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보아야 한다!
논가외딴우물
비가 온 몸을 적시는 날 오후, 영등포 로터리에는 전경 버스들이 줄줄이 서 있고 민주노총 건물 앞에는 버스뿐 아니라 비에 젖은 전경들이 울타리를 만든 가운데 시민들과 노조원들이 건물 입구를 에워싸듯이 앉아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게 2008년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보아야만 하는 모습인가 하는 생각에 꿈에서 깬 듯 아연해지기까지 한 날, 여의도에서 참 귀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KBS 앞에도 전경 버스가 입구 계단 앞 도로는 물론 담장을 따라, 그 것도 인도 위에까지 전경 버스들이 올라서서 벽을 만들고 있는 가운데 촛불을 든 시민들은 삼삼오오 주변 공원 등에서 누군가 돌리는 따뜻한 커피 한잔에 울분을 토하고 있더군요.
그 와중에 어린 학생 한 명이 화제거리가 되어 있기에 만나 보았습니다.
대구의 한 중학교에 재학중인 3학년 학생으로 전교 부회장까지 하고 있다는 학생이 컵라면 하나를 비우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가가 나눈 이야기를 축약하여 옮깁니다. (혹시나 몰라 이 학생의 성도 밝히지 않기로 하고……)
“너 공부 잘하냐?”
(혹시나 못하는 공부, 하기도 싫은 김에 저지른 서울 나들이 불장난일지도 몰라 이야기에 앞서 대뜸 이 것부터 물었다)
학생: “잘 못하는데요? 그래도 전교 부회장 정도는 하고 있어요.”
(신상부터 묻지 않을 수 없어 이름, 사는 동네, 가족 관계, 전화번호 등을 먼저 확인했다.)
“그래 부모님 허락은 받고 올라 왔니?”
학생: “예 허락 받고 올라 왔고, 고시원에 방도 얻어 놨어요. 8월 19일까지 있을 겁니다.”
“숙소는 얻었다니 그렇고 그럼 식사도 해야 하고 용돈도 필요할 텐데 준비는 되어 있고?”
학생: “예, 부모님께 받아 왔어요”
“너희 부모님 나름 대단하시다. 나도 아이가 셋인데 서울 안이라도 하루 저녁 내보내는 것을 주저할 텐데 너와 이야기하다 보니 오히려 너희 부모님이 먼저 보고 싶구나. 그래 어떤 동기로 서울에 와서 촛불집회의 현장들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지?”
학생: “원래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학생 인권에 관심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 대구지역 촛불집회의 운영진으로 참가도 했고요, 또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알게 되면서 시민들이 경찰 진압에 당하는 것을 보면서 울분도 느꼈고요……”
“학생 인권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관점에서 학생의 인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학생: “뭐라 그럴까? 학생이 잘못이 없더라도 선생님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면 학생으로서는 감수해야 하는 불공평한 문제들도 많잖아요”
(아마도 관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제 관계에서의 불평등한 사례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럼 그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혹시 정치에 관심이 있니? 또는 특별히 기억하거나 좋아하는 정치인이 있다거나……”
학생: “그런 것은 없고요”
“대구라면 원래 2.28 대구 학생 민주화 운동 등. 민주주의 운동의 시발점이었을 정도로 야성이 강한 도시였지만 근래 들어 한나라당의 아성으로 남아있기도 한데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학생: “대구 사람들도 이명박 대통령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대통령을 떠나 한나라당이 나름대로 노력도 하고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이 대구의 발전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갑자기 촛불집회로 대화가 건너 뛰었다)
학생: “저도 촛불집회 갔다가 교감 선생님께 불려가서 사유서 작성한 적 있었거든요? 부모님께도 전화해서 학교에 나오라 하시고……”
“네가 촛불집회에 나간 것을 어떻게 아시고?”
학생: “아마도 촛불집회 하던 장소에서 우리들을 일일이 파악하는 사람이 있었나 봐요. 어떤 선생님들은 그래요, 욕하고 싶지만 현재 정권이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으니 참고 있다면서, 선생님들도 촛불집회 나갈 수 있지만 자제하신다고 하던데 제가 보기엔 아마도 나가게 되면 개인적 피해도 우려되니까 못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너 방학 중에 공부도 못하고 어떡하냐?”
학생: “오히려 고등학교 가서는 더 힘드니까 지금 경험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부모님께 말씀 드렸던 것이고 논란 끝에 허락 받았어요”
“대구 지역에 혹시 추첨제가 아닌 별도 시험을 치르고 들어가는 학교가 있던가?”
학생: “아니요,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 우리 사회가 학벌, 지연 등을 따지는 문화가 팽배해 있어서 실업계를 나와 사회에 일찍 진출하더라도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현상이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실업계를 생각하고 있지?
학생: “일단 내가 하고 싶을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또 대학가는 것을 생각해 보아도 실업계 특별전형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가족은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는?”
학생: “누나가 있어요. 고등학생”
“누나는 네가 촛불집회 장기 경험을 하러 서울 간다고 하니 뭐라 그러던?”
학생: “자기도 가고 싶지만 공부 때문에 어렵다면서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던데요?”
“한 가지 뜬금없는 질문 같지만 우리 사회가 10년쯤 후에는 어떻게 될 것 같니?”
학생: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요 왜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잖아요. 그분들이 이제는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일 텐데 이분들이 이제 노인층이 되고 그 이후 세대들은 아이를 많이 안 낳았잖아요? 그래서 인구는 줄면서 노인들은 늘어나는 상황이 될 것 같고, 그래서 지금보다 오히려 더 힘들어질 것 같아요”
“그럼 친구들 이야기도 좀 물어보자. 네가 이렇게 방학 중에 서울 가서 거의 한 달을 혼자 생활하면서 촛불집회 경험을 하고 오겠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뭐라 그러던?”
학생: “친구들은 올 수가 없어요. 방학 중에도 학교에 가야 하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니?”
학생: “30일 동안에 3주는 등교를 해야 해요. 그리고 1주일 정도가 온전히 쉬는 것인데 그 때는 방학숙제 해야 하고요”
“너네 학교만 그러니?”
학생: “아뇨, 우리 학교 주변에 학교가 꽤 많은데 다 그래요. 국공립은 안 그렇지만. 한 학교가 7교시 하면 덩달아 모두 7교시 수업 한다니까요? 경쟁적으로 그렇게 해요. 더 문제는 방학 중에 학교에 나가는 것을 거의 반강제적으로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게 무엇보다 문제 같아요. 거기다가 선생님들이 그래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안 나와도 된다’ 고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오히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보충하기 위해서 나오라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점수 잘 나오는 학생들을 다른 학교보다 더 많이 배출하겠다는 그런 식을 말하는 것이냐?”
학생: “예!”
“그럼 너는 어떻게 하고 이 곳에 왔냐?”
학생: “일단 신청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했고요, 등교는 안 하겠다는 거죠! 작년에도 방학 끝 쯤에는 두 명만 나오는 반도 있었다니까요? 원래는 저도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갈까 생각도 했었는데 이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부모님께 말씀 드리고 허락 받은 거예요”
“그럼 물어보자. 너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성이 어떻다고 생각하니? 아니 다시 묻자면 어떤 것을 잘하면 점수가 잘 나온다고 생각하니?”
학생: “선생님들도 그래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머리가 꼭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요. 그 아이들은 가만히 보면 그저 시키는 대로를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암기 위주의 학습에는 강하다 뭐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니?”
학생: “예 맞아요. 그 애들은 진짜 암기 같은 것은 열심히 한다니까요?”
“오늘 이 KBS 앞에 와서 본 느낌이 어떠냐?”
학생: “요즘 고유가라고 난리던데, 웬 전경 버스가 이렇게 많은지 촛불 든 사람 수보다 전경 버스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높은 사람들보다 시민과 전경들만 피곤한 것 같아요, 전경들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다 옮겨 적기에는 내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지만 그나마 대략은 간추린 것 같습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각각 해야 할 역할이 있는 것이고, 설령 그 일을 각각 수행하는 중에 너에게 나쁘게 비쳐지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무조건 그 집단 모두를 싸잡아 판단하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복잡한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어렵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른으로써 부끄럽고 미안하구나! 부디 우리 사회의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 주었으면 좋겠다. 정치하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이런 말도 해 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똑똑한 아이를 보면서 갑자기 저의 고등학생 아들 놈이 왜 이리 못마땅한지!
아비의 마음은 다 이런 것인가 봅니다……
어떤가요, 희망이 보이시나요?
어른은 무엇보다 부끄럼움을 알아야 어른일 것 같습니다!
논가외딴우물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47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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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보아야 한다!
귀성 조회수 : 166
작성일 : 2008-07-25 05:17:35
IP : 121.162.xxx.72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귀성
'08.7.25 5:17 AM (121.162.xxx.72)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47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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