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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립니다.
마음 아리게 했던 시들만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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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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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무덤 앞에서/ 정호승
이제는 조국이 울어야 할 때다
어제는 조국을 위하여
한 시인이 눈물을 흘렸으므로
이제는 한 시인을 위하여
조국의 마른 잎새들이 울어야 할 때다
이제는 조국이 목숨을 버려야 할 때다
어제는 조국을 위하여
한 시인이 목숨을 버렸으므로
이제는 한 젊은 시인을 위하여
조국의 하늘과 바람과 별들이
목숨을 버려야 할 때다
죽어서 사는 길을 홀로 걸어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웠던 사나이
무덤조차 한 점 부끄럼 없는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했던 사나이
오늘은 북간도 찬 바람결에 서걱이다가
잠시 마른 풀잎으로 누웠다 일어나느니
저 푸른 겨울하늘 아래
한 송이 무덤으로 피어난 아름다움을 위하여
한 줄기 해란강은 말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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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나있는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띠끌이 되어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 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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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 김지하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은빛 반짝이는 낮은 구릉을 따라
움직이는 숲그늘 춤추는 꽃들을 따라
멀어져가는 도시여
잘 있거라
낮게 기운 판잣집
무너져 앉은 울타리마다
바람은 끝없이 펄럭거린다
황토에 찢긴 햇살들이 소리지른다
그 무엇으로도 부실 수 없는 침묵이
가득 찬 저 외침들을 짓누르고
가슴엔 나직히 타는 통곡
닳아빠진 작업복 속에 구겨진 육신 속에 나직히 타는
이 오래고 오랜 통곡
끌 수 없는 통곡
잊음도 죽음도 끌 수 없는 이 설움의 새파란 불길
하루도 술 없이는 잠들 수 없었고
하루도 싸움 없이는 살 수 없었다
삶은 수치였다 모멸이었다 죽을 수도 없었다
남김없이 불사르고 떠나갈 대륙마저 없었다
외치고 외치고
짓밟히고 짓밟히고
마지막 남은 한줌의
청춘의 자랑마저 갈래갈래 찢기고
아편을 찔리운 채
무거운 낙인 아래 이윽고 잠들었다
눈빛마저 애잔한 양떼로 바뀌었다
고개를 숙여
내 초라한 그림자에 이별을 고하고
눈을 들어 이제는 차라리 낯선 곳
마을과 숲과 시뻘건 대지를 눈물로 입 맞춘다
온몸을 내던져 싸워야 할 대지의 내일의
저 벌거벗은 고통들을 끌어안는다
미친 반역의 가슴 가득 가득히 안겨오는 고향이여
짙은, 짙은 흙냄새여, 가슴 가득히
사랑하는 사람들, 아아 가장 척박한 땅에
가장 의연히 버티어선 사람들
이제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금 피투성이 쓰라린 긴 세월을
굳게 굳게 껴안으리라 잘 있거라
키 큰 미루나무 달리는 외줄기
눈부신 황톳길 따라 움직이는 숲그늘 따라
멀어져가는 도시여
잘 있거라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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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살찐 그대 가슴 위에 언덕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자유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 판검사가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형제들이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험한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넘어 평지길 황토길 위에
사래 긴 밭의 이랑 위에 가르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구석기의 돌 옛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자유여 자유의 나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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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인의 시에 이런 귀절이 있지요.
'베토벤이 죽은 날, 마르크스가 태어났지'
위에 소개된 시인들 중 한 분이 쓰신 시인데
보강하는 날, 누군지 알아오는 아이에게
시집 한권 선물로 주기로 했습니다만...
아마...아이들은 찾기 힘들 겁니다.
1. 잠이 안오는지
'09.5.25 12:45 AM (121.140.xxx.163)다 못읽겠어요 슬퍼져서...
ㅠㅠ2. 남주형...
'09.5.25 12:47 AM (211.176.xxx.169)보고 싶어요.
남주형 너무 보고 싶어요.
오늘은 남주형이 너무 보고 싶어요.
형 내가 사랑하는 노짱 형이 잘 안아주세요.3. 자유
'09.5.25 12:51 AM (110.47.xxx.66)윗님. 저도 오늘, 김남주님 유고 시집 보면서 한참 울었습니다.
오늘은 시인들이 제 대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님 말씀대로, 제 대신, 그분을 잘 안아주셨으면 하고 바래봅니다.4. 애도의 마음
'09.5.25 12:57 AM (211.186.xxx.183)우리가 하자
김 지 하
몹시도 눈이 쌓인 날
치악산 밑에 사는
한 친구집에 간 일이 있었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들을 하는지
참 우수한 아이들이었는데
넷이었던가
다섯이었던가
기억은 참되지 않다
기억은 오직 구성될 뿐이다
눈에 덮인 너의 집
그 작은 방
그 희미한 촛불
해월 선생처럼 수염을 기르고 엄장 한 분이 농주를 마시고 있었다
첫마디
'베토벤이 죽은 날 마르크스가 태어났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긴 논쟁은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 나는 낫셀의 방향을 주장했던것 같고
공과를 지망했던 내 친구는 그 무렵에 벌써 로스토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얘기는 사분 오열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똑같은 것이었다
'베토벤이 죽어가는 날 마르크스가 태어났다 이 점을 기억하라
역사는 대를 이어서 자기의 본체 이성을 발전시키는 법이다
그래서 역사는 진보하는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미끄러지며 넘어지며
고등학교 모자가 날아가고 다시 줏어 쓰며
우리가 얘기한것은 한 가지였다
'우린 아직 어리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것도 저것도 다 틀렸다 우리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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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고싶은 백마디 말들을 시인들은 단 몇줄에 대신해주네요. 감사합니다. 자유님께도, 시인들께도.5. 자유
'09.5.25 1:10 AM (110.47.xxx.66)애도의 마음님/
그 시 맞습니다. 시가 쉽게 검색되던가 보네요.
집에서 나갈 때, 검색해 보지 않았어요.
많이 알려진 시는 아니어서, 아마 찾기 어렵지 싶었는데...
아마도 보강하는 날, 시집 여러 권 나눠줘야겠군요.6. 죄송
'09.5.25 2:38 AM (125.186.xxx.144)시들이 너무 좋아서 허락도 없이 퍼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