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당신들이 말한 천억원대 대통령사저가 이런 곳이였습니까?

▦... 조회수 : 806
작성일 : 2009-05-26 19:54:05
5월 23일 토요일 하루 종일 찌푸린 하늘아래 가랑비가 흩뿌린다.
비극적 소식을 접하고 하루 종일 가슴이 애린다. 끊임없이 눈물이 고인다.
통곡할 수밖에 없는 이 큰 슬픔과 놀라움 속에서 하루가 지난 오늘새벽까지도 부엉이바위는 내 눈앞에 나타나 나의 시야를 흐리게 한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하고, 지금 떠나서는 안 되는 분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심경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오늘 나는 고백해야만 한다.
그동안 가슴속에 꾹꾹 참아왔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아야만 하겠다.

지난 2년 반 동안 나는 노무현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를 설계하고, 봉하마을 계획들을 옆에서 거들어 오면서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노무현대통령은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훌륭한 건축주이셨다.
집짓기를 위한 회합을 거듭할수록 계획안은 점점 나아졌고, 서로 간에는 드디어 신뢰와 공감이 생겨났고, 퇴임 후 사저로 입주한 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찾아뵙고 또다시 봉하마을 생활 속에서 피어난 꿈의 계획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두 가지를 마지막 가시는 길을 위해 밝혀야만 한다.
한 가지는 세상 사람들이 TV카메라에 비친 모습만 바라보는,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저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귀향한 한 농촌인으로서 농부 노무현이 꿈꾸던 소박한 세계를 알리는 것이다.
오늘의 이 비통함과 가슴 저리는 심경 속에서 우리가 갖춰야 되는 최소한의 예의는 고인에 대해서 끈질기게 널리 퍼뜨렸던 왜곡된 사실들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봉하마을의 사저는 내가 설계했기 때문에 건축가인 내가 제일 잘안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봉화아방궁이라는 말로 날조해서 사저를 비하하는 정도가 아니라 악의마저 엿보이게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나는 대통령에게 내가 나서서 기자회견을 해야겠다고 간청했다.
그러나 그래봐야 아무소용이 없으니 참으라고 하셨다. 나중에 다 밝혀질 일이지만 내가 설계한 대통령의 사저는 재료로 말하자면 흙과 나무로 만든 집이다. 그리고 아방궁이 아니라 불편한 집이다.

처음 만남에서 농촌으로 귀향하는 이유를 대통령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농사도 짓고 마을에 자원봉사도 하고, 자연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도심아파트 같이 편하게 살아서는 안 되고, 옛날 우리조상들이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어 살았듯이, 한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할 때는 신을 신고 밖으로 나와서 이동하는 방식의 채 나눔을 권유하였다.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이 편리하게 배치되어 있는 도시의 집과 달리 식사를 하거나 집무실로 이동할 때마다 봉화산을 바라보거나 공기 내음을 맡으면서 농촌에 살고 있음을 환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대통령은 흔쾌히 동의 하셨다. 흙집에다가, 도시 사람으로는 살기에 불편한 집.
그러나 품위가 있고 자연과 조화로운 집, 그런 집을 결과적으로 원하신 셈이다.
그리고 경호원들과 비서진들의 공간은 너무 떨어뜨리지 말고 한 식구처럼 생활하도록 주문하였다.
집이 다소 커져 보이는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경호동을 안채와 붙여서 비서진들과 경호원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나는 중정형의 집으로 화답한 셈이다.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확장한 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건축가는 안다.
건축주가 누구이며 집을 통해 무엇을 실현하려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지붕 낮은 집”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봉하마을 주민들의 농촌소득 증대사업을 유기농법으로 전환시키고, 봉화산과 화포천 일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치유하며, 궁극적으로는 청소년을 위한 생태교육의 장을 만들고자 하셨다.
재임시절 풀지 못한 숙제 중 하나인 농촌의 문제를 스스로 몸을 던져 부닥치려는 대통령의 의지는 퇴임 후 일 년 내내 쉴 새 없이 지속되었다.
앞으로 마을뒷산 기슭에 ‘장군차’도 심을 예정이었고, 마을 마당 앞뜰에는 마을특산물매장도 꾸리고 노무현표 브랜드 쌀도 팔 계획도 세웠다. 특히 장터 지하 쪽에 작은 기념도서관 건립도 꿈꾸고 계셨다.
민주화운동시절 당신이 가까이했을 수밖에 없었던 민주주의에 관한 책들, 당시의 젊은이들의 양식이 되었던 모든 책들을 모아 작지만 전문적인 민주주의 전문도서관을 구상하고 계셨다.
농사도 짓고, 자연과 생태를 살리고, 나아가서는 작은 동물농장을 봉화산자락 부엉이 바위 밑에 만들어 청소년들과 함께 하려는 생각들이 바로 인간 노무현대통령이 꿈꾸던 소박한 꿈들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폭넓은 독서에 빠져 통치시절을 정리하며 집필 작업에 임하셨다. 독서와 토론은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즐기던 값진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대통령은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것은 내 탓이다. ‘산은 멀리 바라보고 가까운 산은 등져야한다’는 조상들의 말을 거역하고 집을 앉힌 내 탓이다. 봉화산 사자바위와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하던 부엉이 바위 가까이에 지붕 낮은 집을 설계한 내 탓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목숨을 던져 우리들에게 남긴 질문들을.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애통함 속에서 한 마디의 단어, 그것은 ‘순교’이다. 한국 현대사 속에 심연처럼 가로놓인 질곡들, 멍에들, 허위의식들, 인간의 탈을 쓴 야수성들. 이 모든 것을 안고 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나는 순교라고 밖에 달리 부를 말이 없다. 나는 부엉이 바위 밑에 작은 동물 농장의 그림을 보여주기로 한 약속을 못 지킨 채 지금 봉하마을로 내려간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도 바로 거기에 계시므로.


정기용/건축가

IP : 219.240.xxx.47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9.5.26 7:54 PM (219.240.xxx.47)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6918.html

  • 2. 노짱나의수호천사
    '09.5.26 8:02 PM (125.142.xxx.146)

    ㅠㅠ

  • 3. 그분이시라면
    '09.5.26 10:43 PM (99.144.xxx.26)

    정말 그러시고도 남았죠.

    예전 노통재임시절

    남편이 업무상 긴밀한 관계로 그 관계된 모든 직원들
    수고많다고 부부동반으로

    초대받아서 간 적 있었는데 안마당 한쪽에 공사가 한창이더군요.

    대통령 집무실 이외
    크게 필요치 않은 공간을
    다 국민과 관련된 기관이나 업무 보기 위한 공간으로 개조 하라고 지시하셔서
    여러 건물을 고치고 있더군요..

    그때 참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다 생각했었는데...역시나
    퇴임후의 사저도 그렇게 지으셨군요.


    생각할 수록 눈물나고 안타깝고..죄송하고 그렇습니다.

    사랑합니다.ㅠㅠ

  • 4. 바보바보
    '09.5.26 11:33 PM (122.36.xxx.235)

    정기용 선생님... 이렇게 밝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분의 진심에 우리는, 아니 저는 너무 늦게야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듯 해요. 늘 방관자처럼 지냈는데 그게 이렇게 후회될 수가 없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정말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지.못.미. T.T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63993 밑에 수녀님 글보고요 4 궁금 2009/05/26 600
463992 청와대 홈페이지가 안열리네요. 2 광팔아 2009/05/26 258
463991 가르쳐 주실래요?(태극기는 어떤 위치로 달면 되는건지요?) 2 초승달님 2009/05/26 137
463990 이 글 보셨어요? 정말 이게 사실인가요? 7 노짱 왜 그.. 2009/05/26 1,898
463989 이 글 다 읽어보셨나요?무서워 죽겠어요...ㄷㄷㄷ 4 안읽었으면 .. 2009/05/26 1,473
463988 진짜 미네르바는 노 대통령이었다? 5 2009/05/26 1,497
463987 퇴근 길...또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5 sidi 2009/05/26 659
463986 추모현장사진(펌) 2 아고라펌 2009/05/26 420
463985 youtube에 있던 동영상입니다. 1 노무현님의 .. 2009/05/26 260
463984 오늘따라 당신이 더 보고 싶습니다.. 1 노간지 2009/05/26 81
463983 정말 우아하고 조신한 그녀 입에서 나온 발언 (명바가 사랑해) 4 ▦ Pian.. 2009/05/26 1,466
463982 대전 시청 분향소 다녀 왔어요 1 쥐탄핵 2009/05/26 160
463981 경향신문, 정론지라고 생각하세요? 4 의문 2009/05/26 474
463980 왜 노무현님에 관한 글과 사진이 생각보다 덜 올라오는지 아시나요? 3 그건 바로... 2009/05/26 795
463979 고인을 욕보이는 광명시장, 퇴진을 강력 요구합니다 <==아고라 서명 2 동참 2009/05/26 188
463978 '노무현 추모방송' 위해 KBS 일선 PD들 결사항전 중 8 독설닷컴펌 2009/05/26 1,188
463977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특별교부금에 대한 쓰임 2 이런 분이셨.. 2009/05/26 321
463976 일본분향소에 갔다왔습니다. 5 일본 2009/05/26 347
463975 갑자기 이상해요.. 10 82쿡이 2009/05/26 1,234
463974 ▦당신들이 말한 천억원대 대통령사저가 이런 곳이였습니까? 4 ▦... 2009/05/26 806
463973 촛불만 들어도 불법이라던데..쥐새끼 그림 플랭카드 들고 나가면 어떨까요? ... 2009/05/26 113
463972 1층 전시실에 분향소 있습니다.. 2 인천 예술회.. 2009/05/26 112
463971 벌써 보내셨을 듯 하지만 혹 필요하실까싶어 국화꽃집 2009/05/26 198
463970 성당 수녀님이... 18 순수야 2009/05/26 2,419
463969 봉하에 물품 쉽게 보내는 방법 물품 2009/05/26 219
463968 김제동씨의 노무현 대통령 추모글... 5 ... 2009/05/26 1,558
463967 없어진 통장에 자동이체된경우... 5 ㅠ.ㅠ 2009/05/26 336
463966 부산님들 분향소 어디로 가시나요? 7 부산맘 2009/05/26 203
463965 엊저녁 횟집에서... 7 아고라펌 2009/05/26 760
463964 오지 않았으면... 영결식장에 2009/05/26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