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펌] 25일 새벽 청계 광장 (슬픕니다...)

결국 조회수 : 552
작성일 : 2008-05-25 09:54:37
25일 새벽 청계 광장  

뭔가 심상치 않다는 말을 듣고 새벽에 청계천을 향했다. 새벽 3시에 목격한 청계천 광장의 풍경은, 그러나 드물게 평화로웠다. 촛불을 든 젊은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유롭게 발언하고 종종 소리도 지르며 웃음을 섞었다. 잠시 지켜보다 먼저 와 있던 정곤이 형과 청진옥에 들려 해장국에 소주를 삼켰다.

4시 30분 즈음 김작가 형에게 전화가 왔다. 속보가 떴는데 살수차에서 시위대에 물대포를 발사했다는 이야기였다. 에이 설마. 나올 거야? 응. 광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둘러 나섰다. 동아일보 사옥 뒤로 돌아가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2시간 전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그곳 광장에 분노가 가득했다. 경찰 병력과 시위대가 대치했다. 본격적인 진압에 들어선 듯 보였다. 광화문 우체국 정문 앞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두 명이 탈진해 쓰러져있었다. 누군가 맞았다고 소리쳤고 밀려 밟혔다고도 했다. 화가 치밀어 올라 도로로 나섰다. 경찰과 시위대의 열이 팽팽하게 맞섰다. “평화시위 보장하라”를 입이 닳도록 물어 외쳤다. 내가 본 시위대는 결코 이성을 잃지 않았다. 경찰들의 안전을 염려하는 건 오히려 시위대 쪽이었다. 밀고 밀리는 가운데 나는 “다치지 맙시다”라고 소리쳤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밝아오자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살수차가 사라졌다. 문득 경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여경들이 나타났다. 곧 연행에 들어가리란 예고다. 주변 CCTV가 모조리 꺼져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앞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끌려가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다. 끌고 가려는 사람과 끌려가지 않으려는 사람, 그리고 지키려는 사람들의 완력이 한데 뒤엉켰다. 구호는 "폭력경찰 물러가라"로 바뀌어 있었다. 저 뒷줄의 전경과 눈이 마주쳤다. 어느 영화처럼 증오로 완연한 그 눈이 내게 무어라 욕을 했다. 나는 발끈했다. 그러나 화를 주고받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이내 한심해졌다. 너랑 나랑 서로 미워해야할 이유가 뭐니. 눈 안 깔어. 얼씨구.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앞줄의 연행이 시작됐다. 옆에 김작가 형이 끌려갔다. 나도 끌려갔다. 어깨를 잡혀 끌려가는 도중 뒤 쪽에서 누군가 당겨 몸이 허공에 떴다. 다시 땅으로 처박혔다. 몸이 땅에 닿자마자 군화발이 날아들었다. 머리도 잡아당겼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자꾸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왜 때립니까. 어휴 진짜 아파서. 그렇게 당기고 끌려 우체국 앞까지 밀려갔다. 더 이상 날 끌고 갈 의지가 없었던지, 정신을 찾고 보니 도로변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옆에 선, 어느 선량해보이는 청년이 내 대신 화를 내주고 있었다. 왜 사람 머리를 잡아당깁니까. 아끼는 겉옷이 찢어져 걸레가 됐다. 손바닥이 찢어졌다. 검지 손톱 절반이 씹혀 너덜거리며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얼굴에 땀을 닦다가 뺨에 온통 피가 묻었다. 주위 사람들이 걱정해주는 바람에 알았다. 겸연쩍었다. 나는 람보가 아니다. 그래도 꽁지머리를 지탱하던 고무줄이 사라진 걸 알았을 때는 화가 많이 났다. 난 간지남인데. 어디 거울 없나. 처량해서 처연하다.

핸드폰 진동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김작가 형은 닭장차에 실려 연행되는 중이었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다고 했다. 어느 매체에 고자질 기사를 쓸까 농 삼아 재잘거리다 전화를 끊었다. 시위대는 결국 도로를 뺏기고 물러섰다.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이성을 놓지 않았다. 다시 자유 발언이 시작되고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말들이 광장의 하늘을 덮었다.

드물게 피가 묻고 옷이 찢겨 나풀거리는 내 꼴이 유난스러워 창피했다. 옷도 갈아입고 지혈도 해야겠다. 택시에 올라타 집으로 향했다. 6시 10분이었고 날은 완전히 밝아있었다. 귀신같은 꼴을 사진이라도 찍어둬야 하나 싶어 핸드폰을 더듬거리다 관두고 피식했다. 맹장수술을 하고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난 일을 핑계로 한 번도 안 가봤다. 일러바칠까. 아마도 엄마는 아이고 아이고 누가 내 새끼를, 안아줄 테다. 연희동을 지나 가좌동을 향하는 동안 창밖의 풍경은 고요하고 청량했다. 평소에는 채 귀에 닿지 않던 새소리마저 드문드문. 아침은 이렇게 아름답구나. 아무 일도 없는 동네 골목길이 너무 평온하고 서운해, 나는 조금 울었다.

허지웅

IP : 116.42.xxx.30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이고
    '08.5.25 10:50 AM (211.206.xxx.71)

    정말 안아주고 싶어요..................안아주고 싶어요,,,,,,,,,,토닥토닥..
    미친 나라가 되어가네.............후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한숨이 한숨이 아침부터
    한숨이 왜 이리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기가 막혀 정말 너무나 기가 막혀....이게 도데체??????????????????????

  • 2. 이거
    '08.5.27 6:20 AM (218.145.xxx.100)

    어디서 퍼 오셨나요?
    허지웅.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잘못 기억한 게 아니라면 영화지 기자로군요.
    허기자. 거기 계셨군요. 고맙습니다.
    고자질 제대로 기대합니다. 정말 기대하겠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682633 자유게시판은... 146 82cook.. 2005/04/11 154,580
682632 뉴스기사 등 무단 게재 관련 공지입니다. 8 82cook.. 2009/12/09 62,243
682631 장터 관련 글은 회원장터로 이동됩니다 49 82cook.. 2006/01/05 92,524
682630 혹시 폰으로 드라마 다시보기 할 곳 없나요? ᆢ.. 2011/08/21 19,977
682629 뉴저지에대해 잘아시는분계셔요? 애니 2011/08/21 21,672
682628 내가 투표를 하지 않는 이유 사랑이여 2011/08/21 21,383
682627 꼬꼬면 1 /// 2011/08/21 27,415
682626 대출제한... 전세가가 떨어질까요? 1 애셋맘 2011/08/21 34,608
682625 밥안준다고 우는 사람은 봤어도, 밥 안주겠다고 우는 사람은 첨봤다. 4 명언 2011/08/21 34,799
682624 방학숙제로 그림 공모전에 응모해야되는데요.. 3 애엄마 2011/08/21 14,851
682623 경험담좀 들어보실래요?? 차칸귀염둥이.. 2011/08/21 16,993
682622 집이 좁을수록 마루폭이 좁은게 낫나요?(꼭 답변 부탁드려요) 2 너무 어렵네.. 2011/08/21 23,216
682621 82게시판이 이상합니다. 5 해남 사는 .. 2011/08/21 36,195
682620 저는 이상한 메세지가 떴어요 3 조이씨 2011/08/21 27,401
682619 떼쓰는 5세 후니~! EBS 오은영 박사님 도와주세요.. -_-; 2011/08/21 18,313
682618 제가 너무 철 없이 생각 하는...거죠.. 6 .. 2011/08/21 26,633
682617 숙대 영문 vs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21 짜증섞인목소.. 2011/08/21 74,083
682616 뒷장을 볼수가없네요. 1 이건뭐 2011/08/21 14,556
682615 도어락 추천해 주세요 도어락 얘기.. 2011/08/21 11,626
682614 예수의 가르침과 무상급식 2 참맛 2011/08/21 14,362
682613 새싹 채소에도 곰팡이가 피겠지요..? 1 ... 2011/08/21 13,392
682612 올림픽실내수영장에 전화하니 안받는데 일요일은 원래 안하나요? 1 수영장 2011/08/21 13,646
682611 수리비용과 변상비용으로 든 내 돈 100만원.. ㅠ,ㅠ 4 독수리오남매.. 2011/08/21 26,042
682610 임플란트 하신 분 계신가요 소즁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3 애플 이야기.. 2011/08/21 23,545
682609 가래떡 3 가래떡 2011/08/21 19,759
682608 한강초밥 문열었나요? 5 슈슈 2011/08/21 21,821
682607 고성 파인리즈 리조트.속초 터미널에서 얼마나 걸리나요? 2 늦은휴가 2011/08/21 13,808
682606 도대체 투표운동본부 뭐시기들은 2 도대체 2011/08/21 11,933
682605 찹쌀고추장이 묽어요.어째야할까요? 5 독수리오남매.. 2011/08/21 18,087
682604 꽈리고추찜 하려고 하는데 밀가루 대신 튀김가루 입혀도 될까요? 2 .... 2011/08/21 21,835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