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에서도 알려지신 우석훈님의 글인데요, 문제가 되면 지울게요. 저는 딸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것을 건드리는 글이라서, 엄마와 딸이 많은 이 곳에 옮겨와봅니다.. 우석훈님 블로그에 딸들이 남긴 덧글이 몇 있는데, 하나같이 다 울었다는 내용이에요. 술술 재미있게 읽혀요.. (중간에 생략됨.)
엄마와 함께 하는 분신사바 :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한 사람이지?
한국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대단히 복합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엄마와 딸에 관해서 첫 번째로 영화에서 정면으로 이 문제를 드러낸 작품으로는 잉글 베르히만 감독의 <가을 소나타 (1978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잉글리드 베르그만이 유명한 피아니스티인 엄마로 출연하는 이 영화는, 너무도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시절로 자신의 딸의 성장기를 기억하는 철없는 엄마와, 엄마가 매번 연주회를 떠난 뒤에 혼자 남겨진 시절을 악몽으로 기억하고 있는 너무도 성숙했던 딸이 7년 만에 재회하는 며칠 간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는 명작이다. 이제는 유명한 작가가 된 딸과, 더 이상의 영광은 필요 없는 어머니가 대학교수인 딸의 남편이 소유한 한적하고도 멋진 시골 저택에서 만난 며칠 간의 만남, 이 얼마나 로맨틱한 순간인가. <가을 소나타>에서의 이 딸과의 재회는 아마, 한국의 엄마들은 물론, 전 세계의 엄마들이 바랬던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이미 최고의 피아니스티이고, 딸은 책을 몇 권이나 출간한 작가이고, 사위는 넉넉하면서도 사려 깊고도 적당한 재력을 갖춘 존경받는 철학 전공의 대학교수라니... 이보다 이상적인 상황 설정은 없을 것이다. 베르히만 감독을 자신의 교과서처럼 사용한다고 했던, 다음 해에 개봉된 우디 알렌의 영화 <맨하탄(1979년)>의 완벽하게 지성적이면서도 부유한 맨하탄 시민들의 설정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두 감독 모두 그렇게 평범하게 최초의 설정 속에서,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였다”고 말할 리가 절대 없는 불세출의 ‘겉 모습 벗기기’의 명수라서, 그들의 영화들은 순식간에 공포 특집으로 변하게 된다.
영화 <가을 소나타>의 낭만적인 제목과 너무 완벽한 어머니와 딸, 사위의 설정 등은 한꺼풀을 벗기는 순간에 순식간에 공포스러운 오해의 연속이고, 그들의 관계와 삶이 얼마나 허상이었는가가 드러나게 된다. 늘 어디론가 연주여행을 떠나야 했던 엄마, 그리고 그를 애처롭게 기다리며 괴로워하던 딸의 뒷모습은, 드디어 모녀가 함께 마시던 포도주의 실루엣과 함께 처절하게 그 속살을 드러내게 된다. 중증 지체부자유자인 두 번째 딸의 등장과 엄마의 애인에 의한 강간사건까지 모두 적나라하게 현실로 드러나면서 영화 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딸과 엄마와의 관계 즉 모녀 관계에 대한 독해는 지독할 정도의 공포적 진실로 드러나게 된다.
이런 시각을 현실의 2008년 한국으로 옮겨와서 어느 여고생과 엄마와의 관계로 가지고 와서 한 꺼풀 껍질을 벗기면, 지독할 정도의 외로운 엄마와 역시 외로운 딸의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한국의 여고생들에게 엄마는 두 종류의 엄마가 존재하는 것 같은데, ‘부자 엄마’ 혹은 ‘엘리트 엄마’의 한 종류와 ‘가난한 엄마’ 혹은 ‘시골 엄마’라는 두 범주로 구분된다. 시골 엄마는, 딸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고, 이런 가난하고 안타까운 엄마들과 역시 불안하게 자신의 미래를 기다리는 딸 사이는 인류사 보편적인 엄마와 딸이라는 구도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극한으로 몰려가는 ‘승자독식’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중등과정 특히 고등학생들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가난한 엄마는 늘 미안하고, 이를 바라보는 딸은 늘 안타깝다.
그렇다면 한국의 최상위 1% 정도에 해당하는, 대체적으로 100억원 이상의 부를 가진 엄마들은 어떨까? 나도 이 정도의 부를 가진 엄마들에 대한 충분한 샘플 수를 - 통계학적으로는 29명 정도가 된다 -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화시켜서 말하기가 좀 어렵다. 한 마디로, 모르겠다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내가 관찰한 이런 엄마들 중의 일부는, 지나친 자식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 경우도 있고, 또 거의 완벽할 정도로 딸에게 자유를 준 경우도 관찰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단한 부를 가지고 있어서, 어차피 자신들의 돈을 딸들에게 그냥 넘겨줄 수 있어서 그럴까? 자녀들에게 부를 이전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시키겠다고 결심한 사례도 관찰된다. 비록 부모는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지만, 자녀들에게 아무 것도 상속하지 않을 집들도 있는 셈이다. 이 정도의 부자들에 대한 행위패턴은 일반화시키기 어렵고, 한 미로 하면, 잘 모르겠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고,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 엘리트’라고 분류할 수 있는 엄마들은? 이 경우의 디코딩은 아주 쉽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이러한 엄마와 딸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인형과 인형사의 관계이고, 딸은 영혼 없이 엄마가 원격으로 조정하는 인형과 같은 경우가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갈 때까지, 그리고 학원에서 밤 12시에 돌아올 때까지, 딸은 인형사인 엄마가 조종하는 인형인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엄마가 딸의 육체에 들어와 있는 에일리언 관계인 경우도 종종 관찰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형사의 관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소용돌이>의 작가였던 이토 준지의 만화 <인형의 집>의 인형사에 나오는 딜레마가 작동한다. 과연 인형사가 인형을 조종하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는 인형이 인형사를 조종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해석이 어렵다.
직업이 있거나 직업이 없거나와 상관없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한국의 중산층 엄마들의 경우는 대부분의 경우, 자녀들에 대한 감정의 투사가 과도하다. 그들은 남편에게는 거의 아무런 애정을 느끼지 못하고, 또 직장생활 혹은 그 외의 사회생활에서도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사실상 그들의 자녀들에게 삶의 모든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투사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자녀의 독립적 인격과 개체의 등장에 대한 지체라는 면에서, 기생이라고 볼 수도 있고, 사실은 자녀들이 자신의 독립을 유보하면서 엄마에게 만족을 주는 대신 경제적 편익을 제공받는다는 면에서 공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넓게 보면, 엄마와 딸, 모두 이러한 기형적인 한국에서의 협력 게임에 의해서 서로 불행하게 되는 파멸 관계에 가깝다. 게다가 이는 거의 유일하게 사교육 학원 원장의 배만 불리게 되면서, 교육은 물론 다른 사회적 관계를 붕괴시켜, 궁극의 파괴자의 모습에 가깝다. 엄마도, 딸도, 사회의 적이 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이러한 모녀의 특수한 밀착은 한국에서 개발 요괴를 키워내는 가장 궁극의 장치가 된다.
부수적으로, 엄마들의 세대에 있었던 아파트에 대한 환상 그리고 “아파트만이 유일하게 돈 버는 길이다”라는, 70~80년대의 개발 신화가, 그대로 딸과 아들에게 다시 전이되게 되는데, 이 경우 더욱 확대되어 재생산되게 된다. 이 속에서 “개발 말고도 세상에는 대안이 있다”는 생각이 서 있을 공간이 있을까? 바늘 하나 세울 공간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빈곤과 생태’, 즉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푸는 것이 생태적 문제를 푸는 것이라는, 복잡한 관계에 대한 이해가 움직일 수 있을까? 좀, 어려워 보인다.
이런 엄마들의 딸에 대한 과도한 투사는 지금 한국이 가지고 있는 상당히 많은 문제의 출발점 중의 하나인데, 그 중에 가장 큰 문제가 역시 생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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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하는 분신사바
이해불가 조회수 : 635
작성일 : 2008-11-24 18:25:48
IP : 124.170.xxx.4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 글쎄.
'08.11.24 6:37 PM (121.134.xxx.151)제 주변의 분들은 위 어떤 분류에도 넣기 어렵네요. 드문 예외적인 분들만 만나고 있는 지.
더 살아봐야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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