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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선, 임방울, 노통 노제 때 불린 조창에 얽힌 사연

프리댄서 조회수 : 1,575
작성일 : 2009-05-31 19:34:23
저는 노통 장례식 노제를 어제야 봤습니다.--; TV 뉴스와 신문 기사를 통해 장면장면들로만 접했던 것을 동영상으로 온전히 다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죠. 안숙선 명창이 조창으로 ‘추억’을 불렀다는 사실도, 그래서 어제야 알게 됐습니다. (물론 그녀가 조창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구체적인 곡명은 몰랐어요.)

저는 ‘국악’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안숙선 명창의 조창을 들으면서 새삼 그녀가 왜 ‘국악계의 프리마 돈나’로 통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리에 대해선 거의 무지하다시피 한 저 같은 사람의 귀에도 안숙선 명창의 소리는 청아하면서도 깊고 울림이 풍부하게 다가왔으니까요. <쓰리랑부부>에 출연했던 신영희 씨와 비교하면 그 점이 더욱 확연하게 부각되는 듯싶어요. 신영희 씨 소리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가끔 그녀가 TV에 나와서 소리를 들려줄 때면 성량이 풍부하지 못한 가수가 ‘창밖의 여자’를 부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답니다.--;  

또한 안숙선 명창의 소리는 그녀의 스승이자 국악계의 거목 중의 거목인 만정 김소희 명창과 비교했을 때는 감정표현이 한층 더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저는 만정 선생이 부른 판소리 <춘향가> 전집 CD를 가지고 있는데, 전에 그걸 들을 때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예를 들어 이도령이 과거 보러 서울로 떠나는 장면인 ‘오리정 이별 대목’은 정말 절창 중의 절창이죠. 듣다 보면 ‘득음’을 한 소리란 저런 것이구나 싶고, 그렇다 해도 누구나 저렇게 한, 애절함, 슬픔, 서러움 등을 잘 표현하지는 못하리라...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뭔가, 대단히 엄격한 꼿꼿한 기질 같은 게 느껴진다는 거죠. 그에 비해 안숙선 명창의 소리는 수줍었다가 과감해졌다가...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고 할까요? (에구, 잘 모르는 사람이 걍 떠들어보는 소립니다.--;)

암튼 대통령 취임식과 남북정상회담, 즉 노통이 가장 크게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소리를 했던 안숙선 명창은 노통이 가는 길에도 무대에 서서 소리 한 자락을 했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그녀가 택한 노래는 임방울 국창이 작창한 ‘추억’이었구요.  

임방울 국창은, 국창이라 불립니다만 임금에게 그런 자격을 하사받은 적도 없고 국가로부터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입은 적도 없습니다. ‘국창’이라는 지위는 그의 소리에 울고 웃었던 민중들과 후배 소리꾼들이 부여해준 것이죠. 어느 명창이 소년 임방울의 소리를 듣고 “오호라, 너의 소리야말로 여러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은방울 소리구나!”라고 한 데서 임방울이라는 예명을 지니게 되었다는 (어디선가 그렇게 읽었어요^^) 임방울 국창은 일제 강점기 때 민중들 곁에서 동편제와 서편제를 아우르는, ‘임방울제’라 이름 붙은 소리로 민중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명창이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양반들이 더 이상 소리꾼들의 후원자로 나설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소리꾼들이 ‘어쩔 수 없이’ 서민 대중들을 상대로 공연을 해야 한 요소도 있기는 있었죠. 그렇다 해도 민중들이 각별하게 임방울 명창을 사랑했던 이유는 그가 격식이나 체통보다는 자신들과 정서적 일체를 이루어 함께 나뒹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소리를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그의 소리에서 민중들은 기꺼이 자신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진정성을 느꼈던 것이죠.  

그리하여 그가 생을 다하였을 때 김소희 명창을 비롯한 여성 소리꾼 200여 명은 자발적으로 소복을 입은 채 앞소리, 뒷소리를 하며 상여를 따랐고 연도에 서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희로애락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던 시대의 소리꾼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임방울 국창이 대중들 속에 명창으로 부각될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했어요.

그의 나이 25세 때 청년 임방울은 ‘전국 명창대회’(정확한 명칭은 아닙니다. 저것과 비슷함...)에 참가했는데, 관중들은 왜소한 체구에 그리 잘났다고 할 수 없는 외모, 볼품없는 행색, 거기다 살짝 얽기까지 한 얼굴로 무대에 선 청년을 좀 가소로운 표정으로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이 절절하게 옥에 갇힌 춘향이의 심정을 노래하자 관중들은 이내 서러움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고 억울하게 갇힌 춘향이와 나라도 잃고 살기도 힘든 자신들의 처지가 같은 양 훌쩍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임방울 명창 하면 ‘쑥대머리’가 유명하죠...)

그 대회를 계기로 임방울 명창은 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을 하는 등 일약 스타가 됩ㄴ다. 그 중에서도, 앞서 말했듯이, 민중들이 각별하게 사랑해마지 않는 스타가 되죠. ‘추억’이라는 창은 그가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서른 무렵, 전성기의 임방울은 고향 광주에서 공연을 한 후 한 요릿집에 들렀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거기에 꿈에도 잊지 못하던 첫사랑 그녀가 떡하니 있지 뭐겠습니까? 청소년기에 임방울은 남의 집 살이를 한 적이 있는데 주인집에 김산호주라는 어여쁜 딸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서로를 좋아했죠. 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산호주는 갑순이처럼 딴 마을의 딴 총각에게로 시집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 후 임방울도 부모의 뜻에 따라 거의 억지로? 결혼을 했고요. (‘전국 명창대회’에 참가할 당시는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였더랬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십여 년 후 한 사람은 명창으로, 한 사람은 어떤 사연인지 몰라도 결혼에 실패하여 요릿집을 운영하는 상태로 마치 운명처럼 뜻하지 않게 조우하게 됐던 것입니다. (혹자는 김산호주가 요릿집 주인이 아니라 그곳의 기녀였다고도 합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두 사람은 다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임방울은 소리고 뭐고 그 길로 잠적해서 2년 동안 산호주와 그곳에서 달달한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죠. 마치 그 달달함을 누린 것에 대한 벌처럼 임방울의 목이 ‘맛이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충격을 받은 임방울은 마음을 다잡고 산호주에게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지리산 토굴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득음을 위한 훈련에 매진하죠. 산호주는 거의 ‘미친년’이 되어서 백방으로 임방울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다 지리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토굴 앞에 가서 다시 돌아오라고 울며 간청했지만 임방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산호주는 병이 납니다. 이상이 <봉별기>에서 ‘스물 세 살이요 - 삼월이요 - 각혈이다’고 했었죠? 역시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낭만, 사랑, 절망은 심장이 아니라 폐에서 시작되고 폐에서 끝이 납니다. 그 시기는 결핵의 시기였고 신화는 각혈을 유발하는 결핵이 끼어들어만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산호주도 폐결핵에 걸려 붉은 피를 쏟아내면서 죽고 말았습니다. (폐결핵이 아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임방울은 산호주를 찾아와서 오열을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영전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인연과 뒤늦은 후회, 회한, 연민 등을 담아서 ‘추억’이라는 창을 지어 바쳤답니다.  노통 노제 때 안숙선 명창이 부른 노래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습니다.

다음은 그 노래의 가사예요.  

앞산도 첩첩허고 뒷산도 첩첩헌디 혼은 어디로 행(向)하신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럇던가.
그리 쉽게 가럇거든 당초에 나오지를 말았거나
왔다 가면 그저나 가지 노던 터에다 값진 이름을 두고 가며,
동무에게 정을 두고 가서 가시는 님을 하직코 가셨지만
세상에 있난 동무들은 백년을 통곡헌들, 보러 올 줄을 어느 뉘가 알며,
천하를 죄다 외고 다닌들 어느 곳에서 만나 보리오.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전생에 무슨 함의로 이 세상에 알게 되야서
각도(各道) 각골 방방곡곡 다니던 일을 곽(槨)속에 들어도 나는 못잊겠네.
원명이 그뿐이었던가. 이리 급작시리 황천객이 되얏는가.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어데를 가고서 못 오는가.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을 보고지고....

(저는 광주시가 지하철역 명칭 중의 하나를 임방울역으로 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고 생각한답니다...)
IP : 218.235.xxx.134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동영상,,
    '09.5.31 7:39 PM (125.177.xxx.79)

    어딜 가면 볼 수 있나요?

    원글님...절절한 설명,,넘 잘 읽었습니다
    국악에 대해 모른다시면서,,너무 세세하게 설명 잘 해주셨어요,,

  • 2. 우리여사님
    '09.5.31 7:41 PM (122.252.xxx.65)

    원글님 참 좋은 글 올리셨네요. 감사^^

  • 3. ...
    '09.5.31 7:41 PM (115.21.xxx.111)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4. 저도
    '09.5.31 7:44 PM (112.148.xxx.150)

    노제 동영상 보고싶은데...링크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5. ▶◀ 웃음조각
    '09.5.31 7:46 PM (125.252.xxx.38)

    좋은 글 고맙습니다.

    눈길이 슬슬 내려가게 글을 잘 적어주셨네요.

  • 6. 여튼
    '09.5.31 7:50 PM (122.36.xxx.37)

    글요리는 최고시라니까 ^^

  • 7. ...
    '09.5.31 7:53 PM (124.49.xxx.5)

    http://news.naver.com/vod/vod.nhn?mode=LOD&office_id=052&article_id=000025192...

  • 8. 프리댄서
    '09.5.31 7:59 PM (218.235.xxx.134)

    아, 다른 글 읽는 사이에 윗님께서 링크해주셨네요.
    안숙선 명창의 조창은 저 동영상 중간 조금 못 미치는 부분에서 나옵니다.
    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이 끝난 다음에...

    저는 김명곤 전 장관이 초혼하는 소리도 참 인상적이더군요.

  • 9. 잘읽었습니다
    '09.5.31 9:00 PM (221.146.xxx.39)

    뭘 좀 알고 다시 들으니 가슴절절합니다...

  • 10. ^^
    '09.5.31 9:34 PM (122.43.xxx.9)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1. 아꼬
    '09.5.31 9:38 PM (125.177.xxx.131)

    그래서 그렇게 슬프고 애절했군요. 사연을 알고 들으니 더 가슴에 맺히네요.

  • 12. .
    '09.5.31 11:32 PM (59.7.xxx.171)

    프리댄서님 글 정말 맛깔나요.

  • 13. ..
    '09.6.1 2:31 AM (114.129.xxx.106)

    읽고 나서 글 정말 잘 쓰신다 했는데..프리댄서님 글이었군요..
    왜 이리 아는 게 많으세요..지난 번 질 들뢰즈 글도 감탄하면서 읽었는데..대단하심다..

  • 14. 하늘을 날자
    '09.6.1 7:52 AM (121.65.xxx.253)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리댄서님은 어찌 이리 아는 게 많으십니까. 알면 알수록 놀라게 되는군요. @..@

    '뒤늦은 고백' 글도 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또한 고 노무현 대통령에 관해서 할 말이 없지는 않은데,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 복잡한 감정을 정리해 보고 나서 이야기를 해야할 듯 해요.

  • 15. 여기
    '09.6.1 9:12 AM (211.176.xxx.169)

    가시면 임방울님의 음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imbangul.or.kr/index.htm

  • 16. 프리댄서
    '09.6.1 9:51 AM (218.235.xxx.134)

    음... 제가 '사소하고 쓸데 없는 걸' 좀 잘 기억합니다. --;
    생각해보니 그렇게 기억하는 걸 또 그 기억에 따라 이리저리 멋대로 막 편집, 다소 감상(?)적으로 가공해버리는 것도 같아요.
    그러므로 제가 떠드는 내용은 정확도를 보장할 수가 없답니다.--;
    뭐 어디다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만 떠들어대는 것이니...
    임방울 명창과 관련된 내용도 산호주가 임방울 명창이 떠나버리고 나서 병이 난 것이 아니라 원래 지병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어요.ㅋㅋ

    암튼 도움들이 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위 '여기'님께서 링크해주신 곳을 따라가보니 임방울 명창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게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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