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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쓴 맛' - 오늘 한겨레 컬럼입니다.

;; 조회수 : 509
작성일 : 2008-08-08 11:49:26
한 번 읽어보세요.






[아침햇발] 조직의 쓴맛 / 여현호
  

» 여현호 논설위원  

  

1993년께 어느 날이다. 검사 방을 돌며 취재 중이던 <조선일보> 기자와 <한겨레신문> 기자가 서울지검 강력부 홍준표 검사 방에 함께 앉았다. 이런저런 한담 끝에 기자의 구실이 뭐냐는, 다소 치기 어린 토론이 벌어졌다. 한겨레 기자는 비판적 지식인 또는 지사라고 말했고, 조선일보 기자는 정보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일보에 앞서 한겨레신문 입사시험에도 응시했던 이였다. 그때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 속에선, 30대 초반 두 젊은 기자의 엉성한 논쟁을 지켜보던 홍 검사의 묘한 웃음이 더 선명하다.
다시 그때의 논쟁을 되풀이하자는 건 아니다. 언론한테 비판 기능이 우선인지, 콘텐츠 생산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부터 조금씩 바뀐 마당이다. 기자가 권력을 감시하는 지식인인지, 정보를 다루는 월급쟁이인지도 상황이나 처지 따라 달리 느껴질 게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직 따라 사람이 변한다는 점이다. 생각의 거리가 멀지 않았던 이들이 다른 분야나 다른 조직에서 몇 년을 보낸 뒤 만나게 되면 서로 달라진 면모에 아득해하는 경우가 많다. 생존과 인정의 욕구는 자신을 그 조직의 문화에 깊이 동화되게 만든다. 학생 시절 욕하던 신문사에 들어간 이가 어느새 그 신문을 열렬히 옹호하는 모습도 자주 봤다. 언론만이 아니다. 정당을 예로 들자면, ‘골수 운동권’ 출신은 사실 한나라당에도 많다. 그들을 누구보다 ‘한나라당스럽게’ 만든 것은 조직의 논리다.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그 논리를 체화해야 한다. 그런 일이 쌓이다 보면 그 조직의 애초 적통보다 더한 ‘오버’도 하게 된다. 그런 예는 한둘이 아니다.

조직은 인정과 배제를 통해 그 논리를 구성원들에게 강요한다. 조직의 요구를 따르면 승진·영전·공천 등을 베풀고, 그러지 않으면 ‘물먹인다’는 게 분명해지면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때 기개를 내세웠던 검사들이 온갖 조롱을 다 받으면서도 논리와 격에 맞지 않는 억지 수사를 계속하는 이유도 딴 데 있진 않다.

조직 문화가 강하기에는 언론도 손꼽힌다. 1990년 조선일보에선 편집권 독립과 사원지주제를 내건 초유의 노조 파업이 벌어졌다. 그 파업 뒤 노조는 회사의 강한 관리를 받게 됐고, 주도한 이는 몇 년 홀대 끝에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런 패배의 기억은 넓고 깊게 새겨진다. 그 때문에 후배들이 자신을 정보원이라고 자조하게 된 건 아닐까.

같은 해 4월 <한국방송>(KBS)에선 노태우 정부가 임명한 서기원씨의 사장 취임을 반대하는 노조 파업과 제작 거부가 벌어졌다. 두 차례의 경찰 난입으로 500여명이 연행되고 20여명이 구속됐다. 92년에는 <문화방송>(MBC) 파업으로 165명이 연행되고 7명이 구속됐다. 하지만 이들에겐 그 일이 패배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렇게 90년대를 관통한 방송 민주화 투쟁이 ‘땡전 뉴스’를 사라지게 하고, 오늘의 할말 할 수 있는 방송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그때의 주역들은 지금도 방송을 이끌고 있다. 조직의 논리를 강요하는 정권에 맞서, 노조를 비롯한 또다른 조직과 문화가 건강하게 살아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다시 조직의 논리를 들이대려는 이들이 있다. <와이티엔>(YTN) 노조에 대해선 형사처벌과 징계를 불사하겠다는 회사 쪽 위협이 나왔다. 노조 무력화를 노린 것일 게다. 정부 쪽 실력자는 한국방송을 두고 ‘곳곳에 박힌 정연주 패밀리’를 뽑아내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의 측근인 유력한 사장 내정자에게 줄을 댄 이들도 이미 공공연하다고 한다. 그들은 정말 조직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인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IP : 211.244.xxx.58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8.8.8 11:49 AM (211.244.xxx.58)

    위 기사 링크합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03009.html

  • 2. ..
    '08.8.8 1:14 PM (219.255.xxx.59)

    잘 읽었씁니다..
    요즘 제가 넘 유식해지는 것 같아요 ^^;;;

  • 3. 커다란무
    '08.8.8 2:05 PM (118.39.xxx.120)

    몇몇 실권자들 빼곤 나머지 우리 국민들은 건강하죠...건강한 사람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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