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쓰자니 영 쑥스럽군요. 먼저 제 이야기부터 조금 해야 하겠습니다. 저는 서울의 어느 사립대학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니던' 학생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휴학했으니까요.
그 뒤로 그럭저럭 신체 건강한 점을 빌어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하루의 반을 꼬박 땀을 흘리고 삽니다. 휴학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첫 번째는 돈 때문입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휴학한 것이 벌써 두 학기를 넘겼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학기에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매달 생활비와 학자금 대출 이자를 빼고 나면 등록금을 낼 만한 돈이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에 가지 않고 함께 돈벌이 중입니다.
집안을 위해 대학을 잠깐 포기해 준 동생에게 내심 고마움을 느낍니다. 동생은 아마 수능을 다시 치게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동생이 대학을 갈 때쯤이면 등록금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 될까요?
1년, 하루 반나절 꼬박 땀 흘리며 돈 벌었지만...
▲ 등록금 인하, 등록금 상한제 실현, 이명박 교육정책 규탄 '3.28 전국대학생 행동의 날' 행사가 지난 2008년 3월 28일 오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집회를 마친 학생들이 을지로를 지나 청계광장까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등록금
신문이나 방송에서 '등록금 천만원 시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합니다. 천만원이라는 글자는 이제 공식화된 것 같습니다. 해마다 물가는 임금 인상률 이상으로 오르지만, 등록금은 물가의 곱절 이상으로 오르고 있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무턱대고 졸업했다가는 이자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 더는 견디기 힘듭니다. 학생들이 책을 내려놓고 단식농성과 삭발과 점거를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답니다. 가난해서 공부하지 못한다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작년 3월에는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를 벌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부는 수많은 경찰과 이른바 '백골단'이라 불리는 체포전담조까지 동원했습니다. 과연 대통령께서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마음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대학들은 어려운 경제 사정을 탓하며 등록금 인상은 당연하다고 곡소리를 냈습니다. 그렇지만 신문에 나온 한국사학진흥재단 자료(2007년)를 살펴보니 전국 사립대학의 누적된 적립금이 정확히 '7조2996억'원이더군요. '억' 하고 놀랐습니다. 해마다 점점 불어나는 그 돈들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습니다. 커다란 캠퍼스와 땅덩이에서 거두는 돈이 모두 어디로 증발하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사회적 살인'에도 대통령은 공약도 나 몰라라
▲ 2008년 2월 29일 오전 고려대학교 입학식장 앞에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가 등록금 인하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사이,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이 입학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등록금
얼마 전에 선배를 만나러 학교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캠퍼스를 걸어 올라가는데 여기저기서 뚝딱뚝딱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런 공사비용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여러 기업체들이 캠퍼스에 들어와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시장과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대학마다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산이 부족해 등록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대학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로 들리는 이유입니다. 진정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고자 한다면 대학의 기업화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돈이 대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울화가 치밉니다. 88만원 세대에게 등록금 1000만원, 이 무슨 코미디란 말인가요. 대통령께서는 후보 시절에 등록금 반값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당선되신 이후 '국민과의 대화' 방송에 나와 "나는 반값등록금 공약을 한 적이 없다"고 부정했지만, 공약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혹시 기억이 나지 않으신다면 후보 시절 위원장직을 맡으셨던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아래에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가 있었다는 걸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내지 못한 엄마와 딸이 자살했다는 비통한 뉴스는 대단히 한국적입니다. 새벽까지 줄줄이 늘어서 있는 학원 버스 또한 한국적입니다. 영어 발음 때문에 혀 수술하는 아이도 너무나 한국적입니다. 사교육업체가 주식 시장에서 블루칩으로 간주되는 모습도 한국적입니다. 성적 때문에 자살하고, 수능 때문에 자살하고,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다른 곳에도 있을까요? 이는 명백한 '사회적 살인'입니다. 교육이 돈과 밀월관계를 맺은 대한민국은 가히 '교육 지옥'이라 부를 만합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오늘날의 지옥을 주었습니다.
슈퍼마켓이 된 '비열한' 대학
거의 모든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으로 진학합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런 과정은 너무나 당연해서 대학은 사실상의 의무교육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험난한 사회에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공포 때문입니다. 학벌에 관한 탐욕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등록금 인상은 비열한 짓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학들은 국민들의 공포와 탐욕을 이용하여 학위를 파는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상아탑'이 아니라 '슈퍼마켓'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 비열한 장사 때문에 우리의 삶은 무참하게 파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바로잡을 기회가 있습니다. 등록금 반값의 약속을 지키는 일은 뜨거운 지옥불에서 국민들을 구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젠 동무들과 어울려 학교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후일 이명박 대통령께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떳떳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출처 : 올해도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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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세대가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올해도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리치코바 조회수 : 340
작성일 : 2009-03-12 17:58:37
IP : 118.32.xxx.2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우제승제가온
'09.3.12 6:20 PM (221.162.xxx.43)14범이면 선수인데 선수가 약속을 지킬리가 없다는 데 1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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