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딸을 통해 생각함

엄마의 삶 조회수 : 802
작성일 : 2006-09-06 11:04:35
페미니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에 "어머니를 통해 생각함 Thinking Through A Mother"이 있다. 우리보다 먼저 살아온 어머니들의 삶을 반추하면서 그녀들의 삶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지향성을 나타낸 슬로건이라 할 수 있는데, "어머니를 통해 생각함"은 이제 "딸을 통해 생각함"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자신의 이름도, 정체성도 없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강요당해 왔고, 이에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하며 "여성의 목소리 찾기"에 주안점을 두어왔다. 그런데 여성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은 대개가 지난 날의 여성의 삶을 검토하는 작업을 통해 여성이 결여하고 있었던 요소들을 회복하고자하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과정은 자칫 "한" 또는 "원망"이란 감정의 덫에 걸려 인간의 평등을 목표로 한 페미니즘의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낳곤 했다.

남성과 이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여성에게 억압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남성중심의 가부장 문화는 남성에게도 그만큼 억압적인 굴레로 작용해왔기 때문에, 가부장 문화로 인해 여성이 입은 피해만을 열거하며 마치 여성들만이 가부장 문화의 피해자인양 떠들어대며 남성이 입은 피해를 보지 못함으로 인해 여성운동은 많은 남성들로부터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이다. 온전한 삶의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서 과거의 제도와 가치를 검토하는 작업은 꼭 필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의 여성운동은 이러한 과정에서 "한"의 정서에 빠져듦으로써 남성들로부터 반감을 불러일으킨 한계를 노정하였기에,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간의 여성운동이 "어머니"를 통해 생각해왔다면 이제부터는 "딸"을 통해 생각해야 할 때이다. 딸을 통해 생각한다고 함은 우리네 어머니들이 당해온 부당한 억압과 피해에 중점을 두는 접근방식이 아니라 "한"과 "원망"의 정서로부터 자유롭게 우리네 딸들이 살아갈 세상의 질서를 창출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해방운동의 본질은 인간해방운동이며,  성의 구분을 넘어선 질서의 확립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딸을 통해 생각하는" 작업은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딸"로 상징되는 인류의 미래를 창출하는 작업이어야 하며,  "내 어머니는,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억압을 경험하며 살아왔는데 너만은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라는 식의 "한"의 정서가 아닌, 과거의 억압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롭게 새로운 질서를 그려나가는 자유로운 여정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딸을 통해 생각함"은 어떠한 구체적인 실천양식을 지녀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필자의 생각이 아직 익지않아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으나 당장 떠오르는 가장 쉽고 근본적인 실천양식으로는 양육자로서의 어머니의 역할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의 양육자는 여성이며, 많은 경우에 여성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주입된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아이들에게 재주입하게 된다. 예컨대, "넌 여자/남자니까 ..해야해/ 하면 안돼"라는 식의 말을 무의식중에 아이들에게 하게 되는데, 이러한 말들을 반복적으로 듣게 됨으로써 아이들은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게 된다.

또한 여성이 가사와 아동양육의 주책임자라는 가정에서의 성역할에서의 변화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한다. 아이들이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가지는 요소가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직접 경험"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기에 늘 집안일은 엄마가 하고 아버지는 가사를 등한시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가부장적 성역할 이데올로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가사와 육아에 남녀가 똑같은 참여도를 가지도록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머리로는 역할분담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것을 미루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가사와 아동양육을 남녀가 같은 비중으로 나누어하도록 하려면 날마다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라도 아버지가 가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해야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상 남편을 논리적으로 설득을 하든 애교를 부려서 하든 나름대로 여러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또한 가장 중요한 실천양식으로는 어머니 스스로의 삶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어머니를 통해 생각함"이라는 표현이 나왔듯이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무의식중에 자신의 삶의 양태를 결정하게 된다. 많은 여성들이 "내 어머니는 이렇게 희생적인 삶을 살았는데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궁극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어머니는 딸에게 중요한 역할 모델이며, 딸의 가치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임을 입증한다. 따라서 어머니가 먼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찾으려 노력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인정받는 삶을 살도록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여성들은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희생이 가정과 자녀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여성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한 사이트에서 남편과 아이들에게만 좋은 옷을 사입히고  기뻐하기보다는 허탈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던 딸이 어머니의 그러한 삶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하는  글을 올린적이 있으며, 또한 도박과 외도로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버린 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삶에 대해 어머니의 희생에 가슴아파하면서도 어머니의 어리석음을 원망하는 내용의 글들또한 각종 사이트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러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어머니의 희생이 반드시 자녀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딸을 통해 생각하는" 삶은 내 딸이 살았으면 하는 삶의 양태를 내가 직접 살아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딸들에게 할머니나 어머니가 살아온 억압과 희생의 세월을 들려줌으로써 여성으로서의 피해의식이나 "한"의 정서를 그네들이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딸들이 성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모습들을 보고 들으며 자랄 수 있게 노력한다면 우리의 딸들은 우리의 어머니들과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해온 성차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실현할 수 있는 올바른 삶의 질서를 보다 쉽게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IP : 220.83.xxx.25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좋은 글
    '06.9.6 12:40 PM (211.191.xxx.105)

    잘 읽었어요.
    다시 한 번 내 자신의 삶의 방식과 자녀에 대한 교육관을
    생각하게 하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80140 부동산 청약 관련질문인데요.. 3 제테크꽝 2006/09/06 250
80139 옥션 홍로사과 2 사과귀신 2006/09/06 635
80138 안전한 장거리비행.. 7 임신초기.... 2006/09/06 408
80137 내게 주어진 것에서 행복찾기 3 내 삶의 방.. 2006/09/06 710
80136 삼성 4차 아파트 어떤가요? 8 용인 풍덕천.. 2006/09/06 800
80135 목동 사시는 분들께 질문이요.. 학원초보 2006/09/06 396
80134 프로폴리스 정말 괜찮은지요 1 감기를~ 2006/09/06 582
80133 부동산 관련 글만 보면 2 세입자는 2006/09/06 566
80132 [자랑질] 토들피카소 질렀어요~ (남편몰래) 6 전집조아 2006/09/06 862
80131 아줌마 6명 오실건데... 2 초대 2006/09/06 821
80130 폐경기라서 이런지... 5 소근소근 2006/09/06 1,115
80129 애들옷 오래 입히는(?) 사이즈 7 .... 2006/09/06 942
80128 딸 인물 자랑.... 16 이뽀 2006/09/06 2,441
80127 아이들 책 몇번씩 반복해서 읽어주시나요? 12 궁금녀 2006/09/06 766
80126 피검사 만으로도 가능한가요? 3 암진단 2006/09/06 697
80125 칼 어떻게 보관하세요? 6 저요. 2006/09/06 602
80124 애견카페나 동호회 4 질문 2006/09/06 242
80123 친정집에 어제 ~~ 4 m.m 2006/09/06 1,384
80122 너무 무심한 사람인가요? 3 제가 2006/09/06 982
80121 돌 갓 지난 아기에게 어떤 책을 사줘야하나요? 5 아기책 2006/09/06 398
80120 밤에 이갈이가 너무 심해서 치아가 닳다 못해 금이 가네요 6 나이트가드 2006/09/06 771
80119 딸아이가 열감기를 앓은 이후로 밥을 못(안)먹고 있는데요... 5 아는게없어 2006/09/06 236
80118 치질수술이 그렇게 힘든수술인가요?답좀 주세요.. 2 2006/09/06 609
80117 4살남아 배변문제에요..ㅠ.ㅠ. 2 못된엄마 2006/09/06 245
80116 집에서 예쁘게 하고 계시나요? 25 이쁘게 2006/09/06 3,045
80115 mbc주말 드라마 흠..제목이..발칙한 ost 3 .. 2006/09/06 751
80114 딸을 통해 생각함 1 엄마의 삶 2006/09/06 802
80113 아가 눈주위에 멍이 들었어요 2 궁금맘 2006/09/06 290
80112 정장바지 수선해보신분~^^ 6 바지수선 2006/09/06 1,789
80111 훌라흐프 4 훌라후프 2006/09/06 598