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밥그릇
중국집 주방장인 남자가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자는 차비를 아끼느라 반점에서 집까지 그 먼 길을 뛰어서 출퇴근하곤 했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이었다. 밤늦게 집을 향해 달려가는데 할머니와 아기를 업은 젊은 여자가 눈을 맞으며 길가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가여워 다가가 물었다.
“왜 거기 그렇게 앉아계세요?”
“강 건너에 내려야 하는데 잘못 내려서, 이제 버스도 끊기고….”
할머니는 굳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더듬거리며 울먹였다.
“지방 공사판에서 일하던 아들의 사고 전보를 받고 부랴부랴 올라왔는데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아들도 못 만나고 낯선 곳에서 그러고 있지 뭐유.”
남자는 할머니 일행을 단칸방인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한밤중 불청객을 본 아내는 몹시 놀랐다. 하지만 대충 사연을 전해 듣고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들에게 방을 내 주고, 라면을 삶아 준 뒤 근처 친정집으로 갔다.
아내가 간 뒤 사내가 연탄 아궁이를 활짝 열어놓고 방안을 살펴보니, 안에서는 할머니와 며느리가 라면을 놓고 서로 양보하느라 그릇이 왔다갔다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남자도 처가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부부가 처가에서 돌아와 보니 방이 말끔히 치워진 채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가버렸나?’하고 생각했는데, 그날 오후 할머니가 다시 찾아왔다. 할머니는 하얀 사기 밥그릇을 내놓으며 남자의 손을 꼭 쥔 채 말했다.
“이 밥그릇으로 늘 복 많이 받게. 이 가정에 복이 넘치기를 비네.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네.”
할머니가 준 하얀 사기 밥그릇은 길거리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싸구려 물건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그 그릇을 가보로 간직하며 힘겨울 때마다 꺼내 보곤 했다.
마음은 아무리 퍼내고 나누어도 샘물처럼 다시 고인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웃과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것은 소유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마음을 활짝 드러내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 어떤 부호보다도 행복한 부자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오가면 사기그릇처럼 천년이 지나도 녹슬지 않을 광택이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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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사기 밥그릇
창문 조회수 : 322
작성일 : 2007-09-13 11: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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