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사법부를 비추고 있다. 사법부가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법복이 촛불에 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 시위는 사회 이곳저곳으로 번지다가 급기야는 사법부로 번져 활활 타고 있다. 백만 송이 燭花에 놀란 mb는 북악에 올라 ‘아침이슬’을 맞으며 성찰과 회개를 했노라 했다. 정점을 치달았던 촛불도 폭력논쟁 앞에서 여지없이 잦아들었다. 폭력은 힘 있는 자나 없는 자나 혐오스러운 것이란 확인은 다행한 일이지만 지금도 폭력적인 진압을 유발시키는 빌미를 왜 제어하지 못했을까 늘 아쉽기만 하다. 아무튼 촛불잔치는 폭력으로 얼룩지며 화염병보다도 더 무서운 불이 촛불이라는 착각이 들게 만들며 일단락 되었다.
촛불시위 관계자들도 모두 사법처리가 끝나고 후일을 모색하고 있는데 아뿔싸 벗어 놓은 법복에 촛불이 옮겨 붙어 있을 줄이야. 참 당황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바람이 불면 통장사가 돈을 번다’는 일본 속담이 새삼스럽다.
광우병 파동이 사법파동으로 마무리 될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시대의 마지막 권부는 검찰과 사법부다. 검사와 법관은 임기가 보장된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다. 전두환 시절의 검찰과 사법부는 참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그들의 초라함을 온몸으로 보고 느꼈다. 그 당시는 안기부가 모든 조정을 다 했다. 그런 쓰라린 경험이 있는 검찰과 사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민중 혁명이나 군사 구데타 일 것이다. 백면서생들이 법복을 입고 있을 때에야 권위가 있을지 모르지만 총칼을 들이대면 허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처절히 경험 했다.
그러나 지금 법관들은 최고의 호시절을 살고 있다. 정치인도 재벌도 국정원도 심지어 대통령도 검찰과 사법부의 눈치를 보는 세상이 되었다.
유신과 5공 시절의 검찰과 사법부를 지금과 비교하면 민주화 시대에 성장한 검사나 법관들은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두 시대를 함께 살아온 세대는 지금 민중들의 피 값으로 얼마나 좋은 시절을 살고 있는지 알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한국처럼 적대적 갈등이 심하고 이지러진 사고가 횡행하는 사회에서는 다툼이 일상이 되고 쟁송이 삶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검찰과 사법부의 할 일이 많고 결정적인 사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법에 호소라도 해보고 또 고소 고발당하고 검찰 조사를 받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1심 2심 3심 참으로 성실히 재판도 받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즈음의 검찰을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한다. 마치 5공의 안기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도 검찰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검사가 완벽한 사람이 아닐진대 무소불위는 언제나 불안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 스스로 마지막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검찰이 현직 검사장을 소환 조사 한다.
사실 신영철 대법관이 모든 걸 본인의 부덕으로 돌리고 곧바로 사퇴 했으면 사법부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오히려 촛불반대 세력으로부터 용기 있는 법관으로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일은 생각 같지 않은 게 현실이다.
광우병 촛불이 사법부를 흔들고 있는 것은 바로 사법부가 최고의 권부가 되었음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판사들의 위기감은 사실 사법부의 취약한 자기 존재감 때문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입법부가 스스로 자기 존재를 초라하게 만드는 노력(?)을 하고 적대적이다 싶을 만큼의 정치 갈등은 대통령도 늘 초라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현실이 검찰과 사법부를 이시대의 마지막 권부가 되게 하였고 삼권 분립이 유명무실하여 서로 견제하지 못하는 존재로 의미상실 되어 버린 것이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
검찰과 사법부가 호시절을 살고 있으면서도 늘 불안한 이유가 여기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책임 또한 무한 책임이 된다. 모든 화살이 검찰과 사법부로 날아들 차례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법부가 최고의 권부가 되었고 자연히 정치행위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정치권 특히 국회가 죽으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검찰과 사법부의 판단은 고스란히 정치적 책임을 부가 받게 되어 버렸다.
법의 잣대 보다 이해관계 즉 정치적 잣대의 농도가 짙어 질수록 사법부는 스스로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백면서생이다. 대중을 만나 그들의 지지를 얻는 것도 아니고 무력을 소유하고 있지도 못하다. 사법부는 그저 양형을 정하는 사람들 일 뿐인데 너무 많은 짐을 지게 되었다. 이것이 사법부의 불행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최고의 권부가 되어버린 사법부의 정치적 판단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정치적 판단은 늘 적과 동지를 만들게 되어 있다. 법복을 입고 있는 법관들은 이 부담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그 부담을 벗어나기는 이미 늦었고 다만 정치적이 아니라는 몸짓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바람이 불면 통장사가 돈을 번다’는 정도의 인식을 하는 사람이라면 사법부의 고뇌를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영철 개인의 생각과 대다수 판사들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국민 앞에 ‘show' 해야 할 필요를 너무너무 간절히 느낀 것이다.
이것이 이즈음의 사법파동의 본질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내 선거법 변호인 시절에 나에게 이렇게 안타까움을 토로한적이 있다. “ 국회의원들이 법을 잘 만들어야지 .... 법관은 법대로 재판 할 수 밖에 없어.. ”.라고 한 적이 있다. 참 지당하신 말씀이다. 국회의원들은 그들의 입권권을 사용할줄 몰라 그만 자신들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렸지만 그렇다고 법관들은 독립된 양심과 법에 따라 판결 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머지않은 날 5공과 안기부로 향했던 그 거대한 민심의 판결이 검찰과 사법부를 그들이 사용하던 법대위에 올릴 때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개헌을 매개로 이루어 질 것이다.
법관이 판결로 말하지 않고 또 다른 show를 해야 하는 현실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2009년 5월 18일 광주항쟁 29주년
경기북도 한탄강가에서 이철우(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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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도 'show'를 한다.
유리성 조회수 : 227
작성일 : 2009-05-19 12:06:58
IP : 119.194.xxx.17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하얀얼굴
'09.5.19 12:14 PM (58.232.xxx.194)백면서생 (白面書生) - 한갓 글만 읽고 세상일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
2. phua
'09.5.19 12:28 PM (218.237.xxx.119)이런 글이 자게대문에 걸려야 하는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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