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님, 저도 사과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 / 김굽다집태운놈 / 2009-04-09)
75년생입니다. 30여 년 살아오면서 솔직히 박정희 대통령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제가 기억나는 대통령은 전두환부터입니다. 다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다섯 명 기억납니다.
학교 가면, 의례 선생님은 군대식으로 줄 세우고 때려도 되는 사람인 줄 알았고, 국정교과서 말고 다른 교과서는 있어야 하는 줄도 몰랐습니다. 시험 보면 성적 나오고 등수 나오는 거 당연한 걸로 여겼고요.
대학가면 공부하지 않고 데모하는 애들하고 몰려다니지 말라고 해서 대학가서도 운동권, 학생회, 총학생회 이런 데 소속된 애들을 쓸데없는 짓 하는 애들이다, 빈티 난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저 자신은 세련된 척, 상아탑의 낭만을 즐기는 척, 나름 똑 소리 나는 척 가식 떨고 살았습니다.
군대 갔다 오고 졸업할 때 되니까 취직하기 겁나고 아직 뭐 해야 할지 결심도 안 서서 대학원 갔습니다. 알바를 해도 직장인만큼 돈을 벌잖아...하면서 자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냥 세상이 나 위주로 좀 편하게 돌아갔으면 싶었습니다.
대학원 때 노무현 대통령 선거하는데 왠지 그동안 눌려왔던, 유교적 논리로 나를 짓누르던 내 윗세대들에 대한 반란 같아서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더러운 짓 하는 정치인들, 아는 척 가르치려는 어른들 다 찍소리 못할 것 같아서 한 표 던져놓고는 이제 새 세상이 오겠지.. 하면서 또 방관자로 있었습니다.
그래놓고는 또 노무현 대통령에게 불만이 생겼습니다. 왜 화끈하게 세상을 안 바꿔주나 왜 저런 사람들한테 질질 끌려다니나... 왜 타협하려고 하나...
결국, 등 떠밀리듯 대학원에서 나와서 사업을 한답시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자리 잡기 힘들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힘듭니다. 그렇게 세상이 힘들다는 걸 느끼니까 모든 불만은 세상을 화끈하게 안 바꿔 준 노무현 대통령에게 돌아갔습니다.
"뭐야 도대체 뭐가 바뀌었다는 거야? 뭘 바꿔준다는 거야. 이거 또 뒤에서 정권 잡았다고 지들만 도둑질하는 거 아니야? 왜 우리 같은 업체는 지원 받기 힘들어? 이거 말만 지원 지원하고 생색만 내는 거 아니야? 50여 년 살다가 이제 눈이 따가워서 쌍꺼풀 수술을 해? 대통령부인은 왜 또 같이해? 아... 하는 짓이 죄다 맘에 안들어...."
그런데요....
저 요즘 반성하고 후회 많이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미안해요, 노무현 대통령님. 뭐 제가 하는 불만과 욕을 직접 저한테 들으신 적은 없지만 그래도 미안해요. 저 나이 30 넘어서야 좌파니, 우파니, 진보, 보수, 자유민주주의, 공안정치, 어용, 수구세력 등등의 단어가 몸으로 와 닿기 시작한 늦디늦은 사람인데요. 어쨌든 미안해요, 노무현 대통령님. 그냥 제 마음이 그렇다고요.
부인이 돈을 받았는지 그 돈이 빚을 갚는 데 썼는지, 받아서 땅에 묻어놨는지 그런 건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기억나는 전두환 이후로 대통령이 사과하고 법적 처분을 바란다는 소리도 처음 들어봤고요. 전 가본 적은 없지만, 고향땅 돌아가서 농사짓고,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이랑 대화한다고 하는 대통령도 처음이고요. 눈에 보이는 등신 짓을 하면서도 입으로만 사과하고 뒤통수 치는 쥐새끼보다는 당신은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고요.
지금 뉴스에서는 당신이 직접 요구를 해서 10억을 줬니 어쩌니 하는데... 됐다고 하세요. 전 이제 제가 바라보는 시퍼런 색깔이 어떤 시퍼런 색깔인지 잘 알게 됐어요. 끝없이 당신을 씹어대는 족속들이 어떤 부류인지는 저 같은 어설픈 속물이 더 잘 알아요. 신경 쓰실거 없어요. 조금 호흡을 길게 하고 심지 굳게 하고 가세요.
전 천성이 반골이라 대통령 하실 때 표는 던져 드렸어도 단 한 번도 하시는 일 호응해 드린 적 없는데요. 그런데 지금은 당신이 실제로 죄를 지었다고 떠들어도 그 소리가 귓등으로 들려요.
혹시나 당신을 좋아하던 사람들, 노사모 등등 뭐 이런 사람들이 다 당신을 욕하고 등 돌린다고 해도... 단 한 번도 당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적 없는 저는 등 돌리지 않을게요.
좋은 세상 만들고 있었는데 몰라봐서 미안해요. 술자리에서, 밥 먹고 드러누워서, 화젯거리가 없다고 TV에 얼굴 나온다고 안주대용으로 심심풀이로 욕해서 미안해요.
완벽하진 않았어도 좋은 대통령이었던 거 같아요. 뭐 이런저런 문제도 지금은 만들고 있고 생길 수도 있지만 이제 그런 쓸데없는 소리 안 믿으려고요.
전 이제 당신을 누구한테 얘기할 때 노무현이, 노무현.. 뭐 이렇게 부르지 않아요. 간지러운 소리는 못하지만 적어도 꼭 뒤에 '대통령' 소리 붙여요.
맘고생 좀 하시고 후딱 회복하세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무는 모습 좀 관람하고 있죠, 뭐.
그래도 어쨌거나 알았니 몰랐니 해도 일단 겨 묻은 건 겨 묻은 거니까 그거 인정하셔서 멋있네요.
...그런데 이거 읽어 보실라나?... 사과는 받아주셔야 제 맛이긴 한데...^^
※ 출처 - http://www.knowhow.or.kr/
ⓒ 김굽다집태운놈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30421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참 좋은 글이라 생각되어,,<펌>
마음 조회수 : 415
작성일 : 2009-04-10 14:06:06
IP : 219.241.xxx.11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00
'09.4.10 6:56 PM (210.94.xxx.229)눈물날라고 하네요. ㅠ.ㅠ 노무현 대통령 재임중이실때도, 퇴임후에도 그분을 뵈면 항상 눈물이 핑 돌았어요. 언젠간 후대에서 역사가 평가해줄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상처가 너무 클것 같아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N
번호 | 제목 | 작성자 | 날짜 | 조회 |
---|---|---|---|---|
682630 | 자유게시판은... 146 | 82cook.. | 2005/04/11 | 154,592 |
682629 | 뉴스기사 등 무단 게재 관련 공지입니다. 8 | 82cook.. | 2009/12/09 | 62,251 |
682628 | 장터 관련 글은 회원장터로 이동됩니다 49 | 82cook.. | 2006/01/05 | 92,532 |
682627 | 혹시 폰으로 드라마 다시보기 할 곳 없나요? | ᆢ.. | 2011/08/21 | 19,988 |
682626 | 뉴저지에대해 잘아시는분계셔요? | 애니 | 2011/08/21 | 21,684 |
682625 | 내가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 | 사랑이여 | 2011/08/21 | 21,396 |
682624 | 꼬꼬면 1 | /// | 2011/08/21 | 27,428 |
682623 | 대출제한... 전세가가 떨어질까요? 1 | 애셋맘 | 2011/08/21 | 34,620 |
682622 | 밥안준다고 우는 사람은 봤어도, 밥 안주겠다고 우는 사람은 첨봤다. 4 | 명언 | 2011/08/21 | 34,817 |
682621 | 방학숙제로 그림 공모전에 응모해야되는데요.. 3 | 애엄마 | 2011/08/21 | 14,864 |
682620 | 경험담좀 들어보실래요?? | 차칸귀염둥이.. | 2011/08/21 | 17,005 |
682619 | 집이 좁을수록 마루폭이 좁은게 낫나요?(꼭 답변 부탁드려요) 2 | 너무 어렵네.. | 2011/08/21 | 23,225 |
682618 | 82게시판이 이상합니다. 5 | 해남 사는 .. | 2011/08/21 | 36,207 |
682617 | 저는 이상한 메세지가 떴어요 3 | 조이씨 | 2011/08/21 | 27,414 |
682616 | 떼쓰는 5세 후니~! EBS 오은영 박사님 도와주세요.. | -_-; | 2011/08/21 | 18,320 |
682615 | 제가 너무 철 없이 생각 하는...거죠.. 6 | .. | 2011/08/21 | 26,645 |
682614 | 숙대 영문 vs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21 | 짜증섞인목소.. | 2011/08/21 | 74,115 |
682613 | 뒷장을 볼수가없네요. 1 | 이건뭐 | 2011/08/21 | 14,566 |
682612 | 도어락 추천해 주세요 | 도어락 얘기.. | 2011/08/21 | 11,634 |
682611 | 예수의 가르침과 무상급식 2 | 참맛 | 2011/08/21 | 14,374 |
682610 | 새싹 채소에도 곰팡이가 피겠지요..? 1 | ... | 2011/08/21 | 13,403 |
682609 | 올림픽실내수영장에 전화하니 안받는데 일요일은 원래 안하나요? 1 | 수영장 | 2011/08/21 | 13,653 |
682608 | 수리비용과 변상비용으로 든 내 돈 100만원.. ㅠ,ㅠ 4 | 독수리오남매.. | 2011/08/21 | 26,058 |
682607 | 임플란트 하신 분 계신가요 소즁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3 | 애플 이야기.. | 2011/08/21 | 23,557 |
682606 | 가래떡 3 | 가래떡 | 2011/08/21 | 19,769 |
682605 | 한강초밥 문열었나요? 5 | 슈슈 | 2011/08/21 | 21,829 |
682604 | 고성 파인리즈 리조트.속초 터미널에서 얼마나 걸리나요? 2 | 늦은휴가 | 2011/08/21 | 13,819 |
682603 | 도대체 투표운동본부 뭐시기들은 2 | 도대체 | 2011/08/21 | 11,941 |
682602 | 찹쌀고추장이 묽어요.어째야할까요? 5 | 독수리오남매.. | 2011/08/21 | 18,107 |
682601 | 꽈리고추찜 하려고 하는데 밀가루 대신 튀김가루 입혀도 될까요? 2 | .... | 2011/08/21 | 21,8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