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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에 대한 경험(제4글)

사랑이여 조회수 : 889
작성일 : 2008-10-20 15:20:07
면회하는 동안 시간은 냉혹하게 정해져있었다.
그래서 갈 때마다 미리 미리 메모장에 할 말들을 기록해두었다가 말해주곤 했다.
여러 선생님들에게 각 과목의 책을 부탁하여 구한 뒤 두 달여 남은 학력평가시험 준비를 하도록 책을 넣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두 달이 훌쩍 지나갔다.
말이 두 달이지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일이 손에 잡힐 정도였을까.
자식이 물가에 빠졌는데 잠이 잘 오는 부모님도 계실까.

어머님의 간절한 바람이었을까 '조'는 두 달만에 풀려났다.
헬슥한 얼굴에 힘도 없어보였다.
하지만 '조'는 분명 교실로 돌아왔다.
반 아이들은 그가 가출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학력평가시험날이 다가왔다.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최선을 다하라는 말뿐...

시험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대학원서를 쓰는 기간이 되었고 반 아이들은 모두가 원서를 내느라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원서 마감날이 다 되어도 '조'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집에서 자고 있었단다.

원서 내야지?하고 물으니 재수를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단 학교로 오라고 했다.
재수를 해도 만나서 내 이야기들어보라고...

기회는 돌아오는데 1년 걸린다 그럼 기회를 이용해보자고 설득했다.
빈손으로 온 아이에게 돈을 쥐어주고 막도장을 파오라고 시키고 그 사이 원서에 붙일 사진을 교무수첩에서 한 장, 생활기록부에서 한 장, 학생부에 비치된 명부에서 한 장을 떼어내 원서에 있는 힘을 다해 '붙였다'.

그리고 면접날이 다가왔다.
그래서 아이에게 양심에 거릴 낄 틈도 없는 거짓말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사고결이 많아 분명히 왜 결석한 날이 많느냐고 물어볼 것이 뻔하기 때무이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5등급밖에 나오지 않아 책을 싸들고 가출하여 산사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더니 부모님과 선생님이 어떻게 알음알음하여 찾아와 걸려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랬더니 면접 교수가 웃으면서 "대학에 합격하면 안 그러겠지?"

그래서일까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사진을 붙일 때 힘을 다해 붙였다 ---> 붙었다^^)

그는 군대에 가기 전에 나를 찾아와 꾸벅 인사를 했다.
등을 토닥이면서 응원을 했다. 늘 건강하기만을 바란다고...
술먹고 토했던 날 등을 토닥거려준 뒤 두 번째이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결혼한 뒤 아이들을 둘 두었단다.
제자 부부를 만나 같이 식사하면서 '조'에 대한 과거사를 말할 수는 없었다.

담임하면서 느낀 것은 착했다고....
공부 잘했다고...
의지가 뛰어나다고....

하는 사업도 잘 된단다.
아이들 잘 키운단다.
아내도 많이 사랑한단다.
술잔을 기울이면서 '조'는 군대간 이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15여년동안의 이야기에 나는 감동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잘 살 녀석인데... 철없던 시절이 큰 밑거름이 되었구나!"

(끝)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고맙습니다.
IP : 210.111.xxx.130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8.10.20 3:25 PM (211.176.xxx.178)

    좋은 선생님을 만난덕에,,,,, 그만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2. .
    '08.10.20 3:26 PM (119.203.xxx.7)

    우울했던 과거가 있었더라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 어느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군요.
    아이가 아직 고등학생인 학부모인데
    그래도 좋은 선생님들 많습니다.

  • 3. ..
    '08.10.20 3:29 PM (211.108.xxx.50)

    제가 다 감사하네요... 애쓰셨어요..

  • 4. 어른의 힘
    '08.10.20 3:37 PM (121.149.xxx.110)

    얼마전 EBS다큐 러시아의"벽안의 아이들"이란 작품이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소년원에서
    생활하면서 가족의 사랑을 갈구하는 인터뷰 한 부분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믿어주고 끝까지
    사랑해주는 부모가 가족이 있는 아이들은 밝은 미래를 생각하고 자기가 버려졌고 일체 면회도
    없는 아이들의 눈빛은 불안하고 상당히 경직돼 있는 모습을 보고 한때 아이들이 잘 못 했더라도
    용서하고 보듬어 주는 사회, 어른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습니다.
    이혼으로 아이들은 삶의 전부를 지배 할 수도 있는 어린시절의 상처를 떠안게 될까봐
    너무 안타까워요... 좋을 글 잘 봤습니다...

  • 5. 감사해요
    '08.10.20 3:50 PM (210.217.xxx.131)

    교육자의 위신이 땅에 떨어져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요즘 시대...
    더군다나 방황이 많은 고등학생...
    아직 사랑이여선생님 같으신 분이 있어 우리 아이들이 숨쉬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6. ^^
    '08.10.20 10:33 PM (59.31.xxx.137)

    어둠에 빠져 헤어나오기 힘든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고통을 나누며 밝은 길로 선도해주시어 감사드려요
    아이들은 누군가가 믿고 있어야지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되는것같아요
    제 아들도 몇달간 과도를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만일 경찰에게 잡히어 소지품조사를 받게되면
    잘못한게 없더라도 무기혐의소지자가 되는거라고
    그렇게되면 너를 잘못키운것밖에 되지 않겠냐고...
    네가 이러면 엄마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니 한참을 울더군요...
    아이들이 크는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올수없는 중요한 시기이지요
    대부분 부모의 언행을 보면서 아이들이 반항을 하는건데
    아이때문에 잘못된 마음도 스스로 더 돌아보게 됩니다

  • 7. 한 편
    '08.10.21 6:30 PM (219.254.xxx.34)

    한 편 읽어 왔었습니다.
    저는 저희 아이들을 아직은 중학교까지 밖에 안 보내 봤지만
    그동안 물론 훌륭하신 선생님들도 계시긴 했지만
    정말 선생 자격없다 싶은 선생님들이 더,훨씬 많았습니다.
    저희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자랑이 아니라 저희 아이들은 아주 모범생입니다.)

    원글님은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셨네요.
    물론 지금도 그런 훌륭한 선생님이시겠지요.

    저도 저희 아이들 선생님들 겪으며
    내가 만약 선생이라면 학생들에게 정말 멋진 선생이,나중에 찾고 싶은 선생이 될턴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조군도 원글님같은 선생님을 만났었기에 지금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원글님,앞으로도 예전처럼 학생들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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