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6살 아들이 하나 있는 직장맘이예요.
아이를 시부모님이 봐 주시는데,
워낙 보수적이신 시아버님이 촛불 집회 간다고 하면 호적 파라고 하실까봐 ㅠ.ㅠ
그리고 한참 기운센 손주 보시느라고 애 쓰시는것도 죄송스럽기도 하고 해서
한 번도 촛불 집회 참석하지를 못하고
항상 베란다에 초 하나 켜고 인터넷으로 생중계 보면서 마음만 함께 했었어요.
그런데 어제 손지연님이 올려주신 글 보고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에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가서 아주 잠깐만 있다 오자,
딱 초 하나에 불 밝히고만 오자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느 게시판에선가 봤는데 , 내가 함께함으로써 999,999명이 백만명이 되는거라고..
그래서 오늘은 점심도 안 먹고 미친듯이 일 하고
여섯시 땡 치고 나왔어요.
제가 다니는 회사가 삼성역에 있는데
코엑스에 항상 인파가 참 많잖아요, 특히 젊은 사람들..
저도 처음 참석하면서, 둘씩 셋씩 짝지어서 가는 젊은 사람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 (참 나 원, 그러는 저도 처음 가면서 ~)
아무튼 그렇게 나름 설래기도 하고, 긴장도 한 상태로 2호선을 탔습니다.
을지로 입구역에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왔더니
우와.. 여기가 내가 아는 그 을지로가 맞나 싶더라구요.
항상 차로 꽉 차있는 러시아워에 길이 한적하고, 더러 찻길로 내려와 걷는 사람들도 있고요.
맨 처음, 청계천 소라 광장으로 갔어요.
제가 도착한 시간이 7시 무렵이었는데, 영풍 문고 사거리부터 발 딛을 틈 없이 사람이 꽉 차 있더군요.
항상 사진으로만 보던,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어린 아이부터, 연세가 지긋하신 노인 분들
교복을 예쁘게 입고 자기네들끼리 뭐가 즐거운지 호호하하 웃는 학생들,
인파를 헤치고 소라 광장까지 갔습니다.
청계천 입구에 있는 동아일보사가 유리 건물이라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거의 빈 자리이고, 몇몇 사람들만 창 밖을 쳐다보고 있더군요.
동아일보의 녹을 받는 저 사람들은 과연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분신하신 분 묵념을 마치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
그 유명한 대한민국 신국보 1호 명박 산성을 제 눈으로 보았어요.
우리 센스쟁이 국민들, 그 사이에 명박 산성에 온갖 그래피티를 멋지게 장식해 놓았더군요.
다시 발길을 조금 나아가 보니, 콘테이너 가장자리로 얼마나 촘촘히 전경 버스를 세워 놓았던지, 정말 종이장 하나 샐 틈 없이 막아놨더군요.
광화문 지하차도를 공사하면서 스티로폼을 쌓아놓은 곳이 있길래 그 위에 올라갔어요.
을지로 입구에서 내리면서부터 느꼈던 감동이, 그 스티로폼 산 위에서 완전히 제대로였습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보니, 정말 빈 틈 하나 없이 8차선을 매운 사람들이, 이래서 이 나라가 유지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 때 위의 무대에서 안치환씨가 노래를 불렀지요. ‘광야에서’.
제가 93학번이라 데모 한 번 해 본적 없는데, 이 노래를 듣고 울어본건 오늘이 처음이네요.
시간이 여덟시가 넘어서, 아무래도 가야겠다 (제가 집이 워낙 멀거든요) 싶어 발걸음을 돌렸는데, 아무래도 82쿡 여러분들을 뵙고 가고 싶더라구요.
모여 계시는 곳을 찾는건 쉬웠어요. 초록색 팔찌가 얼마나 눈에 예쁘게 잘 띄던지~.
그 팔찌 하나 받아서, 나중에 아들이 컸을 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팔찌가 다 떨어지셨다며 초록 리본을 주시더라구요.
제가 숫기가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만나뵌 분들 모두 반가웠습니다.
지하철을 타러 시청 광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구국 기도회라는데에서 도데체 얼마가 모였는지 궁금해서 잠깐 들러봤어요.
그 넓은 서울광장을 거의 다 차지하고 계시는데 흰색 파라솔 의자만 눈에 띄이더군요 ^^.
아마 그 둘레를 싸고 있는 전경 숫자가 더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가 기독교 신자인데, 그 분들이 소리 높여 부르는 찬송가에 나오는 주님이
과연 내가 믿는 주님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구요.
제가 잠깐 서 있으니 무리 중 한 아주머니가 자신의 피켓을 사진으로 찍어 올려달라며
‘LA 갈비 20년 광우병 안 걸렸음. 재미교포’라고 쓰인 피켓을 높이 드시더군요.
이 분께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그냥 잘 계시라고 인사만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때가 한 8시 20분경인데 드디어 캄캄해 지면서 사람들이 모두 초를 올리더군요.
프라자 호텔 앞에서 100만명 중에 하나의 초가 되어 잠시 높이 들다가,
옆에 앉아 있던 여학생들이 있길래 – 이 여학생의 피켓 내용은 ‘대통령 아저씨, 저 대학도 가고 싶고 시집도 가고 싶어요. 제발 공부좀 하게 해 주셈’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 제 몫까지 초를 꼭 들어달라고 부탁하고 지하철 타고 돌아왔습니다.
참여기가 아니라 기행기가 되어 버릴 정도로
채 두시간이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제가 살아온 35년동안 나라를 위해서 아주 작은 뭐라도 했구나 하는 생각이 감히 들었구요.
매일같이 참석하신 분들께 정말 머리숙여 감사하는 마음이 다시 들었고,
촛불 집회 중독성 있다는 푸우님의 말씀 아주 제대로 공감했습니다.
다음에는 주말에, 꼭 남편 설득해서 아들도 데리고 나갈려구요.
이게 끝은 아니지만, 위대한 승리로 가는 한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불량 국민의 첫 촛불 집회 참석기
국민이 승자 조회수 : 898
작성일 : 2008-06-10 23:02:14
IP : 219.240.xxx.169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저도
'08.6.10 11:05 PM (125.132.xxx.50)광야에서 를 들으며 집으로 왔답니다..
2. 두아이엄마~
'08.6.10 11:07 PM (58.142.xxx.69)히히히 저와 한공간에 계셨네요~~^^ 저도 5개월 아들과 24개월 딸아이와 친정엄마와 함께 다녀왔답니다~ 중간에 친구와 지인들과 함께 만났구요~~~문소리씨 목소리도 듣고 양희은씨 아침이슬 ^^! 정말 발 딛힐 틈이 없는 그 곳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고 왔어요~~~!!!!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거~~~한숨돌리고 다시 아자아자 화이팅입니다~~
3. 집에서
'08.6.10 11:09 PM (211.33.xxx.12)마음만 함께 하고 있습니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4. ..
'08.6.10 11:34 PM (220.122.xxx.98)전 지방이고 바쁜 철이라.. 늘 맘은 집회에 가있어요. 딸내미랑 지난 주말에 갈까 말까 엄청 망설렸네요. 이 글보니 하루라도 갔다올껄 후회되요^^;
몸은 멀리있지만 고생하시고 참석하시는 모든 분들 건강하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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