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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밥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
예전의 저는 기본적으로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않던, 어느 정도 음흉한 구석이 있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청소년기를 지나고, 또 나이를 먹고, 무서울 것이 없는 아줌마가 되면서 부터는
오히려 무슨 노출증이 있는 것 마냥 가슴 속에 이야기를 담아두지 못하고,
머리 속에 떠오른 이야기가 있으면 뭐든지 다 풀어헤치곤 했습니다.
그/ 런/ 데,
집에서 만큼은 그게 잘 안됩니다.
좋은 것도 없고, 싫은 것도 없고,
그저 뚱한 사람 그 자체가 되버리곤 하지요.
도식화된 며느리상이랄까요?
그나저나, 오늘 할 이야기는 이게 아닙니다.
늘 저의 관심사에서 벗어나지 않는 밥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관심이 많은데도, 요리 실력이 형편없는 것을 보면 재능이 중요하긴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먹어본 가장 맛있는 밥상은, 다름 아닌 시어머니의 밥상입니다.
맛있는 것은 기본이고, 몸에도 좋을 뿐 더러, 심지어 조리시간이 짧기조차 하답니다!!!!!
너무 놀랐어요.
쌀을 안치고 나서부터 반찬을 만들기 시작하시는데,
최종적으로 밥상이 나오기까지 20여분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청국장찌개, 고등어구이, 김장김치, 그리고 반찬 한 두개 정도 이렇게 차리십니다. 보통.
와,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구성입니다.
찌개는 돌솥에서 보글보글 끓고, 생선은 윤기가 좌르르르, 빨갛게 잘 익은 김치....
제가 차린 밥상은 꼴이 말이 아닌 거 저번에 말씀드렸었죠?
(개떡이나 떡국으로 검색해보세요)
완전히 비교체험 극과극입니다.
너덜너덜 살이 다 부스러진 생선, 거뭇거뭇 타버린 감자볶음, 굴소스 많이 넣은 버섯볶음.
저는 때깔도 좋지 않지만, 조리법도 좋지 않아서 주로 지지고 볶기를 잘 합니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주로 삶거나 찌시죠.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더라입니다.
어머니의 맛있는 밥상 자랑하려는 건 아니구요.
그 밥상을 대하는 저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맛있는 것 좋아하는, 내 머릿속엔 먹을 것 이야기가 아마도 50%가 넘지 않을까 싶은 저로서는,
어머니 밥상이 미치도록 맛있고 좋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잘 먹지 않습니다.
“배가 안고파요” 하거나, “이따 먹을게요” 하거나, 뭐 그럽니다.
남편이 같이 먹자 그래도, 같이 잘 안먹고요.
내가 차려야 할 밥상을 어머니가 차린다는 죄책감 때문일까요?
밥도 안차리는 주제에 ㅊ먹기만 잘한다는 소릴 들을까 봐서일까요?
뭐, 누구도 저한테 그런 소릴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암튼, 스스로 제 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제가 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좀 싫으네요. 제가.
차라리 속시원하게 “어머니가 만드신 게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어요!!!”라고
너스레 떨만한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데 그게 안되는 거에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차려놓은 밥상을 모른체 하는 일입니다.
그래놓고 라면이나 끓여먹고, 냉장고를 미친 듯이 뒤지거나 하는 짓을 하죠.
저는 어머니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승리자에게 승리를 축하하고,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현실에서 질끈 눈을 감아버린 걸까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건가요?
아, 언젠가 시어머니하고 같이 살다가 분가한 제 친구가 그러더군요.
시어머니하고 며느리하고 같이 사는 집은 서로가 밥을 부실하게 먹는다던가?
확실히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어른들) 앞에서 걸신 들린 듯 먹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요.
편한 사람이 아니라면 같이 밥 먹기도 좀 그렇잖아요?(어, 아닌데, 밥 같이 먹으면 원래 친해지는 건데... 자기 모순에 빠지는 중....)
아, 배고픕니다.
저녁시간이군요.
저는 집에 가서 바나나나 까먹게 될 것 같습니다. (불치병이네요)
1. 단순한 사람
'07.1.11 6:01 PM (61.66.xxx.98)눈 딱 감고 맛있게 드시면 안될까요?
너무 너무 맛있는거 안먹으면 원글님 손해잖아요.
전 누가 제가 만든밥 맛있게 먹어주는거 보면 참 좋더라구요.
그래서 시댁에 가서도 일부러 과하게 먹어요.
그게 밥상을 차려주신 시어머님께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으면서..
그러다보니 먹순이로 소문이 났다는....
혹시 무엇인가 심오한 말씀을 하시고 싶었는데
엉뚱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답글을 단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네요.2. 못난이
'07.1.11 6:03 PM (218.159.xxx.14)퇴근시간이 늦어 집에가면 시어머니께서 밥 다해놓고 계시는데요
그렇게 집에가면 먹기가 싫어요... 이상하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오뎅이나 떡볶이먹고 들어가서 밥 생각없다고 안먹어요
어머니께서 특별히 불편하게 하거나 상처를 주시는 것도 아닌데....3. 못난이2
'07.1.11 6:13 PM (221.153.xxx.241)위에 못난이님..저두 그래요.
4. 그러게요
'07.1.11 6:18 PM (59.187.xxx.38)전에 우리 새언니가 그랬죠.
퇴근하고 들어오면 그 며느리 주겠다고 발바닥 아프게 밥 차려 내주는데, 늘 생각없다, 배 안고프다 타령이지요.
어린 제 눈에도 우리 엄마 자신의 어린 자식들한테 해줄 때 보다 더 정성에 더 많은 반찬을 내주는데 그러더군요.
나중에 알았지요.
안먹는 이유가 나중에 많은 설거지와 상물림 처리가 싫어서 그랬더군요.
혹시 먹는 건 좋지만, 수저 같이 들었다는 이유로 뒤수습 담당 일인자 역할을 해야 되서 그러는 것은 아니실지.
아! 나는 왜 이런 인생에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이 많은건지.
까칠하려고 답글 단 건 아닙니다. ㅠㅠ5. 근데요..
'07.1.11 6:43 PM (211.228.xxx.22)그냥 고맙게 먹겠습니다. 하면 좋지 않을까요?
상황을 바꿔서 애써 일하고 들어왔는데 썰렁한 부엌, 오자마자 밥안치고, 반찬하고
밥상 대령하라 하시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저 그런 시어머니 봤거든요..
어머님 나름데로 일이 있어야지 힘도 나고..
마음 비우고, 설겆이 많아도 고맙게 먹을 수 있으면 서로 좋은것 아닐까요??6. ^^
'07.1.11 7:11 PM (58.103.xxx.121)인생 단순하게 살아요.^^*
그냥 눈 딱 감고 드세요. 어머니 잘먹겠습니다~하고.
솜씨 좋은 어머니 만난것도 복인데....
전 우리 어머니가 무치는 해초 반찬 맛있어서 시댁가면
주로 해초류만 먹어요.7. 그냥
'07.1.11 8:48 PM (221.146.xxx.89)감정 표현이 서투신가봐요^^
저희 어머님도 음식을 정말 잘하세요
대부분 그런 분들은
음식에 감사를 표하는 걸 좋아하신답니다.
저는 몹시 성에 안차는 며느리여서
내성적이고 새침한(?) 우리 어머니
많이도 싫은 티 내셨는데,
그때도 먹는 걸 잘 챙겨주셨어요
그럼 밥 좋아하는 저는
좋아서 입을 귀에 걸고 아구아구 먹고,,
그러다 세월이 가니
어머니와 친해져 버렸네요
지금도 가끔 홀로 계신 어머니께 가서 엉겨요
~가 먹고 싶은데 내가 하면 맛이 있니 없니 하구요
그럼 다음에 가면 해주시지요^^
그리고 님 밥상이랑 머하러 비교하세요?
그 분들은 거기에 들이신 세월과 공이 얼마인데
같으면 억울하죠 ㅎㅎㅎㅎㅎ8. 그래요
'07.1.11 8:50 PM (218.238.xxx.30)그냥 감사히 맛있게 드시고,
너무 맛있었다고, 저는 어머님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그렇게 한 말씀만 하세요.
상대방이 시어머니가 아니라, 그냥 같은 여자라고 생각해 보세요..
매일 음식을 정성껏 차려서 시간 맞춰 낸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원글님도 잘 아시잖아요..9. 원글
'07.1.12 8:23 AM (203.243.xxx.3)단순하게 생각할 일을 너무 배배 꼬아서 생각하고 있었나하고 반성 일단 해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직장을 다니고, 음식을 영 못하는 게다가 구김살없는 사람도 아닌 며느리로서, 뭐랄까?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을 넙죽넙죽 받아먹기(이렇게 생각하는게 문제겠지만)가 쉽지는 않아요. 내가 차려드려도 시원치않을 판에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뭐 이런 생각?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어머니 앞에서 밥먹기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기도 하네요.
식구들이 모여서 새우를 쪄서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제가 좀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
아구아구 먹었던 듯, 제앞에 수북이 놓인 새우껍질.
근데 그 상황에서 어머니의 한 말씀 “새우는 누가 혼자 다 먹는구나”
전 더 이상 숟가락을 들 수 없었어요.
먹을 때는 개도 안건드린다는데, 먹는 걸로 차별하면 제일 서럽다는데..
뭐 이런 말이 떠오르면서 정말 밥맛이 뚝 떨어진 경험이 있네요.
물론, 남편 왈, 어머니가 나쁜 뜻으로 한 말씀은 아니다 라고 하지만, 듣는 저는 그랬네요.
트라우마가 된 걸지도 모를 일이네요.
암튼. 그렇다고요.
맛있는 차려주신 밥상 그저 수저 들어 먹기만 하면 되는 일을 가지고 (배우 황정민처럼)
참 어렵게도 생각하네요.
심플한 정신세계를 위해 좀 노력해야겠어요.
답글 주신 분들 고마워요.
아참, 설거지 하기 싫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분, 그건 절대 아니랍니다.
지금도 충분히 설거지는 잘 하고 있고요. 설거지 만으로 제 부담이 덜어진다면 더 반가울 일이겠네요.10. 아..
'07.1.12 10:11 AM (165.243.xxx.20)길게 댓글 썼다가 날아갔어요.. 이렇게 허무할 수가..
저는 원글님 심정 잘 알아요.
며느리 입장과 도리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스스로의 자격지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특히나 우리나라 밥상 처럼 권력구조가 그대로 들어나는 곳에는 (우리집은 시아버지가 조장하죠)
더군다나 며느리는 밥잘하고 일잘하고 모든 가족 수발 드는 일꾼이 되어야 하니까요.
맞벌이 하는 여자들은 돈도 벌어야 하고 머리속은 민주적이며 개혁적인데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스스로를 옭아매고 죄인되고 맘이 안편하지요...
저도 원글님과 비슷한데요.. 그냥 나는 일하는 사람이다 .. 그러니 아들과 동등하다... 그리고
밥을 잘 못해도 잘 먹는다 ... 이렇게 최면을 걸고...
뭔가 공격이 날아오면 이렇게 반응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먹는거 너무 좋아요.. 이해해 주세요"
무지 단순하지 않다는 거 저도 너무 잘 알아요........11. 원글
'07.1.12 10:54 AM (203.243.xxx.4)네, 맞아요, 자격지심이에요.
남편은 시어머니의 아들이니까, 원래 밥하는 것에 대한 의무가 없는 사람이니까,
밥을 맛있게 먹는 권리를 당연하게 누릴 수 있지만,
저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딸이 아니고, 밥을 해서 가족을 먹여야 하는 사람으로서.
제 할 도리를 못하고 밥이나 축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
마치 하숙생 같기도 해요.
붙임성 없고, 하숙비도 가끔 늦는 그런 하숙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 집이다 이런 생각이 안 들어요.
참 쓸쓸한 거죠.
그리고, 위에 글 써주신 아..님
저도 글 자주 날리는데요. 댓글 달고 나면 꼭 권한 없다는 메시지가 뜨더라고요.
그럴때면 <-- 뒤로 가는 화살표 눌러보세요. 그럼 아까 쓴 글이 남아있더라고요.
그걸 복사해서 다시 쓰면 되던데요.
하도 로그인이 자주 풀려서 저도 요새는 따로 한글에서 따로 글을 쓰고나서 복사해오네요.
아무튼.
제 심정 이해해주신 분들 고맙네요.12. 아..
'07.1.12 1:58 PM (165.243.xxx.20)다시 씁니다..
원글님이 착한 여자 컴플렉스가 있어서 (저도 있구요) 그런 거 같구요..
저는 이책 사 봤답니다. "나쁜여자가 성공한다"...
행복해지고 단순해 지기 위해서 나쁜 여자(??) 가 될 필요 있는 거 같아요..13. ...
'07.1.13 11:04 AM (218.149.xxx.6)왠지 슬프네요 ㅠㅠ
원글님 입장이 이해가 되서요..
그냥 맛있게 차려주신 밥상
맛있게 맘편하게 먹을수 없는 '며느리'라는것이 서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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