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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나 한 이야기

... 조회수 : 1,619
작성일 : 2007-02-15 06:21:36
우리 엄마는..치매 환자이십니다.

벌써 몇년 되었지요. 병원과 적극적인 치료의 단계는 이미 지나갔고...이제는 편안한 삶을 사시다가 가시기만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 무섭다는 암이라면...수술이라도 한번 해 볼 수 있을텐데..차라리 암이라면, 가족들과 좋은 시간이라도 보내며 그간 못한 이야기라도 할 수 있을텐데... 엄마가 언제 가실지 모르지만, 우리 엄마는 유언도 없으시겠네요. 엄마가 제정신이었을 때 제게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엄마가 아프시기 전, 20대의 딸은 엄마의 친구같은 살가운 딸이 아니었습니다.
그 땐 내 공부하고, 연애하고, 아르바이트하기에 바빴지...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선물이 되는지조차 모르는 철없는 딸이었습니다. 그저 집에 손 안벌리고, 좋은 대학가고, 명절이나 생신 때 용돈이나 선물정도나 챙기고, 집에 필요한 소소한 것들이 떨어지면 채워넣는 정도로 나는 그만하면 착한 딸이라고 자만하며 지냈습니다.

엄마는 나를 위해 밤잠도 잘 못주무시고 날마나 새벽기도를 하셨건만.... 엄마와 아빠가 간혹 의견충돌이 있을 때, 나는 엄마편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제 눈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아빠의 판단을 늘 더 신뢰가 갔으니까요. 엄마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엄마들에겐 친구같은 딸이 최고인데...철없는 그 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대학다닐 때던가...엄마의 생신을 앞두고 옷 할인매장엘 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옷 값이 싸지는 않을 때라, 평소에 제옷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님 옷을 백화점에서 살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여성복을 파는 두개의 층을 돌다가 엄마의 눈에 들어오신 옷은, 소위 마담 브랜드의 좀 고가의 옷이었습니다. 그 때 그걸 사드렸어야 하는건데....어리석은 딸은 엄마의 생신 때 내가 쓰기로 한 '예산'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엄마, 아까 본게 엄마한테 더 잘 어울려."라고 거짓말하여 그보다 저렴한 일반 브랜드의 옷을 사드렸습니다. 물론 엄마는 일반 브랜드의 그 옷도 두고두고 잘 입으셨지만...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죄송스럽습니다. 내가 좀더 뛰면 사드릴 수 있는 옷이었는데....그 땐 학생때라 한번에 거금이 나가는 일은 잘 저지르지 못했다는게 궁색한 이유라면 이유랄까요?

  너무나 안타까운건... 얼마 전까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는데, 이제는 꿈에 나타나시는 엄마의 모습조차 예전의 모습이 아니십니다. 예전의 똑똑하고 자존심 강하던 엄마가 아니라 환자이신 엄마가 나타나십니다. 꿈에서 엄마 손 붙들고, "엄마, 내가 잘 나갈 때 엄마에게 효도하지 못해서 미안해요."라고 울먹였는데...역시나 엄마는 알아들으시지 못하시네요.

엄마. 엄마 딸, 이제 결혼도 했고, 훌륭한 사위도 생겼어요. 엄마는 이제 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엄마가 예뻐하던 엄마의 갓난아기 손녀도 이제는 얼마나 말을 잘하고 똑똑한지 몰라요.

엄마가 외롭고 힘들었을 때에...내가 생각이 짧아서 그런거 모르고 엄마와 마음 함께 나누지 못했던 거..너무너무 죄송해요. 엄마...용서해주세요....네에?
IP : 58.224.xxx.241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일부러
    '07.2.15 6:32 AM (125.132.xxx.254)

    로긴 했습니다.
    아이고, 마음 싸하네요....

  • 2. 나이가
    '07.2.15 7:43 AM (121.134.xxx.210)

    들수록 부모님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너무 마음 아파 하시지 마시구요, 님의 마음을 어머니께서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 3. ...
    '07.2.15 8:43 AM (220.90.xxx.37)

    가슴이 아파요~~
    원글님 때문에 아침부터 눈물 바람입니다.
    나이들수록 돌아가신 부모님께 잘못한 일만 생각납니다.
    살아계실때 맛난것 사드리고 잘 해 주세요.

  • 4. 착한
    '07.2.15 10:25 AM (61.76.xxx.19)

    딸이시네요....
    님의 글을 읽고 저 자신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학생때 어머니께 옷도 사드리고 하셨으니 훌륭하다고 생각 듭니다.
    너무 자책 마시고...

  • 5. ...
    '07.2.15 10:56 AM (219.251.xxx.28)

    그러게요....정말 아침부터 글읽고 눈물 뚝뚝 흘립니다...

  • 6. ....
    '07.2.15 1:57 PM (220.122.xxx.147)

    님 글 보고 저도 뒤를 돌아보게 되네요.....
    마음이 짠합니다....
    저두 곁에서 치매 앓는 할머니를 3년을 봐 왔었어요...
    그거 보면서 우리 엄마가 저러면 어떻하나 싶어 걱정이 되는데 ㅠㅠ
    사는게 다 이렇네요....

  • 7. 뭉클
    '07.2.15 2:27 PM (221.153.xxx.237)

    .
    .
    .
    아픈 노모 계시는 입장이라..
    가슴이 짠합니다.

  • 8. ㅠㅠ
    '07.2.15 3:35 PM (203.171.xxx.16)

    제 친정 어머니도 치매이십니다.
    정신은 그나마 완전히 놓으신것은 아닌데
    변 관리가 안됩니다.
    같이 사는 며느라가...도저히 견딜수 없다하여
    이 설이 지나면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하고선
    언니와 저는 병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셔오겠다는 생각은 못합니다.
    저는 정말 불효가 막심한 자식이라는 생각 때문에
    괴롭습니다.

  • 9. ㅜ.ㅜ
    '07.2.15 6:36 PM (61.254.xxx.174)

    윽...결혼 후 친정엄마랑 멀리떨어져서 살고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어요...
    울엄마도 몸이 항상 약하신데... 그래서 이번에 홍삼을 사드렸어요..
    그거 사드리면서도 돈때문에 얼마나 고심을 했던지....
    사드리길 잘했네요....엉엉.

  • 10. ...
    '07.2.15 8:01 PM (58.224.xxx.241)

    원글이입니다. 오늘 엄마를 뵈러 가기로 해서 간밤에 꿈을 꿨나봅니다.
    버스 지나가고 나서 손 흔들면 소용없다는데..엄마에게 잘 해드리지 못한 시절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네요.

    ㅠㅠ(203.171.185.xxx)님, 너무 맘아파하지 마세요. 저도 제가 못 모시고 친정아버지께서 간병인과 함께 고생중이시라 늘 죄송스러운 맘이예요.

    저는 이 병은 집에서 모시는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저희도 언젠가는 요양원에 모시게 될 것 같구요. 꼭 집에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모든 식구들이 함께 고생하는 것보다는 각자의 삶을 의미있고 보람되게 사는 것이 환자가 바라시는 것일꺼라고 생각해요.

    누구 한사람 희생하기엔 너무 큰 일이니...불효녀라고 자책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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