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에서 '사랑'이란 금지된 단어?
<유영호의 북한영화 바로보기> 탈북자의 거짓말 ②
2009년 01월 16일 (금) 07:08:38 유영호 tongil@tongilnews.com
<연재를 시작하며>
연재되는 글은 북한영화를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북한영화를 소개하는 글을 써도 원활하게 그 영상물을 관람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글은 그저 호기심만 야기시킬 뿐 독자들에게 어떠한 효과도 없다고 생각되어서다.
따라서 이 연재물에서는 그 동안 북한영화를 연구해 왔던 많은 연구자들의 글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주를 이룰 것이다. 그 동안 북한영화에 대한 연구의 거짓과 왜곡 등을 사례를 들며 비판할 것이기 때문에 직접 북한영화를 관람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한편, 필자가 이러한 글을 쓰는 목적은 북한영화를 선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동안 북한영화가 우리 남쪽 사회에서 얼마나 왜곡되게 선전되어 왔는가를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짓과 왜곡은 비단 60~70년대의 냉전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최근 스스로 ‘제2세대 북한영화연구자들’이라며 지난 연구자들과 자신들을 구분하여 말하는 젊은 층의 연구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지난날 ‘맹목적 반북’이 좀 더 전문용어를 쓰는 ‘세련된 반북’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연재 글에서 밝히기로 한다.
그리고 연재 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첫 번째는 북한영화 연구자들이 많이 인용하는 탈북자, 특히 영화 관련 탈북자들의 증언에 대한 구체적 자료와 연구에 입각한 비판이고, 두 번째는 남쪽 북한영화 연구자들의 북한영화에 관한 글들에 대한 비판이다.
북한영화에서 '사랑'이란 금지된 단어?
영화감독이자 탈북자였던 고 신상옥 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영화에서 남녀 개인적인 사랑은 금지된 소재이며, 모든 것이 집단이라는 '전체'를 위해서만 의미가 있고, 또 그 앞에서 ‘개인’의 사랑이란 무의미하거나 전체에 종속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가 만든 영화 <사랑 사랑 내사랑>(1984)이 북한영화로는 최초로 사랑을 주제로 하였고, 또 그 영화 제목에 ‘사랑’이란 어휘를 최초로 넣었다고 자랑하며, 자신이 북한영화에서 그 동안 집단이라는 ‘전체’ 속에 억눌려왔던 ‘개인’의 아름다운 사랑을 선구적으로 이끌어 낸 것처럼 주장한다. 아래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북한에서는 해방 후 한 번도 ‘사랑’이란 말을 영화 제목으로 사용한 일이 없고, 영화 내에 대사로도 써 본 적이 없었다. 이 영화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영화 제목에 붙인 북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 김정일이 직접 우리 부부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최근에는 춘향전을 수령님께서 보시고, 북반부에선 그 동안 역사에 대한 것, 옛날 문학에 대한 것을 홀시했는데, 이젠 좀 많이 들춰내서 하라시면서 대단히 만족해 하십니다.” 여주인공이 너무 미인이라는 칭찬도 했다고 했다.(신상옥, 『난 영화였다』, pp.134~135)
위와 같은 류의 북한영화에 대한 분석은 탈북자라는 특수한 위치에 있는 고 신상옥 감독 뿐만 아니라 일반 학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이향진은 “1980년대 이후 북한영화의 특징은 그간 금기시하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의 등장과 그에 대한 대중적 인기로도 설명될 수 있다”며 그 예로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의 <사랑 사랑 내사랑>을 제일 먼저 들고 있다(이향진,「통일시대 북한영화 읽기」,『창작과 비평』110호, p.305).
이는 아마도 고 신상옥 감독의 탈북 이후 그의 증언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처럼 탈북자들의 증언은 그가 북에서 왔다는 실체적 진실 하나로 인해 아무런 비판적 검증 없이 쉽게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 고 신상옥 감독의 <사랑 사랑 내사랑>(1984).
신 감독은 이 영화가 북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주제로 제작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 동안 금지되어왔던 ‘사랑’이라는 단어를 영화제목으로 처음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우리 고전소설 춘향전을 각색한 것으로 우측 사진은 이도령과 성춘향이 첫날 밤을 치르는 장면이다. [자료사진 - 유영호]
하지만 이 역시 거짓이다. 북한영화에서 남녀 개인의 사랑을 영화의 주제로 삼는 것이 금지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사랑이 개인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을 뿐이며, 항상 그들이 속해 있는 집단과 연결됨을 보여주고 있다. 그 집단이 작게는 가정이며 크게는 그가 속한 조직이나 마을 그리고 가장 크게는 조국이라는 집단 속에서 그 사랑이 이루어 질 때 더욱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 할 뿐이지 왜 그곳이라고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없었겠는가?
당장 신상옥 자신이 북에서 최초로 사랑이란 주제로 만들었다는 영화 <사랑 사랑 내사랑>과 같은 주제인 예술영화 <춘향전>(1980)은 그렇다면 그 주제가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그의 눈에는 북의 <춘향전>은 냉전시대의 북한영화 연구자들처럼 “이 영화에서 기둥줄거리가 되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신분을 뛰어 넘은 로맨스는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북괴의 상투적인 이른바 ‘계급혁명’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킨 것”(노승재, 「오늘의 북한영화」, 『북한』1981년 10월호, p.138) 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참고로 북이 문학예술에서 “민족적 관습이 진하게 배여 있는 지난날의 생활을 그리는 경우에는 력사주의적 원칙과 현대성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김정일,『영화예술론』, p.54) 하게 생각하며 예술영화 <춘향전>에 대하여 “영화는 마음씨 곱고 효성이 지극하며 인품있고 례절바른 상민출신의 성춘향이 량반인 리몽룡과 사랑을 맺은 후 기약없이 떠나간 님을 기다리면서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고 절개를 지키는 이야기를 통하여 신분적차별을 강요하는 리조 봉건사회제도에 대한 항거정신과 사랑의 자유를 누리려는 당시 인민들의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문학예술사전』) 고 설명하고 있다.
필자 역시 이 영화를 보았지만 관람자들에게 이 영화가 북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말을 안 할 경우 북에서 만든 것인지, 남에서 만든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고전소설 <춘향전>이라는 원작에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문학예술사전』에서도 “이 영화가 이룩한 중요한 성과는 원작에 기초하여 춘향의 사랑선과 봉건적 신분관계를 기본으로 보여주면서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력사주의적 원칙과 현대성의 원칙에서 훌륭히 전형화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 예술영화 <춘향전>(1980).
우측 사진은 춘향이 서울로 떠난다는 이도령의 말에 자신의 사랑은 변치 않을 것임을 약속하듯 머리를 올리고 떠나는 이도령에게 술을 올리는 모습. [자료사진 - 유영호]
다음으로 신상옥이 말하듯 “사랑이라는 단어를 영화제목에 붙인 북한 최초의 영화”라는 것은 더 더욱 거짓말이다. ‘사랑’이란 단어는 <미래를 사랑하라>(1959), <마을에서의 사랑>(1963), <사랑의 기적소리>(1975), <미래를 꽃피운 사랑>(1982), <사랑의 노래>(1982) 등 이미 신상옥의 작품 <사랑 사랑 내사랑>이란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많이 있어 왔다.
특히 <사랑의 노래>는 아이스하키 선수 현우(최형철 분)와 평양산원 간호원 옥주(리설희 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남녀 간의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사회과학적으로 자본주의 이념의 시발점이 ‘생산과 발전’이라면, 사회주의 이념의 시발점은 바로 ‘평등과 사랑’이고 그 숭고한 의미를 지키자는 것인데 탈북자 신상옥의 눈에는 그 곳에는 사랑이란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보이는 것 같다.
▲ 예술영화<사랑의 노래>(1982).
아이스하키 선수 현우(최형철 분)가 환자들에게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평양산원 간호사인 옥주(리설희 분)에게 반하여 결국 둘은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우측 사진은 둘이 데이트하는 장면이다. [자료사진 - 유영호]
위에서 살펴본 신상옥의 이러한 증언이 마치 북에서의 영화는 인간의 사랑이 메마른 삭막한 계급투쟁만 존재한다고 역설하는 지난 시대의 반공교과서를 연상케 하며, 그가 남쪽의 유명 영화감독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중들이 쉽게 그의 증언에 신뢰를 보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의 증언이 완벽한 거짓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영화에서의 사랑이야기는 신상옥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물질과 관능미로 야기되는 ‘즉자적인 사랑’이 아니라, 환자들에 대한 간호원 옥주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에 호감을 갖게 되어 환자였던 아이스하키 선수 현우가 사랑에 빠지는 그런 ‘대자적인 사랑’일 뿐인 것이다. 이는 북한영화가 갖는 계몽적 수단으로써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필연적인 것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으로써의 영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기능이다.
<돌아오지 않은 밀사>,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
고 신상옥 감독은 자신이 만든 <돌아오지 않은 밀사>(1984)는 북에서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고 불리는 김일성 원작의 “<혈분만국회>라는 연극을 영상화한 것인데 이 영화가 1984년 7월 제24회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 출품되어 심사위원 특별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이 영화가 북한 영화로는 최초로 해외 로케를 한 것이며 또 북한 최초의 해외영화제 첫 수상작”이라며 자랑을 하였다(신상옥,『난 영화였다』, p.129).
위와 같은 신상옥의 주장을 아무런 비판적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북한영화는 해외 로케를 해본 경험이 없고, 또 그 작품성은 국제사회에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 이하였지만 자신이 북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킨다. 즉 형편없었던 북한영화의 수준을 신상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주었고, 그 결과 국제무대에도 나설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야말로 신상옥은 남북을 통틀어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 1984년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특별감독상을 받은 고 신상옥 감독의 <돌아오지 않은 밀사>.
그 내용은 조선독립을 위하여 헤이그 밀사로 파견된 리준 열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으로 신상옥 감독은 이 영화가 김일성 원작 <혈분만국회>를 원형으로 하여 제작되었다고 한다. [자료사진 - 유영호]
여기서 <돌아오지 않은 밀사>의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출품과 수상내역은 여러 자료들을 통하여 쉽게 검증이 가능하며 그의 증언은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 영화로는 최초로 해외 로케를 한 것”이란 부분에 있어서 필자는 이를 검증할 자료가 없다. 더 많은 시간과 자료가 이에 대한 진위를 밝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 최초의 해외영화제 첫 수상작”이라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신상옥의 <돌아오지 않은 밀사>보다 10여년 전에 이미 북은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신상옥은 그의 증언에서 “72년 제18회 때 <꽃파는 처녀>를 이 영화제에 출품했으나 예선에도 나가지 못하게”되었다(신상옥.최은희,『내레 김정일입네다』하권, p.213)고 하며 <꽃파는 처녀>의 특별상 수상을 지워버리고, 자신이 창작한 <돌아오지 않은 밀사>가 북의 첫 해외영화제 수상작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그 영화제에서 <꽃파는 처녀>(1972)는 특별상을 받았고, 이것은 커다란 경사로 북에 전해졌던 것이다. 『조선예술』 1972년 10월호를 살펴보면 당시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해당 영화제의 최고상으로도 부족하다고 하여 그전에 없던 특별상과 특별메달을 새로 만들어 수여했다고 한다.
필자가 확인한 이러한 자료로 볼 때 왜 신상옥은 이러한 거짓 증언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참고로 아래 글은 당시 카를로비 바리 영화축전 심사위원장의 <꽃파는 처녀>수상에 대한 언급이다.
당신들이 받은 상은 보통 상이 아니다. 규정된 상과는 대비가 안 된다. 다른 그 어떤 영화도 당신네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다. 당신들의 영화는 특별한 영화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심사위원회에서는 영화 <꽃파는 처녀>에 특별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심사위원회에서는 많은 토론 끝에 빠리국제영화축전상 규정에 어긋나고 축전 력사에도 없는 일이지만 특별상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세상에 공포하겠다. 진정 조선영화의 위대성에 대하여 축하를 보낸다.(『조선예술』1972년 10호, p.22)
▲ 1972년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북의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
이 영화의 원작은 1930년 김일성 주석이 직접 창작한 것으로 북에서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또 이 영화의 종자는 “나라잃고 가난한 인민에게 차례지는 것은 고통과 슬픔뿐이며 투쟁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 [자료사진 - 유영호]
▲ 북한화폐 1원 앞면(위)과 뒷면.
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폐인 1원짜리의 모델은 다름 아닌 ‘꽃파는 처녀’이다. 최근 남쪽에서도 5만원권 지폐에 신사임당이 담겨지기로 하여 최초의 여성인물이 지폐모델로 등장하게 되었다. [자료사진 - 유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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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거짓이 사실을 이긴다
변증법 조회수 : 291
작성일 : 2009-01-16 09:36:41
IP : 121.159.xxx.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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