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추억하며
김대현
- 20대들에게 바친다
2008년 이후의 모든 시위 소식을 들을 때
나는 대학생활 때 보고 들은 것들을,
혹은 내 대학생활 전반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내 대학생활은 노무현 당선과 함께 시작했고
이명박 당선 때 반방에서 걸쳤던 소줏잔으로 끝났다
그 해, 5년은 시대의 '다음'을 논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이회창이 아닌 노무현이었으므로, 노동자는 탄압되지 않아야 했고
폭력 시위는 사라져야 했으며
빈민의 한은 일시에 빛이 들어 해방되어야 했다
여운형이 유공자로 추서되었고
인디판에 지원금이 수혈되었고
검사가 대통령을 추궁할 수 있었지만
그 5년 동안에도 노동자는 탄압됐고
폭력시위는 여전했으며 철거민의 한은 끊이지 않았다
시대의 다음을 논해야 했으므로 거기에 따른 비난은 당연했다
한겨레는 2005년부터 노무현의 쌍꺼풀을 희화화한 캐리커쳐를 냈고
황새울의 여명을 목격한 선배와 후배들은 하나같이 치를 떨었고
2003년 권영길은 모 단체 출범식에서 노무현을 타도하자고 외쳤다
거기에 신이 난 조중동이 숟가락을 보탰다
시대의 다음을 논해야 했으므로 피아가 구분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과거의 쇄신과 현재의 지연이 두리두리 섞여 보이지 않았고
그 보이지 않는 짜증은 모두 노무현의 존재로 귀결되었다
사람들은 막연히 좌파우파를 규정하는 기준이
노무현의 전과 후가 같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새로 옮아간 기준이 무엇인지는 저마다 생각이 달랐다
그렇게 기준이 흩뜨려질 수 있는,
피아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어찌보면 여론이 건강하다는 지표였다
피아가 명확한 시절이 오래 이어지면 어떠한 폐단을 낳는지
386 정치인과 학내 운동권들만 봐도 알 수 있던 시절이었다
투쟁 타도 동지 해방의 어휘들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뼛속까지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기실 그렇게 쪼개져서는 한쪽에 기대
자신을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어떤 기형이요 징후일지도 몰랐다
따라서 짜증은 익숙하지 않은 건강함에 대한
과정이고 물갈이였을 수도 있다
노무현은 그 짜증어린 영광을 대변하는
임기 내내 짜증스런 대통령이었다
서울역을 지나칠 일이 있었다
광장 앞 뿐 아니라 에스컬레이터 놓인 공간에까지
사람이 기십명 이상 모일 수 있는 모든 곳에 말뚝박듯
전경들이 도열해있었다
뉴스는 날마다 촛불과 시위에 대한 반협박조 기사를
타전하고 있었고, 시위 시작 24시간만에
용산의 옥상이 불바다로 변했다
시대의 다음을 외치던 이들은
시대의 장엄한 귀환을 목격했다
철거민은 공권력으로 진압될 일은 아니었지만
어떤 교섭 절차도 없이 한나절만에 까부셔질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해방 후 우리 역사는 시대의 지연을 자주 목격했다
87년 이후에 노태우가 집권했을 때 그랬고
전민중적인 지지로 일궈낸 60년대 개발독재에 이은 유신과
5월의 봄 이후를 무참히 수놓은 5.18이 그랬고
국가가 서고도 통일이 되지 못해
남들은 다 보수로 밀어놓은 민족이 되레 진보 취급을 받은
반세기의 남북한이 그랬다
문제가 지연되었으므로 그 다음을 얘기하지 못했고
다음을 얘기해도 그것이 과거의 건더기와 설켰으며
한동안 가치있었던 유제들이 채신머리를 잊고
오래도록 천수를 누렸다
우리에게 과거가 현재처럼 중요해졌던 까닭들이다
박정희가 닦아놓은 돈줄 위를 살면서 개발독재를 씹었던 건
그가 유신 이후로 너무나 많은 뻘짓을 해왔기 때문이고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서도 민족을 애지중지했던 건
좋든 싫든 남한의 쇄신이 일정부분 북에 매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FTA 난장을 보면서도 노무현을 그릴 수밖에 없는 건
그가 가고 난 이후 지난 세기의 신군주로 화려하게 복귀한
이명박과 조중동의 막장을 우리가 함께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2005년에 상식이었던 것들이
2009년에 통하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숫제 '편했을' 때에 학교를 다녀서
학생 시위를 관할 지역 경찰서가 아니라 언감생심
국정원이 관리하는 이 판국을 낯설어하는구나 싶다
시대의 '지연'은 그토록 비참하다
촌스런 시위로나마 제 존재를 알리는 운동판의 아이들과
여전히 연행돼가는 진보를 촌스럽다고 등돌린 황석영을
함께 보는 것이 비참하듯이
남들은 이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민족주의로
아직까지 설왕설래하는 우리의 현실의 비참하듯이
이제와 죽은 노무현과 이제껏 살아남은 전두환을 함께 보는 것이
이리도 처참하고 원통하듯이
21세기의 대학가를 몸으로 목격한 내 지우들에게서
연락이 도착한다
담담한 다짐들이다
우리가 본 것들을 증거해야 한다는
그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공감대들이다
부조리에 분노하되 분노의 외형이 촌스러우면 진다는 걸
배워야 했던 세대가 우리들이고
이회창을 싫어하되 노무현의 모든 것들에 관대해지면
안된다는 것을 배워야 했던 세대가 우리들이고
거리를 메운 시민들의 외침과 열광을 사랑했지만
그들이 지어내는 오류에도 또한 눈돌려야 한다는 걸
배워야 했던 세대가 우리들이고
그 모든 반성과 쇄신을 조중동에 전유당하면 안된다는 걸
톡톡히 깨우쳐야 했던 세대가 우리들이다
박정희에게도 386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세대들이다
그런 시대의 긴장 한가운데에 노무현이 있었다
그는 진보의 기대를 안고 보수의 현실을 살았던 대통령이고
보수의 현실조차 수구의 공세에 누더기취급 받았던 사람이다
어느 한 시대에 기대서 안온할 수 없었던 그 명운이
21세기 학번인 우리 세대와 묘하게 닮아서
참 미워도 하고 가슴 졸이며 좋아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기표'가, 어제 무너졌다
새 시대를 여는 맏형과 구 시대의 막내 노릇 사이의 긴장이
그를 기어코 부엉이바위로 이끌었다
그의 예언대로 그는 결국 새 시대의 일출을 보지 못하고
황혼녘에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운명을 따랐다
살아남은 우리 세대들은 필시 새 시대의 일출을 보아야 한다
그를 위해 걸어야 할 길들이, 뛰어넘을 과제들이
부엉이바위 위에 저리 흥건하다
시대를 뛰어넘기 위해 시대가 잡아먹은 사람을 기억해야 하고
기억하고서도 새 시대로 나아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기댈 기표 없이 세상을 산다는 무게감을 가지고
누구보다 초연히, 장기하의 가사처럼
"별일 없이 살"아야 하는 게 여기 우리들이다
과거를 잊지 말되 누구보다 즐겁게 살고
즐겁게 싸워야 할 이들이 우리 세대들이다
우리 세대들이 정신줄 놓지 않고도 마음 편히 살기 위해
그리도 많은 사람이 부엉이를 그리며 피를 흘려야 했다
한 세대가 가지는 자유와 활력과 경박함 뒤엔
그런 피눈물들이 깃들어있다
그렇게 힘주고 살았던 세대들이 있었기에
힘주고 사는 게 위험하고 촌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세대가 존재한다, 그 역사의 무게가 있기에
우리들은 더더욱 한껏 경박해지고 자유로워야 한다
마치 상여를 이고 돌아온 겟꾼들의 한바탕 푸진 잔치처럼
열심히 살자,
우리 20대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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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후배가 '노무현을 추억하며'라고 쓴 글입니다....
현랑켄챠 조회수 : 1,011
작성일 : 2009-05-25 15:54:46
IP : 123.243.xxx.5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현랑켄챠
'09.5.25 3:56 PM (123.243.xxx.5)27살....이런 청춘도 있음을 알아주세요.
2. 혹시
'09.5.25 3:58 PM (124.179.xxx.107)현량켄챠님
어디 사시나요?
전
브리즈번 사는데요.ㅠㅠ
호주에도
분향소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해서 묻습니다.
같은 동네면 힘 모으고 싶어서요.3. 현랑켄챠
'09.5.25 4:00 PM (123.243.xxx.5)좀 큰 핵교를 가더니 글밥을 좀 먹었는가, 아님 젊어서 그런가 생각하는 것도 빠르네요. 젊은이들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노무현 대통령님이 남기신 숙제,.....
지금은 F지만 다음학기엔 A+로 메워요.4. 현랑켄챠
'09.5.25 4:06 PM (123.243.xxx.5)ㅠㅠ...전 시골 살아요....ㅠㅠ....예전에 브리즈번에 머물 때
집구하고 물건 살 때 sunbrisbane.com 이라는 싸이트 이용했는데요
그곳에 한인들 많이 모이는 것 같던데, 그쪽에 글 한번 올려보심이 어떨까요?
시드니 한인회는 벌써 홈피 단장도 한 것 같던데요.
호주가 한국크기정도만 됐어도 ㅠㅠ.......아쉬워요 '혹시'님..ㅠㅠ
그래도 마음은 이미 봉하에 가 있고
두 눈과 정신은 쥐새끼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5. 정말 멋진 글..
'09.5.25 4:50 PM (125.241.xxx.196)읽고 해석하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데, 이렇게 글쓴 이는 정말 대단하군요.
그 심정 동감합니다. 전 40대라 20대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한 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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