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그리고 사람]“IMF 때보다 더 심각…대중이 경제를 너무 모른다”
경향신문 기사전송 2008-12-10 16:13
ㆍ‘공황 전야’ 책펴내 경고음 울린 인터넷 경제방 고수 ‘SDE’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칼솜씨가 귀신 같은 식당 주방장, 냉장고를 수수깡처럼 가볍게 들어올리는 이삿짐센터 직원, 슛 감각이 뛰어난 농구선수가 자유투를 던지듯 2층 베란다에 신문을 던져넣는 신문배달원 등이 주인공이다. “학문이나 기예의 특정분야에 뛰어난 사람”이라는 ‘달인(達人)’의 사전적 의미에 부합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달인과 비슷한 뜻을 가진 말로 ‘고수(高手)’가 있는데 “바둑·장기·무예 등에서 수가 높은 사람”을 일컫는다. 요컨대 고수는 승부를 겨루는 데 있어서 출중한 기량을 갖춘 사람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무협지에서 ‘무림 달인’이라고 하지 않고 ‘무림 고수’라고 표현하는 까닭도 그 때문일 터이다.
‘미네르바’와 함께 인터넷 경제 논객으로 잘 알려진 SDE가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국내외 경제위기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김기남기자
미국에서 촉발된 전대미문의 금융·경제위기는 ‘경제방 고수’의 출현을 촉발시켰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서 엄청난 경제적 지식과 ‘족집게 도사’와 같은 미래예측 능력으로 ‘경제대통령’의 칭호를 얻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대표적 인물이다. 미네르바가 한국경제에 대해 지극히 비관적 전망을 내놓자 당국이 수사가능성을 언급하고, 이에 미네르바가 절필선언을 하는 바람에 세간의 이목이 더욱 미네르바에게 쏠렸지만 사실 미네르바의 등장 훨씬 이전부터 인터넷 경제방 고수로 활약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최근 <공황 전야>라는 책을 펴낸 아이디 ‘SD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SDE를 경향신문 6층 인터뷰실에 만나 경제위기와 관련된 얘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자신의 얼굴 정면과 본명 등 인적 사항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1930년대 대공황이나 70년대 오일쇼크 등과 비교해 설명해달라.
“30년대 대공황과 비슷한 것일 수도, 더 심할 수도 있다. 70년대 오일 쇼크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은행 자체가 부실화해서 연쇄적으로 도산하고, 전세계적인 디플레이션으로 자산가치가 하락한다는 점에서 30년대 대공황과 유사하다. 그러나 각국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유동성을 공급하는데도 유동성이 부족하며, 동시에 과잉유동성으로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 30년대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위기대응 방식은 어디가 잘못돼 있는가.
“우선 외환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동안에 계속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돼서는 원화가치를 지탱할 수 없다. 중국 금리가 높은 상태에서 국내 금리는 중국금리보다 높아야 한다. 둘째, 건설업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건설·토건업체들을 인위적으로 구조조정하면 5공 정권이 국제그룹을 공중분해시켰던 경우처럼 엄청난 정치적 시비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돼야 하는데 기준 금리를 너무 낮춰놓다보니 건설업체들이 은행에서 빌린 돈을 그냥 갖고 있다. 금리가 높아지면 건설업체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인위적인 구조조정도,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셋째, 경기부양책을 너무 일찍 쓰려 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예대율(예금과 대출의 비율)은 140%인데 미국의 서프 프라임 위기는 115%에서 발생했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130%에서 거품이 터졌다. 경제가 회복되려면 예대율이 80%가 돼야 하는데 마이너스 5% 경제성장으로 1년은 지나야 80%까지 내려간다. 그때 경기부양책을 써야 하는데 지금 어렵다고 하니 너무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강만수 장관을 포함한 우리 경제관료들은 어떤 수준인가.
“내가 아는 한 경제관료들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의견은 대부분 상부에서 묵살되고 차단되고 있는 듯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강만수 장관을 보자. 그가 지금 시행하고 있는 정책은 자신이 이전에 회고록에 썼던 것과는 180도 다르다. 이것에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제3자가 회고록을 대필해줬거나, 생각은 바뀌지 않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낮은 경제인식을 무조건 따라가다보니 그렇게 됐을 가능성이 그것이다.”
-바람직한 경제 리더십은 어떠해야 하나.
“국민들에게 고통을 감수·공유하자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희망과 비전만 제시된다면 국민들은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라도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일본이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면서 그것을 마치 루스벨트의 뉴 딜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대기업은 건재하지만 서민과 중소기업이 죽고 있다.
“대기업들은 이미 10년 전 위기를 어느 정도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설업체나 중소기업, 서민들은 공황이 왔는데도 단순한 외환유동성위기 정도로 착각하고 있다. 삼성, LG 등의 대기업들은 이미 2007년 말부터 현금 확보에 들어갔다. 전세계 경제상황을 점검하다보니 조만간 닥칠 상황을 예견할 수 있었고, 행동에 옮겼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의 현재 상황은 98년 외환위기 때와 어떻게 다른가.
“98년 상황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 국가들이 겪은 ‘국지적’인 위기였다. 반면에 지금은 모든 나라, 모든 대륙이 겪고 있는 위기라는 점에서 98년보다 훨씬 심각하다. 더욱이 그 위기의 진원이 미국의 금융공황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상으로 경제전문가들이 침묵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언로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데, 인터넷 활동을 하면서 그런 걸 느꼈는가. 미네르바의 경우처럼 당신도 침묵을 강요당한 적이 있는가.
“아직까지는 없었지만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은 것은 아니지만 최근 삼성증권에서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전망한 보고서를 냈다가 반나절도 되지 않아 회수한 해프닝이 있었다. 무디스나 JP모건 등의 신용평가기관이 성장한 것은 30년 대공황 이전에 이를 정확히 예측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는 100개가 넘는 신용평가기관이 있었지만 제대로 평가하고 예측한 기관은 이들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정부나 금융기관도 작은 이익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 회사에는 당장 손해가 되더라도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의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과 대책은 무엇인가.
“정부의 잘못된 위기대응방식에 답하면서 어느 정도 설명을 한 것 같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첫째, 현재의 저금리 정책을 거두고 6개월만이라도 고금리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둘째,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해 예대율을 80% 정도까지 떨어뜨린 뒤 경기부양책을 실시해야 한다. 셋째, 금산분리완화정책은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돈 버는 방식이 다르다. 금융자본은 산업자본과 달리 호황 때는 움츠리고 불황 때는 적극 영업을 해야 하는데 지금 금산분리를 완화한다면 또다시 카드 대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넷째,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은 안 하는 것이 좋지만 굳이 한다면 파생금융상품을 철저히 관리감독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같은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저서 <공황전야>에서 당신은 98년의 ‘IMF 구제금융’이나 ‘외환위기’라는 말은 그것의 본질을 희석·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융공황’으로 고쳐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금융공황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의 경제단위는 성장발전하다가 한계에 다다르기도 하는데 이때는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방관하다가 그 모순이 누적된 끝에 폭발한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그런 사례가 여러번 있었다. 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이나 80년대의 남미 경제위기, 90년대 유럽통합위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책속의 저자 약력에 따르면 당신은 확률제어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이것은 어떤 학문이며 경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미사일, 로켓, 비행기, 로봇 등의 시스템에 관한 학문으로서 제어공학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를 응용한 것이 요즘 많이 언급되는 금융파생상품이고, 공학을 응용한 것이 바로 제어공학이다. 또 사람이 생활하고 있는 시스템이 경제이며,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 제어공학이다. 양자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응용과 시스템인 것이다. 미국 월가에서 파생금융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90년대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개발에 참여했던 공학자와 수학자들이다. 미국에서는 제어공학 논문지에 경제논문이 실리기도 한다. 양자는 호환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은 책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인간의 탐욕이 누적된 결과’라고 썼다. 무슨 뜻인가.
“투기가 성행할 때 사람들은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를 거라고 보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아파트를 산다. 또 건설업자들은 아파트를 마구 짓는다. 그런데 인간의 경제활동에서 나오는 자원은 유한하고 탐욕이 개입된 기대치는 무한하다. 탐욕이 심할수록 실물은 그것을 받쳐줄 수 없기 때문에 공황과 불황이 오는 것이다.”
-당신은 책에서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라는 C 킨들버거 MIT 교수의 언급을 인용했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경제를 잘 안다면 경제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위기가 닥치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가.
“그렇다. 내가 손해 보는 정책은 반대하고, 모두의 이익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 정책이라는 것을 알면 인내하고 동의할 수 있다. 그러려면 올바른 정책이 수립되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신의 아이디 ‘SDE’는 무슨 뜻인가.
“확률미분방정식(Stochastic Differential Equation)의 약자이다. SDE는 내가 15년을 공부한 것으로, 이전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이 돼야 배웠다. 현재 미국 아이비 리그의 경우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학부 4학년 때 배운다. 애착이 가는 분야여서 아이디로 삼았다.”
-당신이 책을 펴냈다는 것은 대중과 공적인 대화를 나누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익명의 그늘에 숨는 것은 혹시 자신의 몸값을 올리려는 신비주의 전략이나 책을 많이 팔려는 상술은 아닌가.
“결코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난 4~5년간 모든 에너지와 정력을 쏟아 해왔던,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나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면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이해해 달라.”
-왜 경제 관련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가.
“대중이 경제에 대해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보수언론의 잘못된 경제관에 세뇌되어 있다. 그런 것들은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글을 쓴다. 위기와 기회가 왔을 때 대중이 경제를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깊이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높이 평가하는 경제학자는 누구인가.
“케인스 이전의 인물인 스웨덴 경제학자 구스타프 크누트 빅셀이다. 그는 스웨덴 사민주의 경제의 초석을 놓았다. 빅셀의 위대한 점은 자신이 진보주의자이면서도 우파 경제학자인 구스타프의 카셀의 이론을 ‘자본가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배척하지 않고 경청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세계를 놀라게 할 시스템 이론을 만드는 것이다. 경제 글쓰기는 조만간 중단해야 할 것 같다.” 사회에디터
아이디 ‘SDE’는
‘위기맞은 한국경제’ 꾸짖는 공학박사 출신 사이버 논객
SDE는 자신의 저서 <금융공황>에 소개된 것처럼 공학박사 소지자로서 현재 공학계열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인적 사항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대학원 박사 과정이었던 1996년 당시 독소조항이 가득했던 노동법 파동과 금융개혁법안에 “열을 받아” PC통신에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사이버 경제논객이 됐으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 정도를 추가로 밝혔다. 그것으로 미뤄 그는 대략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동업자’이자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네르바’에 대해 SDE는 “경제판을 잘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중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등 훌륭한 경제교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미네르바에게 ‘경제대통령’ 등의 칭호를 부여한 것은 대중들이지만 실질적인 훈장 수여자는 ‘경제정책에서 철저하게 신뢰를 잃은’ 이명박 정부라고도 했다.
‘SDE와 미네르바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에 그는 “나는 학교에서 오랜 훈련을 받아서인지 아무래도 아카데믹한 냄새가 많이 난다”면서 “어떤 사안에 대해 정의를 내린 뒤 논증하고 실제 사례를 통해 입증하는 스타일인데 이것이 대중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자신이 볼 때 미네르바는 대중적인 글쓰기로 훨씬 친근하게 대중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지금까지의 글쓰기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경제대통령 미네르바’에게 결코 뒤질 게 없다는 은근한 자존심으로 보였다. SDE는 “나의 비관적인 경제전망이 들어맞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그것은 미네르바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동우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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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때보다 더 심각…대중이 경제를 너무 모른다”
인터넷 경제방 고수 조회수 : 1,320
작성일 : 2008-12-10 23:22:18
IP : 119.196.xxx.17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수요일..
'08.12.10 11:39 PM (211.207.xxx.26)이분이 내신 책 아직 안봤는데
꼭 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2. 구름이
'08.12.11 6:31 AM (147.47.xxx.131)흠.... 미네르바는 좋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SDE 는 분석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둘이 만나면 정말 좋겠네요.3. 경방에
'08.12.11 8:58 AM (211.108.xxx.26)이 분꺼 그동안 쭉 써 놓은거 읽어보심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번에 책 내셨는데 서점 베스트셀러 2위라고 어젠가 경방에서 읽었는데....
요즘 점점 내용이 어려워지는듯해서(저의 한계 ㅠ.ㅠ) 난독증 증세를 보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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