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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우리 교육은 ‘변태’다

경향사랑 조회수 : 233
작성일 : 2008-08-21 18:20:26
[판]우리 교육은 ‘변태’다
입력: 2008년 08월 20일 17:53:19  경향신문
  


지난 한 달간 독일에서 짧게 어학연수를 받고 왔다. 첫째 날 분반시험을 치르고 둘째 날부터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무도 분반시험의 결과와 내가 속한 반의 수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담당자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맞춰 수업을 하려고 반을 나눈 것이지,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가리기 위해서 반을 나눈 게 아닙니다. 그런 걸 몰라도 수업을 받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요”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후 한 달간의 연수가 모두 끝나고 최종 시험을 치르는 날, 애매한 문제를 발견한 나는 담임교사에게 문제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문제 출제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이 문제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가르쳐주고, 내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말해 주고 갔다. 직접적으로 답을 가르쳐 준 것은 아니지만 답을 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였다. 나는 혹시 옆 사람들이 듣지 않았는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는 부정행위가 되고, 주변 사람들의 항의를 받을 수 있지 않은가? 곁눈질을 했지만 아무도 이쪽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해서도 그때 받은 성적표를 볼 때마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교육 관련 강연회에서 핀란드 학교 이야기를 듣고는 그때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핀란드의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 도중 학생이 교사에게 가서 질문을 했는데, 교사는 당연한 듯이 문제를 설명해주고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간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시험시간에 왜 설명을 해줍니까?”하고 묻자, 교사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시험시간이라고 해서 교육을 해서는 안된단 말입니까?”

한국에서와는 확연히 다른 이러한 차이는 시험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내가 배운 것’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에서는, 시험시간이라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내가 몇 등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옆 사람에게 가르쳐준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내 등수가 떨어지고, 원하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러면 사회에 나가서 내 연봉이 달라지니까. 아니 연봉 이전에, 아이는 성적에 대한 엄마의 추궁을 마주해야 한다.

프로이트는 변태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번식을 위한 성행위에 이르기까지는 직접적인 성행위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요소들이 있는데, 그 주변적인 요소들을 본격적인 행위의 목적으로 삼고 집착하는 것이 변태라고. 잘 빠진 빨간 하이힐은 누구나 섹시하게 생각하지만, 하이힐만 끌어안고 사는 건 변태다. 그런 식으로 보면, 오늘날의 한국 교육은 굉장히 변태적이다. 배운 걸 확인하려는 게 시험의 목적이고, 그것은 더 큰 배움을 위한 수단일 뿐인데, 우리는 시험 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나아가 시험만을 위한 공부를 한다. 예를 들면, 수능 언어영역의 ‘쓰기’ 부분은 실제로 글을 쓰는 행위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 ‘쓰기’ 능력을 평가받기 위해 학생들은 글을 직접 써 보는 것이 아니라 글의 구조를 맞추는 문제들만을 지독히 많은 시간을 들여 풀어내야 한다.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들을 경쟁시켜야 한다고 했다. 경쟁의 계기를 제공하고 경쟁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자주 봐야 하고, 명료하고 간편한 사지선다형 시험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은 점점 더 ‘변태적으로’ 변해갈 것이다.

얼마전 강남에서 교육 환경 악화를 이유로 임대아파트 건설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렇게 중요하다는 ‘경쟁’을 저소득층 아이들은 해 볼 기회도 얻지 못하고 내쳐진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경쟁이 어떤 것인지, 그 경쟁 안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변해갈지 짐작할 수 있다. 정말이지 내가 이렇게 변태적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이응소|‘학벌없는 사회’ 활동가·대학생>
IP : 211.187.xxx.205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공정x
    '08.8.21 7:46 PM (210.123.xxx.190)

    대지머리 모습 볼려니 정말 짜증나네요. 갈데까지 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교육마저 이렇게 무한경쟁속으로 몰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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