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사라졌다
내가 10대였던 시절에는 백수나 백조가 흔히 쓰이던 말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들은 집에 한 명쯤은 꼭 있는 형이나 누나들로, 그럭저럭 대학은 나왔지만 딱히 공부를 잘한 것은 아니어서 아직 취직이 안 돼 부모의 눈치를 보며 빈둥거리는 사람들로 묘사됐다. 하지만 내가 군대에서 돌아올 때 쯤 그들의 이름 앞에는 ‘청년’이 붙어 청년 백수나 청년 백조가 됐고, 요즘은 백수 대신 취업 준비생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 이름의 변화는 물론 가정 경제와 취업 경쟁의 상관관계에 따른 것이다. 백수와 백조는 한국의 평범한 가정이 몇 년은 그들을 책임질 수 있고, 그 사이 어떻게든 취업 자리가 마련될 수 있을 때 존재할 수 있다. 1-3년 정도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지내면서 취업 활동을 하면, 그들은 백수와 백조 생활을 끝내고 어엿한 사회인으로 진입한다. 그 중에는 그 시간동안 여유롭게 살다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다. 1980년대까지의 대학생 음악인들이 그 과정을 거쳐 프로 뮤지션이 될 수 있었다. 사회 안전망은 그다지 없었지만, 비교적 건실한 중산층의 경제와 그래도 꽤 있었던 일자리들이 사회적으로 용인 받은 성인 무직자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IMF를 전후로 가정 경제가 악화되고, 새로운 일자리는 줄어들면서 그들 앞에는 ‘청년’이란 단어가 붙기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일 안하고 있다는 확실한 표식. 그리고, 그 다음에는 취업 준비생이다. 지금 한국은 20세 이상의 남녀가 취업을 못하면, 최소한 취업을 준비라도 하고 있어야 하는 나라가 됐다. 물론 지금도 과거의 백수와 백조처럼 일 ‘안’하고 사는 청년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백수와 백조가 아니다. 다만 매우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일 뿐이다. 그들은 부모가, 혹은 자신이 선택한 진로에 많은 돈을 쓸 수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까지 취업을 유예할 수 있다.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88만원 세대에 관한 이야기는 당연히 계급론을 포함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은 집안에서는 자식이 일을 안해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는 그 외의 계층도 한정적이나마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이것이 가능한 가정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이제는 어지간히 부유한 가정이 아니라면 이런 활동이 불가능하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일하지 못하는 청춘을 받아줄 수 없고, 취직 못한 이들이 살아남는 것은 끊임없이 취업을 ‘준비’하여 경쟁자를 제치고 살아남는 것 뿐이다. 공생의 길은 없어 보이고, 패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과거에는 그나마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던 빈부의 문제와 가난의 대물림 문제가 어느 순간 청년들이 취업 문제로 자살을 선택할 만큼 극단적인 상황이 됐다. 88만원 세대가 중요한 것은 요즘 세대와 이전 세대 사이의 경계를 그었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부터 꾸준히 진행된 청년 실업의 문제가 어느 순간 한 세대 전체의 문제로 퍼진 지금의 현상을 잡아내고, 그것을 가시화 시켰다는데 있다. 애초에 세대론이냐 계급론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꾸준히 진행되다 어느 순간 폭증한 계급 문제가 결국 세대 문제에까지 이른 것이다. <88만원 세대>를 읽은 사람이라면 그걸 이해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마 어느 날 갑자기 88만원 세대가 툭 튀어나오고, 이전 세대가 그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그들을 핍박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굳이 본말을 호도해 어느 한 세대를 공격하거나, 아니면 <88만원 세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세대’라는 말만 알고 있는 사람. 만약 두가지 다라면........................... 아직 바보를 고칠 약은 발명되지 않았다.
출처 : 트리플크라운
글쓴이 : 강명석
"강명석"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면 어떤 분야이든 일단 읽어보고 싶게 되지요. (저는요 ^^)
뭐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길지 않은 글이니 한번씩 보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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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현 시국 상황을 고찰하고
이에 따른 향후 가능성에 대하여 논한 개인적인 견해, 주장입니다. ㅎ
공익을 해할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정부나 기타 기관에 대한 명예훼손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ㅋ
그냥 일기예보라고 생각하세요. ^^
동 트기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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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사라졌다
세우실 조회수 : 537
작성일 : 2009-03-12 10:26:55
IP : 125.131.xxx.175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우제승제가온
'09.3.12 10:32 AM (221.162.xxx.57)꿈도 마음대로 꿀수 없는 세상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이 자주 드네요
2. 백수가
'09.3.12 10:37 AM (211.112.xxx.15)사라졌다기 보단 아예 일반화 되버린 것 이겠죠.
예전엔 보통 사람들 사이에 콩나듯 백수.. 이랬는데.. 이젠 너도나도 백수~~~
그러다보니 백수라기 보다 다른 지칭~으로 전환도 되는 것이겠고요^^;3. 세우실
'09.3.12 10:45 AM (125.131.xxx.175)강명석씨도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것 같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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