폭동으로 유도·선동하는 '정치적 야심가'와 공산주의자들의 선전활동에 대하여 경고했다. 이승만의 이런 담화는 학생들을 더욱 격노하게 했다. 또한 4월 18일 서울에서 시위하고 있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경찰의 비호를 받는 반공청년단의 습격을 받았다. 4월 19일 약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그 가운데 수천 명이 경무대로 몰려들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학생들의 시위는 폭동으로 변했다. 전국적으로는 부산·대구·광주·인천·목포·청주 등과 같은 주요도시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가세했다. 그날 서울에서만 자정까지 약 130명이 죽고, 1,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기 시작한 직후, 전국의 주요도시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송요찬 중장이 서울지구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4월 19일 이후 데모와 폭동이 연일 계속되었으며 이제 학생이 아닌 일반시민들도 가담했다. 그러나 군대는 유혈사태를 경계하고 재산의 파괴를 방지하는 데 신경을 쓰면서 방관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4월 21일 내각은 전국의 혁명적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다음날 이승만은 전 국무총리였던 변영태와 전 서울시장이던 허정에게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도움을 간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승만의 각료로 들어가기를 거절했다. 이승만은 이기붕으로 하여금 모든 정치활동으로부터 물러나도록 했다. 이어 당시 부통령이었던 장면은 자기가 이승만의 사임으로 대통령직을 이어받도록 되어 있는 한 이승만이 결코 대통령직을 사퇴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이승만에게 대통령직에서 사임할 것을 촉구하면서 부통령직을 사퇴했다. 이승만은 자유당을 비롯한 모든 사회단체와 결별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사태를 무마시키려고 했으며, 아울러 앞으로 경찰을 포함한 정부관리들이 정치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위대들은 재선거의 실시 대신에 이승만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고, 시위군중들은 물러설 줄을 몰랐다. 4월 25일 시위의 물결이 일어났다. 각 대학 300여 명의 교수들이 이승만의 사임을 요구하는 제자들을 지지하면서 서울시내를 행진하고 나섰던 것이다. 결국 4월 26일, 새로 지명된 외무부장관 허정과 계엄사령관 송요찬 그리고 주한미대사였던 W. P. 매카나기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승만은 정·부통령의 선거가 새로 시작될 것이며, 헌법도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바뀔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승만 정권의 붕괴는 경찰력에 의하여 유지되었던 정치권력이 학생들이 주도하는 대중에게 굴복했음을 의미한다. 경찰력이 자유당의 주요골격을 이루어왔다는 것은 4·19혁명 후 경찰력의 마비에 따라 자유당이 하룻밤 사이에 붕괴됨으로써 명백하게 드러났다. 교수들의 시위로 시작된 시위의 새로운 물결, 미국으로부터의 압력, 경찰력의 붕괴,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으로부터의 지지결여 등에 직면하여, 이승만은 1960년 4월 26일 사임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2일 전에 이승만으로부터 외무부장관으로 임명된 허정은 과도정부의 수반이 되었다.13. 어찌하면
'09.6.3 10:23 AM (118.217.xxx.164)막을 수 있을까요?
14. 이민준비
'09.6.3 10:55 AM (59.4.xxx.202)제가 참 못난 말을 하긴 했네요.
너무 답답한 마음에.
그러니까 어떻게 막지요?15. ▦후유키
'09.6.3 10:59 AM (125.184.xxx.192)각 지역 국회의원들을 들들 볶아야 하겠죠.
16. 산과 바다
'09.6.3 1:35 PM (154.20.xxx.226)제 시집이 영덕인데 그곳에는 젊은 분들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정말 많습니다.
근데 이분들은 신문도 거의 안보시고 거진 tv로 정보를 얻고 경로당에서 얘기 나누시며 이걸 정보삼아 선거는 꼭 참석하시거든요.
우리는 그래도 젊으니 인터넷도 되고 도시에 사니 다른 신문도 접할 수 있지만 이 분들에게는 정보라고는 tv와 라디오가 전부입니다.
권력은 쥔 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려는 의도만 있다면 이분들에게는 백전백승입니다.
정말 이거 중요한 법안인줄 대툥령 서거후에 정치에 관심두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중요성을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 정말 많을텐데 마음만 바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