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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밋밋한 부부 이야기에요

16년차 조회수 : 2,816
작성일 : 2009-01-11 20:39:51
아이들 학교 때매 잠시 주말 부부 중입니다(열 달 됐네요)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조금 편해요

별로 손 가게 굴지 않는 남편이지만 어쨌든 남편이 제 시중 들어줄 리는 없으니까

주부 입장에서는 식구가 하나라도 없는게 노동 강도가 약해지니까요

남편은 금요일 퇴근 후 집에 왔다가 일요일 저녁 혹은 월요일 새벽에 내려갑니다

일주일 치 옷가지와 밑반찬 등을 싸가죠

떨어져보니까 집이 좋은줄 알겠다고 매주 푸념입니다...

그런데 남편 말이 주말마다 두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막히면 세 시간) 왕복하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니래요 (저라면 절대 매주 안옵니다)

해서 어지간하면 격주로 다녀가라고 꼬셔봤는데

딱 한번 그렇게 하더니 다시 매주 올라오네요


그러더니 지난 주 금요일에 새로운 인사 발령 문제로 저녁 회식이 잡혔다면서

얼른 회식 끝내고 막차타고 올라오겠다고.... 열두시쯤 도착할 거라길래

잠 안자고 기다려주려 마음먹었죠 (보통 열 한시 조금 넘으면 취침)

근데 열두시쯤 전화해서는, 술 몇잔 마시다보니 막차를 놓쳤다면서 토요일에 오겠다는 겁니다

얼핏 든 생각에, 안마시던 술까지 먹었으니 피곤해서 내일 올 수 있겠어??

그러고는 바로 잠들었습니다

대문 잠금장치 버튼 소리에 잠에서 깨고 보니 여덟시 조금 넘었더라고요

남편 못온다는 전화 받고 방범체인 걸고 잤는데 남편이 새벽같이 온 겁니다

놀라서 달려나가 문을 열고 보니

폭탄 맞은 사람처럼 뻥! 한 표정의 남편이 서 있더라고요

비밀번호 눌렀는데 문이 안열려서 우리 집이 아닌가, 했대요

푹 자고 오후에 올줄 알았는데...

막차 놓친 게 서운해서 잠도 잘 못자고... 새벽 첫차 타고 왔대요

그러면서 마치 갓 사귄 애인 대하듯 감격스럽게 절 안더라고요... 나 원


따끈하게 매실즙 한 잔 타서 먹이고 한 숨 자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마치 오랜 방랑생활하다가 지쳐 돌아온 사람처럼 새근새근 잘도 자대요

5 학년이 다 된 나이에 혼자 타지 생활하는게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 처음 들었습니다

남편이니 망정이지, 내 아들이었다면 얼마나 더 딱할런지...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해서 처음 한 5 년은 싸우기도 무척 많이 싸웠죠

시댁, 육아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 남편한테 다 풀어대고

결혼 괜히 했다고 눈물바람 하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네요


동병상련...

우리네 나이처럼 겨울이 깊어가니

오늘 문득 이 단어가 생각납니다

좋은 시절, 조금만 더 참고 아이들 키워놓고 나면

정말 부부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보려는데...  가능할런지...



결혼 생활이 곰삭을만한 시기가 되니

시부모님 생각에 애잔한 마음이 드는 일도 생기고...

어쨌든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밋밋한 글  읽어주신 분들  좋은 밤 시간 되세요





IP : 218.48.xxx.45
1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그곳의
    '09.1.11 8:44 PM (218.54.xxx.181)

    따뜻한 기운이 제게 까지도 스미는 듯 하여 행복해집니다. ^^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2. .
    '09.1.11 8:50 PM (121.135.xxx.134)

    시댁이랑 남편땜에 소소한 불만이 생겨서 남편이 미워져 괜히 쌩하게 대했던 주말입니다..
    결혼 괜히 했다고 눈물바람도 하고 싶지만 또 꼭 그렇지만은 않고 참 사람 마음이란게..
    언제쯤 되어야 원글님같은 마음상태가 될 수 있을지.. 잘 읽었습니다.

  • 3. ...
    '09.1.11 8:53 PM (114.204.xxx.27)

    저는 결혼 15년차때 10개월 주말 부부 했었는데요...
    5-7시간 걸리는 거리라서 2주에 한번씩 오라고 해도
    10개월 동안 한번도 안빠트리고 주말마다 왔어요...ㅠㅠ

  • 4. 자유
    '09.1.11 8:56 PM (211.203.xxx.103)

    정말 제 마음도 따뜻해지네요. 부부가 나이가 들수록 서로 애잔해진다지요.
    우리 남편도 40대 중반 넘어가니까, 안하던 살가운 행동도 하더군요.
    저도 그런 애잔한 마음으로 남편을 대해야겠다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 5. ^^
    '09.1.11 9:07 PM (222.239.xxx.35)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 6. 맞아요~
    '09.1.11 9:35 PM (124.80.xxx.33)

    저도 결혼 십오년차 되가닌까!
    윗분들 말씀처럼~~ 남푠도 저도 그래 져요!^^
    쫌~~더 살가워 졌는지? 편한사람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 7. ^^
    '09.1.11 9:36 PM (123.213.xxx.91)

    행복이 비어져 나오려고 하네요^^.
    이것도 닭살 커플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요^^?
    82에서 이런 글은 '닭'표시 하셔야 하는 건데..ㅎㅎ
    너무 좋아보이세요..

  • 8. 전혀
    '09.1.11 9:41 PM (121.131.xxx.233)

    안밋밋한 부부이신데

  • 9. 진정한
    '09.1.11 9:50 PM (218.237.xxx.119)

    행복한 부부이십니다.

    남편이 정말 원글님을 사랑하시나봅니다.

    앞으로 닭 표시 하세요~^^

  • 10. ...
    '09.1.11 10:56 PM (118.217.xxx.214)

    좋아보여요. 이런게 행복이죠 뭐.

  • 11. (염장주의필요)
    '09.1.11 11:01 PM (221.146.xxx.39)

    남편이니 망정이지, 내 아들이었다면 얼마나 더 딱할런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에게는 무디어지고 쓸려나간 촉수들
    원글님께는 건강하고 풍성하십니다~부럽습니다~

  • 12. 한편의 수필같아요.
    '09.1.12 12:57 AM (220.124.xxx.221)

    원글님 남편께선,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 같아요.
    읽는내내,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네요.
    원글님, 행복하시죠?^^

  • 13. ㅎ~~
    '09.1.12 9:55 AM (221.140.xxx.53)

    좋은 분이신거 같네요.
    식구들과 떨어져 살면 딴생각 하는게 남정네들인데
    부인을 많이 사랑하는 분 같아서 그냥 제 기분까지 좋아지네요 ^^

  • 14. 한번씩
    '09.1.12 11:25 AM (211.178.xxx.179)

    반대로 부인께서 내려가 보세요.
    남편분도 좀 더 쉬시고, 두분이 오붓한 시간도 보내시고..마치 여행가는 느낌으로..
    울남편은 출장한번 가는일이 없으니 원...살짝 부럽사와요..

  • 15. 동병상련
    '09.1.12 3:30 PM (117.110.xxx.23)

    저희 남편과 비슷해서 댓글 달아요.
    저희도 한시적 주말부부인데 남편이 이번주에 출장이라 못오나보다 했어요.
    저는 남편이 출장으로 못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금방 체념하는데
    남편은 한 주 집에 못오는 것을 무척 안타까워해요..
    이번주에는 토요일 늦게 일을 마치고 (대중교통 이용 함)
    집에 오는 버스 첫차 타려구 터미널 근처 모텔에서 자고
    일요일날 새벽같이 첫차 타고 왔더군요. 씻지도 않고...
    원글님 남편같이 와서는 못보게 된 줄 알았는데 봐서 반갑지? 하는 표정으로
    감격에 겨워 부르더니 씻고 낮잠을 자는데 그 모습에 저는 진짜 피를 나눈 가족처럼
    깊어가는 정을 느꼈습니다. ㅎㅎㅎ

  • 16. 3babymam
    '09.1.12 7:48 PM (221.147.xxx.198)

    "사랑한다" ...말 보다
    더 진하게 사랑함이 느껴 집니다..

    사랑이 꼭 불 같아야 사랑일까요??
    전 이런 포근한 사랑이 더 깊은 사랑인듯 합니다..
    제 마음까지 사랑이 전해져 오는 행복한 글이였습니다.

  • 17. ....
    '09.1.12 8:24 PM (58.227.xxx.105)

    행복 하게 사시네요 저도 주말부부한번 해봤음 좋겠네요
    우리남편은 아침밥에 점심도시락3년째 싸줘도 고마운줄
    몰라요 당연하다 해요 객지생활 좀해서 마누라 귀한줄 알아야
    되는데 속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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