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대생입니다.
사실 아고라를 알게 된지 얼마 안돼서, 뒤늦게나마 이곳에 올라오는 글들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주말마다 동생과 함께 서울집회에 참가한지 벌써 한달이 훌쩍 넘었네요.
인터넷 생중계로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또 아고라에 올라오는 현장소식 글을 함께 보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사실 전 뉴스도 잘 안 보고요, 신문도 잘 안 보는, 한 마디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21살의 대학생입니다. 친구들과 정치이야기 한 번 나눠본 적 없고요. 친구들한테 촛불집회 이야기를 하면 정치얘긴 딱 싫다며 하지 말자고 합니다.
사실 저도 뉴스 보면 안 좋은 일 들 뿐이고, 속 터지는 일 들 뿐이라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내가 분노한다고, 변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중앙일보를 보는 아빠는 촛불집회를 두고 "배후세력이 있다." 라고 생각하시고, 처음 촛불집회를 다녀왔던 날 엄마는 위험하게 왜 그런델 가느냐, 다시는 나가면 안된다. 심하게 꾸중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광우병 위험있는 미친소를 먹게 되는 것 보다, 지금 당장 내 딸이 다쳐서 들어오는게 엄마한테는 더 큰 일처럼 느껴지셨을거예요.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쭉 비밀로 하고 집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강제진압을 하면서 인도에 서 있던 시민의 머리를 방패를 찍던 의경의 모습을 보고 놀라 그 자리에 한참을 벙 쪘던 기억, 어린 소녀가 자유발언을 하다 울먹거리기라도 하면 '괜찮아!'를 외쳐주지는 못할망정 따라 울고, 아이가 탄 유모차에 소화기를 분사하는걸 보고 그 의경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때려주고 싶었고, 무분별한 소화기 분사에 어린 아이들이 마스크도 안 끼고 기침을 해댈 때, 하필 그때 또 살수차를 퍼부어서 애들 안고 뒤돌아 물 맞을 때 그냥 다 서러워져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나네요.
제 말투를 보고 지방에서 왔냐며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서울시민들, 제가 딸처럼 느껴지셨는지 걱정해주시며 잠잘 곳은 있냐며 울먹거리기까지 하셨던 아줌마, 광장에서 미처 우비를 준비못했는데 비가 내려 우왕좌왕 하고 있을 때 비 맞지 말라며 우비 챙겨주셨던 다인아빠님,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기차 타고 돌아올 때 마다 동생이랑 같이 찡해져서 "서울사람들 너무 좋다..." 라고 서로 얘기해요.
분명히 그 분들 중 아고라에 계신 분들도 있으실텐데,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르바이트비 타면 예쁜 옷도 사고싶고, 좋다는 화장품도 사고싶고, 예쁜 구두도 사고 싶어요. 그런데 이것들을 샀을 때의 기분과, 내 힘으로 번 돈으로 서울을 오가며 시위에 참가할 수 있는 기분은 차원이 다르네요.
새 옷 샀을 때의 기분은 잠시지만, 촛불집회에 다녀오면 그 감동은 훨씬 더 오래 가거든요.
지금껏 차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적이 없어요. 차비 그 이상의 경험을 하고 가니까요.
어제 비가 많이 내린데다가, 장시간 걸으시느라 정말 수고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진압들어올 때, 남자분들 뛰시는건 좋은데 같은 시민을 밀치면서 까지 뛰셔야 했나요?
분명히 남자분들이였습니다. 제 동생은 코를 세게 부딪혀서 많이 아파했고, 전 동생 손을 놓쳐서 순간 너무 무서웠고, 우리 자매가 계속 넘어질 뻔 한 걸 잡아주신 것도 남자분이셨지만요.
여태 그런 적이 없었는데 도망칠 때 정말 놀랐어요.
그리고 예비군 여러분 고맙습니다. 예전엔 안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들어 예비군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 같은데요. 집회에 참가하는 여성들 중 한 사람으로써 정말 든든합니다.
다만 걱정이 되네요. 군복이 연행대상 1순위라 들었습니다.
경찰이 방패 바닥에 긁으면서 갑자기 앞으로 오는데, 그 소리에 놀라고 곁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디선가 나타나 앞을 막아준 예비군 여러분 고맙습니다.
전대협 여러분들 너무 고생하셨고, 덕분에 많이 걷고 뛰었습니다. 저 살빠진 것 같애요!(이러고 있다...)
진화하고 있는 촛불... 정말 감동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끄는 대로, 저도 촛불들고 따라다닐거니까요. 우리 모두 다치지 말고 승리합시다.^^
아고라에 알바가 많이 풀린 것 같은데, 알바비 몇 푼에 영혼을 판 여러분들이 그저 불쌍할 따름입니다.
ps: 82쿡 여자분들게 두유와 우유 얻어 마셨다는 분들 많이 있더군요
그분들을 대신해서 제가 고맙다고 인사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노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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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 열 남자 안부럽다
난남자 조회수 : 727
작성일 : 2008-07-21 07:23:58
IP : 124.5.xxx.252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님같이만..
'08.7.21 8:21 AM (125.137.xxx.245)커준다면 더 바랄 바가 없겠어요. 방학이라 아직도 자고 있는 울 딸...
님 언제 울 집에 놀러오면 맛있는 거 대접해드릴께요.
울 딸에게 좋은 이야기 좀 해주세요.
님들 부모님이 부러워요.2. 아꼬
'08.7.21 8:59 AM (218.237.xxx.175)딴나라당의 굽히지 않는 뻘짓을 보노라면 참 좌절감을 느끼디도 하는데 이렇듯 동료가 하나씩 느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참 작은 일이지만 아침부터 원기회복이 되네요. 어제 내내 내리던 비때문에 울쩍함이 깊었는데 풋풋한 님의 글이 기분을 말갛게 씽어주네요. 너무 고마워요.
3. 나중에
'08.7.21 2:36 PM (222.234.xxx.241)님의 아이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아주 많겠군요.
집회가시더라도 다치지않도록 조심하시구요, 계속 힘내세요. 으쌰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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