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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당당한 생활좌파 많을수록 미래는 밝습니다!

리치코바 조회수 : 321
작성일 : 2009-01-08 16:43:06
‘뼛속까지… 치맛속까지…’ 펴낸 목수정 씨

신문기사나 책뿐만 아니라 상품광고 문안까지도 그 제목은 내용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을 뽑아서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대중들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노력이나 시도가 자칫 도를 지나친 나머지 때때로 허위·과장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대머리를 단숨에 풍성한 머리숱으로 바꾼다는 발모제나, 고도비만을 몇 주일 안에 에스라인으로 변모시킨다는 다이어트 약품의 선전광고가 소비자들의 비난에 직면하거나 심하면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일 터이다. 따라서 제목이 ‘요령부득으로 정직하면’ 손님을 끌지 못하고, ‘손님 끌기’에만 함몰돼 실체를 부풀리면 정직하지 못하게 된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의 저자 목수정씨가 책쓰기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문화예술, 정치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재찬기자

몇 개월전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하 뼛속 치맛속)이라는 선정적인 제목과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역시 약간은 선정적인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 나왔다. ‘손님끌기’에 일단 성공한 듯한 이 책은 서른 아홉살의 여성이 성장·연애·프랑스 유학, 프랑스 남성과의 동거 및 출산·육아, 진보정당 정책연구원으로서의 활동 등의 자전적인 경험을 서술한 것이다. 저자는 자칫 신변잡기에 흐르기 십상인 소재들을 적절하게 버무리면서도 자유와 평등, 문화와 정치, 생명과 평화, 예술과 문화, 가부장제와 결혼제, 인류와 여성성, 좌파와 우파, 운동권과 제도권 등의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발랄한 좌파’의 묵직한 안목으로 펼쳐냈다. 출판관련 업무 등으로 파리에서 일시 귀국한 <뼛속 치맛속>의 저자 목수정을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만났다.

목수정은 검은색 가죽 코트에 녹색이 감도는 머플러를 매고 나타났다. 풀빛은 한겨울에 맞지 않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계절에 어울리는 것 같아 “머플러가 멋지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나에게 색깔은 비타민과 같다”고 말했다. 즉 비타민이 부족하면 신체의 곳곳에서 ‘결핍의 신호’가 나타나듯이 그는 어떤 특정한 색깔이 자신에게 모자라면 옷이나 문구 등을 구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목수정은 “언젠가는 ‘자주색이 땡겨서’ 자주색 표지로 된 책과 노트 등을 한꺼번에 사기도 했는데 지금은 녹색 결핍시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뼛속 치맛속>에 실린 글의 상당수는 진보적 인터넷 매체인 레디앙에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것들이다. 목수정이 민주노동당 문화담당 정책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을 무렵 그의 ‘색다른 이력’을 간파한 레디앙 관계자들이 출판을 전제로 글을 써 줄 것을 요청했고, 목수정은 이를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목수정은 “그 때 해야할 말이 많았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뭔지는 나 자신도 잘 몰랐다”면서 “글을 계속 쓰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정리될 것 같아 레디앙의 요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레디앙에 글을 연재할 때 자기 자신은 물론 주변의 속살까지 까뒤집는 서술방식 때문에 목수정은 몸담고 있던 민주노동당의 동료·당원들로부터도 ‘엄청난 화살’을 받았다고 한다.

목수정에게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책을 펴냈으니 문필·저술가인지,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을 거쳐 진보신당 당원의 신분을 갖고 있으니 정당인인지, 문화정책을 깊이 공부했으니 문화정책전문가인지,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목수정은 “그때 그때마다 바뀐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출입국신고서의 직업란에 학생, 연구원, 사진작가 등 다양한 직종을 써넣었는데 최근에는 ‘작가’로 기입했다고 한다. 목수정은 “오래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책을 썼다’ ‘시집을 냈다’고 하면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이곤 했다”며 “내 글에 대해 ‘정녕 이 정도밖에 쓰지 못하는가’라는 자괴심과 절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괜찮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강렬하다”고 말했다.

목수정에게 ‘월경(越境)’은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달에서 지구를 바라보았던 우주인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뒤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살고 있다고 한다”면서 “경계를 넘어서는 일은 그 자체로 사람의 삶에 강렬한 계시를 남긴다”고 말했다. 그에게 월경은 서른 즈음에 프랑스 유학을 떠났던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학때는 ‘연애만 하다가’ 그때 ‘운동만 하던’ 친구들이 있던 진보정당에 몸을 담은 것, 그 정당사람들의 ‘비진보성’을 줄기차게 비판한 것, 22세 연상의 프랑스 예술인과 ‘시민연대계약’(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커플들에게 법적 부부가 누리는 권리·혜택을 인정해주는 제도)을 맺고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등이 모조리 경계를 넘어선 일이기도 하다.

목수정을 지배하는 키워드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은 ‘문화’이다. 그는 ‘문화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의 공부와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그렇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에게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총체’인 만큼 우열장단(優劣長短)이 있을 수 없다. 목수정은 “상품은 베스트·워스트와 흥망이 있지만 문화, 곧 사람의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의 불행은 그 정답의 폭이 일류대학, 안온한 직장, 돈많은 배우자, 비싼 아파트 등으로 너무나 협소한 데 있으며 그 좁디좁은 정답에 개개인과 사회전체가 ‘올인’함으로써 불행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목수정은 자신이 자주 찾는 케브랑리 박물관의 얘기를 꺼냈다. 이 박물관은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유럽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른바 제3세계의 민속품을 모아놓은 곳인데 해골, 동물의 눈, 구슬, 장난감, 주술도구 등 사람들의 살았던 흔적이 망라돼 있다고 한다. 목수정은 “케브랑리의 전시품을 볼 때마다 이것을 갖고 살았던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사람의 삶 자체인 동시에 그 삶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를 국가는 적극 장려·지원할 의무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목수정은 자신이 ‘사회주의적 장치가 부분적으로나마 작동하고, 자본의 힘이 드문드문이라도 무력화되는 사회’를 열망하는 좌파지만 ‘대의’ ‘희생’ ‘헌신’ 등 거창한 덕목만 강조하는 한국의 교조적 좌파는 싫어하며 그들에게는 별로 희망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좌파이기 이전에 사람은 자신이 진실로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 8대학에 입학하기 전 프랑스어 수업시간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10가지를 꼽고 그 이유를 설명했던 경험을 얘기했다. 지금 좋아하는 10가지가 뭐냐는 질문에 목수정은 “시시때때로 바뀐다”고 하면서도 하나씩 꼽아나갔다. 즉 1.네살난 딸 칼리 2.이른 아침 버터를 발라먹는 바삭한 바게트 빵 3.넉넉한 테라스를 지닌 파리의 카페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 4.날 으스러지게 안아주는 희완(목수정의 연인이자 아이의 아버지) 5.비오는 날 버스안에서 듣는 김현식과 김광식 등의 노래 6.이사도라 던컨 7.불 8.태풍 직전에 불어오는 호방한 바람 9.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고슬고슬한 아침햇살 10.혁명이 그것이었다.

목수정은 “대의를 위해 자아를 희생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지향과 욕망에 출신한 좌파, 자유롭고 당당한 생활좌파가 많을수록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두 주먹 불끈 쥐고 투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드는 모습만이 좌파의 전부는 아니며 그런 것들이 좌파의 승리를 앞당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썼지만 그는 ‘생활좌파’가 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TV, 베스트셀러, 대형마트를 멀리하고 예술작품을 생활속에서 가까이 하라는, ‘3원1근(三遠一近)’이 그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거나 하라고 강요하는 것에 휩쓸리지 않는, 주체적 선택과 결단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혀졌다. ‘당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당신의 가르침에 따라 책을 사지 않는다면 더이상 책이 팔리지 않을 수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출판사들의 베스트셀러 만들기 전략이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의 주체적 판단에 따라 사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연애와 사랑에 관한 한 목수정은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대학시절에도 학과 동기생이나 선후배들과 사귀었으며, 연인 희완을 만나기 이전에도 세 명의 프랑스 남자와 연애를 했다. 그가 건져 올린 사랑의 세 가지 진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랑은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기쁨과 똑같은 절망이나 상처를 안긴다. 둘째, 자유와 사랑은 반비례한다. 셋째, 사랑을 하는 동안 사람은 우주와 가장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목수정은 “희완과의 사랑에서 절망의 골이 없었던 것은 이미 그 골짜기 맨 밑바닥에 떨어졌다가 빠져나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부장적이고 창의적이지 못하며’ ‘성매매에 많은 돈을 소비하면서 자식들은 미국식 기독교도로 키우려는’ 한국 남자들에게 대해 목수정은 때때로 과도하게 비판적이다. 그의 아버지 또한 선하디 선한 성품이었지만 역시 가부장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화예술적 감수성은 일정부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의 아버지는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넓고 넓은 밤하늘엔 누가 누가 잠자나’ 등의 ‘국민동요’를 지은 동요작가 고(故) 목일신이다. 목수정은 “아버지가 여고 국어교사 시절 갖고 오신 교지를 탐독한 것이 문화적 자양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목수정에게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은 전설적인 발레리나 이사도라 던컨이다. 그는 “던컨은 일찌감치 결혼제도의 모순을 간파했으며, 무용학교를 세운 뒤 죽어가는 아이들을 데려다 먹여살리고 춤을 가르친 혁명가였다”고 말했다. 그가 좋아하는 10가지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꼽은 혁명은 시민혁명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목수정은 “개개인이 자기 안에서의 혁명, 생활속에서의 혁명을 준비하지 않는 한 설사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금방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목수정은 책 한권을 번역하고,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엄청난 지혜의 소유자였으나 마녀로 핍박받은 여성들의 얘기를 다룬 <마녀사냥>을 우리말로 옮기고, 무너지면 그냥 무덤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흙집을 짓는다는 것이다. 목수정은 “흙과 볏집으로 만든 집에서 산다면 삶과 생명이 일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수정은

△ 경기 부천 출생

△ 고려대 노문과 졸업

△ 프랑스 파리 8대학 석사 (문화정책 전공)

△ 민주노동당 문화담당 정책연구원 역임

△ 저서 <뼛속 치맛속>,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공저)

<손동우 사회에디터>
IP : 118.32.xxx.2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09.1.8 6:34 PM (41.234.xxx.133)

    덕분에 목수정씨 글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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