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기억에 엄마 품안에서 자 본 적이 한번도 없는 저.. 엄마는 항상 동생들의 차지였죠.
너무 어려서 기억을 못하는가 했더니 실제로도 저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저 낳고는 어쩐일인지 젖도 나오지 않아서 그 품안에서 젖도 못 얻어먹은 딸이죠.
어릴적에 아플때에도 밤새 옆에서 간호해 준 사람은 할머니였고
학교에 다닐적에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시골 길을 마중나와 기다리고 있던 사람도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가 집에 안 계시던 날은 깜깜한 밤길을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불이 모두 꺼진 깜깜한 집에 대문까지 꽉 잠겨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참기름이며 온갖 야채며 꼬박꼬박 챙겨주시던건 할머니였고
고추를 거두어 곱게 말려서 꼭지를 따고 씨를 빼고 챙겨서 챙겨주고 참깨는 씻어서 볶아서 챙겨주시던것도 할머니였죠.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3년이 넘었습니다.
딸 셋이 모일때면 할머니가 그립다고 같이 살땐 그 잔소리가 지긋지긋하더니 지금은 마냥 그립기만 하다고 얘기합니다. 우리 할머니가 살아계셨으면 갖태어난 누구를 우리는 안아보지도 못했을건데, 우리 할머니가 살아계시면 니네 신랑도 무지무지 이뻐라 하셨을건데.. 그런 얘기를 주고 받죠.
그런데 그 할머니가 우리엄마에게는 아직까지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그런 시어머니 랍니다
시집와서 40년가까이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엄마는 경제권을 넘겨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모든 수입은 할머니께 드렸고 할머니도 그것을 며느리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으셨으니까요.
사람들 사이의 할머니는 경우 바르고 정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저희들도 그렇게 기억하죠.
하지만 한가지 더 기억하는 것은 어쩌다 엄마랑 할머니가 싸우게 되었는데
저희 할머니가 [나가서 살겠다 방 얻어내라!] 라고 우기셔서
엄마가 말리다말리다 결국은 지쳐서 [알아서 하시라. 그렇지만 방은 못 얻어준다] 라고 했답니다. 이건 전해들은게 아니라 딸들인 저희가 옆에서 본 그대루구요.
대충 싸움이 일단락 되고 엄마는 일하러 나가셨는데
할머니가 딸이며 아들이며 전화를 하셔서 거두절미하고 [큰 며느리가 나보고 집에서 나가란다] 라고 했답니다. 당장 고모들이며 작은 아버지며 달려와서 엄마보고 [어떻게 나이많은 노친네보고 집에서 나가라고 하느냐? 나갈려면 니가 나가라] 난리가 났었죠.
그것뿐만 아니라 사실 같은 사촌간에도 저희랑 다른집 아이들이랑 차별도 많으셨고 학업에 있어서도 저희는 공부를 잘 하면 [딸은 공부 잘 해 봤자 간뎅이만 커지고 아무짝에도 못 쓴다] 였고 다른 사촌들은 공부를 잘 하면 [걔는 공부도 잘한댄다] 라며 자랑거리였구요...
살아계실땐 그런 기억때문에 참 미워라 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잘 해 줬던 기억이 남아서 그리워지니 사람마음이 우습죠.
하지만 피붙이인 우리와는 달리 엄마는 그 나쁜 기억들이 절대 잊혀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할머니랑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고모얘기만 나오면 치를 떠는 엄마를 보면서 며느리의 입장과 손녀의 입장은 이렇게 다르구나... 라고 새삼스럽게 깨닫기도 합니다.
아래에서 어느 며느리 얘기를 보다보니.. 문득 우리엄마랑 할머니가 떠오르더군요.
시누이분께서 직접 보셨다면 할 말이 없지만 혹시 어머니께 전해 들으셨다면 무조건 올케를 미워할게 아니라 한번 자초지정이라도 물어보는게 어떨까 싶어요.
우리 엄마는 정이 없고 무뚝뚝한 사람입니다. 할머니는 정이 많고 살가운 분이셨죠. 하지만 그 둘 사이의 일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모르는 거더군요. 우리도 우리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엄마의 주장을 못 믿었을테니까요.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엄마랑 할머니...
.. 조회수 : 365
작성일 : 2008-10-22 13:20:15
IP : 121.127.xxx.231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동의동의
'08.10.22 2:26 PM (61.66.xxx.98)저도 노인분들이 말씀을 좀 과장 왜곡해서 하소연 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며느리가 비정상 적으로 학대한다고 말씀하시는 노인을 보면
우선 판단을 멈춤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직접 보기전까지는 흠...그렇게요.
그글에 첫번째로 원글님 비슷한 내용 달았다가 반박 댓글도 봤는데요.
(그래도 예상보다는 돌이 덜 날아와서..가슴을 쓸어내렸네요.)
그저 노인 분들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구나...그리 생각했어요.
노인분들 다 그러신건 아니겠지만,
당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러시면 서러워서 그러신지
감정이 증폭되면서 며느리는 별뜻없이 혹은 좋게 한말인데,
아주 못된년으로 둔갑시켜서 남에게 전달하시더군요.
제가 너무 이상한 노인어르신들만 본건지...2. 저두
'08.10.22 3:31 PM (211.255.xxx.142)윗글..
노인분들 다 그러신건 아니겠지만,
당신이 기대하는 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그러시면 서러워서 그러신지
감정이 증폭되면서 며느리는 별뜻없이 혹은 좋게 한말인데,
아주 못된년으로 둔갑시켜서 남에게 전달하시더군요.
제가 너무 이상한 노인어르신들만 본건지...
그래서 콩가루 집안 된것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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