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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공부하고 살아온 이야기...

후련 조회수 : 1,901
작성일 : 2007-04-09 23:04:30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다니던 직장 그만두시고 사업시작 후 실패하자
빚만 늘어가고 정말 힘들고 괴로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 전까지 정말 풍족한 삶이었기에 더욱 더 힘들었어요
꽤 오랜기간동안 아버지가 무직상태였습니다
누가 아버지의 직업을 물어보는 것이 가장 싫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원망스럽네요
경상도 분이시라 보수적인 면이 강하셨고, 아무일이나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셨거든요
결국엔 혼자 공부하셔서 자격증 시험을 패스하시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오래 쌓여온 빚때문에 항상 마이너스 인생이긴 해도 안정적인 직업에다 저도 이제 벌고 그대로 집에다 쏟아붓고 있는지라 여직 별 문제없이 살아갑니다

공부에 대한 아버지의 생각은 학원은 절대로 보내지 않는다였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직접 수학과 영어를 가르쳐 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많이 울면서 야단맞아가면서 배우고...반 이상은 독학이었죠
전체적인 계획이나 흐름만 부모님이 잡아주었어요 (채점이나 단어시험만)
초등학교 땐 워낙에 엄마들 치마바람이 센 학교에 다녀서 기도 못펴고 성적도 그저그랬어요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공부를 많이 했다기 보다는 경쟁심 하나로 3년을 버텼습니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목표 친구를 정해놓고서 그 아이보다 잘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적어도 반에서 2등 밑으론 떨어져 본 적이 없었지요
그래서 그랬던지 비평준화 지역에서 가장 잘하는 고등학교를 진학 했더니
거기서 받은 반석차 3등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아버지에게 받은 교육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그것보다 아버지의 교육방식 중 효과가 있었던 것은 혼자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정석책도 중3때 구입해서 거의 독학했습니다
재미있어서 소설 읽듯이 봤어요
중3때 수학경시반이 되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학원에서 특목고대비반에 들어가 있어서 많이 아는 것이 부러워서 고등학교 수학을 혼자 공부한 계기가 되었지요
정석은 그때 첨으로 공통수학 구입하고 나머지 수학공부는 교과서와 보충수업 문제집으로 공부했어요
우리 땐 정석이나 개념원리 안가지고 있는 애들이 없었는데 ㅋㅋ
저는 지금 수학교사이면서도 정석, 개념원리 안봤습니다
교과서가 원리나 설명이 더 쉽게 나와있고 보충문제는 문제집에 충분히 많았거든요
고등학교 때도 최상위권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공부를 해서 집 근처 국립대 사범대에 들어가 바로 임용패스해서 2년차 교사입니다
제가 가고 싶었던 사립대 공대를 포기할 때도 돈이 없어서 였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위해서라는 아버지의 주장... 사범대는 어느학교를 나오나 똑같다는...고로 학비저렴한 국립대로 가라...
커트라인보다 무지막지 높은 점수로 수석합격하고
학교 다니는 내내 과외 4개씩 유지하며 4년 보냈습니다
학교 간판 좋지않아도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소개 덕분에 과외도 줄줄 들어왔습니다
한번 하면 3-4년씩 해서 고3 졸업까지 시키면서 그만두곤 했었어요
국립대만을 선택할 수 있었던 우리자매.. 한살차이 여동생도 서울대 다닙니다
사실 연대 원하는 과에 합격했으나, 저희 둘 국립대 학비 합해도 연대보다 훨 싸더라구요
결국 국립대 선택했습니다

동생은 어쩌다 소개로 알게된 가장 크고 유명한 학원에서 (저희 집은 지방입니다)
학원 홍보를 노리고 학원비 전액 면제로 3-4년 다녔던것 같습니다
동생은 또 저와 달라서 1등 밖에 안했거든요
학원홍보지에 항상 동생이름이 올라갔었지요
완전 최상위권...학원 부분만 제외하면 저와 교육방식, 공부방식 완전 똑같았습니다

띠동갑 막내동생있습니다
이제 초딩6학년.. 태어나서 피아노 잠깐 배운게 사교육의 전부입니다
방학때 집에가서 친구들이 해준 롤링페이퍼를 봤더니 "공부잘하는 OO야", "공부 잘해서 너무 부러워"
이런 이야기 빠지질 않더군요
저보다 낫더라구요.. 저 공부잘한단 소리 초등학교 때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여전히 학원 보내줄 형편도 안되고, 따로 살아서 제가 가르쳐줄 형편도 안되고
항상 맘이 짠하면서도 교육에 신경쓰지 못한 것이 맘에 걸려서 가끔 문제집 사준게 전부였는데
엄마 아빠는 여전히 혼자 책읽고, 모르는 것 터득하고 하는 방식으로 길들이시고
평소에 학교갔다오면 친구들 학원가서 혼자 게임하고 티비보고 놀아요
놀아도 잔소리 한번 하지 않으니 공부나 독서를 하기싫은 것으로 여기질 않아요
수많은 놀거리 중 하나로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버릇이 중요하나 봅니다
학원에서 공부하는 버릇 들이는 거 말구요...
저희 사촌동생들 하나는 고딩, 하나는 중딩인데 어릴때부터 영어유치원 다니고 하더니
이제 공부라면 짜증부터내고 완전 삐뚤어져서 날라리&양아치처럼 하고 다니려고 기를 씁니다
작은엄마는 이제서야 심각성을 깨닫고 항상 저에게 어떡하냐고 상담요청하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단계라서요...

우리반 아이들 반카페에다 글을 다섯줄 이상만 쓰면 길어서 안읽어! 합니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누구나 그럽니다
혼자 책읽고 생각해서 뜻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만 되어도
나아가 영어든 수학이든 혼자서 공부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요즘 급식비, 학비 지원받는 아이들보면 가슴이 짠합니다
저도 급식비 지원받으며 학창시절 보냈거든요
선생님도 어릴 때 지원받으면서도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지냈다고 힘을 실어주고 싶어져요
쓰고나니 저 어떻게 이렇게 살아왔나 모르겠어요
그래도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하니 너무 행복해요...
아버지때문에 선택하게 된 직업이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임용공부하는 동안 동생이 과외로 학원비까지 벌어주고 ㅠㅠ 아침밥까지 챙겨주고
지금은 동생 공부하는거 제가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가끔 농담으로 우리처럼 효녀가 어딨냐고 엄마아빠한테 농담을 하기도 한답니다
엄마아빠는 아직까지 우리딸 선생님이고 작은딸은 서울대학생이라고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시는지...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아왔고 이제야 조금씩 여유가 생길락말락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보상받으신 기분이신가 봅니다

저기 뒤에 학원보내지말라는 그 글 보고 완전 공감하고.. 울컥해서 제 이야기 늘어놓았습니다
우리 가족빼고 아무도 모르는 저의 이야기.. 처음으로 털어놓네요
IP : 58.232.xxx.239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7.4.9 11:12 PM (124.5.xxx.34)

    장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어요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게 아니에요.
    부모님이 자식복이 있으시네요 자매들이 모두 그렇게 성실하니까요.

  • 2. ..
    '07.4.9 11:27 PM (220.76.xxx.115)

    이게 바로 성공한 사람이겠지요
    존경스럽네요

    한 명도 아니고 세 아이 모두 그리 잘 자랐으니
    부모님도 뿌듯하실 겁니다


    참고로 제 아이 중 위 둘은 끼고 가르치는 것부터 학습지 과외 학원 안 한게 없지만
    큰 애들 가르치느라 방치상태로 둔 막내가 젤 낫더군요

  • 3. ...
    '07.4.10 1:30 AM (211.205.xxx.103)

    장하십니다.저두 저런딸,아들로 만들고 싶었는데....

    울애들 정말 말그대로 간크게 피아노 3년다니고 집에서 중찰 놀고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엄마가 다잡아 집에서 열심히 가르칠꺼야라고 말하는데..휴~

    전 제 몸하나도 못추스리는 편이라...

    근데..요즘,이전과 공부방식이 좀 다른것같은데,,,전 오히려 학원보내지마라,집에서만 했다는
    이야기만 나오면 그래도 학원에 보내보고선 후회할껄 하는 생각이 드네요.

  • 4. 울컥
    '07.4.10 6:42 AM (220.124.xxx.71)

    정말 장하세요...짠하네요...
    요새 부모들 너무 아이들 잡는거 맞는거 같아요...
    스스로 공부하는거... 아무도 못당하는거 같아요...

  • 5. ..
    '07.4.10 10:39 AM (58.226.xxx.130)

    저도 장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네요. 공부는 역시 스스로 계기가 되어야 하는것 같습니다. 보통 어려운 환경이나 이겨내고픈 계기가 있는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공부하게되지요. 고3들보다 뒤늦게 공부하는 장수생들이 잘하는 비결도..본인이 하고싶은때에 필요에 의해 공부하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아무 부족함없이 다 채워줘서 공부하게하는방법은 바람직하지 않은것같네요. 님이 해주신 이야기 잘 명심해서 아이를 키워야하겠어요.

  • 6. 와~~~
    '07.4.10 12:49 PM (210.97.xxx.211)

    이 감탄사 달고 싶어서 로긴했습니다.

    울 아들에게 어떻게 해줘야할지를.. 가난한 우리 살림에 아이에게 많은 것을 투자 못해도 희망이 있다는 걸 알려주셨네요.

    저보다 어린 것 같은데도 존경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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