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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무비서관은,,, 故박종철씨 사망사건 특종기자.
verite 조회수 : 984
작성일 : 2009-01-15 22:42:57
1987년 오늘(1월 15일)은 역사적인 대특종이 나온 날입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이 기사가 다른 신문들의 후속기사를 촉발시켰고, 그래서 알려진 '진실'이 다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으니, 역사적인 기사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중앙일보>. 당시 기사 PDF를 살펴 보실까요? 일단 기자 이름이 없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만, 독재시대, 80년대 언론보도의 '관행'이었구요. 이런 역사적인 기사가 머리기사가 아니라, 사회면 2단에 실렸다는 점이 다소 의외로 보입니다. 전문을 살펴보시면, '이상한' 점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87년 1월 15일자 <중앙> PDF
몇 명의 기자가 취재에 나섰을까
경찰에서 조사 받던 대학생 '쇼크死'
14일 연행되어 치안본부에서 조사를 받아오던 공안사건 관련 피의자 박종철군(21·서울대 언어학과 3년)이 이날 하오 경찰조사를 받던 중 숨졌다. 경찰은 박군의 사인을 쇼크사라고 검찰에 보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박군이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중이다. 학교측은 박군이 3∼4일 전 학과 연구실에 잠시 들렀다가 나간 후 소식이 끊겼다고 밝혔다.
한편 부산시 청학동 341의 31 박군 집에는 박군의 사망 소식을 14일 부산 시경으로부터 통고 받은 아버지 박정기씨(57·청학양수장고용원) 등 가족들이 모두 상경하고 비어있었다.
박군의 누나 박은숙씨(24)는 지난해 여름방학 때부터 박군이 운동권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최근 무슨 사건으로 언제 경찰에 연행됐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박군은 부산 토성국교·영산남중·혜광고교를 거쳤으며 아버지의 월수입 20만원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형편이다.
적어도 기자 2명이 취재했다는 사실을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부산발' 보도는 박종철군 집에 직접 가지 않고서는 취재할 수 없는 내용이니까요. 그럼 몇 명의 기자가 취재에 나섰을까요. 신성호·김두우·허상천 기자 등 모두 3명입니다.
신성호·김두우·허상천, 중앙일보 특종 '3인방'
일단 당시 법조 출입기자로 검찰청사를 돌아다니다 "경찰 큰일났다"는 검찰 간부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경찰서에서 조사 받던 대학생이 사망했다는 팩트를 확인한 신성호 기자가 있습니다. 역사적인 특종의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겠지요.
사망한 대학생의 이름을 '특정'하는 과정에 두 번째 기자가 등장합니다. 신성호 기자가 학교와 학과 그리고 '박종'까지 확인에 성공하자, <중앙일보> 데스크는 당시 서울대 출입 기자에게 학적부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렇게 '철'자를 확인한 사람이 김두우 기자였습니다. 동시에 집주소도 알아내게 되죠.
이에 당시 <중앙일보>는 다시 부산 주재 기자에게 집으로 가보도록 지시합니다. 정권에 불리한 기사 하나를 쓰기도 어려웠던 시절이니, 2중-3중 체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또한 당시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허상천 기자가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가족이 급거 상경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렇게 잠깐 살펴보더라도 당시 상황이 얼마나 숨가쁘게 돌아갔을지 짐작이 갑니다. 신성호 기자가 이런 사실을 최초 '캐치'한 시간이 오전 10시였고, 이 소식이 실린 <중앙일보>가 시중에 깔린 것이 오후 3∼4시경이라고 하니까요. 2백자 원고지 두 장을 조금 넘기는 이 기사의 '행간'에서 팽팽한 긴박함이 읽히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박종철군 사건 특종보도 과정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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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사건 특종 보도와 전개 과정
신성호(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고려대 언론학부 초빙교수)
"경찰들 큰일났어!"
1987년 1월15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소문동 대검찰청 청사. 당시 법조 출입 기자였던 나는 평소처럼 혼자서 간부 A씨의 방을 찾았다.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취재원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른바 '마와리'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책상 옆에 서 있던 그가 나를 보고 막 자리에 앉으면서 내뱉은 소리였다.
이미 6년째 법조를 출입해온 터라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잘못 덤벼들었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검찰 간부들은 비교적 보안 의식이 철저하다. 그래서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 것처럼 맞장구를 쳤다.
-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경찰들 너무 기세등등했어요.
뒤 이어 나온 그의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내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서울대생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는 엄청난 특종이다.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 아침에 후배 기자에게서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이어진 그 간부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조사를 어떻게 했기에 사람이 죽는 거야. 더구나 남영동에서…."
사건의 윤곽이 잡히는 순간이었다. 남영동은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이 있던 곳이다. 더 이상 그 간부의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충격적인 사건 발생을 회사에 보고해야 했고, 인적사항 등 추가 취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회사 데스크에 1차 보고를 했다. 사회부가 발칵 뒤집혔다. 치안본부와 서울대 등 출입기자에게도 은밀하게 이를 확인하라는 데스크의 지시가 떨어졌다.
추가 취재를 위해 나는 대검의 또 다른 간부인 B씨의 방으로 달려갔다. 사건 개요를 알고 있었기에 보다 공격적인 취재가 가능했다.
- 조사 받던 대학생이 왜 갑자기 죽었습니까?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그는 놀란 표정으로 "어떻게 알았어?"라고 되물었다. 이는 그런 사건이 있었음을 거듭 확인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사인이었다. 그 학생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느냐에 따라 사건의 성격은 전혀 달라진다.
- 조사 과정에서 고문한 것 아닙니까?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단언할 수는 없어. 쇼크사라고 보고해 왔으니 조사를 해 봐야지…."
그의 말을 통해 '고문 가능성' '쇼크사로 보고' 등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하지만 기사 작성을 위해 필수적인 인적사항 등은 확인하지 못했다. 특히 20대의 젊은 대학생이 쇼크사했다는 데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지검 쪽을 파고들었다(당시 대검과 서울지검은 서소문의 같은 청사 안에 있었음). 서울지검 간부 C씨에게 사인과 관련한 질문들을 던졌다.
- 노인도 아닌 젊은 청년이 쇼크사했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 고문 여부에 대해 검찰이 당장 수사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태의 심각성을 예상한 듯 그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대답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러면서 "기사를 조금이라도 잘못 쓴다면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성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대검과 서울지검을 오르내리며 퍼즐 맞추기식의 추적 취재를 계속했다. 베일에 가려 있던 사건 발생 및 연행 시각, 혐의 내용 등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숨진 대학생의 인적사항을 여전히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옆구리에 차고 있던 호출기(삐삐)가 몇 분 간격으로 울렸다. 석간 신문(당시 중앙일보는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 석간으로 발행되었음) 마감시간(긴급 뉴스의 경우 오전 11시)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두석 사회부장은 "경찰 등에선 사건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다. 검찰에서 속히 인적사항을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경찰이 철통 보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전 11시30분쯤 서울지검의 X씨 방. 인사를 건네자마자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 경찰 조사받다가 숨진 서울대생 이름이 뭐지요?
"박종 뭐더라…."
- "학과는요?
"언어학과 3학년."
곧바로 그 방을 뛰쳐나왔다. 기자들의 출입이 뜸한 사무실로 가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인적사항을 불러주고 전화로 기사를 송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서울대를 출입하는 김두우 기자에게 학적부를 확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기사는 사회부 선배이자 다년간 법조를 출입한 경험이 있는 권일 기자가 받아 원고지에 옮겼다.
"14일 연행되어 치안본부에서 조사를 받아오던 공안사건 관련 피의자 박종○군(21·서울대 언어학과 3년)이 이날 하오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숨졌다. 경찰은 박군의 사인을 쇼크사라고 검찰에 보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박군이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인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 중이다.…"
기사 송고를 마치자 이두석 사회부장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기사를 받던 권일 기자 옆에 서 있다가 전화기를 낚아챈 것이다. "자신 있어? 이런 사건을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간 나와 당신은 물론 국장·사장까지 줄줄이 불려 간다."
민감하고도 충격적인 사건인데 사실관계 등에서 사소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같은 기관에서 이를 트집 잡아 보도 경위 등을 조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자신에 찬 어조로 "확인했습니다"고 대답했다.
이 무렵 서울대에선 김두우 기자가 언어학과 3학년생 가운데 '박종○' 이름의 학생은 '박종철' 이며, 그의 집 주소가 부산시 청학동 341의 31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박군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숨지기 전날 학교 학과 사무실에 들러 주소록에 집 전화번호 등을 적어놓았던 사실도 알아냈다.
회사 데스크는 곧바로 부산에 주재하던 허상천 기자를 찾아 박군의 가족들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허 기자는 박군의 아버지 박정기씨 등 부모가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상경했음을 확인했다. 사소한 잘못도 허용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기에 검찰-서울대-부산으로 이어진 2중, 3중의 확인 취재였던 것이다.
부산에서 3단계의 확인이 끝난 시각은 낮 12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이미 중앙일보의 윤전기는 돌아가고 있던 때였다. 국장석에서 즉시 윤전기를 세웠다. 최우석 편집국장의 지시로 대기하고 있던 사회면 편집자가 박군 기사를 사회면에 배치했고, 윤전기는 다시 돌기 시작했다.
당시 석간 신문사들이 말하는 이른바 1.5판이었다. 이는 점심때부터 낮 시간대에 길거리에서 파는 가판 신문(1판)을 인쇄하다가 새로운 기사를 추가해 돌판으로 제작한 신문을 가리킨다. 따라서 일부 가판 신문은 물론 독자수가 많은 서울과 수도권의 가정 배달 신문(2판)에는 박군의 사망 기사가 실려 있었다.
당시 법조 기자실엔 석간 신문이 하루에 두 번씩 배달됐다. 1판과 2판이 그것이다. 초판 신문은 점심 시간에, 2판은 오후 3∼4시에 받아 볼 수 있었다. 처음 기자실에 배달된 중앙일보 1판 신문에는 박군 사망 기사가 실려 있지 않았다. 돌판 하기 전에 인쇄된 신문이 배달됐기 때문이다.
나는 큰 특종을 했다는 자부심에 2판 신문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2판 신문을 받아 든 순간 실망하고 말았다. 사회면 머리기사나 최소한 두 번째 기사일 것으로 생각했던 박군 기사가 고작 사회면 2단으로 실린 것이 아닌가. 그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기자들은 중앙일보에 이같은 기사가 보도됐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반응은 오후 5시를 전후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AP와 AFP 등 통신사들이 서울발 긴급기사로 중앙일보를 인용해 세계로 타전한 것이다. 당시 서울에 주재하던 외신 기자들은 사무실에 배달된 중앙일보를 접하고 즉각 검찰과 경찰 등에 박군 사건의 확인을 구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확인해주지 않자 중앙일보를 인용 보도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신문사의 사회부에선 중앙일보의 보도 내용을 간과하고 있다가 외신 부서로부터 긴급기사를 전달받은 뒤에야 확인 취재에 들어가기도 했다. 모든 언론사가 발칵 뒤집히고 관련 출입처 기자들에게 비상이 걸린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럼에도 검찰과 경찰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아는 바가 없다고 모르쇠를 잡았다. 그러다 저녁때쯤 입을 연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공식 발표는 숱한 의문을 남겼다.
"밤 사이 술을 많이 마셔 갈증이 난다며 물을 여러 컵 마신 뒤 심문 시작 30분 만에 수사관이 책상을 '탁' 치며 추궁하자 갑자기 '억' 하고 쓰러졌다."
박군의 죽음이 고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심장마비 등 돌연사였다고 국민을 속이려 했던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표가 박군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오히려 증폭시켰다. 경찰의 공식 발표가 있자 정부에선 이를 사회면에 4단 크기로 보도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당시 권력이 언론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던 이른바 '보도 지침'이다.
그 날 밤 중앙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선 사회부 기자 전원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우리가 세기적인 특종을 했다는 찬사와 기사를 너무 작게 편집했다는 비판이 교차했다. 어느 선배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도 1단 짜리 보도에서 비롯됐다. 박군 사건도 역사적인 특종이 될 것이다"며 나를 격려해줬다.
회의가 끝난 뒤 사회부원 모두가 회사 부근 '남지'(음식점 남강 지하의 맥주집 약칭)로 자리를 옮겨 밤늦게까지 특종 뒤풀이를 했다. 이 자리에선 정보기관 등에서 나를 비롯한 취재 기자들과 신문 제작 책임자들을 불러 조사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취재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당장 나를 붙잡으러 올 수도 있다며 잠시 피해 있는 게 좋겠다고 말한 선배들도 있었다. 선배들의 권유대로 그날 밤 나는 귀가하지 않았다. 안기부 등에서 취재 경위를 조사할 것 같은 기미가 없다는 회사의 판단에 따라 다음날 저녁엔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화를 도청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물론 가족들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도록 통화 내용 하나하나에까지 신경 써야 했다. 심지어 재야 활동을 이끌던 어느 성직자가 "큰 일을 했다"며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지만 가지도 않은 지방 출장을 핑계로 정중히 사양했다. 재야 인사들과 어울린다면 정보기관에서 이마저 악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1월16일 조간 신문까지만 해도 정부의 보도 지침은 지켜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발행된 동아일보는 이 사건 보도에 불을 붙였다. 제목만 단수를 작게 뽑았을 뿐 사회면의 대부분을 박군 기사로 채웠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중앙일보는 후속 보도에서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이두석 당시 사회부장은 훗날 사석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사건을 처음 터뜨렸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후속 보도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측면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중앙일보의 위상은 '조중동'으로 불리는 요즘과 달랐다. 1980년대를 돌아보면 경쟁지에 비해 제반 여건이 열악했다고 볼 수 있다."
박군 사건 보도는 1월17일 조간 신문까지 사회면에 머물러 있었다. 이날 오후 나는 몇몇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정구영 서울지검장을 만났다. 그는 "조사 결과 물고문을 한 혐의가 드러나 관련 경찰관 2명을 19일 중 구속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3판(18일자 지방판)에서 이를 사회면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공식 발표가 늦어져 초판에 이 내용을 다루지 못한 당시 조간 신문사들은 다음날 아침 서울시내 판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사회면 2단 기사로 출발한 박군 사건이 사흘만에 1면 톱 기사로 커진 것이다...
<출처 : 6월 항쟁을 기록하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신성호 기자는 <중앙일보>, 허상천 기자는 <경남매일신문>
그렇다면 역사적인 특종을 한 기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우선 신성호 기자는 여전히 <중앙일보>에 있습니다. 1956년 서울 태생으로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매일경제신문을 거쳐 1981년 <중앙일보>에 입사했습니다.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중앙일보 정보사업단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1987년 당시 부산 주재기자였던 허상천 기자도 여전히 '언론계'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1954년생으로 경남 진양군이 본적입니다. 경상대학교를 나와 1978년 <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부에 입사했습니다. 이후 2004년까지 중앙일보에 몸을 담았으며, 현재는 <경남매일신문> 편집국 국장으로 재직중입니다.
자, 그리고 '문제의(?)' 김두우 기자가 등장할 차례입니다. 1957년생으로 경북 구미에서 태어난 김두우 기자는 특종기자 3명 중 '학뻘'이 가장 좋더군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해서, 서울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중앙일보>에 입사한 것은 1983년 11월, 사회부, 정치부, 정치부를 두루 거쳐 2003년 논설위원까지는 '평이'합니다만.
그리고 김두우 기자...현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
2004년 '행정담당 행정팀 부장'에서 딱 멈춥니다. 논설위원까지 했던 사람이 행정팀이라니, 무슨 일일까요. 그는 2004년 한나라당 공천약속을 받고 사표를 냈다가 다시 회사측에 반려를 요구해 언론계에서 '화제'가 됐던 인물입니다. "마음의 갈등"을 컴백의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웠지만, 글쎄요, 진짜 이유는 본인만이 알겠지요.
"이제 어떤 글을 써도 오해를 살만한 상황인 만큼 칼럼을 계속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도 합니다만. <중앙일보>는 정말 좋은 신문사인 모양입니다. 얼마 후 논설위원 부장으로 다시 발령을 냈고, 부국장 대우 논설위원을 거쳐 수석논설위원으로 '필봉'을 휘두릅니다. 2008년 2월까지요.
그리고 곧바로 청와대로 직행해서 또 '구설'에 오르지요. 그는 작년 2월 27일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에 임명됩니다. 청와대로 가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기명 칼럼을 썼다고 하네요. 현재 그는 MB의 정치 구상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대통령 연설문 작성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두우 청와대 비서관 프로필. 조선닷컴 인물정보
박종철군 아버지는 여전히 거리에 있는데…
'특종 3인방' 이력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보도로 '한국기자상'을 받았다는 것인데요. 서울대를 나와 서울대 출입기자로 있다가 '후배' 학적부를 확인한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보다는 '후배의 죽음'을 세상에 알려 받은 '특종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참 궁금합니다.
작년 8월, 정연주 KBS 사장 해임 움직임에 항의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이 청와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면회 신청을 하고 기다리던 중에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김두우 비서관을 만났다고 하네요. 그때 "KBS와 MBC에 왜 이렇게 거칠게 하느냐"는 물음에 김 비서관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정부 출범 전부터 너무 과하게 보도했다".
허나 박종철군 아버지, 박정기(82)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합니다. 그는 여든 살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이번 언론파업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12월 29일자 <오마이뉴스> 보도를 보면, '48시간 비상국민행동' 기자회견에 참석해서 "눈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MB 악법 저지를 외쳤다"고 합니다.
박종철군 아버지는 여전히 거리에 나섭니다. 그렇게 한 세월이 벌써 20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세상이 아직도 아들의 뜻을 제대로 몰라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들의 죽음을 세상에 전한 기자조차 '반민주'에 앞장서고 있는 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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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선배 박종운이는,,,, 한나라당 정당인
그 사건의 검사 안상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사건을 파헤져낸 기자중 한명은,,,, 청와대 정무비서관
왜??? 하며 따지고 들면,,,,, 참,,,, 치사한건가요?
나만,,,, 우리만,,,,,, 심각한건가요?
링크된 곳으로 가면,
지금은 번듯하게 출세?를 하신 기자님의 모습을,,,,
앗,,,
이거 개인신상정보,,,,,, 구속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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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펌질하는 글들은,,,
국내외 언론들의 기사와 국내외 블로거들의 글임을 밝힙니다.
제가 짧게나마 적는 코멘트중에 분노의 대상에는,,,
주어가 없습니다.
제가 올리는 글들은
공공의 이익과 부합된다고 생각하는 바,
각종 위법의 건으로 저를 만나보려하기 전에,,,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여 주시면 안되게습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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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 211.33.xxx.35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verite
'09.1.15 10:43 PM (211.33.xxx.35)2. ..
'09.1.15 11:00 PM (118.32.xxx.76)82쿡 대기자로 임명합니다...
열씨미 하세욧!!!!!3. 바위
'09.1.15 11:12 PM (122.35.xxx.157)왜 다들 권력과 야망을 쫒아가 있을까요.
4. 구름이
'09.1.16 2:13 AM (147.47.xxx.131)저들의 머리속엔 돈과 권력만 들어 있지 진실 같은것은 잠시 이용하면 되는 물건이겠지요.
5. 얼마전
'09.1.16 3:27 AM (68.122.xxx.199)'촛불시위때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들으며...'
이명박의 이 사과문이 김두우의 작품이었지요?6. 무심한세월
'09.1.16 4:19 AM (118.223.xxx.203)정치과...믿음이 안가는 애들....
7. .
'09.1.16 7:59 AM (211.194.xxx.24)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모르는 배움은 곧 사회의 흉기가 되는 것이겠지요.
8. 아꼬
'09.1.16 9:49 AM (125.177.xxx.202).님 말씀처럼 이미 흉기로 돌변한 돌연변이들 때문에 세상의 질서와 의가 싸그리 무너지고 있네요. 정의를 위해 자식을 일찍 보내신 분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나 아프게 느껴지네요. 헛된 죽음만은 아니기를 애닯게 빌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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