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망가져다오”
-연기를 안 하고 쉬는 1년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두 아이 데리고 여행 다녔어요. 아침에 일어나 애들 기저귀와 옷을 챙겨서 가까운 양수리에 가거나, 가평·용평 등지로 돌아다녔죠. 떠돌아다녔다고 할까요. 가을에는 밤 줍고, 봄에는 애들한테 민들레와 아카시아 이름을 가르쳐주었어요.”
다섯 살 연하인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환희(5)와 딸 수민(3)을 두었다. 서른둘에 얻은 첫아들이 얼마나 기뻤으면 이름을 ‘환희’라고 지었을까.
-‘장밋빛 인생’의 주연을 맡은 경위가 궁금하군요.
“미국의 친구 집에 가 있었는데 ‘장밋빛 인생’ 제작사인 팬 엔터테인먼트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애 둘, 어머니를 합해 8명이 함께 가 있었죠. 그래서 저로 확정된 거냐, 후보 중 한 명이냐고 물어봤죠. ‘거의 압축돼 가는데 들어와서 작가와 감독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해요. 전화 받고 사흘 만에 귀국했어요.
문영남 작가님과 첫 미팅을 가졌는데 그렇게 떨리더라고요. 그분을 아는 사람들한테 ‘어떤 분이냐’고 여쭤봤더니 ‘김수현 선생님만큼은 아니지만 연기자들이 무서워한다’고 해요. 첫 미팅에서 결정을 다 했어요. 작가 선생님과 감독님께서 저한테 힘을 주셨죠. 작가 선생님이 ‘이 작품을 할 때는 철저하게 망가졌으면 좋겠다. 그것만 약속해다오’라고 말했죠.
‘정말 두 아이의 엄마로 보여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촬영현장에 나왔을 때 다 몰라봤으면 좋겠다. 예전에 최진실이 갖고 있던 걸 다 버려라. 그것만 약속해다오.’
첫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과 10여 차례 만나 소품을 하나하나 결정했어요. 대개 드라마를 촬영할 때 의상은 전적으로 연기자 쪽에 맡겨두거든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철저하게, 영화작업처럼 했어요.”
-촬영하는 도중에 줄거리가 바뀌기도 합니까.
“바뀔 수도 있죠. 오늘도 맹순이를 ‘살려야 한다’ ‘죽여야 된다’ 하는 찬반논쟁이 뜨겁다고 들었어요. 시청자들이 원하면 원래 시놉시스(줄거리)의 방향과 다르더라도 원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죠.”
-‘장밋빛 인생’의 시놉시스가 진실씨의 라이프 스토리하고 비슷해요. 작가가 진실씨를 여자 주인공으로 미리 설정하고 쓴 건가요.
“그건 절대 아니고요. 작가 선생님께서 어느 정도 완성해서 몇 년 전부터 가슴에 안고 있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저 말고도 몇몇 주연 후보가 있었어요. 저 자신의 이야기와 비슷해서 저 또한 기분이 나빠 오해도 했죠.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 17, 18회 분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외도를 하고 이혼을 요구하는 대목이 비슷하지만, 맹순이가 암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해나가는 부분은 다르죠. 그래서 시청자들은 ‘닮은꼴이 다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겠죠.”
‘연기에 생활의 때가 묻어 있다’
박중훈은 영화 ‘마누라 죽이기’와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최진실과 함께 출연했다. 박중훈은 “‘장밋빛 인생’에 나오는 최진실의 연기에 생활의 때가 묻어 있었다. 깊어진 내면에서 우러나는 연기를 했다”고 코멘트했다.
“아무래도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상상력만으로 연기할 때와 내가 다 겪어본 일을 연기할 때는 다르겠죠. ‘마누라 죽이기’과 ‘장밋빛 인생’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마누라가 싫은 건 똑같아요. 살다가 마누라가 싫어져서 ‘마누라 죽이기’는 마누라 죽이고 싶은 거고, ‘장밋빛 인생’은 외도를 하며 이혼을 요구하는 거죠.
엄정화에게 보내려 했던 문자 메시지 그대로예요. 대본 보면서 울고, 촬영하면서 울고, 방송 보고 울죠. 작가님이 어떻게 이 대사를 쓰셨을까, 어떻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셨을까. 우리 사회에 이혼의 아픔을 겪는 가정이 많죠. 과정이야 어떻든 마음은 비슷하다고 봐요.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경험한 부분이 많아 감정이입이 잘 됐지만 이제부터 찍을 장면이 문제예요. 암 선고를 받고 죽음과 맞서 싸워 나가는 대목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걱정이 됩니다. 고민하고 있어요.”
결말은 맹순이의 죽음
-맹순이가 죽으면서 끝나나요?
“네. 어이쿠, 말하면 안 되는데….”
-시청자들이 죽이면 안 된다고 아우성치면 살릴 수도 있잖아요.
“어제 방송에서 수술을 했어요. 수술하려고 열어보니까 암이 장기 전체로 전이돼 다시 닫죠. 사형선고죠. 시한부 인생을 사는데 본인은 모르고 가족들이 숨깁니다. 맹순이는 희망을 갖고 살다 어느 날 그 사실을 알고 좌절하죠.”
-남편 반성문이 외도한 것을 알고 침대에서 뛰어내리면서 이단옆차기 들어가는 것도 실제상황에서 써먹어본 건가요?
“아뇨. 언제 해봤겠어요. 초등학교 2, 3학년 때 태권도를 배운 적은 있죠. 지문에 ‘맹순이 이단옆차기’라고 써 있더라고요. 눈 딱 감고 하니까 되더라고요. NG 없이 한 커트에 찍은 거예요.”
-채널이 100개를 넘어가면서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이 떨어졌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시청률 40%를 넘었으면 대단한 기록이네요.
“‘삼순이’가 50%까지 갔을 거예요. 40이 나오면 케이블 시대 이전의 50 정도 되는 거죠.”
필자가 “1년 전 ‘장미의 전쟁’은 왜 실패했습니까, 그때 이혼 과정이 너무 시끄러워서 인기를 잃은 건가요?” 하고 묻자 그녀는 ‘시끄럽다’는 표현을 따라 하며 깔깔 웃었다.
“사생활로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에 보는 분들 또한 극중 인물로 보기보다는 ‘최진실’로 보셨겠죠. 지금은 그냥 맹순이로 봐주시는데….
제가 조급했던 거 같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까 대다수 여배우가 20대를 넘어 30대에 접어들면 아무래도 치고 올라오는 후배 연기자들이 있다 보니까 집착하게 되는 거 같아요. 어떻게 하면 외적으로 예쁘게 보일 수 있을까, 그러니까 내적인 면을 채울 생각은 못한 채 그런 부분에만 집착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인터넷 사이트에 아이들 사진이 떠 있더군요. 유명 연예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녀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던데….
“싸이월드에 제 개인 홈피가 있죠. 싸이월드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걸 시작했어요. 그냥 애들 사진 올리고 저장하는 맛에 했는데, 어, 나중에 보니까 방문자 수가 무섭게 늘어나더라고요.”
-네티즌이 퍼 날랐군요.
“퍼간 거죠. 어느 날 포털 사이트에 ‘최진실’이라고 치니까 제가 생각 없이 올린 애들 사진이 올라오더라고요. 이미 늦었죠. 지금은 세상을 살면서 유괴 같은 무서운 생각을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요.”
사진기자가 와서 촬영하는 동안 집을 둘러봤다. 응접실 대형 유리창을 통해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량의 불빛이 한강의 야경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올림픽대로와 한남대로가 만나는 교차점인데도 이중방음 시설을 해 차량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멀리 남산타워와 하얏트호텔이 보였다. 모친 정옥숙 여사가 “분양면적은 110평이지만 실평수는 70평 내외”라고 말해줬다. 여러 장 걸려 있는 최진실의 가족사진에서 조성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치운 것 같았다. 식당 유리장에는 코냑 ‘루이 13세’와 와인이 10여 병 들어 있었다.
그녀를 CF 모델로 썼던 신안건설이 제기한 3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은 1심에서 피고가 2억5000만원을 물어주라는 결론이 났다. 재판부는 ‘피고 최씨가 부부간 불화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가정 파탄을 드러낸 것은 혼인생활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 오히려 장애를 확대시킨 행동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동은 신안건설의 주택분양 사업과 강한 연상작용을 일으키면서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약정 손해배상금 5억원 중 절반인 2억5000만원만 물어주게 하고 신한건설이 청구한 위자료 등 25억원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이혼은 결혼생활의 예외적인 실패가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 됐죠. 여성단체들이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판결이라고 비판하던데요.
“판결에 대해서는 원고, 피고 양쪽 다 불만이 있는 거죠. 아마 연예인 중에서는 제가 가장 시끄럽게 이혼했을 거예요. 인정합니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안 찍어주고 시간을 끈 이유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가정보다 일을 먼저 생각했다면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빨리 이혼하는 선택을 했을 텐데…. 빨리 마무리됐으면 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애들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소송까지 당하니 억울한 생각이 들어요.
저는 심각한 가정폭력을 겪은 사람입니다. TV 다큐나 시사 프로에서 종종 그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서는 경찰이 와도 ‘내 마누라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당신이 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어 그냥 갔죠. 그래서 속이 곪아 터졌잖아요. 저희 어머니 세대도 그랬죠. 저도 그런 걸 보고 자랐어요. 겪어보기 전엔 몰랐는데 제가 그런 처지가 돼 보니 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러면 집안에서 그런 문제가 생겨도 그걸 드러내면 안 되는 거냐. 맞아 죽을 때까지 바깥으로 나오지도 말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거냐.
어쨌든 저는 연예인이고 많은 분이 저를 알고 있기에 여성이 당하는 피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게 선례가 될 수 있죠. 후배 연예인들도 결혼할 텐데 정말 남편한테 맞아 죽어도 밖에 나와선 티도 내지 말라는 건가요?”
법원 건물 쳐다보기도 싫다
-두 사람이 기자회견을 하고 다툰 기사를 죽 읽어봤습니다. 조 선수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진실씨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했어요. 폭력 부분에 대해서도 ‘쌍방 폭행’이라 주장하며 자기도 폭행의 피해자라고 했더군요.
“지금 굳이 그런 얘기를 다시 꺼내기 싫습니다. 4년에 걸친 이혼의 과정을 겪으면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멍든 얼굴을 공개한 이유를 밝히자면 그 지겨운 이야기를 또 한 차례 되풀이해야겠지요. 마음에도 멍이 들었고 너무 아팠어요. 부부는 돌아서면 원수가 된다고 하지요. 이혼소송을 안 하는 이유가 재판할 때 정말 끝이 보여서라고 그러더라고요.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에요. 그걸 피하기 위해 합의이혼을 하는 거죠. 신안건설과의 소송 때문에 저는 합의이혼을 하고서도 재판이혼 같은 과정을 다시 겪은 거죠. 재판에서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따지게 되니까.
-‘장밋빛 인생’으로 인기를 회복했습니다. 많은 시청자가 드라마에 나오는 맹순이의 아픔과 최진실씨가 겪은 고통을 동일시하고 있어요. 신안건설에서 소송을 취하하고 계속 CF를 사용해도 이제는 기업 이미지가 더 좋아질 텐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광고주와 모델 사이의 분쟁이 좋게 해결된 사례가 많아요. 정말 지긋지긋하고요. 법원 건물 쳐다보기도 싫어요. 사람과의 약속을 적은 종이 한 장, 물론 중요한 거죠. 그렇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서 그게 다는 아니잖아요.”
첫 주연은 영화 ‘남부군’
최진실은 1988년 CF 엑스트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가수이자 탤런트인 동생 최진영(33)이 먼저 CF 모델로 활동하다 소속사에 누나를 소개했다. 첫 CF는 아모레 화장품 GQ라는 상품광고였다. 메인인 박영선이 호텔 수영장 앞에서 걸어가고 그녀는 수영장에 빠지는 설정이었다. 물에 빠지는 장면을 수십 번 촬영하고 처음으로 받은 모델료 30만원을 받아 어머니에게 몽땅 드렸다.
삼성전자에 전속돼 처음 찍은 CF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 광고였다. 전속금으로 거금 2000만원을 받았다. 광고 모델 진출 2년 만에 그녀의 집은 단칸 사글세방에서 22평 단독주택으로 바뀌었다. CF로 얼굴이 알려져 MBC ‘조선왕조 500년 한중록’에 연기자로 데뷔했다. 영화 데뷔작은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南部軍)’. 전설적인 매니저 배병수가 성사시켰다. 그녀는 간호장교 박민자 역을 맡았다.
“‘한중록’에서는 비중이 낮은 역을 맡았어요. 처음으로 주연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건 남부군에서죠. 포스터에 안성기 최진실 주연이라고 딱 들어가더라고요. 그때 아주 감격했죠.”
-안성기씨는 어떤 배우인가요.
“안성기 선배님이 화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저도 연기자로 활동하다 보니 때로는 밤새우고 지쳐 너무 힘들면 누가 말 시키는 것조차 싫어요. ‘네’라는 대답조차 힘들 때가 있죠. 저도 모르게 짜증낼 때가 있는데 안 선배님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거 같아요. 양반이시죠. 자기 관리를 정말 잘하세요.”
-남부군에도 섹스신이 나오던가요?
“안 나와요.”
-영화에서 섹스신 해본 적 있어요?
“옷 벗고 하는 건 말고요. 키스신이나 애무 정도. 노골적인 건 안 해봤어요.”
-진실씨가 섹스어필하지 못해서 섹스신을 안 시킨 걸까요?
“그런 거 같아요. 그때만 해도 대중이 최진실에게 그런 부분을 용납하지 않았던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은 문근영씨가 그런 이미지인 거 같아요. 문근영씨는 이슬만 먹고 사는 천사지요.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그렇게 돼 있죠. 저도 초반엔 그런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더러 제가 피해 가기도 했지만 감독님들께서도 저한테 그런 걸 요구하지 않았어요.”
-영화하고 드라마는 연기 방법이 다릅니까.
“너무 달라요. 영화는 촬영 시작 전에 대본 전체를 볼 수 있죠. ‘장밋빛 인생’ 같은 드라마는 전체 24부 중에서 1, 2부나 3, 4부 대본을 보고 촬영을 시작해요. 영화는 대개 두 달 정도 촬영할 거예요. 감독과 캐릭터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나누고, 감독이 배우를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도 있어요. 드라마는 내일 당장 방송될 걸 오늘 촬영해 내보내야 됩니다.
저도 그동안 드라마를 수없이 해왔지만 가장 힘든 상황이 ‘쪽 대본’을 보고 연기할 때예요. 대본 한 권이 아니라 A4용지에 그 장면만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그 한 장을 들고 현장에서 암기해 5분 내에 연기를 해야 해요. 이 장면이 과연 어디에 붙는 것인지, 앞뒤 상황도 모르고 연기해야 할 때가 있어요. 영화는 충분히 연구하고 내 생각과 다를 때는 감독한테 ‘이 장면 좀 다시 찍어보자’고 할 수 있죠. TV 드라마는 순발력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영화만 했던 친구들 중에 드라마에 오면 잘 못하는 이들이 있어요.”
-감독들은 “여배우들은 실컷 키워봐야 시집가면 연기생활을 그만둔다”고 불평하더군요.
“그 반대 아닌가요? 시집가면 안 써주는 거죠. 할리우드에서 한창 활동하는 여배우들의 나이를 보면 30대 후반에서 50세까지 다양해요. 샤론 스톤(47)은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해요.
우리 영화계에는 정작 여배우가 인생이 뭔지 사랑이 뭔지를 좀 알게 돼서 그 연기를 할 수 있을 때 못하는 상황이죠. 할 작품이 없어요. 결혼 때문에 잠깐 쉬고 나면 아줌마가 되는 거죠.”
-김혜자씨처럼 나이 먹어서도 계속 연기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더군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고요. 진짜 너무 행복해요. 밤새워 촬영해도 신나요. 하여튼 대본을 끌어안고 잠잘 때도 있어요.”
네 살때부터 연기자 꿈꿔
-언제부터 연기자가 되려는 꿈을 가졌습니까.
“네 살, 다섯 살. 일찍 한 거 같아요. 드라마를 좋아해 열심히 봤어요. 연예인도 좋아했고. 어릴 적부터 거울을 보며 드라마의 유명한 장면을 혼자서 연습했죠. 설날이나 추석 때 다른 애들은 어른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저는 연기를 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내성적이었다가 고등학교 때 외향적으로 바뀌었죠. 성격이 몇 번 바뀐 것 같아요. 제가 B형이라서 그런가.”
학창시절 하이틴 스타 강수연은 최진실의 롤 모델(role model)이었다. 강수연은 풍문여중과 동명여고를, 최진실은 동명여중과 선일여고를 나왔다. 동명여중과 동명여고는 한울타리 안에 있다. 최진실이 동명여중 1학년 때 강수연은 동명여고 1학년이었다.
“강수연 언니가 영화와 드라마에 많이 나왔죠. 제가 언니를 좋아했어요. 그냥 먼발치서 바라보며 좋아한 거죠.”
-우상이었군요.
“네, 그 언니가 앉았던 의자에 가서 혼자 앉아보기도 했어요. 너무 좋아했죠. 연기자가 된 후에도 언니가 나온 영화 비디오를 무척 많이 봤어요. 연기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기자를 흉내내려고 하거든요. 저는 강수연 선배의 연기를 모델로 삼고 연습했어요. 강수연 언니처럼 해야지….”
-나중에 서로 알게 된 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까.
“제가 이야기했더니 언니가 정말 좋아했어요. 그런데 제가 먼저 결혼해 애를 가졌죠. 저는 애들을 낳아서 빨리 늙는 것 같아요. 언니는 결혼을 안 해서인지 저보다 훨씬 젊어요.”
-제일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어떤 건가요.
“휴 그랜트가 나오는 ‘센스 앤 센서빌리티’예요. 두 가지의 사랑을 자매를 통해 보여주는 영화죠. 언니는 이성적인 사랑을 하고, 동생은 감성적인 사랑을 하죠. 감동적입니다. 연기할 때 참고가 되겠다 싶어 네댓 번 봤습니다.”
-좋아하는 외국 남자배우는 누구입니까.
“휴 그랜트를 좋아해요. 얼마 전에 나온 영화가 뭐더라? 왜 아줌마가 되면 깜박깜박 기억이 안 나는지 모르겠어요. 굉장히 히트한 영화인데, 뭐더라? 혹시 안 보셨나요.”
필자가 ‘러브 액추얼리’라고 말하자 그녀가 “어머, 맞아요” 하고 탄성을 질렀다. 짐작으로 말해본 것이 딱 들어맞았다.
“저는 영화를 보게 되면 아예 날을 잡아 7, 8편을 몰아서 봐요. 다음날이면 내용이 뒤섞여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아요. ‘러브 액추얼리’ 진짜 감명 깊게 봤어요. 울었어요.”
-진실씨는 예뻐서 어려서부터 사내 녀석들이 따라다녔겠군요.
“별로 안 예뻤어요. 별명이 공작새였어요. 공작새가 깃털을 접고 있으면 안 예쁜데 펴면 예쁘잖아요. 동네 어른들이 진실이는 어떻게 보면 예쁜데, 어떻게 보면 못생겼다고해서 공작새라고 불렀어요.”
-남자친구는 있었습니까.
“여고생 때 있었죠. 그때는 발랄했죠. 저희 때는 남자친구가 없으면 친구들 사이에 기를 못 폈어요. 지금은 결혼해 어디선가 살겠죠.”
최진실이 가정적으로 행복했던 것은 중동에 근로자로 나간 아버지가 보낸 돈으로 집을 장만한 중학교 때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귀국해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 집을 날렸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방과 후 귀가하니 집이 팔리고 없었다. 갈 데가 없어 동생과 함께 고모가 경영하던 레스토랑 지하 단칸방에서 살았다. 점심 도시락을 못 싸 학교에서 친구들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해서 살림을 꾸렸다. 고2 때 친구들과 길을 가다 포장마차를 끌고 오는 어머니를 멀리서 보고 창피한 생각에 옆길로 피한 일이 있다.
“그때는 예민한 나이였기 때문에….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지금도 항상 감사해요. 엄마가 살기 지쳐서 우리를 버리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가 동생과 저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기 에 우리의 오늘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신의 삶을 택해서 떠났더라면 지금의 저희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저도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보니까 엄마가 여자로서 혼자 보낸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더 고마움을 느끼죠. 이제는 엄마한테 좋은 남자가 생겼으면 하는 생각도 있어요.”
마성미는 ‘최진실 신드롬’(1993)이란 저서에서 “자본주의는 필요에 의해 그녀를 신데렐라로 만들었고, 그녀의 성장 배경은 이 신데렐라 신화를 빛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했다. 진실의 어머니는 아직 장가를 들지 않은 아들 진영과 함께 가까운 곳에 살며 그녀의 살림을 돌봐주고 있다.
-아버지 없는 슬픔을 자식한테 대물림하기 싫어 이혼을 거부했다고 말한 일이 있던데요.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저희 아버지, 안 돌아가셨어요. 엄마하고는 일찍부터 생활을 같이 안 했죠. 따로 생활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나가셨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까지 해야 합니까. 한때는 아버지를 미워했죠. 그래도 자식이니까 완전히 단절하지 않고 아버지도 왔다갔다하시라고 하죠. 제 결혼식 때도 오셨어요.”
-딴살림을 하고 계신 거군요. 옛날 세대 중엔 남자가 돈 좀 있으면 아내 둘 셋 거느리고 사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 남자를 저도 많이 봤습니다.”
‘공작새’와 ‘최수제비’
-고등학교 때 별명이 ‘최수제비’던데….
“제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친구가 많았어요. 엄마가 일을 했으니까 동생하고 저하고 밥을 해먹으며 학교에 다녔죠. 친구들이 놀러오면 해줄 게 없으니까 라면 아니면 수제비죠. 친구가 많이 오면 같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건 수제비밖에 없더라고요.”
-실컷 얻어먹은 친구들이 ‘최수제비’라는 별명을 만들어준 거군요.
“혹시 밀가루 반죽을 묽게 해서 숟갈로 떠서 솥에 넣고 삶는 거 아세요? 저 그거 잘해요. 기술이 필요해요. 그리고 식은 밥덩이도 넣고.”
-동생 진영과는 어떻게 지냅니까.
“‘장밋빛 인생’의 맹영이와 맹순이 자매처럼 저희 남매는 사이가 좋아요. 우리 둘은 어려서부터 ‘이 세상에 돈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서로 끌어주고 아껴주었죠. 싸우면서 정이 들었죠. 지금은 서로가 버팀목이고 그늘이 돼준다고 생각해요.
촬영하면서도 동생한테 전화해 ‘뭐하니?’ 하고 물어요. 제가 수원 세트장에서 밤샘 촬영할 때 통닭을 50마리 사들고 왔더라고요. 참 든든했어요. 모두에게 인사하고 스태프들 어깨 두드려주고 그러더라고요. 너무 고맙죠. 예전엔 가끔 툭탁거리며 술도 함께 마셨죠. 지금은 동생이 저 술 마시는 거 싫어해요.”
-전성기 때는 몇 병까지 마셔봤습니까.
“소주 3병 정도. 이것저것 다 마시죠. 소주 먹다 양주도 먹고. 저는 ‘소맥’이 좋더라고요. 맥주에 소주 타 마시는 거. 애 하나씩 낳을 때마다 술이 팍팍 줄더라고요. 첫째 낳고는 한 병 마시면 취하고, 둘째 낳고 나서는 반 병 마셔도 취하고….”
-유리장에 와인이 많군요.
“촬영이 아침 6시쯤 시작되면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메이크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긴장돼 잠이 잘 안 와요. 와인을 마시면 잠이 잘 와요. 한두 잔 마셔도 잠이 안 와 계속 마시다 취한 상태로 촬영장에 가서 혼난 적도 있어요.”
그녀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미대 진학에는 실패했다.
“미대 진학 공부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저는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죠. 미대에 지원했지만 떨어졌고, 엄마도 굳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쪽이 아니었죠.”
공부하고 싶다
진실은 고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의 소개로 CF계에 발을 디뎠다.
“그때는 대학에 대한 미련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라요. 그때는 돈이 필요했죠. 정말 부잣집으로 시집가지 않는 한 엄마 고생 안 시키려면 돈 버는 지름길이 연예인이라고 판단했죠. 집안에 이쪽에서 일하는 분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돈을 벌려고 했던 건데 많은 분의 사랑을 받게 됐죠. 그때는 공부에 대한 갈증이나 내적인 부분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정신없이 바빴죠.
이제 이렇게 엄마가 되고, 조금 있으면 40대에 접어드는데, 더 늦기 전에 공부하고 싶어요. 다른 공부가 아니라 좋아하는 연기 공부를 하고 싶어요. ‘장밋빛 인생’이 저한테 많은 것을 가르쳐줬죠. 저의 밑바닥이 보이는 거예요. 감정에 몰입해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연극영화과에 가서 발음부터 다시 배우고 싶죠. 그런 욕망이 있어요.”
-얼굴 작은 탤런트가 화면발이 잘 받는다던데, 진실씨 얼굴을 보더라도 역시 탤런트들은 얼굴이 작은 것 같아요.
“팬들이 ‘사진 좀 같이 찍어주세요’라고 부탁해놓고 제 뒤로 조금 물러나요. 뒤로 빠지면 얼굴이 작게 나오잖아요.
TV에 비치려면 얼굴 폭이 좁은 게 낫죠. 요즘 젊은 탤런트들은 서구형으로 바뀐 것 같아요. 그 친구들 옆에 있으면 제 얼굴이 너부대대해요.”
-1990년대에는 연예인 중에서 종합소득세 납부 랭킹 1위를 여러 차례 했더군요. 그 돈을 모두 저축했으면 지금은 꽤 큰돈이 모였겠네요.
“실제 받는 금액보다 더 많은 것으로 보도되는 일이 있죠. 1억원 받아놓고 5억원 받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라이벌 관계에 있는 연예인이 신문에 5억원 받았다고 나오면 다음날 10억원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말로만 올리는 거죠.
최진실이 CF 모델료와 영화·드라마 출연료로 지금까지 100억원은 받았을 거라는 말이 있는 것은 알아요. 받은 것만 합하면 그렇게 될 수 있죠. 그런데 종합소득세 세율이 40%예요. 1억원을 벌면 매니저 비용 30%를 떼고 거기서 다시 40%를 빼보세요. 실질적으로 남는 금액은 3000만원 정도예요.”
-순수하게 본인을 위해 쓰는 용돈은 얼마나 됩니까.
“요즘은 촬영 나가니까 승용차 기름값하고 세 끼 밥 먹는 돈 정도죠. 먹는 건 잘 먹어요.
기가 좀 떨어졌다 싶으면 삼계탕이나 삽겹살을 먹어요. 보신탕도 가끔 먹어요.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어릴 때 그게 보신탕인지도 모르고 먹곤 했죠.”
엄마 됐을 때 가장 기뻐
진실은 1992년 ‘저축의 날’에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12개 통장에 2억원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돈을 관리했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재테크는 할 줄 모르고 버는 대로 족족 통장에 넣었다. 평소 생활태도도 헛돈을 쓰지 않아 ‘짠순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하도 없이 살다보니까 돈이 목표인 시절이 있었죠. 이제는 돈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행복하구나 하는 걸 절실하게 느껴요. 사람은 태어났을 때 모든 걸 다 깨닫고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죠. 10대에는 10대에 맞는 목표가 있고, 20대에는 목표가 달라지죠. 깨달으면서 살아간다고 할까요.
어쩌다가 최진실 하면 돈에 관한 이미지가 떠오르게 됐을까요? 제가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그런 부분에서 잘못했구나 하고 생각해요. 거품이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지금 어려운 건 아니지만 밖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쌓아놓고 있지는 않다는 거죠. 저도 가장이잖아요. 10대에는 엄마와 동생을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애가 둘입니다. 어쨌든 애들한테 부모로서 기본적으로 해줘야 할 부분이 있잖아요. 재산을 물려줄 생각은 안 하지만 부모 마음은 불안하더라고요. 남편에 기대면서 살 수 있으면 불안한 마음이 덜할 텐데 혼자서 애들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앞날이 캄캄할 때가 있어요. 어릴 때 하도 고생하고 자라다 보니까 애들만은 고생하지 않고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일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가장 슬펐던 순간은?
“가장 기뻤을 때는, 연예인이 됐을 때가 아닙니다. 결혼했을 때도 아닙니다. 제가 엄마가 됐을 때죠. 엄마가 되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요. 전에는 참 이기적이었죠. 애를 낳고 나서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됐고, 세상이 정말 아름답게 보였어요. 모든 것이 정말 달라지더라고요.
가장 슬펐을 때는 혼란스러운 시간이 다 끝나고 마치 폭풍이 왔다간 다음에 잔잔한 바닷가 같이 됐을 때였죠. 이 집안에 저 혼자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1년이란 시간이 정말 잔인하고 힘들었죠.”
-지금 이 순간, 인생은 살 만한가요.
“뭐라고 말해야 하나. 30대 인생은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했고, 이혼했고, 다시 연기자로 복귀했죠. 개인적으로 이렇게 굴곡이 심한 적은 없었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 같았어요. 그렇지만 절망 뒤에 바로 희망이 있어요.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 제가 무슨 큰 죄를 지었습니까.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자꾸 원망의 기도를 하다 보니 나중엔 감사의 기도로 바뀌더라고요. 이 고통을 남편을 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통해 주셨다면 저는 정말 죽었을 겁니다. 그래서 절망으로 시작한 기도가 나중엔 ‘하나님, 다시 손잡아주시고 최진실에게 희망을 주실 거죠’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어요.
시청률이 40%가 넘는다길래 먼저 하나님한테 감사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이 정말 옆에서 제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아요. 눈물이 나도록 감사해요.”
그녀는 집 근처 교회에 다닌다. 성경의 잠언과 시편을 즐겨 읽는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애송곡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 찬송가를 애들 자장가로 매일 밤 불러주는 바람에 세 살짜리 둘째가 4절까지 다 외워요. 그 애는 이게 자장가인 줄 알죠.”
그 사람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장밋빛 인생’에서 반성문이 아내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에게 갔지만 결국 그 여자에게도 배신당하죠.
“네, 어제 배신당해서 맹순이한테 돌아왔는데 이미 맹순이는 없죠.”
-애 낳고 살다가 남자가 바람나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현실에서 그렇게 많을까요.
“그런 일이 생각보다 많아요. 결혼한 여성들은 맹순이가 가진 짐들 중에서 하나는 짊어지고 사는 것 같아요. 맹순이는 ‘불행의 종합상자’죠. 사기당하고, 남편한테 이혼당하고, 암 걸리고. 또 아들 못 낳아 시어머니한테 구박덩어리죠. 맹순이하고 똑같은 경우로 이혼 요구를 당한 경험이 있어 분통을 터뜨리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 아닐까요.
맹순이는 ‘장밋빛 인생’ 1부부터 이혼 요구를 당해 결국 12부에서 이혼을 해주죠. 그 안에 서로한테 상처 주고, 이단옆차기 날리고, 빌어도 보죠. 그러니까 그게 맹순이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울면서 촬영하듯 보시는 분들도 울면서 보시는 것 같아요.”
-이혼했다가 재결합하는 부부들도 있지요.
“요즘은 그런 일도 있는가 봐요. 저는 구세대인지 아직 그런 대목을 이해하지 못해요.”
-‘동아일보’ 김갑식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그 사람은 야구 잘할 때 살아 있고, 저도 드라마를 할 때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아이라는 공통분모가 남아 있습니다”라고 말했더군요. 떠나간 조성민 선수를 용서하는 건가요.
“용서는요. 그건 용서라기보다는 애들 아빠니까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죠. 어쨌든 그 사람이 없었다면 두 아이가 어디서 태어났겠어요. 그래도 그 사람이 저한테 보물 같은 자식을 준 게 고마운 일이죠. 저는 살아가면서 애들에게 아빠의 존재에 대해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친권은 포기했지만 조 선수 쪽에서 자식을 만나볼 권리는 있는 거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제 마음이 이런데 매일이라도 못 만나겠어요? 여자들은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에게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서 맹순이처럼 그 사람이 진짜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할 때가 있어요. 좋아 너, 이혼해줄 테니까 뭐 갖고 와. 그 사람이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해요. 강한 부정이죠.
여자들이 이혼하면서 나중에 자식들 다 큰 다음에 그대로 다 얘기해주겠다고 하지요. 자식들이 복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거고. 제가 무슨 도를 닦은 건 아니죠. 저도 한낱 인간인데 왜 그런 감정의 기복이 없었겠어요. 미움이나 슬픔이 왜 없었겠어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생각하다 최종적으로 얻은 결론은 그 사람과 나의 관계는 여기까지가 끝이고, 애들을 생각하면 둘 다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였죠. 제가 뭐라고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이 뭐라고 저를 용서하겠어요.”
-두 분이 ‘전쟁’을 벌일 때 조 선수가 자기변명에서인지 진실씨한테 안 좋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한 게 더러 있더군요. 그 중에는 술, 담배 이야기도 있고….
“글쎄요, 그 사람의 말이 뭐가 참이고 거짓인지 얘기하고 싶지 않고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긴 시간 동안 저를 봐주신다면 차차 알게 되겠죠. 제가 얼마만큼 열심히 인생을 사느냐, 제 몫을 다하느냐가 중요하죠. 술 마시고 담배 피운 것에 대해 변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 사람이 저와의 짧은 결혼생활을 통해 그게 불만이었다면 불만이었겠죠. 그걸 모르고 있었던 제가 바보죠. 만약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 부분을 다 고치고 잘했을 텐데, 왜 몰랐을까 하고 후회하죠. 그냥 저는 어쨌든 원망도 없고, 다만 그때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이해하고 싶어요. 진실과 허위를 가리자면 또 하나의 싸움밖에 안 돼요. 그 사람이 이 기사를 읽는다면 자기도 하고 싶은 말이 있겠죠. 이제는 싸움 그만하고 싶어요.”
-진실씨처럼 예쁘고 귀엽고, 모성애가 강하고, 돈 잘 버는 여성이 어디 있겠어요. 조 선수가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찼어요. 지금쯤 후회하지 않을까요.
“후회 안 할 거예요. 그 사람 성격을 잘 아는데 정말 싫은 건 죽어도 못하는 사람이죠. 그 사람과 저의 인연은 그게 다였던 것 같아요.”
-조 선수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됐습니까.
“그 부분은 다시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묻어두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도 야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요. 그 사람도 많은 사람 앞에 나와서 공을 던져야 하는데, 어떻게 제 입장만 말하겠어요.”
조 선수는 스물일곱에 결혼했다. 그러나 어린 남자도 그녀의 유명해진 CF 카피처럼 ‘여자 하기 나름’은 아니었다.
-남자는 대개 30대에 결혼하면 마누라를 아낄 줄 아는데 어려서 결혼하면 아낄 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혹시 진실씨를 사랑하고 아낄 만한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그런 생각이 없어요. 아예 없어요. 정말 저의 남은 인생은 연기와 결혼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꿋꿋이 두 아이만 키우겠어요. 아이들한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요. 나중에 애들이 커서 ‘정말 거추장스러우니까, 남자 좀 사귀세요’라고 말할 때까지는 애들만 바라보고 편안히 살겠습니다.”
둘째는 손현주씨를 아빠로 알아
-묻지 않아서 못한 말이 있으면 해보세요.
“오히려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아 불안해요. 그동안 말하기가 싫었어요. 말로 인해 너무 다쳤죠. 사람들 입이 제일 무서운 거 같아요. 물론 제 입도 무섭지만. 어떤 계산도 없이 제가 겪었던 한 부분을 솔직하게 다 말씀드린 거니까 독자 분들도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그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전 남편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조 선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말만 했어요. 전남편을 욕하라는 건 아니고, ‘이런 부분은 나로서도 어려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변명처럼 들릴까봐 싫어요. 어쨌든 열심히 재기하려 하는데 그 사람한테도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환희는 지금도 아빠를 너무 좋아해요. 아빠가 야구선수인 것도 알고. 둘째는 ‘장밋빛 인생’의 손현주씨를 아빠로 알아요. TV에서 현주씨를 보고 둘째가 ‘아빠 나왔다. 나, 아빠 좋아’라고 말하면 환희가 ‘아빠 아닌데’라고 하죠.”
-환희는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는군요.
“아니, 아빠를 알죠. 첫째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있는 거고, 둘째는 제가 임신했을 때 아빠가 떠나서 기억이 없으니까 손현주씨를 아빠로 알아요. 둘째는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어요. 환희는 아빠를 닮았죠. 둘째 수민이도 입 부위가 아빠를 닮았죠. 처음 낳았을 때는 너무 못생겨 깜짝 놀랐어요. 지금은 훨씬 예뻐졌어요. 첫째보다 둘째가 더 예뻐요. 딸이 엄마 마음을 더 잘 알아주고 이해해주지요. 수민이는 더 애틋하게 안기는 것 같고, 환희는 아들이라 거칠어요. 사내라고.”
-촬영 중이라 시간 내기가 힘들 텐데 심야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습니다.
“있는 그대로 잘 써주세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를 쓰면 이 인터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예를 다루는 일간지, 주간지들이 베끼니까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인터뷰를 피했어요. 지금 저 말고도 이렇게 살아가는 ‘싱글 맘’ 여성이 많으니까 그 분들이 위로받고 힘을 낼 수 있게 써주세요.”
그녀는 수많은 인터뷰를 해봤을 텐데도 문간까지 배웅을 나와 “‘신동아’ 11월호가 언제쯤 나오냐”고 물었다. “연기자들은 대본 보며 말하는 버릇이 붙어 대본 없이 그냥 말하려면 잘 못한다”며 걱정하는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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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볼만한 인터뷰
바라미 조회수 : 751
작성일 : 2008-11-08 09:13:21
IP : 58.224.xxx.40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누가 이런
'08.11.10 8:04 AM (59.11.xxx.121)그녀를 최가식으로 불렀습니까...?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숨어 있는 삶에 대한 이해, 아이들에 대한 사랑, 전 남편이기 이전에 아이들의 아빠이기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들이 절절히 묻어나네요.
열심히 살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한 그녀의 삶의 무게를 이해하기에는 조가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였을 뿐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네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를 단지 아이들의 아빠라는 이유로 가볍게 처리하지 못한 그녀의 섬세함이 결국 그녀를 무너지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 곳에서는 마음 편히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기사 조성민은 읽기나 했을까요?
본인의 인터뷰와 얼마만큼의 차이를 가지는지 알기나 할까요?
술과 담배를 해서 싫었다구요?
마담은?
ㅎㅎㅎㅎㅎㅎ 마담은 술 마시며 술 파는 이인데...
담배 안하는 마담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라고 할만큼 담배랑도 친숙할텐데?
말같지 않은 소리가 워낙 많아 하나하나 시비하고 싶지도 않지만 정말 인간이 싫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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