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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 조회수 : 593
작성일 : 2007-04-14 21:17:50
결혼과 얼마안돼 회사를 관뒀어요.
친정 엄마 난리 나셨었죠. 엄마 기준으로는 최고학벌, 좋은회사 다니던 딸이었는데
졸업하고 취직한 해에 바로 결혼하고 조금 있다 회사까지 관둔다고 하니 기가 막히셨을거에요.

서로 일에 치여서 피곤해하며 하루 두어시간 밖에 볼 수 없었던 그 시절..
남편과 상의 끝에 둘 다 일을 관두고 6개월동안 신나게 놀았습니다.
6개월 후, 전문직이고 경력도 중요한 남편만 복직을 했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해서가 아니라 한사람만 벌어도 둘이 끼니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둘다 고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답니다.

'심심하지 않니' '공부라도 계속하지 그러니' ..........
엄마의 전화가 쇄도했습니다. 반감이 생기더군요.
'저희 누구는 모모시고 누구는 뭐뭐세요. 우리 아이들은 어디들어가고 어디들어가고....'
어릴때부터 엄마의 허영에 지쳤다고나 할까요.
'제가 하고 싶은 공부는 굳이 어디어디 대학원 타이틀 달고 하지 않아도 되는거고
전혀 심심하지 않다. 혹 용돈이 필요하시다면 죄송하지만 형편껏 드리겠다'
라고 일축해버렸죠.

돈 이야기. 민감하죠. 내심 무척 좋아하시는 건 알지만 드러내놓고 돈이 좋다라고
말씀은 못하시는 분이거든요. 저희 엄마. ㅎㅎ
이후론 제겐 그런 언급은 안하셨지만 오빠내외가 제 몫까지 힘들더군요.

6년이 지나..오늘 한 친구가 작년에 사시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상하게 마음이 좋지 않더라구요
그간 친구들 사시,행시 붙거나 기자, 피디, 이런저런 대기업, 사람들 좋아하는 교사 됐다는 연락
숱하게 받았어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저는 저대로 행복했고, 당장 내일부터 연봉 많이 줄테니 나와달라는 회사가 있다고 해도
이어폰끼고 발가락 까딱까딱 할 수 있는 지금의 시간과, 남편 퇴근 후 서로 너무 보고싶었노라며
드라마 한편 찍을 여유들이 저나 제 남편에겐 더 중요하니까요.
둘다 경제관념은 무척 없습니다.

아..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친구 소식엔 마음이 싱숭생숭 해집니다.
대학 졸업하곤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는 친구인데도요.
공부라도 다시 해볼까 하다가도 고시 아니면 의미 없어보이는 것을 보니
저 역시 속물이 맞았나 봅니다.  

본인 직업이든, 배우자 직업이든 만나서 직업부터 들이미는 사람들, 학교부터 들이미는 사람들
무척 우스워 했었는데 말이에요. 저희 엄마를 보듯 말이죠..

남편이 이런 제 마음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니 표현하진 않겠지만
저의 됨됨이에 실망하겠죠. 부끄러운 일입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들이 노력을 인정받는게 중요한 거라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그 외의 편견들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 반성해야 겠어요.
아울러 인문학 서적이 수험서적보다 무비판적으로 우월하지 않은점도 새깁니다.

오늘 엄마가  더욱더 미워지는 것은 제 실체에 대한 자괴감일까요.
어린아이 같군요.  
IP : 210.182.xxx.7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자신이
    '07.4.14 9:37 PM (220.75.xxx.143)

    있어보여서 좋네요. 태클걸려는거 아니구요,그래도 그만큼 능력키워주시느라 힘드셨을거예요.
    물론 본인 자질도 그에 못지않았겠지만, 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친정어머님 마음도 읽혀져서 왠지 짜~안하네요,
    이런 저도 두 아이의 엄마라서일까요?
    원글님보다는 어머니의 편에서 자꾸 생각되어지는게.......

  • 2. 지나가며
    '07.4.14 10:02 PM (211.196.xxx.22)

    저도 뭐 비슷한 처지라 남말 하긴 그렇지만서두... 님 매우 능력 있으신 거 같은데, 그 능력 님 혼자만의 것이 아닌 거 생각해보셨는지요. 사회를 위해 어느 정도는 환원하셔야 하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육아를 하시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돈 쌓아놓고 자기를 위해서만 펑펑 쓰는 거나 있는 능력 냅두고 만판 노는 거 비슷한 거 같아요...

  • 3. ...
    '07.4.14 10:02 PM (125.132.xxx.22)

    저도 소싯적에는 원글님같은 사고를 가졌던 좋은학벌소유한 전업주부였고, 지금은 원글님 처럼 생각하는딸을 둔 엄마입니다.
    어머니가 지금은 속물처럼 느껴지시겠지만 세월이 더흐르고 나서 님이 어머니나이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너무 장담하지 마시고 미워하지도 마세요.
    더 살아온세월동안 경험하고 느낀것이라 님이 다 이해 할 수없는것이니까요.
    친정엄마입장으로 볼때 그리 열심히 사는걸로 보이지 않을것 같구요. 말씀하신것만 봐도 제눈에도 그리 열심히 성실히 노력하는 삶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현실에 안주하는것으로 보이는.... 그리고 경제관념없는것 이담에 나이들면 그게 얼마나
    철없던객기 였는지 아시게 될것입니다.
    쪽빡깨지는데 사랑타령은 안나오죠. 제가 너무 직설적으로 까칠하게 답했나 모르지만
    제딸생각이나서 따끔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보기에는 님의 갈등이 전혀 속물스럽지 않고 당연한겁니다.

  • 4. ........
    '07.4.14 11:13 PM (71.190.xxx.23)

    저는 결혼도 안했고 자식 없지만, 님이 엄마가 밉다는 게 와닿지 않네요.
    속세에서 성공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면 어머니까 이해가 되야 하지 않습니까?
    이기적인 성격이신가 보네요.

  • 5. .
    '07.4.15 10:41 AM (221.151.xxx.8)

    원글님 충분히 이해됩니다. 제 보기엔 오히려 이기적인 분이 아니라 충분히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충실하려는 분 같은데 웬 이기적이란 말인가요?
    능력과 직업과 행복은 같은 저울안에 있지 않다고 봅니다. 제 주변에 사시에 되었던 친구 둘 중 한
    사람은 변호사 개업한 후 직업에 매우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다른 직업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판사라고 다를까요? 큰 소망과 꼭 하고자하는 열의와 세상에 대한 긍정이 있다면 가능하지만 그걸 모두 갖춘 사람은 거의 못봤습니다.
    자기 행복은 자신만이 아는 것이고 자기 불행도 자기만이 안다고 봅니다. 어머니들 모두는
    세상에서 성공한 자식이 행복이고 보람이겠지만 그 성공이 내 행복을 보장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잖아요. 교수되고 전문직 되어 내가 꿈꾸는 생활을 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어요
    하지만 열 중 여덟은 직업적 성공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그건 그냥 하나의 보험같은
    것일 뿐입니다. 보험에 많이 들었다고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던가요?

  • 6. 원글이
    '07.4.15 2:24 PM (210.182.xxx.7)

    낳아주신 분에 대한 감정이라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었는데
    읽어주시고 조언, 충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돈버는 일에 성실하지 않을 뿐 제 하루는 무척 바쁘게 흘러 가는데요 ㅠㅠ
    성공역시 개인적인 가치라 누구를 부러워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직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점에 스스로 당황스러울 따름이죠.
    저희 엄니께서 늘상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엘비라마디간의 연인같다'에요.
    혼자 넉넉찮은 형편에 남매 키워내신 엄마시니 제가 다분히 비현실적으로 보이실겁니다.
    또 실제 그러하고요. 저를 위한 엄마와 남편의 노동을 잊었었군요. 반성하겠습니다.
    따끔한 충고들, 이해의 말씀들 모두 엄마입장과 제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거듭 여러 말씀들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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