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노동의 위대함을 되묻다
'소처럼 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직하고 재는 것 없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묵묵히 맡은 바 일을 하는 그런 모양을 두고 이르는 말이죠. 현대적 어감으로 그러나 이 말은 그다지 좋은 의미만을 갖지는 못합니다. 언제부턴가 이 말의 그 뉘앙스에는 '무식하게 일한다'거나, '시대착오적이다'라는 의미도 포함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대부분의 노동이 되어버린 정보화 사회에서 '소처럼 일한다'는 말은 그 본래적 의미를 획득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농경사회의 노동현장 속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소처럼 일한다'는 말은 성실함과 끈기와 근면함의 표상이 됩니다. 그 말의 중심에는 다름아닌 '소'가 있습니다.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지금에는 사라진 가치가 되어버린 '소의 (혹은 소가 하는 것 같은) 노동'입니다.
최원균 할아버지(80)는 여전히 '소를 이용한 농사'를 고집합니다. 그런데 이 '소를 이용한 농사'라는 말은 단지 그 '소'라는 자리에 '트랙터'나 '농약' 같은 단어를 단순히 대치할 수 있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소를 이용한 농사'는 당연히 그 소와 함께 밭을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함을 뜻하고, 그 소가 먹을 꼴을 유지하기 위해 농약을 치지 않는 농사를 지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소가 지내야할 우사가 있어야 하고, 병이 들면 수의사를 불러 고쳐주기도 해야 하는 그런 농사를 말하죠. '일하는 소'가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농사는 의미 자체가 달라집니다.
나이든 소를 대체할 새로운 소를 사기 위해 소시장에서 '부릴 소'를 찾는 할아버지에게 "요즘은 그런 소가 없다"고 돌아오는 말은 작금의 달라진 환경을 말해주죠. 주인과 함께 일하며 동고동락하는 소는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이제는 먹기 위해 키우는 소만이 존재하는 그런 세상이 우리 앞에 도래해 있다는 걸 영화는 담담히 그려냅니다. 할아버지를 태운 수레를 끌고 소가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을 걸어갈 때, 광우병 소를 규탄하는 집회와 맞딱뜨리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미친 소 물러가라!"는 그 구호는 이제 먹는 소로만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진 상황 속에서, 거의 유일한 일소로 남아있는 소에게는 너무나 거리감이 있게 느껴집니다.
이삼순 할머니(77)는 소와 할아버지를 등가로 취급하면서 달라진 세상 속에서 이 '소처럼 일하는' 두 존재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끝없이 쏟아내는 불평과 호통 속에 깊은 걱정이 어려있는 것은 할머니가 틈틈이 웃어보이며 드러내는 그들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소의 죽음 끝에 그 '소같은 노동'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역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에게는 소나 할아버지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같은 존재로서 그려져 있는 것이죠. 죽기 전에 소가 해놓았다는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나무를 비춰주며 할머니는 그 자식 같은 소를 상찬합니다. 그 상찬은 다름아닌 한 평생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다 간 소와, 그리고 앞으로 갈 할아버지에 대한 상찬이 아닐런지요.
'워낭소리'는 약삭빠르고 영리해진 세상 속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한 '소의 노동'을 되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동은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해왔으나 이제는 시대에 의해 거세되어 폄하되어버린 과거의 가치이기도 합니다. 소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신성할 정도로 정직했던 노동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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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워낭소리 노동의 위대함을 묻다.(다음 어느 블로그)
.. 조회수 : 647
작성일 : 2009-01-31 10:42:11
IP : 123.215.xxx.158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
'09.1.31 10:51 AM (123.215.xxx.158)2. ,
'09.1.31 11:34 AM (220.122.xxx.155)독립영화로 요즘 반응이 좋다고 하네요. 한번 보시면 감동받으실 것 같아요.
3. -.-
'09.1.31 3:22 PM (121.182.xxx.209)제가 느낀것은... 동.물.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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