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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선생의 <행복을 배우는 경제수업>을 읽고

리치코바 조회수 : 263
작성일 : 2008-09-08 07:54:55
땅콩 선생의 <행복을 배우는 경제수업>을 읽고  

    안준철 (jjbird7)  





  
  
▲ <행복을 배우는 경제수업> 표지  
ⓒ <우리교육> 홈페이지  경제수업



가을과 경제, 두 단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요, 수확을 해서 장에 내다 팔면 돈을 벌게 되고, 그러면 당연히 가정 경제가 좋아지겠고… 하는 식으로 조잡하게 갖다 붙이면 모를까, 두 단어의 조합은 아무래도 생뚱맞아 보인다.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평범한 말로는 부족하다. 오늘도 나는 집을 나서기가 무섭게 마치 연극배우가 관객들 앞에서 다소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대사를 읊조리듯 "아, 가을이야!"하고 나도 모르게 외쳐댔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나는 가을이라는 이유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런 나의 조금은 유별난 가을에 대한 감수성이랄까, 낭만적인 취향이랄까 하는 것이 경제라는 단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 나로 하여금 이런 조금은 엉뚱한 생각에 빠지게 한 책이 바로 최근에 읽은 <행복을 배우는 경제수업>(박현희 지음, 우리교육 펴냄)이다.



땅콩 선생의 사회 수업, 정말 쉽네



저자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렇다고 내내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를 기억한 것은 '땅콩 선생'이라는 그녀의 별명(혹은 호칭) 때문이었다. 책은 가벼운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된다.    


땅콩 선생은 3년째 재즈댄스를 배우고 있다. 그동안 이런 대화가 수없이 반복되었다.

아무개: 뭐하려고? 배우면 뭐가 좋은데?

땅콩 선생: 특별히 어디 써먹으려고 배운 건 아니야. 그냥 재미있어서.

아무개: 살 빼려고?

땅콩 선생: 아니, 일주일에 한 번 배운다고 살 빠지지는 않아.

아무개: 잘해?

땅콩 선생: 아니.

아무개: 그런데 왜 배워?



땅콩 선생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재즈댄스를 하는 동안 땅콩 선생이 재미있고 행복한지를 묻지 않고, 그것을 배우면 뭐가 좋은지, 어디에 써 먹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효용이다.(10쪽)



백번 옳은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효용이다. 그러다보니 나도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가을의 효용'을 굳이 들먹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난 가을을 무지 좋아하거든. 가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행복한 거야.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비싼 돈을 주고 명품도 사고 술도 마시고 그러는 거잖아. 근데 난 그럴 필요가 없는 거야. 왜? 난 가을에는 그런 거 안 해도 행복하거든. 얼마나 경제적이니?"



땅콩 선생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왜 사회 과목을 배우는 걸까? 요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교사는 드물다. 그 이유는? 모두들 잘 알고 있을 테니 생략하기도 한다. 입시교육 운운하며 말을 꺼내다 보면 아무런 대안도 없이 화만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으니까.



아이들은 왜 사회 과목을 공부할까



하지만 땅콩 선생은 그럴 수 없었다. 학생들이 사회 과목을 배우는 이유를 꼭 알아야만 했다. 그만큼 땅콩 선생이 훌륭한 교사라서?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그녀에겐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땅콩 선생은 동료교사들과 마찬가지로 공부에 태만한 학생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자주 써 먹는 말이 있었다.



"너 이것도 몰라서 어떻게 대학 가려고? 이거 수능에 잘 나오니까 꼭 알아야 해!"



교사가 그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아니꼽고 치사해도 교사의 말에 설득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는 가야 하니까. 문제는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이었다.  



"전 대학 안 갈 건데요."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 한 마디로 '게임 아웃'이었다. 더욱이 땅콩 선생은 실업계(전문계)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이 아이들이 사회를 배우는 이유는 뭘까? 뭘 배워야 아이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내가 두 시간 넘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읽었던 <행복을 배우는 경제수업>은 결국 이런 저자의 고민의 산물인 셈이다.



고민의 산물이긴 하지만 저자의 어투는 시종일관 발랄상큼하다. 이 책의 미덕은 그런 발랄상큼한 일상의 언어로 우리의 허를 찌르면서 자칫 흘려버리기 쉬운, 그러다 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십상인 중요한 생의 문제들을 상기시키는 데 있다.



'우리는 왜 사랑하는가? 그 사랑 때문에 심장이 오작동할 것 같은 숨 막히는 경험이 없어도 우리는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데, 왜 사랑이라는 것을 할까? 왜 내 아이를 보며 가슴이 저미도록 사랑을 느끼는가? 우리는 왜 의리를 지키나? 우리는 왜 자선을 베푸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일일수록 그 일의 효용은 떨어진다. 그냥 그 자체로 좋을 뿐이다.(12쪽)'



땅콩 선생 박현희 교사는 고등학교 교과서 <사회문화>와 <정치>를 썼고, 사회교과모임 도반 선생님들과 <땅콩 선생, 드디어 인권교육하다>(우리교육)를 펴낸 바 있다. 이런 화려한(?) 경력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가 독자에게 건네는 말투는 소박하고 다정다감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주장은 단호하고 견실하다. 외유내강이라고나 할까?  


아이들이 소비자가 아닌 시민이 되기를 원하는 박 교사는 수식과 그래프 속에서 실종되어 버린 정치, 사회, 문화 현상을 찾아 사회 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 그러한 이해에 기반하여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 그리하여 경제 분야에서도 바람직한 민주시민으로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경제교육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돈 없이 1주일 살기, 1000원 이상 돈 벌기



이를 위해 땅콩 선생은 '온 몸으로 배우는 경제' 수업을 시도한다. '10억 만들기'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일주일 동안 돈 없이 살아보기' 체험을 수행평가로 제시한 것이다. 박 교사는  수업기획 의도를 이렇게 말한다.      



'돈 없이 살아보기 체험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소비중독 사회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소비생활 자체를 삶의 현장에서 되돌아보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돈을 쓰고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일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진 학생들이 자신의 소비생활을 성찰하기 위해서는 그것 자체를 낯설게 보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소비를 끊도록 한 것이다.(59쪽)'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그런 교사의 요구를 순순히 따라줄까? 수행평가를 통해 점수가 부여된다고 해도 교사의 눈을 속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그래서 남다른 교육이상을 가진 교사일수록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선행자의 지혜를 고스란히 배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런 구체적인 사례들을 지면관계상 다 적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다음은 한 학생이 제출한 경제 체험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이다.


4월 3일 월요일



택시를 타면 절대 안 된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하고 잠이 들었건만 늦잠을 자버렸다. 그래서 택시를 탔는데 2200원이 나왔다. 돈을 내는 데 너무 아까웠다. 요즘 들어서 지각할까봐 택시를 자주 탄다. 탈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아깝다. (…) 오늘 학교 끝나고 야자시간을 대비해 집에서 계란과 음료수를 사왔었다. 이걸 먹고 학원에 갔다가 집으로 왔다. 오늘 지출 금액 2200원


돈 없이 살아보기 체험을 마치고 느낀 점



일주일 동안 돈을 안 쓴다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는 지켰다. 단순한 군것질 때문에 돈을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정말 뿌듯하다. 이번 주 매점에 가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평소에도 가고 싶을 때마다 가기 때문에 정말 돈을 많이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도전 기간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나태해지거나 낭비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도전을 되새기면서 아낄 줄 모르고 함부로 낭비하는 태도를 고칠 것이다.(66쪽)



경제 체험 활동은 제시된 몇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할 수 있도록 했다. 그중 '1000원 이상 돈 벌어보기 체험기' 내용이 압권이다.



'구두닦이가 전에는 천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공부 못하면 하는 직업?!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구두닦이라는 직업도 그 나름대로 큰 뜻을 가진 것 같았다. 구두를 닦을 때 한 동작 한 동작 할 때마다 정말 얼마나 큰 정성을 쏟아야하는지 이제야 할 것 같다. 구두 닦기에도 고귀한 장인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솔의 움직임이 정말 멋 있다.(73쪽)



글쓴이는 학생들의 글을 소개하며 최종적으로 이렇게 평가했다.



'학생들은 이 체험을 통해 돈 벌기가 정말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전에는 머리로 알았지만, 이제는 몸으로 깨우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렇게 힘들게 번 돈을 불우이웃돕기와 같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쓰거나 학용품을 마련하는데 쓰는 학생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힘들게 번 돈이니 값지게 쓰고 싶다'는 의식이 작동한 결과일 것이다.'


<행복을 배우는 경제수업>총 6장으로 되어 있다. 지면관계상 생략한 쟁점 토론, 책 읽고 독후감 쓰기 등은 '요즘 아이들'과의 소통에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아이들과의 소통의 핵심은 '긍정과 신뢰'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다만, 책을 읽다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학교는 박 교사의 수업을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학생들의 사회 점수보다는 그들이 사회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진짜 사회 실력을 키워주는 일에 더욱 힘쓴 박 교사는 과연 학교에서 이에 합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행복을 배우는 경제수업/우리교육/박현희 지음/7,000원

출처: 오마이뉴스
IP : 123.215.xxx.86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리치코바
    '08.9.8 8:03 AM (123.215.xxx.86)

    혹시 "83쿡닷컴"의 회원 자녀들의 선생님들 중, 위의 "박현희" 선생님 처럼 훌륭한 분이 계시면 추천 좀 해주세요! 인터뷰를 하여 기사화 할수 있도록요! "박현희" 선생님께도 제가 다시 취재하러 갈려고 합니다! 말없이 교단에서 평교사로서 "진정한 사도"를 실천하는 선생님이 계시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 가겠습니다! 적극 추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2. 리치코바님
    '08.9.8 9:21 AM (118.45.xxx.192)

    좋은글 옮겨주셔 읽어봄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한페이지에 주루룩 다섯개의 글은 좀 보기가 그렇습니다.^^

  • 3. 에헤라디어
    '08.9.8 10:21 AM (220.65.xxx.2)

    리치코바님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해서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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