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밥상
독자칼럼
나는 날마다 천원짜리 점심을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늘 식단은 무엇일까. 조밥, 닭미역국, 고춧잎, 쥐어무침, 배추김치가 먹음직스럽고 푸짐하다. 백미밥, 흑미밥, 검정콩밥, 애호박새우젓국, 닭개장, 해물파전, 느타리호박볶음 등 날마다 새로운 음식이다. 나는 이 행복한 밥상을 대할 때마다 국가와 사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퇴직 후 전주노인복지관에 등록하고 수필 창작, 외국어, 컴퓨터 등을 공부하며 천원짜리 복지관 점심을 먹은 지 2년째다. 나는 이 점심을 ‘천사의 밥상’이라고 부른다. 천원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은 복지관 말고는 아무 데도 없다. 요즈음 물가가 올라서 가장 싼 라면일지라도 간이식당에 들어가려면 이천원은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10여년 전만 해도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고 어머니들은 남편과 자녀들 도시락 준비에 힘겨워했다. 지금은 도시락이라는 말이 사라질 정도로 외식 시대가 되었다. 학교, 직장, 복지관의 구내식당이 일반화되었고, 점심때면 거리 식당마다 분주하다. 그만큼 점심문화는 변화했고, 이제 점심 해결은 사회복지의 몫이 되었다. 더욱이 장애인·빈곤층·노인의 점심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별히 챙겨야 한다.
비록 복지관의 천원짜리 밥상이지만 어느 시중 음식점보다 청결하고 양질의 음식이다. 식당 담당자들의 서비스도 매우 친절하다. 이 시대 노인들은 대부분 청소년 시절 점심을 물로 채우고 공부를 했다. 그러기에 천원짜리 점심밥이 더욱 고마운지 모른다.
나는 천원짜리 밥상이 어떻게 차려지는지 알고 싶었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사회복지사로서 노인복지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만 힘에 겹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과 밥값으로 200여명의 밥상을 차리는데 그중 50여명은 수급자로서 무료이고 150여명으로부터 일반인은 천원, 할인 혜택자는 500원을 받고 있습니다. 자치단체의 지원금과 밥값으로는 부족하여 사회단체와 독지가의 후원금과 물품 및 음식재료 구입처의 복지시설 가격 인하 도움 등으로 어렵지만 식단의 질과 신선도, 안전도 등을 계속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사회복지사·영양사를 비롯하여 자원봉사자들까지 모든 담당자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원가를 낮추려고 반제품 식재료를 구입하여 김치를 직접 담그는 등 음식조리 비용을 최대한 노동력으로 충당하며 청결한 식당 유지, 냉장고 수리 등 시설물 관리까지도 외부 용역 없이 사회복지사들을 비롯하여 식당 담당자들이 몸으로 해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숙연해졌다. 주방에서 1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하얀 모자를 쓴 주방 옷차림으로 웃으며 배식하고 설거지하는 모습이 천사 같다고 느껴졌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명박 정부는 2011년까지 20조원이 넘는 대규모 감세를 해서 고소득자와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대신 복지 지출을 억제해서 계층간에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노인·청소년·취약계층 지원 예산이 지금까지는 연평균 31% 늘었으나 내년부터는 14.1% 늘어나는 데 그친다고 한다.
국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 복지에 있다. 아무리 강력한 무력과 경제력이 있다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이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복지는 군사력 못지않게 국가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정책이다. 국민이 화합하고 행복하면 국방도 경제도 자연히 더욱 건실해진다고 생각한다. 맹자는 좋은 운세나 정책보다 화합이 제일(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글: 은종삼/전 진안 마령고 교장
출처: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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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짜리 밥상
리치코바 조회수 : 550
작성일 : 2008-11-07 2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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