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일본 젊은이들의 역사 인식이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K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조선, 중국, 동남 아시아에서 나쁜 짓을 한 것은 인정해요. 학살하고 강간했지요. 하지만 남경 대학살이 정말로 중국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대' 학살이었는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어요. 또한 살인과 강간은 어느 전쟁에서든 있어 왔죠. 나쁜 것은 무엇보다 전쟁입니다."
다음은 H군의 견해이다. "기미가요의 문제점은 먼저 가사에 군국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 점이겠지요. 하지만 더 곤란한 점은 때때로 공적인 장소에서 부르도록 강제되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좋아서 부르는 것이라면 문제 되지 않을 테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상과 같은 역사 인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한결같이 화해, 공존, 평화를 희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가 보기에 그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역사 교육이란 것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역사란 그것에 의해 자신이 규정되는 자못 무거운 것이 아니라, 한없이 가벼운 것, 예컨대 "역사"와 "이야기"가 동음이의어인 프랑스어와 달리, 일본에 있어서의 역사란 이야기의 이음동의어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역사와 그들이 생각하는 역사는 같지 않다. 소위 '디스쿠-르'가 다른 것이다. 이를 넘어서는 대화의 시도는 솔직히 내게 버겁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 가치를 인정하는 현재와 미래의 인식을 위해서라도 보편적인 역사 인식은 필요 불가결하다. 그리고 인식이 보편적일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사실에 근거해 있지 않으며 안 된다. 그래야만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등 교육의 현장에 있어서도 일본의 학생들은 증언과 증거가 가리키는 비참했던 과거의 문제보다는 그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먼저 배운다. 즉, 포지티브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즉 역사란 믿을 수 없는 것, 역사란 표상 불가능한 것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 배후에는 현대 과학의 배경이 되는 버클리류의 '감각주의'와 '검증주의'를 교묘히, '불확정성의 원리'를 무리하게 이용하는 모종의 불순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연과학의 논리와 역사의 논리가 전적으로 동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자연 현상처럼 되풀이 되는 일련의 요소가 있는가 하면, 그런 식으로 추상화 될 수 없는 디테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러한 디테일이야말로 자연과학의 경우와 달리 역사 기술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전쟁 일반의 추악성이라기 보다 남이 아닌 바로 당신의 선조가 전쟁을 일으켜 바로 우리들의 선조가 그에 따른 구체적인 아픔을 겪었다는 디테일에 있다. 그리고 역사 기술이 그런 구체적인 아픔을 표상할 수 없다면, 다시 말해 기술이 사실에 못미치는 기술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면, 적어도 그 표상 불가능성 자체를 표상하는 기술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로 될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회의주의로부터는 사실과 허구의 중간 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갈 뿐이다. 보다 건전한 회의는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마저 견뎌내며 사실과 증언, 증언과 기술의 차이를 간파하고 그 간극을 보완하기 위한 회의를 거듭해 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예의 불순한 의도를 걷어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실은 따라야 할 것이기도 하지만 지켜가야 할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사실은 사실로서 믿어져야 하고 그 믿음은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혹시 부족한 점이 드러났다면 그 사실(史實)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철저한 회의와 수정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그저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라면, 당장에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사실이라면, 그것을 무시해도 좋다는 태도로부터는 결코 싹틀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일본 우익의 사관은 비판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남의 잘못을 탓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가 깨끗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 학계가 그런 도덕성을 겸비하고 있는가 하면 나는 선뜻 그렇다고 답을 할 수가 없다.
독도 문제와 같이 정치 외교적 문제와 복잡히 얽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다년간의 경험에 따르면, 독도 문제의 메카니즘은 두 나라 정부가 마치 독도라는 한 장의 카드를 공유하고 있어, 일본이 이를 뒤집으면, 다시 한국이 이를 뒤집고, 그 사이 양국 국민들의 관심은 그런 단순하지만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게임에 집중되어 상대적으로 사소한 것들로부터 관심을 거두어들이는 수순을 밟도록 되어 있다.
더구나 아직도 한일통상수호조약의 진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한일공동수역의 협정문은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석연치 않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지 순진한 얼굴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사실의 주장이란 본질적으로 그런 석연찮음이나 정치 게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라는 점에 있어서,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을 비-사실로 만드는 사실의 유무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우리가 독도를 일본에 주었다는 확실한 사실의 증거, 그리고 일본이 독도를 받았다는 확실한 사실의 증거가 널리 인정되고 있지 않는 한, 우리는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도의 미래는 밝은가라고 한다면, 결코 그렇지도 않다. 이는 국경 및 영유권의 결정이라는 특수한 사실의 문제가 그 성격상 여느 사상보다도 자의적이며, 그 자의성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때때로 경제 및 군사력을 동반하는 외교의 논리, 즉 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바로 이 점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일본에 뒤떨어져 있다. 이는 곧 지금 일본이 언제라도 예의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는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이런 시점에서 불거져 나온 독도 문제는 여느 때처럼 유야무야 사그러들 수 있을 것인가.
혹여나 작금의 사태를 속이 검은 자들이 내수 정치용으로 안이하게 이용하려 든다면, 그들은 얻을 것은 적고 잃을 것은 너무 많은 도박에 걸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착각의 원인은 무엇보다 위험천만한 게임의 상대를 일본이 아닌 국민으로 상정한 탓에 있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이 와닿네요.
일본이 아닌 국민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는 속이 검은 자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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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퍼온 글입니다. 역사의식에 대해
지인미니홈피 조회수 : 330
작성일 : 2008-10-17 00:43:41
IP : 58.143.xxx.187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아꼬
'08.10.17 1:56 AM (125.177.xxx.145)마지막 말이 팍 와닿네요. 학살과 강간이 나쁘지만 전쟁이란 게 원래 그래서 사실은 전쟁이 나쁜거다가해자의 협의를 다 벗겨주는 포섭이 깔린 말이네요. 맞는놈은 잠 못자는데 때린 놈은 타협과 논리에 능하고 치밀하며 집요하네요. 너무 속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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