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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의 가사분담 2

출산임박 조회수 : 465
작성일 : 2009-01-02 16:02:58
좀전에 글 하나 올렸는데...
슬슬 후회되기 시작하네요.
이쪽저쪽에서 욕 먹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결혼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게 가당치 않죠.
그냥...
결혼 앞둔 제 여동생에게 겨우 몇 년 앞선 결혼생활 가지고 아는척하는 기분으로 쓰는 글, 그 정도로 이해해주세요.


3. 사전 교육

연애를 엄청 오래 했어요.
뭐 사정이야... 하여간 결혼이 꽤 늦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결혼 생활에 대해 은근히 크고 작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또 그 직장을 절대 그만둘 생각이 없기 때문에
맞벌이를 전제로 한 집안일 고민이 필수적이었죠.
이게 뭐 계획적, 조직적으로 그렇게 한 건 아닌데
오랜 연애 기간 동안 제가 이 직장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하고 각오(?)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더불이 남편도 알게모르게 '마음의 준비'를 해왔겠죠.
집안에서 홈드레스 입고 기다리는 현모양처형 아내를 기대할 수는 없겠다는 측면에서 말이에요.

처음에는 장난으로
'난 체력이 약하니 집안일은 다 당신이 해야한다'라고 말하고
그 사람 역시 장난으로
'어쭈, 난 못해' 혹은 '그래 결혼만 하자, 내가 다 해줄게' 그렇게 장난을 치곤 했죠.
그러다가 결혼이 가까워져오면서
집안일이 실질적인 문제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먼제 제안했습니다.
'음식/그 외 집안일' 이렇게 나누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눈 필요성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해줬어요.
음식을 맡는다는 것은 가족의 건강, 취향, 생활패턴 등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매번 메뉴를 고민하고, 식단을 짜고,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해놔야하며
장 보기, 냉장고 정리, 음식물 쓰레기 처리 등 부가되는 일들이 엄청 많고
하루 안 해도 큰 문제 안 생기는 다른 가사일과 달리
하루 두 끼, 심하면 세 끼를 시간 맞춰 때맞춰 고민하고 실행해야하는 특수성을 가진 고난이도 업무라고...
그 외 집안일이라 하면 설거지, 빨래, 청소, 화장실 청소, 화분 관리.. 등등이 되겠지요.

펄쩍 뛰더군요.
억울하대요.
그래서 그럼 언제든지 바꿔주겠다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음식을 하는 일이 다른 일 모두를 합한 것보다 적지 않은 일이니
바꿔준다면 나야말로 땡큐다 했어요.

요리 학원을 등록하더라구요. ㅎㅎ
세 번 나가고 때려쳤고요. ㅋㅋ
그렇게 해서 가사분담에 대한 최소의 합의가 결혼 전에 이뤄졌어요.

4. 답답해도 맡기는 수밖에

남편 일하는 걸 보면 복창이 터집니다.
청소요,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만 해요.
손걸레질 안 하고 먼지털이로 털고 진공청소기 돌리고 스팀청소기 돌리는 게 땡이에요.
아, 정리는 잘해요.
이건 저보다 잘 합니다.
제가 어질러 놓은 것, 특히 완벽하게 난장판 만들어 놓은 서재 책상 정리, 이 남자가 합니다.
제가 제 물건 정리하는 것보다 더 잘해요.
하지만 청소하는 것 보면 마음에 안 들어요.
요새는 그래도 많이 나아졌는데 처음엔 입 밖으로 잔소리가 나올락말락.. 아주 봐주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그냥 맡겼습니다.
실은 뭐, 저 역시 그렇게 깔끔하고 위생적인 사람 아니니까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고
맡긴 일에 대해선 결정적 문제가 없는 한, 믿고 기다려줘야한다..가 제 신조거든요.
정말 아니다 싶을 땐 옆에서 도와주면서(어디까지나 도와주는 입장을 견지해야합니다)
살살 요령을 일러주기도 해요.
하지만 잘했다, 잘못했다 그런 식으로 평가하진 않습니다.
'와, 청소하니까 우리집 너무 좋다. 나는 넓은 집 싫어. 우리집이 좋아' 이런 식으로 기분 좋은 빈말은 해줍니다.

빨래도 역시 빨래의 횟수, 세제 사용량, 건조대에 너는 방법, 빨래분류... 간섭하자면 하고픈 말 참 많지만
그냥 넘어갑니다.
세제찌꺼기가 좀 남아도, 빨래가 빨리 마르지 않아도, 자주 빨지 않아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남편이 이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일이니까
그냥 참습니다.
이젠 많은 양의 빨래를 작은 건조대에 너는 자신만의 노하우까지 만들어서
'전문성'까지 자랑합니다.
제가 도와주려고 해도 손대지 말래요.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고...

5. 양적 비교를 하지 말자.

그런 마음으로 넉넉히 품어줬건만... 쳇!
그래도 싸울 일이 생기더라구요.
아무리 믿고 맡긴다 해도 제 눈에 보이는 전처리할 것들은 여전히 제 몫이 되더라구요.
평소에 널부러진 물건들을 치우는 일(제가 퇴근시간이 일러요)
어떤 세제를 선택할까 고민하는 일
집안의 가구 배치나 자잘한 인테리어를 고민하는 일
때마다 옷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일
이런 거시적(?)인 일들은 제 몫일 수밖에 없고
아직 능력이 안되는(?) 남편에게 맡길 수가 없어 집안일의 물리적인 양을 따지자면
제가 하는 일이 훨씬 많지요.
그래서 불평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나중엔 짜증을 내더라고요.
제가 제기하는 문제제기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자신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너무 따지고 든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저는 또 저대로 '아니,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알만한 사람이 지엽적인 문제로 화를 내다니..'하며 실망했고요.
그런데 이 역시 한 발 물러서면 이해가 되더라고요.
안 하던 일을 갑자기 많이 하면
머리가 따라가는 속도와 마음이 따라가는 속도와 몸이 따라가는 속도가 다르잖아요.
그걸 기다려주지 못하고 머리 싸움으로 따박따박 따지니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따지고 견주고 하는 말투를 고치려고 많이 노력을 했어요.
제가 남들에게서 좀 그런 소리를 듣거든요.
좀 따진다고...

나는 자기가 맡은 일이라면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남자는 상황에 따라 서로 남의 일도 해줄 수 있는 거지.. 야박하게...라고 생각하는 듯 했어요.
그게 심해지면 자기를 너무 부려먹는다는 기분으로 넘어가겠기에
어떤 때는 적당히 대신 해주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다보니 이젠 설거지가 자연스럽게 제 쪽으로 넘어오기도 했고 (우이씨!!!)
음식물쓰레기 처리는 남편 몫이 되어 넘어가기도 했네요.
화장실 청소하면서 어떤 세제를 쓰는 게 좋으냐고 제게 묻기도 하고
(처음엔 무조건 자기 혼자 하려고 오기를 부리더라고요. 간섭하지 말라 이거죠.)
이제서야 찌든때도 눈에 들어오는지 저보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기도 해요.

특히, 화분 관리는... 저는 화분 없어도 된다! 이런 사람이거든요.
근데 남편은 생김과 달리 식물 키우는 데 은근 관심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건 완전히 그 사람의 전문 영역으로 남겨둡니다.
제가 잔소리할 건덕지도 없고, 혹시 화분 하나 죽이면 함께 안타까워하는 정도?
그리고 막 칭찬해줘요. 진심을 담아서...
이렇게 화분 잘 키우는 당신은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다.
나는 밖에 나가면 화분 관리하는 당신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다.
나였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처럼 못 키울 것이다.
이건 진심이기도 하지만, 또 쉽게 나오지 않는 말이기도 한데
저 나름대로 노력해서 자꾸 표현하려고 합니다.

6. 역지사지

제가 음식을 할 때
맛이 어떻고 메뉴가 어떻고 타박하는 남자라면 너무 피곤할 것 같아요.
가끔 있는 외식이나 라면같은 인스턴트 요리, 집착에 가까운(나는 참고 또 참지만) 살림 욕심 등에 대해
남편이 시도 때도 없이 잔소리하면 너무 싫을테니까
저 역시 남편이 하는 집안일에 잔소리 안 하려고 노력하지요.
왜 후라이팬을 또 샀냐, 물을 때도 있어요.
그럼 왜 샀는지 또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때론 그냥 내 취미라고 인정해달라고 아양도 떨고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요리를 엄청 잘 하거나
반짝반짝한 주방을 유지하며 살지 못합니다.
요리를 비롯한 살림에 관심은 많은데... 손이...심하게... 게을러요.
그 한계를 제가 알거든요.

그러고 때론,
인스턴트 음식이 나쁜 것을 알지만 먹고 싶은 때가 있고
바깥 음식이 형편없는 것 알지만 집에서 밥하기 싫은 때가 있고
주말에 허송세월하면 아까운 것 알지만 뒹굴뒹굴하고 싶은 때가 있으니까
남편의 집안일에 대해서도 눈감아줍니다.
이 남자도 어쩌면 속에서 천불이 나는 걸 눈감아주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주방 살림 늘리는 것에 대해 약간 반응할 때가 있어요. ㅠ.ㅜ)

--------------------------------------------------------------------------------------------


절대로!!!
일반화할 수 없는,
어느 철없는 젊은 부부의,
잘나지 못하고 느려터진 여자의,
가사분담기(記)입니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해결 방법도 다르니까
그냥 이런 여자도 있구나... 그렇게 가볍게 읽어주세요.

요새는 출산을 앞두고
'아버지의 가정 교육'에 대해 사전 교육중입니다.
당연히 뺀질거려요.
한대씩 때려주고 싶을 때도 많아요.
또 어떤 때에는 남편이 그걸 이용해서 종종거리며 안타까워하는 저를 놀려먹기도 합니다.
번들거리면서 메롱메롱해요.

어쩌겠어요.
'가사와 육아에 대한 잠재적 교육과정을 더 많이 이수한'
'게다가 마음까지 넓은'
제가 꾸준히 붙들고 가르쳐야지요.... ㅎㅎ





IP : 125.186.xxx.39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09.1.2 4:13 PM (220.118.xxx.134)

    좋은 글 넘 감사해요.
    도움이 많이 될 듯해요. ^^
    남편분 그래도 귀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요... 대화를 많이 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고 또 따르려고 노력도 하는 모습이 보여요.

  • 2.
    '09.1.2 5:03 PM (220.76.xxx.27)

    저랑 굉장히 비슷하시다는.. 저도 연애 좀 길게하고 얼마전에 결혼했어요. 원래 음식은 제가 좀 하는편이라 음식하는것만 제가 하고 나머지는 다 신랑이.... 하기로 한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고 있네요 장보는건 같이 하고 식단짜는거랑 음식은 제가. 설거지랑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은 신랑이. 나머지 빨래 청소 정리는 둘이 같이 합니다. 뭐 주로 제가 시키고 신랑이 하고 있지만요. 아직 두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아직까진 잘 해주고 있어요.. 어젠 시어머니 오셨는데도 설거지는 다 신랑이 하고 음식준비가 바빠서 전도 다 부쳐주고 그랬답니다 으하하하. 여기서 젤 중요한건요. 잘 하지 못하더라도. 맘에 안들더라도 절때 혼내거나 윽박지르거나 잔소리 하면 안된다는거예요. 첨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나요. 그래 그러면서 배우려므나 하는 맘으로 지켜봐주고 조금씩 칭찬하고 그러면 더더더더 잘할꺼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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