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가 독일 사회당의 고타 강령 중의 어린이노동 완전철폐제의를 비판하기까지 했던 ...(중략)... 그도 물론 어린이 착취를 반대하기는 했지만 어린이는 전혀 일을 해선 안 된다는 원칙에도 반대하면서 손으로 하는 노동과 교육을 병행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중략)... 장래의 교육이란 것은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충분히 계발된 인간을 창조하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일정한 나이의 모든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생산적인 노동에다 지식전달과 인간성 연구를 한데 합치는 교육을 말한다.” 256쪽. 『건전한 사회』E. 프롬 / 범우사
오늘날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은 재화(財貨)가 ‘저절로 생긴다’ 고 믿으며 자란다. 거의 마술처럼 서비스가 제공되고, 물건이 진열되어 있으며, 음식이 식탁에 놓인다. 오늘날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옛날 식으로 하자면 씨를 뿌리고 작물을 수확하는 것의 관계, 목재를 베는 것과 보금자리를 짓는 것의 관계, 개울을 둑으로 막는 것과 곡물을 빻는 것의 관계를 아는 십대는 거의 없다. 이에 우리는 모든 학생들이 노동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할 것을 권한다. 이를 통하여 학생들은 자신의 삶에서 노동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고 스스로 책임감 있는 삶의 선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모 영어문제집 지문. (해석본)
내 요즘 관심사.
일/노동/수고로움(원인) 없이도 소비하고 누리고 즐길(결과) 수 있다는 착각의 만연. Things just happen. 물건들은 그냥 저절로 발생한다, 는 환상. 그 뒤에 누군가가 전가된 노동을 대신 해주고 있지만 그것은 주목되지도 고려되지도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오면 자기가 간식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간식이 ‘나온다’. 아버지가 손님을 데려와도 차와 간식을 아버지가 준비하는 게 아니라 ‘나온다’. 끼니 때마다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아무 것도 안해도 밥이 ‘나온다’. 입은 옷이 더러워지면 던져 두면 세탁되어 ‘나온다’. 게다가 그걸 투정까지 한다. 더 맛있는 것을 내놓으라거나, 왜 아직 안 빨아놨냐고.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의 결과물을 무상으로 누리는 삶이 지속되다보면, 그 결과물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 일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원리를 망각하게 된다. 굳이 묻고 따지면 ‘그래 그러고보니 그건 내가 입고 먹는 건데도 아내가/엄마가/며느리가 하고 있구나.’ 라고 대답을 할 수는 있겠지만 평소에는 그런 생각을 묻어버리고 산다.
그런 질문을 굳이 들어도, 자신이 남의 노동력 위해 기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껄끄러운 사람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인다. 하나는 직접 스스로의 필요를 스스로의 노동으로 감당하는 것. 또 하나는, 부모가 자식을 챙겨주는 건 당연하다는 식, 아내가 집안에 온 손님 접대를 맡는 건 당연하다는 식, 식사는 아내가 준비하는 게 관습 아니냐는 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구관습을 옹호하는 것. 대부분 후자를 택하는 것은 그래야 계속 노력 없이 대가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길을 택하면 ‘역지사지’ 라는 사자성어는 무용지물이 된다. 역지사지를 시작하자면 너무 많은 것에서부터 자신의 게으름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손을 움직여 일해야 한다. 그런 대대적인 부지런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이미 무상으로 누려왔고, 역지사지는 그 모든 부조리를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것’ 쪽을 포기한다.
위 예시는 가족 내의 ‘노동전가’가 주로 아내, 엄마, 딸에게 몰린다는 지적이고, 사회 내에서는 3D직종이나 기피직종 종사자, 저임금이나 외국인 노동자, 혹은 직급상 하위인 직원과 같은 권력상의 약자들에게 몰린다. 이것에 대해서는 ‘임금으로 보상을 하니까 정당하지 않느냐’ 는 논리로 정당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지사지는 없다.
역지사지해서, 당신이라면 그 돈을 받고 그 직업을 택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를 묻는다면 대부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직업은 택하지 말고, 그런 입장에 처하지 말고, 그깟 돈 조금밖에 못 버는 힘들고 천한 일 하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에게는 시켜야 하겠기에 ‘돈을 주고 고용하는 것이니까 정당하다’ 고 말할 뿐이다.
걱정되는 것은, 스무살이 되기까지의 모든 미성년자들이 그렇게 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청소시키지 말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학생들의 본분은 일하거나 청소하는 게 아니고 공부하는 것이거나, 진보적인 사람들 마저도 ‘자유롭게 놀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하지 일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태어나서 19년동안 미성년자들은 일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뼛속깊이 배운다.
부모님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방청소 해주고 필요한 돈대주고 이것저것 사주고, 학교든 학원이든 자신이 사용하는 건물은 청소부가 청소해주고, ‘공부만 하면 나머지 네가 하기 싫은 모든 것은 알아서 누군가 해 놓는다’ 혹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자라라, 일이나 노동은 누군가 알아서 해둔다’ 공부를 요구하든 창의적이게 놀기를 장려하든, 미성년자에게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 는 것을 생각없이 학습시키는 것은 똑같다.
먹지만 요리하지 않고, 입지만 세탁하지 않고, 쓰지만 청소하지 않고, 소비하지만 벌지 않고, 여행가지만 거기 필요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 바로 이 부분이 위험하다. 미성년자가 아무리 성인처럼 모두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성인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완벽히 보살핌만 받아야’ 되는 존재로 키워지는 것은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일부분이라도, ‘자신이 누리는 것을 지금은 다른 이가 대신해주고 있지만 결국은 조금씩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배워가야 하는데, 19살까지 기본 노동에 대한 학습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노동전가하는 데 그렇게도 무관심한 성인이 대량방출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습의 힘을 빌어 어린 사람이나 직위 낮은 사람에게 시킨다. 돈으로 보상을 준다는 논리로 자신은 돈줘도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데에 태연해진다. 자신의 힘을 들인 노동 없이 결과물만 누리는 데 익숙해지고, 그래서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기보다 매력적인 기회라 여긴다. 성실히 일하고 조금씩 모으는 사람들을 바보취급하고, 노력에 비례하지 않은 거금을 노릴 방안을 추구한다. 역지사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없게되고, 자신은 게으르되 남은 성실하게 일해서 자기에게 갖다바치는 사회를 암묵적으로 소망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을 써먹으려면 필요하기에, 돈을 추구한다.
생각해보자. 상사가, 자기가 마실 차나 자기가 먹을 것, 자기가 쓸 사적인 것을 부하직원에게 시키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상사를 칭찬한다. 남편이, 자신과 자기 친구가 마실 다과를 아내를 시키지 않고 스스로 가져다 먹을 때, 우리는 그 남편을 좋은 남편이라 부른다. 시부모님이, 며느리를 시키지 않고 스스로 이것 저것 할 때, 우리는 그 며느리에게 좋은 시부모를 만났다고 말한다. 부모가, 딸만 시키고 아들을 떠받들거나 하지 않고 둘 다에게 골고루 시킬 때, 우리는 그들을 공평한 부모라 부른다. 손윗남매가, 동생에게 이것저것 시키지 않고 스스로 잡다한 잔일을 할 때, 우리는 그를 좋은 언니, 오빠라 부른다.
모두 뻔한 이야기지만, 아랫사람에게 노동을 전가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하면 모두 전가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이 스스로 필요한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결여되어 있어서, 권력상 상위에 있기만 하면 하위자에게 미뤄버린다. 워낙 그런 일들이 흔해서, 스스로 하라고 요구하면 싸가지 없는 부하, 버릇없는 며느리, 기센 아내, 건방진 동생이라고 오히려 욕먹는다. 그러니 ‘자기 일을 자기가 하는’ 당연한 수준의 성실함을 두고 우리는 ‘좋은 사람’ 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 19세가 될 때까지 밥도 옷도 집도 돈도 자신이 누리고 사용하는 그 모든 것이 모두 자신의 노력 없이 들어온다는 걸 당연히 여기고 살게 내버려두는 것,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이 조금 덜 성실하고 조금 덜 부지런하게, 좀더 편하게 게으름 부릴 수 있도록 틈만 나면 누군가에게 노동을 전가하고 싶어하는 인간, 자신은 하기 싫고 남을 시키며 결과물은 자신이 누리고 싶은, 그런 인간을 양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 착취를 막아야 하는 것에 찬성하지만, 어린이노동 완전철폐제의에 반대했던 것. 그 부분에 대해 나는 마르크스에게 동의한다. 충분히 계발된 인간으로 자라나기 위해, 스스로 노동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기본원리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 및 보호자는, 미성년자의 모든 필요를 대신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미성년자가 그 필요를 스스로 완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보조해주고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http://heeyo.egloos.com/1585144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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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don't just happen.
^^ 조회수 : 733
작성일 : 2007-06-18 15:58:42
IP : 211.215.xxx.242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좋은글
'07.6.18 5:24 PM (211.217.xxx.190)좋은 글이네요.
근데 덜렁 옮겨놓지만 마시고 [펌]이라고도 적어주시고 앞이나 뒤에 옮겨오신 분 의견이나 느낌 그런 것도 적어주시면 더욱 생동감있게 다가올 거 같아요.
좋은 글이라 더 많은 분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린 말씀이니^^ 이해바랍니다^^2. 읽어보니
'07.6.19 10:44 AM (210.180.xxx.126)지당한 말씀이고 좋은글이네요.
우리 아들 어렸을적에 이 글을 접할 수 있었다면 교육을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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