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국사회]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 박수정
야!한국사회
» 박수정 르포작가
아는 사람 이야기다. 그이는 한 직장에서 오래 일했다. 아이를 낳고는 살림과 육아를 도맡았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뒤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구인광고를 낸 곳은 죄다 파견업체였다. ‘정규직’ 일자리는 없었다. 무얼 고를 여지가 없었다. 파견업체 사람을 만나 바로 일할 회사에 가서 면접을 보고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정작 자기가 속한 그 파견업체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한 회사에서 일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서로 말도, 눈길도, 밥도 나누는 일이 없었단다. 나는 그이에게 “정말이냐?”고 물었다. 만나면 왔느냐고, 반갑다고, 안녕하냐고 고개 까딱이는 인사조차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규직에게 그이는 ‘우리’ 회사가 아닌 파견업체, ‘다른’ 회사 직원이었다. 개인이 착하고 예의바름의 문제가 아니다.
월급날이면 회사에서 파견업체에 월급을 보낸다. 그러면 파견업체가 일부를 떼고 그이 통장으로 70만원쯤 넣어준다. 일당 곱하기 일한 날짜가 전부다. 이해가 안 됐다. 누군가는 거저 돈을 번다는 사실이. 파견업체가 뗀 돈은 고용회사에서 덧붙여 준 걸까, 아니면 노동자 몫에서 빼앗아 준 걸까. 음모와 공모가 있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이는 재계약을 앞둔 사람들이 불안해하다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재계약을 않는 건 달리 말하면 일방적인 부당해고다. 널린 게 사람이라는 듯, 파견업체를 통해 새로 공급되어 오는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열악한 조건에 일주일도 안 되어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다. 그이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6개월마다 재계약에 성공한 그이가 일한 지 어느덧 2년을 앞두었을 때다. 이번에는 재계약이 힘들겠지 했단다. 회사가 집과 가까워 차비나 점심값을 아낄 수 있어 열심히 일한 그이였다. 적더라도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은 무언가 계획하며 살 수 있게 해준다. 돈도 돈이지만 사회에서 할 일이 있다는 게 그이는 좋았다. 그런데 재계약이 안 이루어지면 2년 동안 익숙해진 일을 바꿔 낯선 회사에서 낯선 일을 시작해야 한다. 낯섦 따위는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재계약을 했다. 그런데 조건이 붙었다. 2년 경력은 무시하고 다른 지점에 새로 입사하는 거였다. 불리한 조건에 자존심도 상하지만 그래도 2년간 해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고, 아니 감사하며 그이는 일을 다닌다.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러니 한 직장에서 십수년 일하면서 회사 이름만 몇 번씩 바뀌는 일이 있는 것이다. 파견업체든, 파견업체를 통해 노동자를 공급받는 회사든 그이들은 노동자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금속노조, 사회단체와 촛불시민들이 오는 23일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만인 선언, 만인 행동’을 제안하고 나섰다. “우리 시대 차별과 고통의 원인, 냉혈·야만 사회의 상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말하며, “현행 법제도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완전한 무권리 상태, 실질적인 노예 상태”에 놓여 있다고 그이들은 진단한다.
내가 아는 이가 자기 의지대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는” 세상은 가능할까.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에 저항 한 번 못 하고 오늘, 일한다. 누구나 ‘문제’인 줄 알지만 쉽사리 해결하려 들지 않는 비정규직 문제. ‘만인 선언, 만인 행동’은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이 시대 ‘꿈’에 관해 말을 걸지 싶다. 귀를 기울여야겠다.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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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 박수정
리치코바 조회수 : 138
작성일 : 2008-09-16 06: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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