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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시락싸기

아일랜드 조회수 : 922
작성일 : 2008-12-23 00:35:59
  아까 감정이 격앙되서 글을 썼는데 머 언제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조금은 체념해야겠죠.
제게 호응해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하지만 다른분들... 다 맞는 말씀이지만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저도 어릴적 강쥐한테 무수히 물렸지만 강쥐 키워보니 걔네들 습성을 이해하면서 무섬증이 없어졌답니다.
무조건 무서워말아주세요. 어쩌면 강쥐와 자주 접촉하지 않아서일지도 몰라요. 모르는 존재는 무서운법이니까요.

이 얘기가 아니라...
저번주부터 남편 도시락을 싸고 있습니다.
82 고수분들의 레시피를 보면서 나름 메뉴도 생각해놨답니다. 식비의 대부분을 친정에 신세지고 있기에
도시락싸서 절약하기보다는 외려 나가는 돈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남편쟁이가 해달라니 해야죠. 끙..

근데 천하의 겔름뱅이 신랑.
울 신랑처럼 갤른 남자가 있을까요? 제가 온갖 잔소리로 앵앵거려서 지금은 인간처럼 살지 참 힘들었습니다.
빨래감 여기저기 던지는건 기본이고 먹은 밥그릇 설거지 안하는것도 당연하고 이불 안펴고 그냥 자기,(아무리
추워도 그냥 바닥서 퍼져자는... 겨울에도 그러더만요. 감기걸리면 나만 손해인지라 제가 이불까지 펴주고)
이불 겨우 펴놓으면 몸만 쏙 빠져나와 출근하기. 그나마 집은 제가 청소를 하니까 인간소굴이죠.
온전히 남편 공간인 자동차는 차마 말로 할 수 가 없답니다. 완전 쓰레기소굴.ㅜㅜ 먹다남은 과자가 굴러다니고
차바닥에는 온갖 종류의 음료캔이 산으로 쌓여서 발디딜 수가 없어요. 트렁크는 뭐가 차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요.ㅜㅜ 1년 넘은 초콜렛이 굴러다니니 말 다했죠.

이런 신랑이 어디서 누구 말을 들었는지 갑자기 도시락을 싸달래요.
실은 겔름하면 저도 둘째가라면 서러운지라..... 쿨럭, 실은 저도 신랑이랑 같은 과지만 신랑이 워낙 지저분해서
저까지 그러면 완전 거지소굴인지라... 암튼 저 괜히 들떠서 열심히 반찬공부했답니다.
오늘은 뭐, 내일은 뭐, 낼모레는 뭐,뭐,뭐 정해서 짜잔 싸줘야지!

첫날은 김치볶음밥이었습니다. 사무실에 가스렌지 있다고해서 냄비랑 김치랑 밥, 계란후라이, 김해서 싸줬죠.
첫날은 편했습니다. 근데 안먹고 걍 가져왔습니다. 밤 10시에 밥 안먹었다고해서 싸준 고대로 집에서 볶아줬
습니다. 다음날 먹을 오뎅국물 미리 데워서 같이 줬죠.

둘째날은 전날 정성스럽게 만든 동그랑땡이랑 콩나물, 오이무침이었습니다. 동그랑땡 만드는데 워찌나 힘든지
제가 제 무덤 팠음을 알았죠. 82의 폐해입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반찬들의 향연에 저도 그만 '나도 할 수 있
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거죠. 할 수 있기는 개뿔. 동그랑땡 하나에 넉다운.ㅜㅜ
오늘따라 손님도 있공..... (자영업자. 식당이라서 다행입죠. 엄니 가게에서 같이 일함. 본인 음식솜씨 꽝)

아침에 절대 일찍 일어날 수 없는 전 전날 저녁에 반찬 싸그리 다 싸놓고 아침엔 고대로 싸줬답니다.
글타고 늦게 일어나는건 아니에요. 일찍 일어나 밥해서 아침 먹이고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고래고래 아둥바둥
깨워서 출근 20분전에 느릿 일어난 신랑... 패주고 싶었음. ㅜㅜ

세째날...
둘째날 도시락 드뎌 먹었답니다. 맛있었대요. 나름 흐믓했죠.
근데 세째날에 쌀 도시락을 안가져왔답니다. 술 마시느라 차도 안끌고 왔죠.

네째날....
안가져왔죠. 이날도 술.-_-

다섯째날.
아마 안가져왔을걸요.

여섯째날.
드뎌 가져왔네요. 아마 토요일이었을겁니다. 엄니랑 목욕갔다왔더니 -가게 문닫고 9시에 가서
11시쯤왔죠.- 드르렁 푸쉬푸쉬 코골며 자더군요. 다년간의 학습 덕에 도시락도 깨끗이 씻어놓공.
엄니 말로는 음식 남긴거보고 잔소리 할까봐 증거음폐용이 아니었을까 하시는데 일리있다는거.-_-
편식 장난아님.=ㅠ=

일곱째날은 사무실서 컵라면 먹는다고 밥만 싸달래서 줬더니 결국 안먹고 그날 저녁에 또 제가
끓여서 밥 말아 먹었습니다. 일요일이지만 출근했슴다. 울 신랑 사무실서 삽니다. 사무실에 꿀단지라도
숨겨놨는지.

뭡니까.
도시락 싸달라고 해서 한껏 긴장하고 82 돌아다니며 메뉴짰던 내가 한심했습니다.
울 신랑의 겔름을 무시햇던겁니다. 온전히 도시락 가져올 사람이 아니죠. 뭔 바람이 불어 어울리지
않게 도시락 타령을 했는지 도시락 싸길 바라면 제깍제깍 가져와야지 일주일간 세번 싸갔는데 사무실
서 먹은건 딱 한번.
딱 한번을 위해 무던히 노심초사했떤 제가 바보같습니다. ㅠㅠ


그래도 계속 도시락 싸달랍니다. 겔르고 곰같은 신랑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인간인지라 돼지 사왔네요.
저희집은 압쥐가 스쿠르지 자린고비인지라 한달에 고기 먹기가 힘듭니다. 끽해야 고등어.... 사먹는건
막국수... 압쥐가 고기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엄니랑 저는 항상 단백질 부족이죠.
하두 안먹으니 별로 먹어야겠단 생각도 안들고요. 하지만 육식성인 신랑위해 돼지 잡았습니다.
농협에서. 국산으로. 무려 2만5천원어치!!!
-울 엄마랑 저도 먹고 자린고비 압쥐도 드시공... 말로는 안드신다하지만 해놓으면 젤 많이 드시는 울
압쥐. 진짜 채식주의자 맞어?-

식비 아끼려고 친정 들어와사는데 도시락 땜시 식비 고대로 나가네요.
암튼 돼지 잡아와서 엄마 도움으로 고추장 재놓고 내일... 아니 오늘 도시락 싸주려고요.
내일 야근이라 집에도 안들어온다는데.... 클수마스에도 일합니다. 뭐 저도 일합니다. 쉬는 분들 무쟈게
부럽습니다.

  근데 이번 도시락은 며칠만에 가져올지......... 도시락 썩을때즘 가져왔다가 몰래 설거지해놓는건 아닌지
몰것어요. 충분히 그럴 인간이라는거.

아아 아침에 일어나는거 넘 싫어요. 요즘 추워져서 이불속이 더 포근한데 말입니다.
내일 돼지 싸주고 다음엔 오징어랑 새우 갈아서 수제어묵에 도전해볼까나.....
겔른 신랑이지만 그래도 해먹여야겠지요. 또 다시 메뉴짜고 있는 나.^^;;;;;

이상 남편 도시락싸기 체험이었습니다.
계속 해보면 저도 음식솜씨가 나아질까요... 근데 어째 울 엄니가 더 신나서 해줍니다.
제가 해야 하는데......-,- (실은 동그랑땡도 엄뉘가 했답니다. 소근... 제가 하려고 했는데 엄뉘가 쓰삭
해치우시네요. 아놔 저 음식솜씨 늘어야한다고요. 옆에서 잔 심부름하는 것도 왤케 힘든지... 손님이
많아서였을지도.)






















IP : 115.86.xxx.138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08.12.23 12:40 AM (211.110.xxx.183)

    뽄대 안나는 일회용 도시락에 싸주세요.

  • 2. ㅎㅎ
    '08.12.23 12:40 AM (122.199.xxx.42)

    글 너무 재밌게봤어요.^^

    우리 신랑네 회사는 하루 3번 밥이 꽁짜로 나오는지라..
    제 도시락이 따로 필요 없답니다.
    그래도 제가 싸주고 싶을땐 맘 잡아서 따로 싸줘요.
    우리 신랑은 빵을 좋아해서 샌드위치 만들어주는데요.
    한번 샌드위치 만들면 거의 한 12조각은 만드는거 같아요.
    근데 그걸 혼자서 이틀동안 다 먹어요..^^;; 대단하죠?

    그리고 아까 글에 달렸던 리플들은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서 동물 키우는거에 대해 거부감 가진 사람들이 많더군요..
    전 아니지만요..여튼 재밌는 글 잘 봤습니다.

  • 3. 아일랜드
    '08.12.23 12:53 AM (115.86.xxx.138)

    헤헤, 살짝 수정하고 있었는데 그새 댓글이.. 감사합니다. 도시락 싸달래서 거금 2만5천원짜리 보온밥통을 샀어요. 겨울이라 차마 찬밥 먹이기 그래서요. 일회용 도시락은 차갑잖아요. 환경호르몬도 살짝 걱정되고... 울 남편은 많이 먹는 대식가인데 은근히 편식쟁이입니다. ㅎㅎ님 남편보다 대식가입니다. 주로 밥을 좋아하죠. 오늘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이짓이네요. 저도 철없어요. 홀홀... 남편쟁이는 옆에서 전화질...^^;;;; 이 인간도 낼 일찍일어나야 하는데 둘다 참.... (이 새벽에 전화하는 직장동료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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