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웃님의 글인데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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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전 10억년>이란 SF소설이 있다.
(지금은 더 긴 제목으로 바뀐 개정판이 나와 있는데 예전의 이 짤막한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범우주적이고 초자연적인 어떤 힘 또는 세력에 의해 특정 연구 중단의 외압을 받는 구 소련 과학자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도 연결되는 불가해한 압박 속에서 번민한다.
'자유'와 '의지'를 버리고 압력에 굴복하는 자신을 스스로 견딜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을지. 나중에는 아내에게 그런 고민을 털어 놓는다.
여기서 굴종하면 당신에게 계속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걱정스럽다고.
이런 모습은 한국인이 읽으면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는 가족의 안위를 지키는 것보다 '부끄럽고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을 아내와 연관시켜 걱정한다.
현대 한국에서라면 양심과 신념을 위해 가정의 안위를 해치는 행동을 하는 가장이 오히려 부인에게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아내에게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부끄럽고 못난 사람이 되어도 이해하고 계속 사랑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긍지'에 대한 두 문화의 태도에 커다란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 여기고 넘어갔었다.
인간 노무현의 극단적인 선택을 이해해 보려 하면서 나는 저 소설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가 노무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 구 소련 과학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다른 관점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한국인들과는 '인간의 긍지'에 대한 태도가 달랐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그보다 더한 숱한 난관을 견뎌낸 그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까닭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직접소환조사 후에도 지지부진한 검찰의 수사는 언뜻 그리 불리해 보이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울만한 사람으로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그러나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노무현의 긍지는 무너진다.
무죄 판결을 받아도 '부인과 자식에게 죄를 떠넘기고 자신은 몰랐다고 하는 구차한 남자'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그 비리 규모가 어떻든 '깨끗한 척 했지만 결국 전두환,노태우나 별 차이 없는 인간'으로 조롱할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사법처리가 아니라 모욕과 딱지 붙이기에 있었다.
그 딱지는 그를 구별하는 딱지가 아니라 '너도 우리와 똑같잖아'라는 동일화의 딱지였지만 말이다.
법정투쟁으로는 그가 함정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그가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살아남는 모든 길은 그 추잡한 동일화의 딱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때, 그는 차라리 죽음으로써 '나는 다르다'고 선언하고 인간의 긍지를 지키는 길을 택했다.
그럼으로써 '더한 놈들은 멀쩡히 살아있는데 애꿎은 그는 죽었다'는 차별이 완성된다.
이것이 내가 이해한 그의 선택이다.
노통은 '29만원 밖에 없다'는 뻔뻔한 대머리나 '
살아오면서 작은 실수도 했지만 대통령이 되기에 부끄러운 일은 결코 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다'는
전과 14범처럼 인간의 긍지가 뭔지 모르는 족속들과는 그 종자가 다른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것을 증거하려 했다.
그는 그렇게 사라진 조선말기 지사적인 죽음, 수치와 굴욕보다는 긍지와 명예를 택하는 죽음을 21세기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재현했다. 부디 영면하시길.
[출처] 노무현, 인간의 긍지|작성자 노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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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인간의 긍지
ㅠㅠ 조회수 : 172
작성일 : 2009-05-25 00:11:01
IP : 203.229.xxx.234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왜 사람들은
'09.5.25 12:14 AM (121.140.xxx.163)노무현에게만 엄격했을까요? 그만큼의 지지는 주지도 않고? 하나만 잘못해도..ㅠㅠ
이런 마음가짐이 그를 괴롭힌거 같아요
기대치만 높게 잡아서 부담만 주는거.. 응원이 아니라 부담...
친박연대 같은 것에겐 기대치가 낮아서 하나만 잘해도 의외네 하고 혹 하게되고
노통처럼 깨끗한사람은 기대치 높게 잡고 하나만 못해도 별수없구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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